169화. < 39. 장벽 너머의 땅(7) >
강민혁은 일단 돌연변이의 사체를 살폈다.
클리스만의 메시지를 통해서 돌연변이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알았지만, 둘연변이(突然變異)라는 이름처럼 이 녀석들의 특징은 제각기 다르다. 그래서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돌연변이의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외형을 봐서는 라이칸스로프의 변형이 분명해.’
핵폭발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돌연변이들의 DNA는 열에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정찰대 마법사들의 화염 마법에도 큰 피해를 받지 않았던 건데, 다행히도 그들의 약점은 존재했다. 바로 체내를 직접 공격하는 방법. 전기 계열의 마법으로 내부를 공격하면, 돌연변이라 할지라도 버티지 못한다.
물론 7서클 이상의 마법은 예외다.
돌연변이의 외피로도 버티지 못할 위력의 힘은,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돌연변이의 숨통을 끊어버린다.
‘다행히 노멀 타입의 돌연변이였네.’
돌연변이의 종류는 다양하다.
클리스만의 정보는 그들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노멀 타입임을 확인하자 더 살필 이유가 없었다.
만약 방사능을 직접 분출하는 종류의 둘연변이를 만났더라면, 강민혁이라 할지라도 매우 고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인의 몸이야 보호하는 데 크게 문제가 없지만, 돌연변이가 작정하고 정찰대 인원을 노린다면 사방으로 퍼지는 방사능으로 인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진다.
꿈틀.
아직 죽지 않은 돌연변이가 있었다.
참 질긴 생명이었다.
하반신이 날아가고도 인간을 향해 더러운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에, 강민혁은 검으로 머리를 찍었다.
퍽!
추욱.
또 다른 약점.
바로 마나 핵이었다.
확실히 움직임이 끊기자, 강민혁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정찰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돌연변이의 약점은 두 가지입니다. 전기 계열의 마법으로 내부를 직접 공격하거나, 아니면 핵을 찾아서 박살 내버리는 것. 핵은 보통 머리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나의 흐름을 파악해서 가장 많은 마나가 모여있는 곳들 공격하면 됩니다. 돌연변이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볼 수 없는 것이고,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핵에 저장되어 있는 마나니까요.”
전투가 끝났으니 다시 예를 갖추었다.
전투 도중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말을 짧게 끊었지만, 지금도 그럴 필요성은 없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정찰대원들은 강민혁의 설명에 고개만 끄덕거릴 뿐, 넋을 잃은 얼굴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파벨 쿠베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흑시 7서클 대마법사이십니까?”
‘아.’
이제야 그들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7서클.
마법 문명에서도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경지다.
파벨 쿠베스를 비롯한 정찰대의 사람들은 강민혁의 마법에 경악했다.
강민혁의 정체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7서클 마법을 사용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경악에 찬 시선들.
특히 정찰대의 마법사들은 자세가 공손해진 상태였다. 마법사들에게 서클의 경지는 절대적이었고, 특히 7서클 대마법사 앞에서는 예를 다할 수밖에 없다. 마법은 7서클 이후부터 전혀 다른 세계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들은, 혹시라도 강민혁에게 실수한 적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돌연변이에 신경을 쓰느라고, 정찰대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를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강민혁이 말했다.
“일단 자리부터 옮기시죠.”
이곳은 노출된 장소다.
혹시라도 몬스터들의 후속 공격을 받을지도 모를 터.
일행은 강민혁의 말에 조금의 의문도 가지지 않은 채, 강민혁을 따라 안전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설명은 구구절절하지 않았다.
강민혁은 짧게, 믿으면 믿으라는 식의 설명을 해주었다.
“저희 가문은 몬스터들에게 몰락한 대한민국의 후예입니다. 그래서 언제고 몬스터와 싸울 날을 대비해서, 가문의 사람들에게 장벽 너머의 경험과 마법 지식을 대대로 계승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가르침에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법사라는 사실들 숨긴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7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다소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아서 숨겼습니다.”
