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67화 (167/197)

167화.  < 39. 장벽 너머의 땅(5) >

비쳄스크의 정찰대는 총 50명으로 구성되었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겠지만, 그럴 경우에는 기동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휴식 장소 선정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자연스레 몬스터와 조우할 확률도 상승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정찰대의 구성은 적당한 인원으로 편성하는 것이 옳다.

장벽 너머의 땅.

정찰대가 떠나기 전에, 블랙 캐슬의 마법사들이 시선을 끌었다.

“라이트닝 레인.”

“기가 라이트닝."

쿠르르릉.

콰콰쾅!

번뜩이는 번개 다발이 아무것도 없는 땅에 작렬했다. 이로 인해 퍼져나가는 마나의 파동은 몬스터들을 자극할 것이고, 정찰대는 비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갈 시간적인 여유를 얻는다. 주변 일대의 몬스터들이 장벽에 집중되면서 잠시 어려운 상황을 겪겠지만, 그래도 험난한 사지에 몸을 던질 정찰대를 위해서 블랙 캐슬의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했다.

“지금이야!”

장벽에서 몬스터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통로의 문을 개방한 정찰대는 곧바로 신속하게 움직였고, 지난 1년 반 동안 개척한 익숙한 길을 통해 이동하였다. 그곳이 무조건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다른 길에 비해서 몬스터들의 분포가 적을 뿐이지, 정찰대는 차가운 땅에 발을 딛자마자 몬스터의 공격을 받았다.

캬아악-

“트롤이다!”

“공격해!”

시작부터 전투가 벌어졌다.

십수 마리의 트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드는 모습에, 정찰대의 마법사들이 빠르게 대응했다.

“파이어 캐논.”

콰앙-

화르르르륵!

선공은 6서클 마법사의 공격이었다.

정찰대에는 10명의 마법사가 포함되었고, 그중에는 무려 6서클의 마법사도 있었다. 그의 강력한 화력이 트롤을 불태우는 사이, 정찰 대원들은 능숙한 모습으로 트롤의 외피를 베어버렸다. 두부처럼 갈라지는 트롤의 외피. 정찰대원들의 오라가 그만큼 강력한 것이 아니라, 강화 전사가 탄생하면서 만들어진 오라 증폭 아티팩트가 그들에게 폭발적인 힘을 부여했다.

강화 문명과 마법 문명의 결합.

둘의 콜라보가 만들어낸 힘이었다.

트롤은 제법 강한 몬스터로 알려져 있었지만, 십수 마리의 트롤이 처리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푹!

크르르륵.

강민혁은 마지막 남은 트롤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피를 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떨구는 트롤의 모습에, 강민혁을 바라보는 정찰대원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강민혁의 실력이야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지난 합숙 훈련을 통해서 강민혁은 정찰대원들의 진심 어린 인정을 받았지만, 그래도 실전에서 보여주는 능력은 다른 법이다.

그런데 실전에서도 완벽했다.

강민혁은 가장 많은 트롤을 처리한 사람이었고, 정찰대원들의 마음에는 깊은 신뢰가 피어났다.

“이동.”

강민혁의 말은 짧았다.

이곳은 사지다.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항상 예의를 갖추고 말할 수는 없는 법.

미리 얘기가 끝난 부분이었기 때문에, 정찰대원들은 곧바로 앞서 나가는 강민혁의 뒤를 따랐다.

행군 속도는 정말 빨랐다.

정찰대가 1년 반 동안 파악한 길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강민혁은 잘 가다가 정찰대원들도 처음 접해보는 길로 빠졌다. 당연히 처음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미지의 세계는 목숨이 걸린 문제라서 강민혁의 선택을 제지했으나, 금방 신뢰는 다시 복구되었다.

안전하고 빠른 길.

강민혁의 선택은 옳았다.

수많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죽음의 땅에서, 강민혁은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옳은 길만을 찾았다.

덕분에 첫 번째 포인트인 스몰렌스크에 도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민혁은 안전한 포인트에서 휴식을 명령하였고, 정석대로 날이 밝자마자 순식간에 스몰렌스크를 통과하였다. 그 안에는 독가스를 뿜어내는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웬만해서는 강민혁 선에서 처리되었다.

길잡이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

그것의 이점을 처음 경험해보는 순간이었다.

강민혁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더욱 강해지고 있을 즈음, 일행은 드디어 야르체보 근처에 도달했다.

“이제 야르체보야.”

“정말 지름길이 있으려나.”

사람들은 걱정이 앞섰다.

야르체보.

정찰대가 가장 경계하는 지역이다.

