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57화 (157/197)

157화.  < 38. 심판의 시간 >

구조 영상을 확인한 앙투안 발라르는, 화들짝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쾅!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순간 사고 회로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죽는 길에 똥물을 뿌리고 가는구나.’

벨라루스.

그곳은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하다.

아웃브레이크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곳이 바로 벨라루스였고,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로 인해서 대항할 겨를도 없이 벨라루스의 무력 단체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그때는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몬스터들에게 인간의 숫자는 무의미했고, 벨라루스의 사람들은 사건이 발생하고 2시간도 되지 않아서 대부분 멸망의 길을 걸었다.

구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 프랑스 마법 협회는 벨라루스를 구하러 갈 타이밍이 있었지만, 일부러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무려 수만 마리다.

이미 지옥으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벨라루스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가디언 마탑이 좋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어.’

10분 전.

독일 마법 협회의 상황은 실시간으로 세계에 전파되었다. 독일 마법 협회는 벨라루스와 마찬가지로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대로 끝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강민혁의 등장에 상황이 반전되었다. 강민혁의 마법은 신의 경지에 다다랐고, 엄청난 위력의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학살하면서 독일 마법 협회를 구하는 것에 성공했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강민혁의 마법에 앙투안 발라르는 넋을 잃었고, 동시에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독일 마법 협회.

세계 마법 연합을 탈퇴한 그들은, 결국 도움을 받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민혁의 도움으로 살아나면서 이미지는 바뀌었다. 가디언 마탑은 어떠한 위험에서도 연합 세력을 버리지 않는 신뢰의 이미지가 생겼다. 앙투안 발라르의 계획이 나락으로 처박히는 순간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하필이면 벨라루스 마법 협회가 공개 구조 요청을 보냈다.

만약 구조를 포기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세계 마법 연합은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다.

세계 마법 연합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가.

같이 마법을 발전해나가는 것도 있지만, 비주류의 힘을 모아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다.

그런데 위험하다고 포기해버린다면 그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더군다나 강민혁이라는 선례가 있기에, 세계 마법 연합의 선택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을 터.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앙투안 발라르로서는 선뜻 감이 잡히질 않았다.

[발라루스 마법 협회가 여러분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자의 말.

앙투안 발라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실패가 뻔한 싸움이다.

하지만 명분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기에, 앙투안 발라르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구하러 가야 한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앙투안 발라르는, 곧바로 연합 세력에 연락을 돌렸다.

구조대를 편성하는 건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간 자신이 맺어온 관계가 있으니, 세계 마법 연합의 사정을 당연히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죄송합니다만, 병력을 보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쏠리드는 지금 여유가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재앙의 화살이 쏠리드를 빗나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번에 앙투안 발라르 협회장님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알랭 로베르와 쏠리드의 전사들을 일은 저희로서는, 무리하게 지원을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때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가 뻔히 보이는 싸움에 나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겐 그럴 의무가 없습니다.]

탈칵-

일방적으로 끊긴 연락.

쏠리드에서 돌아온 대답에 앙투안 발라르는 넋을 잃었다.

거절이라니.

앙투안 발라르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다시 멘탈을 추스르고 다른 곳에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도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건 세계 마법 연합의 일이지 않습니까?]

그간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세력들.

그들이 한발 물러섰다.

벨라루스의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그들로서는 무리해서 나서고 싶지 않았다.

평소와 같았다면 그들의 태도는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디언 마탑과의 관계로 인해서 여론은 세계 마법 연합의 지원을 부추기는 상황이라, 굳이 강화 전사들은 총대를 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지금은 재앙에 대항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도 있지 않은가.

“배은망덕한 새끼들. 그간 내가 찔러넣은 뇌물들을 이따위로 뱉어내다니.”

몸이 파르르 떨렸다.

차오르는 분노는 대단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세계 마법 연합의 병력이라도 소집할 생각이었는데, 황당하게도 이번에도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솔직히 말해서 요구하신 만큼의 병력을 보내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독일 마법 협회를 버리는 판단을 보고 저는 조금 실망했습니다. 아무리 세계 마법 연합의 주도권이 중요하다지만, 코앞에 있는 위험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모습에서 저는, 저 또한 언제든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서 제 병력을 지켜야겠습니다.]

체코의 마법 협회장.

그의 대답은 하늘을 무너트렸다.

지원을 아예 해주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나, 의무적으로 보내는 병력의 숫자는 정말 형편이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체코 마법 협회의 핵심이라고 불릴만한 인물이 없었다. 다른 마법 협회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고, 그들은 하나 같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발을 빼려고 했다. 그나마 프랑스 마법 협회를 따르는 세력들은 힘을 보탰지만, 그 정도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대로는 힘들어.”

절망적이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앙투안 발라르는 항상 본인의, 그리고 세계 마법 연합의 이득을 위해 살았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했던 판단들이 실제로 연합의 이득으로 직결됐지만, 그 과정에서 신뢰를 조금씩 잃어갔다.

필요에 따라 버려지는 사람들.

예전에도 그랬다.

독일 마법 협회와 같은 케이스가 반복되다 보니, 사람들은 앙투안 발라르를 보며 의구심이 생겼다.

‘저 사람을 믿어도 될까?’

믿을 수 없다.

강민혁은 독일 마법 협회를 위해 사지에 뛰어들었다.

그런 무모함이 멍청하다는 말을 들을 수는 있어도, 같은 아군으로서는 더없이 든든할 수밖에 없다.

무너진 신뢰.

이번 재앙이 기폭제가 되었다.

세계 마법 연합의 세력들은 몸을 사리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번 일을 책임져야만 하는 프랑스 마법 협회로서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이대로 구조를 포기한다면, 분명 책임의 화살은 앙투안 발라르에게 향할 터. 그간 연합의 대표로서 누렸던 것이 있기에,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고민에 빠졌다.

