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 38. 심판의 시간(3) >
재앙이 일어나기 이전.
사람들은 강민혁의 행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왜 강민혁만 호들갑을 떨까?”
“그러게. 마치 재앙이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인 것 같잖아.”
“그냥 내버려 둬. 저러다 지쳐서 나가떨어지겠지.”
100년 전.
재앙의 시작점에서는 사람들은 모든 가능성을 경계했다. 그로부터 강화 문명과 지금의 대응 체계가 완성되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어중간한 재앙과 평화에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말았다.
그리고 발발한 재앙.
강민혁의 행보가 재조명되었다.
그간의 노력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민혁의 말이 맞았어. 이 세상은 안전한 게 아니야.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게이트 너머에는 언제든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위험이 득실거리고 있어. 아아, 우리가 정말 멍청했어.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강민혁의 노력을 지지해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를 비웃다니.”
사람들 앞에서.
강민혁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세상의 재앙을 예고했다.
사람들이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을 때.
강민혁은 실질적인 대응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가르쳐주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강민혁의 의도를 의심할 때.
강민혁은 혼자서라도 재앙을 대비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홀로 고군분투했을 강민혁의 노력을 생각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때, 한국의 뉴스에 최병호가 출연했다.
“처음에 재앙 대응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시작할 때, 민혁이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평화에 안주해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헌터라고 불리는 우리들조차도 그랬다가는 세상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고요. 그때부터 민혁이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세계 마법 연합은 민혁이가 가상의 위험을 이용한다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퍼트렸고, 사람들은 그에 동조하며 민혁이의 행보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민혁이는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서 한 달에 수백억의 돈을 지출했습니다. 대체 어떤 이득을 보려고 민혁이가 가상의 위험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부? 명예? 정녕, 강민혁이라는 사람에게 그것이 그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비난은 정곡을 찔렀다.
부?
차고 넘친다.
명예?
세상에서 강민혁보다 명성이 높은 마법사는 없다.
그렇다면 세력의 확장을 근거로 할 수 있겠지만, 사실 가상의 위험으로 강민혁이 얻은 이득은 없다. 오히려 더욱 폐쇄적으로 변하며 비난을 받으면 받았지, 그로 인해 득을 보진 않았다.
시작부터 잘못된 전제.
사람들은 편견에 갇혀 눈과 귀를 막았다.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알 수 있는 진실을,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다고 해서 별난 행동으로 취급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강민혁의 방송이 끝난 직후.
사람들은 본인들의 행동을 자책했다.
그때부터 여론이 변했다.
가디언 마탑 연합이 벨라루스로 모이자,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강민혁은 우리를 위해 헌신한 영웅입니다. 그런 그가, 목숨을 걸고 벨라루스의 생존자들을 구하러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를 외면할 것입니까? 우리가 영웅을 지켜야 합니다. 강민혁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그를 도와야만 합니다.”
난세(亂世)에는 영웅이 탄생한다.
강민혁은 영웅이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강민혁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러한 상황에, 강화 전사들로서는 더 이상은 방관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재앙이 발발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그때, 일부 강화 전사 세력은 라 피암마(La Fiamma)의 연락을 받았다.
[주변의 안전을 도모하고 절대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마십시오. 이번 사태는 마법 학계를 무너트릴 절호의 기회입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방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강화 전사들의 세계를 위협하는 마법 학계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라 피암마.
세계 최강의 강화 전사 단체.
이탈리아에 거점을 두고 있는 그들의 연락에, 강화 전사들은 굳이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실제로 주변의 상황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힘이 소모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세계 마법 연합에게 모든 짐을 떠넘길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 흘러가는 분위기는 의도적인 것이었고, 앙투안 발라르는 그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강민혁에게 마법 학계를 위해 옳은 일을 하라고 호소했다.
세계 마법 연합과 강민혁의 대립.
재앙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타오르는 그때의 일로 인해, 사람들은 마법 학계에 관심을 보였다.
