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64화 (164/197)

164화.  < 39. 장벽 너머의 땅(2) >

그레이 마켓은 매우 특수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약 30평 정도 되는 공간에 양쪽으로 마법 아이템이 쭉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상의 존재였다. 도난을 방지하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아이템을 확인하기 위한 시스템. 성능은 공간 너머에서 직접 시연되기 때문에 품질을 확인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거래는 철저한 보안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상점.

한스는 안으로 거침없이 걸음을 옮기더니, 진열대에서 완드(wand) 형태의 아티팩트를 꺼냈다.

“이 물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3개의 마법이 인챈트 된 아주 유용한 병기형 아티팩트입니다. 기본적으로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3개의 마법은 5서클에 해당하는 번 플레어와 윈드 필드, 그리고 마지막으로 6서클의 파이어 레인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시중에 이 정도의 인챈트에 성공한 마법 아티팩트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마법도 캐스팅이 생략된 즉발(卽發) 형태에다 자연 충전식이기에, 사실 목숨 하나를 들고 다닌다고 봐도 무방한 아이템이죠.”

한스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확실히 그럴만했다.

시작부터 그레이 마켓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아이템이었지만, 강민혁은 선뜻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넓다.

장사치가 처음부터 가장 좋은 아이템을 보여줄 리 없기에, 강민혁은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럼 계속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다음 아이템.

완드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좋은 병기형 아티팩트였다. 계속되는 설명에도 강민혁은 차분하게 설명을 경청하였고, 그러한 모습에 한스도 꼭꼭 감쳐두었던 것들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강민혁의 최상급 7서클 마법서를 얻기 위해서는, 그에 부합하는 지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번엔 골렘이었다.

장착형 골렘이었는데, 골렘 제작법을 직접 발표한 강민혁으로서도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다.

“R-1에 대해서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클리스만님이 공개한 R-1의 효과에, 마도형 골렘의 특성을 장착한 하이브리드(hybrid)형 골렘입니다. 일명 H-7. 상당한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골렘인데, 기본적으로 착용자의 신체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웬만한 전사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골렘을 착용할 경우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됩니다. 그리고 하이브리드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H-7은 마나를 기반으로 한 모든 기술의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마법이면 마법, 오라면 오라. H-7과 함께라면, 어린아이조차도 대단한 능력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런 병기인 것이죠.”

“괜찮네요.”

“그렇죠? H-7은 시중에서는 절대, 절대 구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병기입니다. 이런 무기들은 각 나라에서 특별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그레이 마켓에서도 딱 한 대만 거래 품목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이 아니라면, 그 어디에서도 H-7을 구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구미가 당겼다.

H-7.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었다.

마도형 골렘의 발전된 형태에, 강화 전사로서의 신체 능력도 증폭시켜주다니.

만약 H-7을 강화 문명으로 가져간다면, 강화 문명의 골렘 기술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터.

마음이 기울었다.

다른 건 몰라도, H-7은 가지고 싶었다.

일단 H-7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강민혁은 시간을 더 할애해서 나머지 아이템도 확인했다.

강민혁은 추가적으로 2개의 아이템을 더 골랐다. H-7에 비해서는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는데, H-7의 가치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한스로서는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최상급 7서클 마법서가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어가는 H-7과의 거래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강민혁이 2개의 마법서를 추가적으로 제시하는 순간, 한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렸다.

“당장 거래를 진행하시죠, 고객님.”

거래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한스가 연락을 보내자 그레이 로브의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품 검증을 끝내고 거래를 진행했다. 서로의 물건에 만족하는 상황이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것은 전혀 없었다.

성공리에 끝난 거래.

강민혁은 원하는 것들을 얻고 그레이 마켓을 나섰다.

강민혁이 빠져나간 직후.

한스는 수하들에게 말했다.

“당장 따라붙어.”

그레이 마켓.

특별한 고객들과의 거래는 비밀 유지가 생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객들의 신상을 파악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상급 7서클 마법을 하나도 아니고 무려 세 개나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야. 시종일관 보여주었던 여유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것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그레이 마켓의 룰에 따라 강탈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대단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는 파악해야겠지.’

당연한 대응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강민혁은 보물을 가지고 남의 영역에 들어서면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일단은 분장 마법.

얼굴과 신체의 형태를 변형시켰다.

