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39. 장벽 너머의 땅(6) >
재앙이 처음 발발했던 그때.
인류는 한국의 안전을 포기하고, 그 위에 핵폭탄들 떨어트리는 최악의 선택을 내리고 말았다.
당시에는 그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화기로는 북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막을 수 없었고,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들 위해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비윤리적이라는 사람들의 비난은 외면당했다. 세계 정부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핵폭탄의 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떨어진 여러 발의 핵폭탄은 한국 땅을 날려버렸다.
펑-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인류에게 남은 것은,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핵폭탄에서도 살아남은 몬스터들의 공격이었다.
사사사삭-
강민혁의 예민한 귓가에 무언가의 소리가 들렸다.
핵폭탄과 게이트의 여파로 장벽 너머의 땅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고, 핵폭탄에 적응한 몬스터들 중에서는 클리스만이 언급한 돌연변이도 생겨났다. 과도한 방사능으로 인해, 괴물 이상의 무언가로 진화해버린 돌연변이. 다행히도 그 숫자는 많지 않다고는 하지만, 클리스만이 경고한 것에 따르면 돌연변이의 공격을 받을 경우 작은 상처도 피폭(被爆)으로 위험하다고 했다.
강민혁이 소리쳤다.
“최대한 수비적으로 상대해! 적에게 공격을 당했다간, 곧바로 목숨들 잃는다!”
".........!"
정찰대원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모스크바 바로 앞까지 도달하는 동안, 강민혁은 이 정도로 강하게 경고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는 뜻일 터.
그때였다.
소리의 원인이, 마침내 시야에 포착되었다.
캬아아악-
생명체의 생김새는 기괴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에 날카로운 이빨, 짐승처럼 흩날리는 전신의 털은 얼핏 보면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처럼 보였으나, 피부가 전부 녹아내린 그들은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할 수 없었다. 그 숫자는 무려 수십 마리. 득달같이 달려드는 그들이 순식간에 코앞에 도달하는 순간, 간발의 차이로 마법사들의 마법이 먼저 그들을 공격했다.
“플레임 캐논.”
화르르륵-
콰앙!
강력한 불길이 일었다.
A급 몬스터라 할지라도 무사할 수 없는 6서클 마법이었지만, 돌연변이들은 맨몸으로 화염을 뚫었다.
화악-
타닥타닥 타오르는 외피.
돌연변이들의 충혈된 눈빛이 인간들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강력한 적의.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자, 강민혁이 번개같이 튀어나가 검을 휘둘렀다.
카앙!
손이 저릿하게 아팠다.
오라를 일으켰음에도 상당한 반발력이었고, 돌연변이들은 강민혁을 사방에서 덮쳤다. 순간 눈이 팽팽 돌았다. 돌연변이들은 단순히 피폭의 위험성만 강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위험성을 높여주는 무기 중 하나일 뿐이고, 빠른 스피드와 파괴력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캉!
캉캉캉!
수십 번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강민혁의 모습에 감탄하던 정찰대원들도, 돌연변이의 공격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수호 검법은 통하지 않았다.
강민혁은 완벽한 강화 전사가 아니다. 강민혁의 힘으로는 일부의 몬스터를 흘릴 수밖에 없었고, 강민혁이 수십 마리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나머지 정찰대원들은 겨우 몇 마리의 둘연변이로 인해 엄청난 곤경에 처했다. 카앙,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지는 정찰대원들. 마법사들의 마법이 폭발했지만, 둘연변이의 단단한 외피는 그 정도로는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마법사의 절망적인 음성이 튀어나왔다.
마법만이 진리인 세상.
그들로서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강자를 상대해본 경험이 전무했을 것이다.
위험에 빠진 정찰대원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돌연변이의 공격을 쳐내며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켰다.
퍽!
서걱!
깔끔한 일격.
강민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징그러운 녀석이네.”
외피가 깔끔하게 갈라졌다.
그러나 녹색 진물 같은 것이 흐르는 피부가 금방 재생되는 모습에, 강민혁은 빠르게 판단들 내렸다.
‘힘을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전력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돌연변이.
그들은 정찰대원들의 힘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몬스터다.
