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52화 (152/197)

152화.  < 37. 아웃브레이크(5) >

오창석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검사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헌터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후 한국에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택했다. 바로 세계 용병 단체인 블랙 아미(Black army)에 입단.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였고, 그곳에서 무려 10년의 시간을 보내며 오창석은 베테랑 전사가 되었다. 그러다 용병으로서의 삶에 염증을 느낄 즈음, 헌터 아카데미는 오창석에게 ‘특수 임무 전담반’이라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안하며 그의 영입을 추진했다.

그것이 바로 경비3팀의 시작이었다.

산전수전을 모두 경험했다는 말은 사실이다.

오창석은 용병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정말 온갖 일을 경험했다. 던전과 게이트는 일상과도 같은 것이었고, 헌터이면서도 테러리스트로 활동하는 이들을 상대한 경험도 있다. 그런데도 강민혁의 행보는 매번 오창석을 당황에 빠트렸다.

재앙 대응법?

과하다고 생각했던 그것이 실제 상황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수천 마리의 몬스터?

강민혁은 혼자만의 힘으로 마법사의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마법사가 변수에 약하다는 편견?

솔직히 말해서, 찰나의 순간에 몬스터를 제압하는 스킬은 웬만한 강화 전사보다도 뛰어났다.

그리고 마지막.

아카데미 본진에서의 작전은 용병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던전의 특성을 파악해서 취약한 점을 공략하였고, 마법사들은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과는 다르게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은 헬기에서 로프를 타고 옥상에 착지했다. 더불어 2천 마리의 몬스터를 소탕해버리는 엄청난 화력을 지켜보고 있자니, 오창석은 본인이 참 오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블랙 아미를 탈퇴할 때.

솔직히 말해서 오창석은 더 이상 경험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세상의 위험은 항상 비슷한 수준의 것이었고, 그래서 관심이 식은 그는 안정적인 삶을 택했다.

그런데 그건 착각이었다.

강민혁을 보라.

그의 모든 것은 예상의 범주를 넘어섰다.

강민혁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처음 블랙 아미에 입단했을 때와 같은 설렘이 가슴을 두드렸다.

심장이 뛰었다.

사실 3개월 전에, 가디언 마탑이 강화 전사를 모집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가디언 마탑은 단순히 마법 세력으로서의 역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앙에 대비하기 위한 하나의 세력을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역할의 구분은 없었다. 가디언 마탑은 자체적으로 ‘강화 전사 부대’를 만들길 바랐고, 그러한 행보로 인해 한국 강화 전사 연합은 강화 전사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가디언 마탑의 강화 전사 모집은 선을 넘는 행위입니다. 만약에라도 그에 동조하는 강화 전사가 있다면, 다시는 강화 전사의 세계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경고로 끝나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 강화 전사 연합은,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경고는 적절했다.

아무도 가디언 마탑에 지원하지 않았다.

어중간한 실력의 강화 전사들이 실드에 가입하는 케이스는 많았지만, 정작 실력자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먼발치에서 방관했다. 그건 오창석도 다르지 않았다. 오창석으로서는 경비3팀의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오늘의 사건을 경험해보니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재밌을 것 같네.’

흥미가 돌았다.

강민혁.

저리도 대단한 사람 밑에서 일하면 어떤 기분일까?

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모두 정리되면 가디언 마탑에 들어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강민혁의 작전은 퍼즐과도 같았다.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요소들이 딱딱 등장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용비교로 이동합니다. 모두 부상자를 챙기고 조금만 힘내십시오.”

고립의 시간.

그동안 죽고 다친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그들을 모두 챙기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때마침 용비교의 방어 병력이 도착했다. 용비교를 담당한 헨리 덴커의 조는 지원의 역할을 맡았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용비교를 공격하는 몬스터를 소탕한 뒤에, 후방은 유재명조에게 맡기고 지원에 나섰다.

덕분에 부상자를 옮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최단 거리로 부상자를 모두 옮기자, 강민혁은 병력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몬스터의 소탕을 시작했다.

