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55화 (155/197)

155화.  < 37. 아웃브레이크(8) >

재앙.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면서, 강민혁이 가장 염려되었던 부분은 바로 유럽에 있는 연합 세력들이었다.

‘이 세상의 기술력으로는 거리의 한계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클리스만의 세상.

마법 문명이 찬란하게 빛나는 그곳은 텔레포트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강화 문명에서는 다르다. 텔레포트를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좌표 설정에 능숙한 조타수(提般手)가 필요하다. 블링크와 같은 짧은 거리의 이동은 시전자의 좌표 설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공간 이동은 변수가 많아진다.

조타수는 기술직이다.

클리스만의 몸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강민혁은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직접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서 유재명과 천호명을 번갈아 독일에 상주시켰고,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를 더 준비했다.

바로 적의 적(敵)을 활용하는 방법.

세계 마법 연합이 강민혁에게 등을 돌리면서 대다수의 기득권은 가디언 마탑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게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세계 마법 연합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세력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당연히 가디언 마탑이 승리하길 바라고 있을 터.

그렇게 에이글에게 연락을 넣었다.

명분은 명확했다.

‘프랑스 마법 협회는 프랑스의 강화 전사 단체인 쏠리드와 연합을 맺었어. 에이글은 과거에 쏠리드와의 분쟁으로 인해서 세력이 기울었던 곳이기 때문에, 프랑스 마법 협회와 쏠리드의 몰락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겠지. 그들로서는 내가 매력적인 거래 대상일 수밖에 없어. 그들로서는 넘볼 수 없었던 쏠리드를 내가 무너트렸기에, 나를 판도를 뒤바꿀 칼잡이로 사용하고 싶을 거야.’

자신의 힘.

그것을 거래의 저울에 올려놓았다.

그간 복수를 준비하고 있던 에이글로서는, 강민혁의 예상대로 거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관계?

그딴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인간과 인간이 거래하는 상황에서, 에이글에게 필요한 것은 강민혁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다. 사람들의 평판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안정을 위해서다. 이미 쏠리드에 의해 무너졌던 에이글에게 있어, 강민혁과 손을 잡는 것은 비난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에이글이 시작이었다.

강민혁은 목적이 부합하는 세력과 차례로 연합을 맺었고, 총 12개의 세력을 포섭하는 것에 성공했다.

거래의 조건은 이랬다.

1. 상황 발생시 연합을 도와줄 것.

2. 그동안 가디언 마탑이 금전적인 지원을 해줄 것.

3. 같이 힘을 합쳐 세계 마법 연합을 무너트릴 것.

뜻이 모였다.

독일의 방송사 카메라에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한 것은, 이면에서 진행된 거래로 인한 결과였다.

연합군이 도착한 시각은 천호명의 힘이 떨어질 무렵이었다.

12개의 연합 세력 중 다섯 군데는 아웃브레이크로 인해 지원을 나오지 못했지만, 7개의 세력에서 동원한 강화 전사의 숫자는 무려 오백 명에 달했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숫자였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연합군의 수장인 마테오 파블로비치는 오라를 일으키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전군 돌격하라!”

“돌격!”

“와아아아!”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달려간 마테오 파블로비치의 검이 번뜩이자, 전방에 있던 오크들이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한때는 프랑스 최고의 검사라고 불렸던 사나이. 알랭 로베르에 의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그의 실력은 과거에 비해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캬악!

“죽어!”

몬스터와 연합군이 한데 뒤엉켰다.

확실히 강화 전사가 왜 주류의 힘이라고 불리는지 증명되는 모습이었다. 강화 전사들은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일당백의 위력을 보여주었고, 그들은 ‘복수’라는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마테오 파블로비치는 약속했다.

이번 일이, 지난 영광을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독일 정부가 보낸 병력들은 조금만 간을 보다가 도망쳤다면, 이들에게는 간절한 목적이 있었다.

서걱!

푸화하학!

마테오 파블로비치의 검이 다시 한번 피를 뿌렸다.

사실 강화 전사의 세계에서, 마법사와의 거래는 금기시된다.

강화 전사의 자부심에 관련된 문제이면서도, 마법사에게는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달랐다.