고로, 자신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야만 한다.
화악-
활짝 열리는 서클.
강민혁이 본격적으로, 마법사로서의 힘을 드러냈다.
퍽!
콰당!
“쿨럭!”
돌연변이의 공격에 나가떨어진 파벨 쿠베스가, 내장이 진동하는 충격에 피를 한 움큼이나 뱉어냈다.
직접 공격당하진 않았다.
검으로 막았음에도 충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창백한 얼굴로 돌연변이의 모습을 확인한 파벨 쿠베스의 몸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강민혁을 제외한 49명의 정찰대원. 그들이 10마리도 되지 않는 돌연변이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강민혁이 홀로 수십 마리의 돌연변이를 상대하는 것에 반해, 무려 6서클의 마법사가 포함된 파티조차도 황당할 정도로 무력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괴물.
상대는 정말 괴물이었다.
자신의 오라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파멜 쿠베스는 이를 악물고 자리를 박찼다.
때마침.
한 둘연변이의 공격에 모건 폭스가 위험에 처했다.
“이익!”
“대장님!”
콰득!
돌연변이의 아가리가 간발의 차이로 모건 폭스의 코앞을 물어뜯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아가리에 모건 폭스의 표정은 공포에 질렸고, 그런 돌연변이의 뒤를 파멜 쿠베스의 검이 베었다.
서걱!
크르르르르륵!
“씨발.”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약간의 생채기가 생긴 정도로는 쓰러질 리 만무했고, 그런 상처조차도 금방 회복하고 있는 상황.
순간 눈이 번쩍였다.
빠악!
옆머리를 후려치는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막았다. 하지만 전해지는 충격만으로도 머리에 현기증이 일었고, 파멜 쿠베스는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본능이 빠르게 도망치라고 강하게 말하는 상황에, 파멜 쿠베스는 코피를 줄줄 흘리며 오라를 끌어올렸다.
다행히도 후속타는 당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공격당했다간 무사할 수 없었겠지만, 그걸 알아챈 모건 폭스가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
퍽!
그의 공격도 의미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시간을 번 모건 폭스가 바락 소리쳤다.
“방어 대형을 형성해!”
방패를 들었다.
조그마한 라운드 실드(Round Shield)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 지금은 몸을 보호할 것이 필요했다.
한데로 뭉치는 정찰대원들.
그들이 발악하며 둘연변이를 상대했다. 돌연변이의 공격에 옆에 있던 동료가 나가떨어졌고, 마법사의 공격은 둘연변이의 움직임만 늦출 뿐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언제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모건 폭스와 등을 맞대며 발악하던 파멜 쿠베스는, 절망적인 음성들 내뱉었다.
“왠지 운이 좋더라니.”
아주 잠깐이지만.
그는 희망을 보았다.
이대로 모스크바에 도착한다면, 앞으로는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말 찰나의 희망을.
그것이 처참히 부서졌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컸기에, 그 절망감은 대단했다.
“대장.”
“왜?"
“씨발, 죽더라도 한 새끼는 죽이고 죽읍시다. 그러면, 세르게이가 알아서 목숨값을 잘 챙겨주겠죠."
죽는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힐끗 확인한 강민혁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싸우고 있었지만, 딱 그 정도가 한계였다.
모건 폭스가 악에 받쳐 말했다.
“그래, 2년 뒤에 죽나 지금 죽나 뭐가 다르겠어. 대신, 일찍 죽는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지.”
꽈악.
검들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때, 다시 달려드는 돌연변이의 모습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번 격돌로 인해서, 자신들의 목숨이 날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동공을 가득 메우는 돌연변이의 모습이 코앞에 도달하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폭발.”
콰앙!
콰콰콰과콰쾅!
엄청난 위력의 폭발.
바로 앞에 있던 몬스터들이 휩쓸리는 모습에, 정찰대원들이 눈들 부릅떴다.
돌연변이.
강하고 변수가 많은 몬스터다.
어중간한 실력으로는 목숨이 위험할 상대지만, 그건 강민혁에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폭발.”
콰앙!