이미 대다수의 몬스터는 처리한 상태.

헌터 아카데미의 재앙은 빠르게 진압되었다.

이제는 자신의 힘이 필요하지 않다는 확신이 생겼을 때, 강민혁은 곧바로 고영철에게 연락을 걸었다.

탈칵.

“상황은?”

[예상대로야. 헌터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던전이 개방되었어. 특히 구미에서 S급 던전이 개방되는 바람에, 주변에 있는 병력이 모두 소집된 모양이야. 해외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 30분 전에 세계 각국의 수장들이 회담을 진행했는데, 이번 사태의 이름을 ‘아웃브레이크’라고 명명하고 재앙이 벌어졌음을 선포했어. 결국, 네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거지.]

“이제야 인정을 하는구나.”

입맛이 썼다.

지난 시간.

강민혁은 목소리를 높여 재앙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사건이 발발하자마자 곧바로 현실을 인정했다.

이해는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문제는 그로 인해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거야. 그러니 지금부터 나는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내 선택이 옳았음을 사람들에게 증명해야만 해. 100년간 고여버린 기득권의 주도권을 강탈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위기를 이용하는 것일 테니까.’

강민혁의 행보.

지금을 위해 차곡차곡 언행을 쌓았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강민혁의 모습은, 이번 사건이 모두 끝났을 때 강민혁의 발언에 힘을 실을 것이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그나마 다행히도 S급 몬스터가 출몰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아웃브레이크 현상과 겹치는 바람에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야.]

최악의 상황.

그런데 말하는 고영철도, 듣는 강민혁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알겠어. 상황을 정리하자마자, 내가 독일로 갈게.”

독일.

다음 행선지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만, 강민혁은 그들의 안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독일 마법 협회.

그들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각.

강민혁이 전달받은 대로, 독일 마법 협회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파이어 필드!”

“번 플레어!”

“라이트닝 월.”

화르르르르륵.

콰앙-

그들의 대응은 일사불란했다.

마법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지정된 위치에서 마법을 사용했고, 건물의 외벽은 몬스터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순식간에 모든 입구를 차단했다. 그리고 건물 위에는 디펜더들이 혹시 모를 몬스터들의 난입을 대비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판단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확했다.

‘강민혁 마탑주의 예상은 옳았어.’

독일 마법 협회장.

그의 눈빛이 희열로 물들었다.

사실, 강민혁을 따르기까지 그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마르코 도슨의 설득에 세계 마법 연합을 탈퇴하는 결단을 내린 이후, 케빈 고미스마저 강민혁을 지지하자 독일 마법 협회장은 태도를 확고하게 정했다. 이제는 강민혁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사람들은 세계 마법 연합을 탈퇴한 것을 나중에 후회하게 될 거라 말했지만, 독일 마법 협회장은 재앙이 닥친 현실에 오히려 전율이 일었다.

위험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위험이 끝나면 어떤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재앙을 주장하고 그간 그것을 대비한 강민혁의 행보가, 마법 학계의 판도를 단번에 뒤집어버릴 터.

버티기만 하면 된다.

최악의 상황은 예상 범위 안에 있었기에, 버틸 수 있으리란 믿음도 있었다.

그리고.

‘천호명. 정말 대단한 실력자야.’

독일.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해운대의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천호명이, 독일 협회 마법사들 사이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표출하였다.

“아쿠아 캐논(Aqua Cannon)."

퍼엉-

콰콰콰쾅!

엄청난 크기의 대포알이 전방에 있는 몬스터를 휩쓸었다. 마법의 위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났고,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에 천호명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천호명은 타고난 물의 지배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가 강민혁의 밑에서 훈련을 받으며, 지배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워터 스트라이크(Water Strike).”

콰앙!

콰콰쾅!

사방에서 생겨나는 물줄기가 몬스터들을 강타했다.

6서클 마법사.

천호명의 마법은 특별했다.