‘강민혁은 앞으로 세상의 판도를 바꿀 인물이다.’

비무행.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일.

마테오 파블로비치는 강민혁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강민혁은 연합 세력을 지키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실제로 벌어진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은 마테오 파블로비치를 감격시켰다.

뒤를 맡길 수 있는 사람.

적어도 강민혁의 평판은 그러했다.

세계 마법 연합이 퍼트린 부정적인 인식을 제외하고 보면, 강민혁은 아군으로서 매우 든든했다.

이건 도박이었다.

연합군이 살아남아야만,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크아아아!”

파사사삭!

마테오 파블로비치의 검에서 뿜어지는 수십 개의 오라 다발이 그대로 주변을 휩쓸었다. 그리고 각 연합 세력의 수장들도 발군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았던 독일 마법 협회가 숨을 돌릴 여유를 얻자, 발터 게르하르트가 앞으로 나서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공격하라! 연합군을 도와라!”

화르르륵.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화염.

마법사들이 마나를 쥐어 짜냈다.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양상에 그들의 마나는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룬 플레어.”

“인페르노.”

“파이어 캐논.”

콰앙!

화륵, 화르르르르르륵!

불길이 일었다.

하늘에서는 독일 마법 협회의 마법이, 그리고 옆에서는 연합군의 공격이. 양옆에서 이루어지는 공격에 몬스터들이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때마침 벨기에 마법 협회도 현장에 도착했다. 당연히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던 세바스타인 페레스로서는, 의외의 전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대체.’

강화 전사들이 독일 마법 협회의 편을 들어주다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확실한 것은 자신의 선택이 극단적인 도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름 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자, 세바스타인 페레스의 지시하에 마법사들의 화력이 뿜어졌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접전이었다.

이제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쉽사리 승부는 나지 않았다.

아웃브레이크.

S등급 던전.

게이트.

3개의 악재가 겹쳤다.

당장 눈에 보이는 몬스터만 수천 마리고, 게이트와 던전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몬스터들이 배출되고 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나타나는 몬스터들. 시간이 지날수록, 마테오 파블로비치의 입이 바짝 말랐다. 그의 손에 벌써 백 마리 이상의 몬스터가 죽어 나갔으나,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싸움.

베고 또 베고.

쉬지 않고 움직였다.

복수의 칼날은 덕지덕지 붙은 살점으로 인해 무뎌졌고, 마테오 파블로비치의 안색도 창백하게 변했다.

현기증이 일었다.

연합군의 강화 전사도 약 백오십 명 정도 잃은 상태.

‘일단 건물로 후퇴해서 수비의 이점을 살려야 한다.’

전면전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처음의 기세는 좋았으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독일 정부 병력 선에서 해결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삐익-

[모두 물러나십시오.]

하나의 무전.

익숙한 목소리에, 마테오 파블로비치를 비롯한 연합군 수장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민혁이다.’

확실했다.

드디어, 그가 도착했다.

눈앞에 현장이 펼쳐졌다.

한데 뒤엉켜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김성호에게 명령을 내렸다.

“제가 마법을 사용할 때까지 지켜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김성호.

실드의 수장인 그가 신호를 보내자,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디펜더들이 일제히 방벽을 형성하였다.

착착착-

그들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거대한 방패를 서로 맞물리게 두었고, 일부는 몬스터들이 다가올 길목에 트랩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강민혁을 따라나선 오창석 일행은 그 사이에서 검을 움켜쥐었다. 곧 있으면 시야를 가득 메우는 몬스터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들 거라고 생각하자, 벌써부터 피부에서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장착.’

삑-

철컥, 철컥.

강민혁이 몸에 두르고 있는 얇은 갑옷의 버튼을 누르자, 그곳에서부터 생겨나는 금속 부품이 강민혁의 전신을 감쌌다.

그것은 바로 골렘이었다.

예전에.

강민혁은 이학범에게 골렘 제작을 연구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렇게 연구가 진행되었고, 클리스만의 세상에서처럼 고차원의 기술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뼈대의 형태로 간소하게 장착된 골렘. 심장 부근에 부착된 총 6개의 상급 마나석은, 바로 ‘마도형 골렘’이라고 불리게 될 이 장치의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원동력이었다.