수십 개의 작은 동산으로 이루어진 그곳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르체보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는 피 말리는 전투가 시작된다. 만약 전쟁이 시작된다면 반드시 지나갈 수밖에 없는 관문이기 때문에, 정찰대는 이곳을 사문(死門)이라고도 불렀다.

마침내 야르체보에 들어서는 정찰대.

이제부터는 정말, 정찰대의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했다.

정찰대원들이 허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었어?”

“야르체보를 이렇게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니. 그간, 우리는 대체 뭘 한 거지?”

정찰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장벽 너머의 세 가지 포인트를 통과하는 데는 약 보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중에 절반 이상의 시간과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곳이 바로 야르체보라고 말이다. 아르체보는 그만큼 정찰대에게 있어서는 공포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곳이었는데, 허무할 정도로 쉽게 통과했다.

휘이익-

바람이 불었다.

가파른 절벽 옆길을 타고 가는 길이라 위험천만했지만, 몬스터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찰대원들은 행복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사람이 나타났을까. 만약 무사히 장벽으로 복귀한다면, 다른 지역의 정찰대들은 강민혁의 존재에 소속을 옮기겠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만큼 길잡이의 역할은 중요했다.

야르체보에 이어 사포노보도 순식간에 통과한 상황에, 정찰대원들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미지의 세계였다.

강민혁은 적당한 위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과거 러시아의 지도를 펼쳐서 정찰대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착-

“지금부터 우리가 통과할 곳은 바로 뱌지마(Vyaz’ma)라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지마의 지하 동굴에는 블러드 배트(blood bat) 수천 마리가 서식하고 있는데, 그들의 청각은 매우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냈다간 떼로 몰려드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정찰은 그 자리에서 끝이다. 아무리 블러드 배트가 화염의 마법에 약하다지만, 50명의 인원으로 수천 마리의 블러드 배트를 상대할 방법은 전무하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법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강민혁이 하는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사람들이었다.

특히 모건 폭스의 경우에는, 강민혁이 아티팩트를 거론한 순간부터 감탄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래서 사일런스(silence)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가 필요하다고 했구나.”

소리에 민감한 몬스터.

그들을 상대로, 강민혁은 정찰대의 소리를 차단하는 방법을 택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강민혁이 아니었다면 정찰대는 무턱대고 바지마의 땅에 발을 들일뻔했다.

그랬다면 결과는 뻔히 보였다.

수천 마리의 블러드 배트로 인해, 도망치지도 못하고 피가 쪽쪽 빨렸을 터.

강민혁의 모습을 바라보는 눈빛에 꿀이 뚝뚝 떨어졌다.

어디서 이런 보물이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찰대원들은 강민혁이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강민혁의 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사일런스 아티팩트를 사용하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정찰대는 무사히 바지마를 통과했다.

그러자 다들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쩌면.

이번에는 모스크바에 도달할지도 모른다고.

그것도, 매우 안전하게 말이다.

비쳄스크 정찰대의 상황은 곧바로 상부에 보고되었다.

“허어.”

“이렇게 쉽게 사포노보까지 통과하다니.”

“대체 길잡이를 맡은 녀석의 정체가 무엇이랍니까? 이건, 그냥 길을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다들 감탄한 기색을 보였다.

정찰대는 기본적으로 이동 카메라를 장착하고 길을 떠난다. 그것은 생방송으로 정찰대의 상황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24시간을 기준으로 자동으로 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이 상부에 전송된다.

그렇게 밝혀진 상황.

감탄의 연속이었다.

강민혁의 안내로 미지의 세계마저 점령하자, 지휘관인 프레디 로드리게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세르게이!”

“예!”

“왜 이런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모길료프의 정찰대는 이제야 로슬라블(Roslavl)을 지나고 있는데, 벌써 새로운 구역을 개척해내다니. 제가 세르게이의 능력을 잘못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훌륭한 안목이라면, 이번 일이 끝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겠지요.”

세르게이 루덴코가 활짝 웃었다.

역시!

강민혁의 능력을 알아본 그의 안목은 옳았다.

세르게이 루덴코는 강민혁이 능력을 증명하자마자, 그가 혹시라도 다른 곳으로 소속을 옮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정말 극진한 대우를 해주었다. 그의 심기가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도록 모든 부분을 배려해주었고, 사일런스 아티팩트가 필요하다는 말에 되묻지도 않고 바로 공급해주었다.

그것이 지금의 결과였다.

예상대로 강민혁은 엄청난 능력자였고, 영상을 통해서 보여주는 능력에 입가가 자꾸만 씰룩였다.

프레디 로드리게스가 말했다.