썩 개운한 대답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강민혁이 하는 말은 그저 믿을 수밖에 없다.
“그 나이에 7서클의 경지에 오르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강민혁은 많아 봤자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정찰대의 6서클 마법사인 오웬 패터슨(Owen Paterson)은, 진심으로 존경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7서클.
그의 꿈이다.
강민혁은 지금부터, 예를 갖추어야 할 상대가 되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들 하실 생각입니까? 둘연변이가 흔한 몬스터는 아니라서 또 만날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이보다 더한 위험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만 포기하고 둘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정도만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강민혁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파벨 쿠베스였다.
7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로부터, 실력을 확인해보겠다던 자신감 넘치는 선임의 모습은 사라졌다.
“저는 모스크바로 갈 생각입니다. 그게 여러분들에게 같이 가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번 기회에 장벽 너머의 땅을 조금 더 자세하게 파악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적어도 목적을 이룰 때까지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알아낸 정보는 돌아가는 대로 공유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정찰대의 업적으로 인정돼서, 여러분 모두 성과급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배려였다.
강민혁의 말에, 파벨 쿠베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어차피 이번 임무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강민혁님 덕분에 목숨을 구제받았는데, 홀로 사지에 들어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가고 싶습니다.”
정찰대원들이 너도나도 나섰다.
그들의 선택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파벨 쿠베스의 경우에는 은혜를 갚기 위해, 모건 폭스는 죽기 전에 직접 모스크바를 확인해보기 위해, 오웬 패터슨은 7서클 마법사 곁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얻기 위해.
확실한 건, 그들은 강민혁을 믿었다.
강민혁.
그를 따라가면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
사실 강민혁의 능력이 있었기에, 그간 미개척지라고 불렸던 땅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지 않은가.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강민혁도 바라는 바였다.
‘블라디미르까지는 데려갈 수 없겠지만, 적어도 모스크바는 인류에게 직접 보여줄 필요성이 있어.’
모스크바.
인류의 첫 번째 목표.
강민혁은 정찰대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그들은 강민혁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그들의 안전은 자신이 보장할 것이다.
모스크바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뒤에, 역할이 끝난 그들은 안전하게 장벽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 전에.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움직이기로 하죠. 대신에.........."
카메라를 끄라는 신호를 보냈다.
주기적으로 영상들 보내는 그것의 존재가 있는 이상,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카메라를 끄는 정찰대원.
그러자. 강민혁이 본론을 말했다.
“생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지금부터 휴식을 취하는 동안 몇 가지 기술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사실 계속 입이 간지러웠다.
파벨 쿠베스.
야매로 검술을 배운, 그의 자세 때문에 말이다.
강민혁은 파멜 쿠베스에게 검을 들라고 시켰다.
수호 검법의 자세를 보여달라는 말에 망설이던 그는, 이내 결정을 내리고 기본자세를 취했다.
수호(守護)의 기본.
양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어디에서든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자세.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파멜 쿠베스가 배운 검술은 다운그레이드 버전이기에, 마나의 운영이 지나치게 정적이었다.
“본인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수호 검법은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내는 것에 특화가 되어 있는 검술입니다. 검술을 구현하는 자세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만, 애초에 전방으로 뻗어 있는 검은 수많은 변수에 대응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수호 검법의 진정한 시작은 발검(拔劍)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리고 마나의 운용 또한, 검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방향에서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폭발적인 힘을 일 점에 응축시켜야 합니다.”
파벨 쿠베스를 보며 답답했던 부분이다.
다운그레이드 버전.
혹시 모를 주화입마(走火入魔)에는 효과적이나, 그로 인해서 검법 자체의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강민혁은 그것을 직접 가르쳐주었다.
잠깐의 인연.
강민혁은 그런 것들을 필연이라 생각한다.
파벨 쿠베스라는 사람의 사연을 알게 되었고, 그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
그러니,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파멜 쿠베스에게 도움이 되도록 검술을 직접 알려주었다.
수호의 검이란 원래 그렇다.
사람들을 위한 것.