마도형 골렘.

일명 M-1.

골렘의 착용자가 마법을 사용할 경우, 마나석의 힘이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켜준다.

사실 M-1 정도의 마도형 골렘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가치가 낮지만, 이 세상에서는 활용도가 높았다.

준비는 끝났다.

강민혁은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쿼드 캐스팅.’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선공(先攻).

강력한 한방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만 한다.

두 개로 나누어진 뇌가 각각 더블 캐스팅을 시작했고, 강민혁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각인 마법.’

화악-

강민혁의 전신에서 빛이 일었다.

그동안.

강민혁은 자신이 강해질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다.

수련도 해보았고, 연구에도 매달렸다.

덕분에 마도형 골렘이 탄생했으며, 8서클의 경지에는 올라가지 못했으나 새로운 방법도 찾아냈다.

바로 각인 마법.

강민혁은 자신의 정신력이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자신의 정신력이라면 몇 개의 각인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의문에서 시작된 실험은, 강민혁의 전신에 새로운 각인 마법을 새겨 넣었다. 그러자 무려 네 군데에서 일어나는 파란 불빛이, 마법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총 8개의 마법.

강민혁의 얼굴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극에 달한 마나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표출되는 순간.

“파이어 스톰.”

“어스 퀘이크.”

“썬더 스톰.”

“록 스톰.”

번뜩.

세상에, 자연의 분노가 작렬했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르릉.

그것은 자연의 분노였다.

연합군이 물러나자마자, 갑자기 땅이 폭발하더니 주변의 지형지물이 변했다.

크르륵!

캬악!

몬스터들이 발광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이 도망치기에는 늦었다.

무려 8개의 7서클 마법.

그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사용되는 상황에, 몬스터들은 속수무책으로 자연의 분노를 감당해야만 했다.

콰득!

땅바닥에서 치솟는 가시 바위가 몬스터들의 사지를 찢어발겼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는 그들의 영혼을 육체와 분리시켰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몬스터들은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더불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위들.

사방에서 퍽퍽, 소리가 들렸다.

몬스터들의 단단한 육체가 두부처럼 부서졌고, 그들로서는 자연의 분노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마법.

다수의 적에게 강하게 발휘되는 힘.

강민혁의 마법은 판도를 바꾸었다.

상당한 양의 마나가 한 번에 빠져나가는 바람에 잠시 휘청거렸지만, 그래도 그 결과는 엄청났다.

학살.

수천 마리의 몬스터가 죽어 나가고 있었다.

겨우 단 한 명의 힘에, 그 많던 몬스터들이 생명을 잃어갔다.

“...이게 무슨.”

먼발치.

강민혁의 명령에 황급히 몬스터와 멀어지는 것을 택한 마테오 파블로비치는, 눈앞의 상황에 넋을 잃었다.

방금의 무전.

강민혁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용된 마법.

이 엄청난 힘이, 강민혁의 마법이라는 계산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강민혁의 힘이라는 건가.’

강민혁.

그가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비무행과 프랑스에서의 일.

그것만 보더라도, 강민혁의 무력은 마법사라는 편견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인정한다 할지라도, 세계 최강을 논하는 상황에서 강민혁이 먼저 떠오르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강자가 많다.

자신은 강화 전사의 세계에서 최강이라 불리기에 부족한 사람이었고, 그들의 무력을 생각하면 강민혁의 힘은 ‘마법사’라는 기준에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알랭 로베르와 같은 인물들조차도, 세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강화 전사들과 비교할 때는 다소 모자란 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압도적인 광경을 보라.

일개 인간의 힘.

마테오 파블로비치가 세계 최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쿠르르르릉.

땅이 뒤흔들렸다.

수백의 강화 전사들이 악에 받쳐서 싸워도 물리치지 못했던 몬스터들이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졌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어쩌면 강민혁은 이미 세계 최강의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마른침을 삼켰다.

이번 거래.

서로에게 윈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마테오 파블로비치가 어떻게든 붙잡아야만 하는 에이글의 미래를 바꿀 기회였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강민혁을 적으로 돌린 사람들.

그들이, 진심으로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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