강민혁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였지만, 약 30대 후반에 등이 굽은 모습으로 변했다. 거래가 끝나고 인파에 발을 들이자마자 바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고, 때문에 강민혁을 따라붙은 추적자들로서는 외형으로 강민혁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강민혁보다 마법의 경지가 높았더라면 분장 마법을 꿰뚫어 볼 수 있었겠지만, 7서클의 경지는 결코 낮은 경지가 아니었다.

“...놓쳤습니다.”

“뭐?"

한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외형?

그것을 처음부터 믿지는 않았다.

그런데 추적 전문 인력이 놓쳤다는 것은, 탐색 마법으로도 강민혁을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마 7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는 건가?”

탐색 마법은 대상자가 어디로 이동하든 간에 마나의 길을 알려준다. 7서클 미만의 마법사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강력한 마법인데, 상대는 그 마법을 피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 말인즉.

상대는 7서클 마법사라는 뜻이다.

한스는 5서클의 마법사였기에, 강민혁을 직접 대면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당황스러웠다.

7서클 마법사라니.

사람들에게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그들은, 웬만해서 그 행보가 노출되어 있다.

그레이 로브의 정보망에 의하면, 3대 세력의 소속이 아니라면 장벽 안에 활동하는 7서클 마법사는 몇 없다. 행보가 노출되어 있는 인물들은 그레이 마켓을 이용할 이유도, 그럴 만한 능력도 보유하지 못한 상황. 그렇다면 다른 3대 세력의 소속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들이 그레이 로브에 이득이 될 일을 벌일 이유는 없었다.

미궁에 빠졌다.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7서클 마법사란 말인가.

“최상급 7서클 마법을 보유한 마법사라.”

아무래도 상부에 보고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마법 문명.

이 세상에서도, 강민혁의 경지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신분을 숨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분장을 하고, 심법을 활용해서 힘을 갈무리하니 한스는 눈앞에서도 강민혁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숙소로 도착한 강민혁.

두꺼운 팔찌 형태의 H-7을 착용하고, 추가로 얻은 나머지 2개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길라잡이의 반지.’

첫 번째 아이템이었다.

길라잡이의 반지는 병기형 아티팩트가 아니라, 텔레포트 마법에 특수한 힘을 발휘하는 아이템이었다.

먼 거리의 텔레포트의 경우에는 차원의 미아가 되지 않도록 조타수가 필요하다. 그들이 텔레포트가 진행되는 내내 정확한 길을 인도 해주어야 하는데, 길라잡이의 반지는 그 역할을 대신한다. 따로 특별한 인력이 없어도, 반지에 입력한 좌표대로 정확한 텔레포트가 가능한 것이다.

텔레포트가 가능한 인원은 마법사의 경지에 따라 다르다.

아웃브레이크 때 이동에 불편함을 느꼈던 강민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라잡이의 반지를 택했다.

그리고 마지막.

그것도 반지 형태의 아이템이었다.

이 아이템을 설명할 때, 한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템의 이름은 미정(未定)입니다. 사실 원래는 높은 등급의 보관소에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닌데, 워낙 특이한 재질로 이루어져서 따로 분류해두었습니다. 이 반지는 지구의 광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정령계와 비슷하게 마나로 충만한 특별한 공간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정도로 마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어떠한 물리적, 마법적 충격에도 형태가 변형되지 않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솔직히 강력하게 추천할 물건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마법적 가치를 보았을 때 상당한 물건이라는 확신은 있습니다.”

반지의 이름은 무명이라 지었다.

무명을 택한 이유는 한스의 사탕발림 때문이 아니라, 묘하게 이끌리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 개의 아이템을 택했다.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가지고, 마법 문명에서도 보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얻었으니 말이다.

만약 이대로 본래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강민혁은 골렘과 텔레포트 분야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표본은 그 만큼 엄청난 도움이 될 터. 만약 강민혁이 골렘과 텔레포트의 힘을 손에 쥐게 된다면, 그때는 강화 전사와의 대립에도 뒤로 물러날 이유가 전혀 없다.

강민혁은 며칠 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이곳에서 마법적으로 무엇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웬만한 건 클리스만의 지식보다 못했다.

확실히 클리스만은 이 세상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만약 강민혁이 등급 외 마법을 세상에 공개하는 날에는, 이 세상 사람들은 난리가 날 것이다.