강민혁의 아버지인 강덕철은 엄격한 사람이지만,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배척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설마 지금 수호 검법을 가르치는 거야?”
“우리도 얼른 배우자.”
다른 정찰대원들.
그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강민혁은 일부러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검을 휘두르는 방식과 효율적인 마나 운용법을.
파벨 쿠베스와 강민혁의 검은 비슷한 성향을 보였으나, 막상 보여지는 위력은 전혀 달랐다.
“완벽한 자세를 취하면 어떤 공격이든 대항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한번, 저를 공격해보세요.”
“알겠습니다.”
꽉.
파벨 쿠베스가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앞으로 전진!
뒷발에서 일어나는 마나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지만, 이미 그의 팔은 반발력에 높게 떠오른 상태였다.
카앙!
'.........어라?!'
공격이 막혔다.
언제 검을 빼 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른 발검이었고, 강민혁은 파멜 쿠베스와 동일한 형태의 공격 초식을 연달아 사용했다. 마나의 폭발. 빨라진 스피드를 활용해서 파벨 쿠베스의 품을 파고들더니, 겨우 몇 걸음을 내디딘 것만으로 순식간에 파멜 쿠베스의 품을 완전히 장악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
자신의 목에 검이 겨누어진 모습에, 파멜 쿠베스는 경악한 눈으로 강민혁을 보았다.
“이게 대체.....
“방금 제가 사용한 마나의 운용법을 연습하셔야 합니다. 이미 검에 마나가 집중된 상태로 대응하는 것은, 사각지대를 노리는 변수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위력 또한 떨어지고요.”
파벨 쿠베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민혁의 설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뛰어난 길잡이면서, 7서클 대마법사이고, 이제는 자신에게 수호 검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질은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빌고 빌어서 겨우 가르침을 내려주었던 사내는, 강민혁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검사였다.
상식 밖의 영역.
훈련이 모두 끝나자, 파벨 쿠베스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강민혁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 시각.
세르게이 루덴코는 정찰대의 영상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벌떡!
“기, 길잡이가 7서클 마법사였다고?!”
돌연변이의 등장.
당혹스러운 변수였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강민혁이 7서클 마법을 사용해서 돌연변이를 제압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전투 방식 또한 상식을 벗어났다.
강민혁의 검은 돌연변이의 외피를 단번에 갈랐고, 돌연변이와 뒤엉켜서 싸우는 와중에도 정확하고 위력적인 마법을 사용했다. 돌연변이들을 휩쓸어버리는 강력한 한 방! 마법이 발휘될 때마다 세르게이 루덴코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장벽에서 수도 없이 많은 마법사를 목격한 그였지만, 단언컨대 이보다 강력한 위력의 마법을 발휘하는 마법사는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돌연변이?
장벽 너머에는 무엇이 존재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7서클 마법사의 등장은, 세르게이 루덴코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이거 완전히 난리가 나겠는데?’
현재 마법 학계의 분위기는 난잡했다.
1년 반 뒤에 있을 전쟁을 앞두고, 각 세력은 한 명이라도 더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열을 올렸다.
그래서 실력자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속이 있었다.
마법의 3대 세력.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중소 세력들도, 마법사들을 한데로 뭉쳐서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강민혁과 같은 마법사가 나타난다?
이건 대박이다.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마법 세력들이 서로 강민혁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 뻔하다.
그리고 강민혁은 뛰어난 길잡이기도 하지 않은가.
강민혁이라는 사람의 가치가 상승하는 상황에, 세르게이 루덴코로서는 벌써부터 흥분이 되었다.
‘이로써 비쳅스크의 위상이 올라가겠지.’
어차피 그의 역할은 정해졌다.
강민혁이 대단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일개 담당자에 불과한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정해진 순리대로 상부에 보고하는 것.
그것이 가장 이득이 되는 방법이다.
현재 사람들은 비쳅스크 정찰대의 영상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세르게이 루덴코는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할 의무가 있었고, 곧바로 상부로 영상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세상이 발칵 뒤집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