지금 모은 병력만으로 벨라루스로 갈까?

그렇다면 노력은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자살행위다.

아무리 그래도, 무의미하게 병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길어지는 고민.

고민 끝에, 앙투안 발라르는 하나의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건 정말이지, 묘수(妙手)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그 시각.

강민혁은 프랑크푸르트에 있었다.

S등급 던전과 게이트는 처리했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사방으로 퍼진 몬스터의 숫자가 제법 많았다.

다른 세력에 비해 아직도 이곳의 위험성이 더욱 높다고 판단한 강민혁은, 병력을 이끌고 주도적으로 프랑크푸르트의 몬스터들을 토벌했다. 그 과정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강민혁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는지, 앙투안 발라르가 카메라맨들을 대동하고 현장에 나타날 때 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여기 계셨군요!”

앙투안 발라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한달음에 달려와,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이는 강민혁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강민혁 마탑주님을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혹시 벨라루스 마법 협회의 구조 영상을 보셨습니까?”

대답은 하지 않았다.

슬쩍 옆을 보자, 카메라에 빨간 불빛이 들어왔다.

‘이것 봐라.’

피식, 웃는 강민혁.

앙투안 발라르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앙투안 발라르는 평소와는 답지 않게 점잖은 태도를 고수했다.

“벨라루스 마법 협회의 생존자들이 지금 구조의 손길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계 마법 연합의 힘만으로는 그들을 구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데, 혹시 저희를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벨라루스의 생존자들만 구할 수 있다면, 저희가 그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참 재밌는 제안이었다.

앙투안 발라르.

그는 공개적으로 밝혀진 상황을 역으로 이용했다.

강민혁이 승낙한다면?

당연히 이득이다.

그렇지 않아도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강민혁의 강력한 힘은 구조 활동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강민혁은 거절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앙투안 발라르로서는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자, 어떤 선택을 내릴래?’

거절.

생존자들을 외면한 강민혁의 선택은, 강민혁이라는 인간을 천하의 개쓰레기로 만들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앙투안 발라르는 잃어도 될만한 병력을 편성한다 할지라도, 실패의 책임을 강민혁에게 떠넘길 수 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병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이라고 말끝을 흐리는 순간, 비난의 화살은 강민혁을 아주 난도질해버릴 터.

완벽한 수였다.

강민혁이 독일 마법 협회를 구함으로써 얻은 명성을, 앙투안 발라르는 이 한수로 무마시켰다.

대단한 사람이다.

앙투안 발라르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항상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야.’

예상은 했다.

앙투안 발라르가 보일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

정말 웃긴 것은, 앙투안 발라르는 예상대로 움직이되 항상 제일 거지 같은 선택을 내렸다.

카메라.

그 너머의 시선이 느껴졌다.

현장에 있는 카메라는 겨우 2대밖에 없지만, 저 너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강민혁이 말했다.

“싫습니다. 저는, 세계 마법 연합의 그 어떠한 요구도 들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순간 씰룩이는 앙투안 발라르의 입꼬리.

그는 생각했다.

강민혁이, 미끼를 물었다고 말이다.

기다렸던 상황.

앙투안 발라르는 준비한 멘트를 말했다.

“싫다니요. 지금 벨라루스의 생존자들을 이대로 버리자는 겁니까?”

책임의 전가.

교묘한 말로, 마치 생존자들의 죽임이 강민혁의 책임인 것처럼 떠넘겼다.

“세계 마법 연합과 가디언 마탑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재앙이 닥친 상황에서, 헌터는 사람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벨라루스의 생존자들은 세계 마법 연합의 일원이기 전에, 누군가의 가족입니다. 아들이고, 딸이고, 아버지고, 어머니일 그들이 죽는 것을 저는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비난이었다.

강민혁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며, 앙투안 발라르는 훈계하는 선생님처럼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말입니다. 독일 마법 협회의 애기를 듣고 곧바로 병력을 편성했습니다. 그들이 세계 마법 연합을 탈퇴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짓이 아니다.

앙투안 발라르는 영리한 사람이다.

나중에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까 봐, 그는 병력을 일부러 독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변명할 명분만 얻고 물러섰다.

가는 길에 몬스터와 조우했다면 같잖은 핑계로, 그는 나름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설마 강민혁 마탑주님이 그런 대답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세상에 닥친 재앙을 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신 분이 아닙니까? 그간의 행보가 개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어서, 뭐라고 대답 좀 해보십시오!”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앙투안 발라르.

무대가 절정에 도달했다.

카메라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난리가 난 상태였고, 그들은 갈대처럼 앙투안 발라르의 편을 들었다.

강민혁은 쓰레기가 되었다.

재앙을 대비하고.

헌터 아카데미를 구하고.

독일까지 날아와 연합을 위해 싸운 강민혁이, 앙투안 발라르의 세 치 혀에 어느새 쓰레기로 전락했다.

우스운 상황이다.

강민혁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앙투안 발라르의 모습이, 제법 재밌었다.

“다 하셨습니까?”

앙투안 발라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

그것은 자신 또한 기다리고 있었던 상황이다.

수많은 선택지를 떠올리면서, 강민혁은 그 선택지에 대항할 각각의 상황을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앙투안 발라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말이다.

강민혁이 말했다.

“그렇게 세상을 위해 헌신하시는 분이 왜 독일 마법 협회의 연락은 고의적으로 방해하셨습니까? 변명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이미, 그에 대한 증거는 모두 확보한 상태니까요.”

".........?!"

당황으로 얼룩지는 앙투안 발라르의 표정.

상황이 반전되었다.

지금부터는, 강민혁이 준비한 무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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