그게 문제였다.
둘의 대립 덕분에 강화 전사들은 수호의 의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고, 방관이라는 선택을 내리고도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강화 전사들도 각자의 구역에서는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다만,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을 뿐. 세계 마법 연합은 내뱉은 말이 있기에, 그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해야 할 의무를 강요받았다.
재앙.
그것을 기회로 여긴 사람은 앙투안 발라르만이 아니었다.
유럽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라 피암마의 수장 프란체스코 두란테(Francesco Durante)의 생각도 같았다.
“아쉽게 되었어. 이왕이면 강민혁이 무너지길 바랐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프란체스코 두란테.
그의 말에, 수하로 보이는 이가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마법 혁명.
그때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중급 마법으로 인해서 마법의 위력이 상승했고, 의료 마법과 6서클 마법은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이제는 마법을 비주류라 부를 수 없었다.
중급 5서클 마법은 A급 몬스터에게도 어느 정도 먹혔고, 마법의 다양성은 시간이 갈수록 마법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프란체스코 두란테를 비롯한 핵심적인 인물들은, 마법 학계의 발전이 강민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강민혁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마법 학계를 변화시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법 학계의 불투명한 미래는 강화 전사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재앙을 외면했다.
이건 흔한 기회가 아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강민혁이 무너지길 바랐건만, 연달아 터진 방송으로 인해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세계 마법 연합은 회생 불가다.
그들의 더러운 면모가 밝혀짐으로써, 그들은 사람들의 지지를 일었다.
그리고 현재.
매스컴에서 연신 강민혁을 영웅으로 추대하는 상황에, 프란체스코 두란테가 묘한 미소를 보였다.
“강민혁에게 완전히 당했어. 저 녀석은 우리가 여력이 있는데도 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방송을 통해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강민혁이 홀로 벨라루스로 들어가게 내버려 둔다면, 우리로서도 책임을 회피하기는 힘들겠지. 참 영리해.”
강민혁의 발언.
마법 학계에 과하게 집중된 시선을 흩트리고, 강민혁은 사건의 본질을 지적하며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모두의 책임.
강민혁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사람들의 시선이 강화 전사들을 부추겼다. 이제 슬슬 상황이 정리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앓는 소리만 내고 있을 것이냐는 게 그들의 반응이었다.
수하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 바로 강민혁을 도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의 비난을 받더라도, 당장은 주변의 상황을 정리하느라고 여력이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습니다. 일단 강민혁이 벨라루스에 들어가는 것을 방관하고, 추후에 상황을 정리하면 여론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타당한 의견이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두란테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아니었다.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비난이 아니야. 그들이 뭐라고 떠들든 간에, 우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굳이 먼저 움직일 필요가 없겠지. 문제는 강민혁이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벨라루스의 생존자를 구출할 수도 있다는 거야. 강민혁은 방송에서 가디언 마탑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어. 나는 그게 왠지, 매우 거슬린단 말이지.”
강민혁.
그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사나이다.
혹시라도 그가 정말 생존자를 구출해낸다면, 강민혁을 중심으로 마법 학계가 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정말 황당한 상황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강화 전사들은 마법사를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롭게 변한 판도에, 프란체스코 두란테는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병력을 소집해. 강민혁에게로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다시 우리가 빼앗아 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강민혁의 의도가 먹혔다.
마법 학계의 분쟁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거인이,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30분 뒤.
라 피암마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라 피암마는 강민혁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인류는 항상 어려운 상황일수록 서로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라 피암마 또한 벨라루스 생존자 구출을 위해 힘을 보태겠습니다.]
그게 시작이었다.
라 피암마는 유럽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고, 그곳의 입김이 닿는 세력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동조 의사를 밝혔다. 그들은 일부러 어려운 상황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방관하고 있다가 뒤늦게 나서는 것이 아니라, 어렵지만 병력을 긁어모아 나서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중에 유럽 외의 세력은 없었다.
