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56화 (156/197)

156화.  < 37. 아웃브레이크(9) >

화륵.

화르륵.

땅이 불타올랐다.

방금까지만 해도 시야를 가득 메우던 몬스터들이 대부분 정리되었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블러드 밴시.’

S급 몬스터.

가장 위험한 적이 남아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그것의 음성이 다시 한번 강타하였다.

그러나 강민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강민혁은 빠르게 마나를 사방으로 퍼트리며 음성이 전파되는 것을 막았고, 동시에 M-1의 비행 능력을 작동시켰다. 플라이 마법은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은 플라이에 소모되는 마나와 정신력도, 온전히 공격 마법에만 집중할 생각이었다.

‘내 힘으로 S급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한다.’

절대적인 기준.

강민혁은 항상 이 순간을 바랐다.

마법 학계의 판도를 바꾸고 앞으로 숱한 위험을 이겨내려면, S급 몬스터는 넘어야만 하는 벽이다.

마침 상대는 마법사의 천적.

나쁘지 않았다.

7서클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면서 마나의 소모가 제법 컸지만, 강민혁은 서클을 활짝 열었다.

팽팽팽-

‘정령 빙의.’

화륵.

강민혁의 주변에서 불길이 일었다. 천호명이 사용한 것처럼 극적인 효과는 아니었다. 천호명은 태생부터 물의 지배력을 타고난 사람이었고, 그래서 서클 상승이라는 엄청난 효과를 얻었다. 그러나 강민혁의 경우에는 그 정도까지의 힘은 아니었다. 샐러맨더의 힘이 서클에 깃드는 정도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천호명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얻었다.

수준의 차이.

강민혁의 주변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이내 블러드 밴시를 덮쳤다.

“화우.”

화르르르륵.

콰앙!

강민혁의 의지에 따라 화염의 잔재가 모두 마법으로 변했다. 수십, 수백 개의 마법. 강민혁이 발휘하는 강한 지배력에 화마(火魔)가 넘실거렸다. 블러드 밴시가 강력한 어둠의 마나를 일으키며 정면에서 막아보려고 했지만, 멸의 힘이 깃든 화염에 블러드 밴시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

스크림이 아니었다.

흐릿해지는 블러드 밴시.

블링크와 같은 현상으로 화염의 영역에서 벗어난 그것이, 피눈물을 흘리며 주변의 마나와 동화되었다.

둥실.

콰콰쾅!

그러자 염동력(念動刀)의 효과로 주변에 있는 바위들이 그대로 강민혁을 덮쳤다. 동시에 다시 한번 귀를 공격하는 블러드 밴시의 비명 소리. 그것의 저항은 격렬했다. 이대로 죽지 않겠다는 듯이 전력을 다해서 힘을 뿜어내었지만, 강민혁은 본능적으로 블러드 밴시가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선공.

8번의 7서클 마법은, 블러드 밴시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아직 살아남는 와이번 킹 한 마리가 강민혁에게 날아왔지만, 강민혁은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폭발!”

콰앙-!

끼룩.

와이 번 킹의 날개가 폭발에 의해 찢겨나갔다.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추락하는 와이번 킹을 뒤로 하고, 강민혁은 서클에 있는 마나를 극성으로 끌어 올려 모두 마법으로 변화시켰다. 강력한 불의 지배력은 타오르는 땅을 모두 강민혁의 영역으로 두었다. 블러드 밴시의 사방에서 불의 마법이 발현되었고, 틈을 주지 않고 폭발하는 마법에 블러드 밴시의 몸이 옅어졌다.

화르르륵!

콰콰쾅!

강민혁과 블러드 밴시.

둘의 전투는 경이로웠다.

지상에 있는 사람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전투였고, 둘의 화력이 하늘에서 펑펑 터졌다.

게이트의 몬스터들.

그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블러드 밴시를 공격하다가 밖으로 튀는 마법의 위력만으로도, 몬스터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소멸을 당했다. 7서클 마법의 힘. 특히 8서클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하는 강민혁이 마법은,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콰앙-!

꺄아아아아악-

볼에 타오르는 블러드 밴시가 비명을 질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녀의 비명이, 드디어 독일 마법 협회에 닥친 재앙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최초의 재앙으로부터 약 8시간.

기나긴 시간의 종지부를 찍었다.

강민혁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독일 마법 협회로 들어서자, 발터 게르하르트가 예를 다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강민혁 마탑주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독일 마법 협회는 몬스터들의 공격으로부터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사실 그간 저는 연합의 소속으로 제대로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강민혁 마탑주님이 하시는 일을 위해 목숨을 걸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의 발터 게르하르트.

독일 정부와 세계 마법 연합은 그를 버렸다.

그러나 강민혁만큼은 끝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전과는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닙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연합을 형성하는 것이고, 저는 여러분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요. 저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고, 연합의 의무를 행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감사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 그 마음만은 받겠습니다.”

강민혁이 웃었다.

다행이었다.

사건 발발 직후.

독일 마법 협회가 강민혁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주지 못했더라면, 그간의 계획은 무용지물이 된다.

천호명.

새로운 연합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안배를 해두었지만, 그런데도 강민혁은 안도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결국 성공했다. 사람들은 감히 상상 조차 못 할 악재가 겹쳤지만, 강민혁의 준비는 그러한 재앙을 넘어섰다. 이 세상에 닥친 시련은, 강민혁의 준비성에 결국 의도를 이루지 못했다.

인사를 끝내고.

강민혁은 곧바로 천호명을 찾았다.

