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58화 (158/197)

158화.  < 38. 심판의 시간(2) >

분위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고의적.

그 단어가 주는 위험성에, 카메라맨을 비롯해서 앙투안 발라르의 사람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고의적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앙투안 발라르의 표정은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마치 허무맹랑한 소리에 분노한 것 같은 반응.

마법 학계의 정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능구렁이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강민혁이 웃었다.

“당연히 인정하지 않으시겠지요. 프랑크푸르트에 게이트와 S등급 던전이 개방된 직후, 프랑스 마법 협회에서 조직적으로 독일에서 전파되는 연락을 차단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니콜라스 피크(Nicholas Pike)라는 인물을 아시죠? 프랑스 마법 협회의 더러운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이니, 명령권자의 입장에서 그 이름은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마법 협회.

그들과의 적대적인 관계에, 강민혁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고영철을 시켜 상대의 그림자를 밟는 것이었다.

덕분에 전파 차단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전파 차단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수한 장치를 통해서 전파망을 방해한 것이었고, 프랑스 마법 협회는 그러한 상황을 마치 독일 마법 협회가 세계 마법 연합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표현했다. 사실 웬만해서는 걸릴 일이 없는 완벽한 작전이었으나, 문제는 니콜라스 피크의 존재가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는 니콜라스 피크라는 사람을 모릅니다!”

앙투안 발라르는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버리면 되는 일.

강민혁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표정 밖으로는 그러한 심적 변화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간 프랑스 마법 협회가 벌인 일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습니다. 세계 마법 연합이 마법 학계를 주도하는 입장에서, 가디언 마탑의 등장은 거슬릴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가디언 마탑의 존재를 부정하고, 재앙을 대비하자는 저의 주장을 비웃는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적어도 인간의 이기심을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프랑스 마법 협회는 본인이 살기 위한 선택을 내린 것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선을 넘었습니다.”

강민혁은 본인이 마냥 착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이기적으로 변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처리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문제는 인간으로서의 선.

그것을 지키냐다.

프랑스 마법 협회가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독일 마법 협회는 배신자고, 근처에 있는 배신자를 도와주는 것보다는 아군인 포르투갈이 중요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독일 마법 협회의 연락을 방해한 것. 그것은 방관이 아니라 고의적인 살해다. 프랑스 마법 협회는, 직접 칼을 빼들어 독일 마법 협회를 공격했다.

선을 넘었다.

재앙을 이용한 것을 넘어서, 살해의 도구로 사용하는 그들의 태도는 용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강민혁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쓰레기 새끼. 네가 인정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네 죄목은 사람들에게 공개될 테니까.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내게 그 더러운 낯짝을 내미는 거지? 카메라맨을 우르르 대동하고 와서 순진한 표정으로 도움을 청하면,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좋은 말이라도 해줄 거라고 생각했나?”

당황하는 사람들.

그들의 시선이 앙투안 발라르와 강민혁을 번갈아 보았다.

카메라맨은 발만 동동 굴렀다.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앙투안 발라르의 눈치를 살폈다.

앙투안 발라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카메라.

그 너머에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속에서는 열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으나, 앙투안 발라르는 침착함을 잃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으니, 추후에 상황이 안정되고 나면 해명하는 자리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디언 마탑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동시에 신호를 보냈다.

황급히 카메라를 끄는 사람들.

사람들이 지켜보는 연극 무대가 막을 내리자, 앙투안 발라르가 처참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우리와 해보자는 거냐?”

이건 외통수였다.

얼추 상황을 부정하는 것처럼 마무리했지만, 이미 방송이 되어버린 이상 프랑스 마법 협회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강민혁의 주장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할 터.

자신의 계략에 오히려 당해버린 앙투안 발라르는, 이제는 뒤에 벌어질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네가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전율이 돋더군. 하지만 세계 마법 연합에 소속된 마법사는 무려 만 명이 넘어간다. 네가 우리를 악인(惡人)으로 만들어서 깎아내린다면,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판사판.

세계 마법 연합은 방금의 상황으로 명분을 일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힘의 논리가 필요하다.

개개인의 강함은 가디언 마탑이 강하나, 세계 마법 연합은 100년간 쌓아온 세월의 힘이 있다.

“타협의 선을 버리지 마라. 생쥐를 궁지에 몰면 고양이를 물어뜯는 법이다. 우리는 절대 그냥 죽지 않아. 만약 서로가 끝을 보고자 한다면, 제아무리 가디언 마탑이라 할지라도 피해가 없지는 않겠지. 그때는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가디언 마탑? 천만에! 때를 기다리고 있던 강화 전사의 세력들이, 마법 학계를 완전히 짓밟아버릴 것이다.”

앙투안 발라르가 사납게 말했다.

강민혁의 강함.

그에 두려움이 일었다.

하지만 공든 탑이 이대로 무너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강화 전사들은 일부러 지금의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 너도 잘 알겠지. 그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만약 네가 나에게 살길을 열어준다면, 앞으로 세계 마법 연합은 가디언 마탑의 정당성을 인정하도록 하겠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서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위협이었다.

동귀어진.

그들은 같이 죽고자 했다.

벨라루스 마법사들을 구출하는 데 실패하고, 강민혁이 진실까지 밝힌다면 그들은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

세계 마법 연합의 몰락.

생각지도 못했던, 그 절망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발악했다.

악을 쓰는 앙투안 발라르의 모습에, 강민혁은 전혀 흔들림이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물어 뜯어봐.”

“...뭐?"

“생쥐는 그래 봤자 생쥐야. 발악하는 생쥐가 무서운 이유는 고양이가 출혈을 각오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난 아니야. 세계 마법 연합이라는 쓰레기들을 이 세상에서 치워버리기 위해서는, 우리도 마냥 깨끗하게 남아있을 수는 없겠지. 알잖아. 우리는 이미 공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민혁이 살의를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죽일 생각은 없다.