콰콰콰쾅!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돌연변이의 외피는 웬만한 마법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고 질겼지만, 폭발에 휩쓸리자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등급 외 마법은 서클의 능력들 초월한다. 8서클에 달하는 강민혁의 마법이 사용되자, 초월급에도 도달하지 못한 돌연변이들로서는 마법을 버틸 방법이 없었다.
캬악!
크아악!
돌연변이들의 살의(殺意)가 일제히 강민혁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이 땅을 박차자,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강민혁의 앞에 도달해 발톱을 휘둘렀다.
확!
머리카락이 잘려나갔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얼굴이 날아갔을 상황이었지만, 강민혁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돌연변이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예민하게 돋아오른 감각. 돌연변이 체내에 흐르는 마나를 한눈에 파악하더니, 강민혁은 급소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오라를 일으킨 검들 힘껏 찔러넣었다.
푹!
크르르륵.
돌연변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분뇌로 나누어진 다른 두뇌에서는 마법의 캐스팅을 마쳤다.
“씨 블라스트(Sea Blaster).”
콰앙!
콰콰콰콸!
사방에서 달려들던 돌연변이들이 일제히 쓸려나갔다. 해일이 작렬하는 상황에 돌연변이들은 제 몸들 가누지 못했고, 강민혁은 축축하게 젖은 그들의 몸에 번개 다발을 작렬시켰다. 그건 일종의 실험이었다. 강민혁은 단순히 돌연변이를 죽이는 것에 끝내지 않고, 그들들 처리할 효율적인 방법들 찾았다.
팽팽팽-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바로 코앞에서 돌연변이와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도, 강민혁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분뇌의 순기능이 발휘되었다.
강민혁은 h-7의 능력으로 강화 전사로서의 힘이 증폭되었다. 문제는 오라와 마나가 공존하기 힘들다는 것인데, 분뇌의 능력은 그 말도 안 되는 영역들 허물었다. 한쪽 머리로는 오라를, 한쪽 머리로는 서클의 마나를. 동시에 두 가지의 힘을 사용하더라도, 강민혁은 문제가 없었다.
서걱!
퍽, 데구르르르.
돌연변이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타오르는 오라는 오라 자체의 힘은 강하지 않았지만, 정교한 검술이 둘연변이의 외피를 갈랐다.
이어서.
“플레어.”
“화우.”
화르르르르록.
콰콰쾅!
사방에서 불길이 넘실거렸다.
강민혁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힘을 드러내겠다는 판단을 내린 이상, 강민혁은 어중간한 모습으로 화를 초래하지 않았다.
강민혁은 정찰대원들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들의 사연을 알았기에 생긴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이유는 없었다. 자신에게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관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클리스만의 세상.
결국 이곳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버렸다.
이로 인해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모르겠지만, 강민혁은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다.
“상대는 번개 마법에 취약하다. 번개 마법 위주로 사용해!”
“아, 알겠습니다.”
강민혁의 외침에, 정찰대의 마법사들이 황급히 따랐다.
처음과는 비교되는 상황이었다.
모건 폭스를 비롯한 검술을 기반으로 하는 대원들은 처음부터 강민혁을 인정했지만, 정찰대의 마법사들은 조금 달랐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마법만이 진리였던 세상이다. 그들로서는 강화 전사랍시고 목에 힘을 주고 다니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강민혁이 그런 모습을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법사의 자부심에 쉽사리 상대를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태도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강화 전사들은 위력적인 광경에 입을 떡 벌리는 정도라면, 마법사들은 강민혁의 특별함을 알아보았다.
7서클 마법.
무려 대마법사의 경지다.
그뿐만 아니라, 강민혁은 그 경지 이상의 특별함을 보였다.
‘우리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검술로도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강민혁이, 마법사로서는 까마득하게 높은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전투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위험은 없었다.
정찰대원들이 힘을 합쳐 몸을 보호하는 사이, 강민혁이 상황을 정리하였다.
마침내.
퍽!
부르르.
마지막 돌연변이마저 쓰러트렸다.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돌연변이 너머로, 넋을 잃은 얼굴로 강민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낭중지추 라고 했던가.
강민혁의 존재감이 불쑥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