“현재 전 세계가 비쳄스크 정찰대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건 기회입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 모스크바에 도달한다면, 사람들은 이번 전쟁에도 희망이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정찰대의 일차적인 목표.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니즈니노브고로드(Nizhni Novgorod)와 사라토프(Saratov)의 경계선 안쪽을 점령하는 것이다. 3년 안에 그 정도의 성과만 얻어도 엄청난 결과다. 그래서 반드시 모스크바의 상황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상황이 반전되었다.

출발선에서는 모길료프의 정찰대가 주인공이었다면, 지금은 비쳄스크 정찰대가 주목을 받았다.

화면 너머.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정찰대를 떠올리며, 프레디 로드리게스는 얼른 다음 보고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장벽 너머는 해가 금방 떨어진다.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강민혁은 적당한 곳에 터를 잡았고, 휴식을 위해 모닥불을 피웠다.

타닥타닥.

모닥불을 중심으로 정찰대원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모닥불의 불빛과 열기는 마법 결계로 인해서 차단되기 때문에,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약간의 평화가 허락된다. 그래서였을까. 강민혁과 한바탕 했었던 파벨 쿠베스가, 모닥불을 빤히 바라보다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 정찰대에 신청하길 잘한 것 같아요.”

“왜?"

모건 폭스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눈빛에, 파벨 쿠베스는 슬쩍 강민혁의 모습을 보았다.

“제 사정 잘 아시잖아요. 아내는 병들어서 거동이 불편한지 벌써 3년이나 지났고, 제가 먹여 살려야 할 아이들의 입만 해도 무려 네 명이에요. 게다가 곧 전쟁이 벌어진다니깐 식료품의 가격은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니, 저로서는 가장으로서 무엇이든지 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정찰대의 보상은 확실하나, 목숨이 위험한 건 사실이니까요.”

피식, 웃었다.

정찰대의 사람들은 사정이 다르지 않다.

당장 자신을 딱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건 폭스만 하더라도, 시한부의 인생을 살고 있다.

듣기로는 목숨이 2년 정도 남았다고 했나.

그는 죽기 전에 아내에게 돈이라도 남기려고 정찰대에 자원했다.

그래서, 정찰대원들은 하나 같이 계약서를 작성했다.

자신이 죽는다 할지라도.

정찰의 보상은 원하는 곳에 전달해주겠다는 계약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모스크바를 앞에 두고 있어요. 만약 우리가 정말 임무에 성공한다면, 더 이상 돈 걱정에 목숨을 걸 이유가 없어요. 보상금만으로도 앞으로 충분히 살 수 있겠죠.”

“그러겠지. 세르게이가 다른 것은 몰라도, 약속만큼은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니까.”

“그렇죠.”

그들이 굳이 비쳄스크의 정찰대를 택한 이유였다.

자신들이 죽는다면, 허튼수작을 부리지 않고 가족에게 돈을 전달할 사람이 바로 세르게이 루덴코였다.

파벨 쿠베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강민혁을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처음에 예의 없게 굴었던 것은 나름 제 간절함의 표현이었습니다.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목숨을 건 임무라 할지라도 제 목숨을 맡길 사람의 실력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이해합니다.”

강민혁은 덤덤하게 말했다.

가족.

강민혁에게는 참 씁쓸한 단어였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강민혁은 목숨을 걸었으나, 정작 자신의 가족과는 연을 끊고 살고 있다.

오래전.

강민혁은 어머니를 잃었다.

형제는 원래부터 없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아버지라고는 강민혁을 항상 냉혹한 현실에 내보냈다.

그래서일까.

파벨 쿠베스와 같은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저런 아버지 밑에 자랐다면, 지금과 같은 선택을 내렸을까? 어쩌면 가족과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기면서부터, 강민혁은 경주마처럼 몬스터의 멸살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파벨 쿠베스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강민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잠깐!”

강민혁의 시선이 주변을 살폈다.

사사삭-

예민한 감각에, 무엇인가가 주변을 배회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살짝 악물었다.

모스크바를 앞둔 상황.

문득, 클리스만이 경고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 희박한 확률이지만, 모스크바 인근에서는 돌연변이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그때는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핵폭발로 인해 전혀 다른 생명체로 변한 몬스터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는 절대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아직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민혁의 본능은, 지금 당장 대비하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적이다! 당장 전투를 준비해!”

챙-

곧바로 검을 뽑는 강민혁.

그의 모습에, 정찰대원들이 황급히 무기를 챙겼다.

강민혁.

장벽 너머에서 그의 말은 진리였고, 그들은 몬스터가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능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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