앙투안 발라르의 계략으로부터 시작된 시나리오는, 그들의 무덤이 될 완벽한 무대를 정해둔 상태다.

“이미 우리 사이에 타협이란 없어.”

끝이다.

협상 결렬.

강민혁의 단호한 태도에, 방금까지만 해도 굳건했던 앙투안 발라르의 눈빛에 파문이 일었다.

덜컥 내려앉는 가슴.

그로서는 원하지 않았던,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였다.

앙투안 발라르가 만든 무대.

본인은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로 인해 세계 마법 연합은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정말 추악한 진실이구나.

추악(醜惡).

그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세계 마법 연합은 강민혁의 행보를 비난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강민혁은 마법 학계를 진정으로 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법의 공개? 그게 정녕 마법 학계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간 강민혁이 얻은 것을 보십시오. 가디언 마탑을 창설해서 세력을 일구었고, 각 마법 세력의 중요한 인물들을 빼돌렸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그의 세력이, 그간의 일이 철저하게 본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최근에 강민혁이 말하는 재앙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가상의 위험을 만들어내서, 마법 학계를 완전히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시.

앙투안 발라르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강민혁의 행보를 비난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그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세계 마법 연합만이 진정한 정의라고 외치던 그의 추악함은, 그간의 명분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세계 마법 연합이야말로 세상의 재앙을 이용해서 본인들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고 있어. 독일 마법 협회를 도와주지 않은 것? 이해해. 세계 마법 연합과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그들로서는 독일 마법 협회보다 다른 세력들이 더 우선순위에 있겠지. 그러나 연락을 방해한 것은 다른 문제야. 그간 그들이 주장한 것에 따르면, 방관한 것만으로도 욕을 먹어야 해. 그런데 단순히 방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독일 마법 협회의 몰락을 주도한 것은 그들의 추악함을 확인할 수 있어.

앙투안 발라르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추후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설명했었지만, 방송에서 나온 내용만으로 이미 그들의 평판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세계 마법 연합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무런 해명도, 그리고 벨라루스의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벨라루스.

그들을 구조한다고 해서 평판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해명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을 구할 이유가 없었다.

세계 마법 연합에 명령이 떨어졌다.

“최대한 힘을 보존하라.”

명분을 잃은 세력.

그들이 반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힘이다.

그래서 앙투안 발라르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힘의 보존을 택했다. 벨라루스의 사람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병력을 잃는다면, 그것은 세계 마법 연합의 몰락으로 직결될 터.

잔인한 선택이었다.

벨라루스의 생존자들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간절한 목소리로 호소했지만, 세계 마법 연합은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건.

강민혁이 바라는, 예상 그대로의 시나리오였다.

강민혁은 일부러 앙투안 발라르를 몰아붙였다.

세계 마법 연합.

그들은 악(惡)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그들을 모두 처단하고 수북이 쌓인 시체 위에 올라서도, 강민혁은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세계 마법 연합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사람들.

판이 깔렸다.

강민혁은 카메라 앞에 나섰다.

“그간 저는 항상 재앙을 대비하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세계 마법 연합은 가상의 위험으로 제가 이득을 보려 한다고 비난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제가 과한 걱정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재앙은 현실이 되었고, 벨라루스는 멸망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재앙이 없다던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세계 마법 연합은 인류의 위기에 역으로 본인들의 이득을 챙기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지금은 동맹 세력인 벨라루스 마법 협회를 구할 의지 조차 없습니다. 그건 여러분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제 말을 믿어주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을 비난했다.

자신의 말을 외면했던 그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사실 앙투안 발라르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앙투안 발라르는 평판을 포기하고 병력을 보존하는 길을 택했다. 만약 강민혁이 구조를 나선다면 명분은 얻되 병력의 손실로 힘이 약해질 것이고, 반대의 선택이라면 세계 마법 연합과 마찬가지로 평판이 깎일 것이다. 세계 마법 연합의 악행을 신랄하게 비난했지만, 결국 가디언 마탑도 벨라루스 생존자들의 위험을 외면하고 본인의 안위를 택하는 겁쟁이에 불과하니 말이다.

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섰다.

왜냐고?

강민혁의 궁극적인 목적이 결국 몬스터를 모두 처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를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는, 위험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서야만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만.

‘이 자리를 통해 방관자들의 도움을 끌어낸다.’

앙투안 발라르는 말했었다.

마법 학계의 분쟁.

그로 인해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 같냐고.

세계 마법 연합?

가디언 마탑?

아니다.

바로 강화 전사들이다.

이 세상의 주류들.

그들은 왜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일까?

재앙은 핑계일 뿐이다.

이미 대부분의 상황은 정리되었지만, 그들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일부러 마법 학계를 부추겼다.

강화 전사들은 마법 학계의 발전을 경계하고 있다. 강민혁이 마법 혁명을 발표한 이후로, 마법 학계의 위상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상황. 그러니 그들로서는 세계 마법 연합과 가디언 마탑의 분쟁에 굳이 개입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라면 그들이 먼저 벨라루스의 생존자들을 구출하겠다고 주도적으로 나서겠지만,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마법 학계의 쇠퇴.

한쪽이 죽기를 바랐다.

그들은 조연이기를 자처하며, 마법 학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상황을 유도하였다.

강민혁이 말했다.

“가디언 마탑의 힘만으로는 벨라루스에 닥친 재앙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저는 세상을 위해 옳은 일을 할 것입니다. 벨라루스로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은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에게 닥친 재앙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언제나처럼 방관을 택한다면, 벨라루스의 재앙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탁-

방송을 끝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강민혁의 발언에, 세상이 들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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