다른 세력들은 각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바빴고, 그것은 수호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수호문은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미에서 개방된 S급 던전을 토벌하기 위해 병력을 보냈다. 독일 마법 협회와 벨라루스가 가장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이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계 각국에 터진 재앙에, 다른 대륙에 시선을 돌릴 여유는 없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국경.
그곳에 병력이 집결되었다.
그 숫자는 정말 많았다.
라 피암마를 필두로 모여든 강화 전사들의 숫자는, 언뜻 보아도 수천에 달할 정도였다.
‘정말 빌어먹을 녀석들이네.’
넓게 펼쳐진 광경.
수많은 병력이 집결되어있는 상황에, 강민혁으로서는 분노가 일었다.
저들이 애초에 방관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나섰더라면, 벨라루스의 재앙은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서로 얽혀있는 이득 관계.
세상은 썩어 문드러진 부위가 많았다.
앙투안 발라르를 해결한다고 해서, 짠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마법 학계를 장악해야 한다. 그래야, 주도적으로 움직일 힘을 얻는다.’
강화 전사들.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미래를 위한 시작점이다.
“전군, 전진하라!”
프란체스코 두란테의 외침.
마침내 벨라루스 국경에 들어섰다.
가장 선두에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에, 강민혁은 라 피암마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았다.
자신에게 집중된 스포트라이트.
아마 그것을 빼앗으려고 할 것이다.
벨라루스의 사람들을 위한 선의가 아니라, 그들의 결정은 철저하게 이득에 의한 판단이었다.
‘너희들의 의도대로는 되지 않아.’
“적이다!”
“준비해!”
멀리서 보이는 몬스터들.
수만의 몬스터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상황에, 강민혁은 서클을 활짝 열었다.
화악-
대규모 전투.
라 피암마의 강화 전사들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이 무대에서 자신보다 빛날 수는 없을 것이다.
선공은 마법사의 몫이었다.
연합 세력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사이, 강민혁은 양쪽 두뇌로 빠르게 캐스팅을 진행했다.
팽팽팽-
강력한 한방.
강민혁은 이 무대가 자신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앙투안 발라르와는 다른 의미로 재앙을 방관한 이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허락해주고 싶지 않았다.
화악-
“파이어 스톰.”
“플레어.”
“트윈 싸이클론(Twin Cyclone).”
화르르르르르륵.
동시다발적으로 사용되는 마법.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화염이 몰아치는 순간, 멀리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에게 화마(火魔)의 지옥이 펼쳐졌다.
쾅!
콰르르르르르릉.
화염이 넘실거렸다.
붉게 타오르는 바람이 수백의 몬스터를 단번에 휩쓸었고, 몬스터들은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매캐하게 타오르는 연기. 학살의 순간이었다. 등급의 구분 없이 강민혁의 마법에 휩쓸린 몬스터들은 죽음을 맞이했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수많은 몬스터가 죽었다.
그 광경.
압도적인 마법의 위력에, 무기를 움켜쥐고 자리를 지키던 강화 전사들이 넋을 잃었다.
“와."
“정말 살 떨리는 마법이네.”
독일 마법 협회의 영상.
그들은 강민혁의 마법을 카메라 너머로 보았다.
그때도 엄청난 마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전혀 달랐다.
후끈하게 밀려오는 열기.
만약 저 마법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자,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쫘악 돋았다.
이어서.
“파이어 캐논.”
“썬더 크로스.”
콰앙-
빠지지지직!
다른 마법사들의 마법도 작렬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할 그림이었다.
싸우기도 전에 상당수의 몬스터가 쓰러지는 그림에, 강화 전사들은 달라진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는 이제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특히, 강민혁의 압도적인 위력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멀리 떨어진 방송국 사람들.
그들의 카메라가 강민혁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담았다.
그 순간.
사람들은 확신했다.
‘벨라루스의 재앙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고로 지금부터는.
“전군 돌격!”
“돌격!”
“와아아아!”
누가, 이 무대를 장악하느냐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