“괜찮으십니까?”

“...아직은 버틸만합니다.”

천호명의 안색은 창백했다.

정령 빙의의 힘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면서, 잠시 탈진 현상이 일어났다.

‘최악은 아니구나.’

천호명은 무사했다.

연합군이 도착하면서 숨을 돌릴 여유가 있었고, 그는 다행히도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진 않았다.

강민혁이 말했다.

“무거운 짐을 안겨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이렇게 구하러 오시지 않았습니까?”

천호명이 희미하게 웃었다.

많이 힘들었다.

마나가 고갈되었고, 입은 바짝 마른 상태였다.

당장에라도 잠에 들고 싶었지만, 강민혁의 모습을 보니 흐뭇한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독일 마법 협회에 닥친 재앙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다. 세계 마법 연합은 물론이거니와 독일 정부도 프랑크푸르트의 상황을 외면했지만, 강민혁만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저런 사람이 자신의 마탑주다.

어찌 흐뭇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신이 목숨을 걸었던 선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천호명은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았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때도 천호명은 목숨을 걸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성장시켜주는 강민혁의 밑에서는, 목숨은 전혀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쉬겠습니다.”

가쁘게 숨을 내쉬는 천호명.

그가 이내 눈을 감았다.

죽은 것은 아니다.

잠시 지친 것일 터.

강민혁은 천호명을 편안한 숙소로 옮겼고, 곧바로 여력이 남은 연합 세력의 수뇌부를 한자리에 모았다.

재앙은 막았다.

그러나,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발터 게르하르트의 질문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 강민혁이 대답했다.

“지금부터는 병력을 나눌 생각입니다. 일부의 병력은 독일 마법 협회에 남아 프랑크푸르트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머지 병력은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연합 세력들을 도와줄 것입니다. 사실 이곳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한 곳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지금 도움이 간절한 상황일 겁니다.”

“좋은 생각이네요.”

다들 동의했다.

이번 사건.

사실 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연합 세력이라는 소속감이 옅었다.

아직 그만큼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주변에서 불신을 부추기는 바람에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재앙은 신뢰를 낳았다.

소수 연합의 결속력은 강해졌고, 강민혁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다들 강한 신뢰가 보였다.

발터 게르하르트가 말했다.

“문제는 세계 마법 연합입니다. 그들은 이번에 의도적으로 저희의 연락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헌터는 재앙이 닥친 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칠 의무가 있습니다. 그때는 그간의 관계를 잊어야 하건만, 세계 마법 연합은 우리가 무너지길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악의는 이미 선을 넘었습니다. 재앙이 무사히 마무리된다는 것은 세계 마법 연합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일 테고, 그렇기에 그들이 권력을 위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릅니다.”

근거 있는 걱정이었다.

프랑스 마법 협회.

그들은 다른 세력을 도와줄 여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독일 마법 협회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건 인간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었다.

연합 탈퇴의 대가.

그들은 마치 야쿠자처럼 피의 대가를 바랐다.

앙투안 발라르의 야망은 결국 선을 넘었고, 발터 게르하르트의 타오르는 눈빛은 전쟁이라도 불가할 기세였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같은 하늘 아래, 두 개의 마법 연합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 마법 연합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재앙은 우리에게만 닥친 시련이 아닙니다. S등급 던전과 게이트로 인해서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까? 세계 마법 연합은 다수의 동맹군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독일 마법 협회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상황에 처한 세력들이 있죠. 그 말은 그들은 아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때가 되면, 세계 마법 연합은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강민혁이 웃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발터 게르하르트를 비롯해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10분 뒤.

마치 마법처럼,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긴급 속보였다.

기자를 통해, 벨라루스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현재 벨라루스는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벨라루스 마법 협회는 세계 마법 연합과 벨라루스 정부의 도움을 받아 그간 게이트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번 아웃브레이크 현상으로 인해서 실험에 사용되던 던전에서 수만 마리의 몬스터가 배출되었습니다. 상황 발생 직후 벨라루스 정부와 강화 전사 단체, 마법 협회는 상황을 무마시켜보려고 했지만, 벨라루스의 수도인 민스크(Minsk)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S등급 몬스터에게 패배하며 결국 대부분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벨라루스는 게이트 너머의 세상에 관심을 보였고, 안전장치 없이 진행된 실험은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멸망.

벨라루스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자, 주변 국가들로서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건 대재앙입니다. 벨라루스에서 밀려오는 몬스터를 막지 못한다면, 유럽의 국가들이 차례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게이트 너머.

그곳에서 몬스터들이 끊임없이 배출되었다.

지금은 수만 마리의 몬스터라면, 계속 방치했을 경우 그 숫자가 수십만 마리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위급한 상황.

그때쯤 변수가 발생했다.

그건, 세계 마법 연합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벨라루스 마법 협회의 생존자들.

그들이 인터넷 생방송으로 생존 사실을 밝혔던 것이다.

[저희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벨라루스 마법 협회 지하에 몸을 숨긴 상태지만, 몬스터들의 반응을 보아서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발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이대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열했다.

벨라루스의 마법사들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카메라를 보았고, 그것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구조 영상.

입장이 뒤바뀌었다.

독일 마법 협회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같은 연합인 가디언 마탑은 도와줄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벨라루스 마법 협회는 누가 도와야 하겠는가?

바로 세계 마법 연합이었다.

영상이 널리 퍼졌다.

오열하는 생존자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구조대를 편성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자연스럽게 세계 마법 연합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세계 마법 연합.

지금부터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경험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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