독일 마법 협회 최고의 실력자라고 불리는 마법사도, 천호명에 비하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해운대의 대마법사라는 명성은 익히 들었어. 그는 예전에도 뛰어난 마법사였지만, 분명히 지금과 같은 위력을 보여주는 마법사는 아니었어. 애초에 그의 재능이 특별했던 걸까, 아니면 강민혁 마탑주의 능력이 지금의 천호명을 만들어낸 것일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천호명의 재능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강민혁이 있기에 지금의 천호명이 탄생했다.

가디언 마탑.

그곳에는 유재명, 천호명이 아니더라도, 마법 학계에서 목소리에 힘을 줄 만한 대단한 실력자들이 즐비했다. 그들이 모두 가디언 마탑에 입탑하고서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리고 덩달아 독일 마법 협회의 수준도 향상되었기에, 독일 마법 협회장은 진심으로 감탄이 나왔다.

짧은 시간.

강민혁은 대단한 세력을 일구었다.

그들이 자신의 편이라는 생각에,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천호명과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

그들은 도드라진 활약을 보였다.

독일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도, 그들이 있기에 방어가 훨씬 수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독일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강민혁과의 대화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만약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곳은 바로 독일입니다.”

수뇌부 회의.

강민혁의 말에, 이학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현재 동맹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과 독일 마법 협회, 그리고 세 개의 마탑은 독일을 제외하고 모두 근접한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만일의 상황에 나머지 네 개의 세력은 서로의 힘을 합칠 수 있겠지만, 독일 마법 협회의 경우에는 주변의 마법 세력들이 협조해줄 리가 없습니다. 특히 프랑스 마법 협회는 말할 것도 없겠죠. 만약에라도 그들이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들은 우리의 손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심각한 표정을 보였다.

동맹 세력의 붕괴.

절대 지켜만 볼 수 없는 일이다.

독일 마법 협회를 적극적으로 훈련시키고는 있으나,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강민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법 학계의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는 이상, 당분간은 독일 마법 협회를 특별하게 관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세계 마법 연합은 절대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언론을 통해 쏟아내는 기사들만 보더라도, 오히려 재앙을 이용하려는 악의적인 의도까지 보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보호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유재명 대마법사님과 천호명 대마법사님의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한 달간 독일에 상주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 정도의 전력이라면 웬만한 상황은 극복할 수 있는 데다, 혹시 예상을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질지라도 제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호명과 유재명.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의 독일행이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유재명이 독일로 떠났고,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한 지금은 천호명이 독일에 상주하는 시기였다.

철저한 대비.

그것이 재앙으로부터 독일을 보호했다.

천호명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하며, 주변의 마나를 동화시켰다.

‘절대 뚫릴 수 없어.’

강민혁.

천호명에게 그는 우상(偶像)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강민혁이라는 사람을 경험하면서 천호명은 마법의 신을 마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강민혁의 명령이다.

절대 뚫리고 싶지 않았다.

독일 마법 협회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으로, 강민혁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아쿠아 캐논.”

퍼엉-

콰콰콰쾅!

천호명의 서클이 팽팽 회전했다.

6서클 마법사의 존재는 확실히 압도적이었다.

특히 중급의 마법과 물의 지배력이라는 버프 효과로 인해서, 천호명의 마법은 상급의 마법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했다. 덕분에 독일 마법 협회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다. 아웃브레이크와 게이트 생성이라는 위기가 겹쳤으나, 강민혁의 대비가 주변의 도움 없이도 버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라고.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며, 그들은 이대로라면 상황을 금방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재앙(災强)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없기에 그 단어의 위험성이 큰 법이다.

그리고 지금.

최악의 상황조차도 뛰어넘는 상황이 발생했다.

콰앙-

쿠르르르르르르르릉.

“무슨 일이지?”

“땅이 무너졌어!”

멀리 떨어진 거리.

그곳의 땅이 폭삭 가라앉았다.

마치 싱크홀이 일어난 것 같은 현상에, 마법사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쪽의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때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프랑크푸르트 지하 깊숙이.

그곳에는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한 S등급의 던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