보물은 가치를 아는 사람이 제대로 알아보는 법이다. 강화 문명에서는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위력에 감탄하는 정도로 끝났지만, 이 세상의 사람들은 그 정도의 반응으로 끝날 리가 없다.

그렇게 며칠 뒤.

강민혁은 본래의 목적을 위해, 정찰대를 모집한다는 건물로 향했다.

블랙 캐슬의 정찰대.

제8회차 정찰대의 편성을 맡은 세르게이 루덴코(Cergei Rudenko)는 지금 고민이 정말 많았다.

“후우, 이제는 지원자가 없구나.”

재앙 발발 이후.

세계 각국의 정상 회담에서, 2000년 만에 몬스터와의 전면전이 결정되었다.

그때부터 거의 2개월 간격으로 블랙 캐슬에서는 정찰대의 인원을 편성해서 장벽 너머로 보냈다.

처음에는 괜찮은 성과를 얻었다.

빠르게 주변의 지리를 파악했지만, 모스크바로 접근하는 길목에서부터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로 인해서 5회차부터는 거의 소득이 없었고, 바로 지난번 정찰이었던 7회차에서는 정찰대 인원 전원이 전멸을 당하는 절망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현재.

정찰대에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장벽 너머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기에, 이제는 호기롭게 나서는 사람들이 증발해버리고 만 것이다.

‘문제는 위에서 날 쪼고 있다는 거지.’

블랙 캐슬은 벨라루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 국경에 닿아있는 모든 곳에 장벽이 설치되어 있고, 해당 구역에서도 주기적으로 정찰대를 보냈다.

그런데 무려 1년 반 동안 특별한 성과가 없으니, 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3년이 되는 시점에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지금의 상태로는 너무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세르게이 루덴코는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소기의 성과라도 얻어보라는 닦달에, 그는 직접 발로 뛰면서 정예의 정찰대를 선발하고자 했다.

며칠 전.

상당한 보상을 약속한 광고를 밖에 걸었다.

그럼에도 블랙 캐슬의 경비병은 물론이고, 용병들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로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강제 차출밖에 방법이 없는 건가.’

강제 차출.

그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하면 모든 비난은 자신에게 향하겠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장벽 너머의 땅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야만, 본격적인 전쟁에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길잡이를 지원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길잡이를 하고 싶다?”

“예."

“흐음.”

상대의 행색을 보았다.

딱히 탐탁지는 않았다.

장벽 너머의 길잡이는 아주 특수한 케이스들만이 지원하는 자리다. 막대한 보상을 제시하는 대신에, 장벽 너머를 실제로 경험했던 사람이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길잡이를 할만한 능력이 없을 테고, 지금과 같이 말끔한 행색의 사람의 경우에는 결말이 뻔하다.

‘보상을 노린 사기꾼들.’

세르게이 루덴코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이런 녀석이 장벽 너머의 지리를 잘 알고 있으리라는 믿음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만약 길을 제대로 안내한다?

그렇다면 얼마라도 지급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쉬웠다면, 세르게이 루덴코는 두통약을 달고 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일손이 부족하다는 거지.’

“후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뻔히 답이 보이는데도 매몰차게 돌려보내지 못하는 현실에, 괜히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세르게이 루덴코가 말했다.

“길잡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닙니다. 장벽 너머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때문에, 그에 적합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장벽 너머의 이해도를 확인하는 간단한 테스트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싫다고 한다면, 얘기는 없던 걸로 합시다.”

“테스트를 받겠습니다.”

“그래요?”

피식, 웃는 세르게이 루덴코.

여기까지의 패턴은 항상 뻔하다.

사기꾼들은 호기롭게 나섰다가, 상식과는 다른 질문을 받고는 항상 얼이 빠진 기색을 보였다.

세르게이 루덴코가 걸음을 옮겼다.

“그럼 따라오시죠. 아참, 이름이 뭐랬죠?”

“강민혁입니다.”

“강민혁이요? 오호, 아직도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네요. 뭐,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닙니다. 잘 아시잖아요. 동양계의 사람들은, 최초의 재앙으로 인해 거의 남아나질 않았잖아요. 지금은 예전 방식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조금 신기했을 뿐입니다."

앞서서 걸어가는 세르게이 루덴코.

그의 말에, 강민혁은 말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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