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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51화 (151/197)

151화.  < 37. 아웃브레이크(4) >

뒷정리는 남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강민혁은 오창석의 경비3팀과 같이 서울숲 내부로 진입했다.

주변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그래도 서울숲의 터전이라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심어두었던 나무와 꽃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짓밟힌 상태였고, 곳곳에서 인간과 몬스터의 시체가 뒤얽혀 있었다.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

오창석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나름 마법사의 입장을 배려한 말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강민혁이다.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강민혁은 오창석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나약하지 않다.

“괜찮습니다. 아카데미 건물은 특별한 외부 방어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꼼꼼하게 주변을 살피면서 이동했다간, 그 안에 고립된 사람들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스피드를 높이시죠. 지금은 시간이 생명입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예."

오창석이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상식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강민혁의 대단한 무력을 목격했는데도, 마법사가 갑작스러운 변수에는 약할 거란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이 괜찮다는데 어쩌겠는가.

오창석 일행은 속도를 높였다.

강화 전사들의 육체 능력이야 초인(起人)의 경지에 도달했다 보니, 주변의 풍경이 휙휙 변할 정도로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데 강민혁은 그들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강민혁은 강화 전사로서의 재능이 떨어지는 것뿐이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아주 미약한 마나.

그것을 살려 육체의 능력을 증폭시켰다.

오창석 일행이 전력을 다한다면 따라잡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역시.’

오창석의 시선이 달라졌다.

듣기는 했었다.

강민혁이 얼마나 찬란한 재능을 가졌는지를.

약간의 마나로도 최고의 효율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강화 전사로서의 강민혁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대단할 것이다.

조금의 재능만 타고 났더라도, 강민혁은 분명히 대성할 재능이다.

그때였다.

오창석 일행이 먼저 지나간 직후, 시체로 추정되던 몬스터가 벌떡 일어나더니 후방에 있는 강민혁을 덮쳤다.

캬악!

".........?!"

일촉즉발의 상황.

눈을 부릅뜬 오창석이 황급히 몸을 날리려고 했다.

마법사는 변수에 약하다.

캐스팅할 충분한 시간과 몸을 움직일 공간이 없기에, 강민혁의 힘으로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홱-

간발의 차이.

강민혁은 마치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이, 몬스터의 앞발 공격을 고개를 숙이는 동작으로 피해버렸다. 정말 간결한 동작이었다. 복서가 상대의 잽을 피해서 안쪽 공간으로 파고드는 것처럼, 강민혁은 오히려 한발 앞으로 내딛더니 오른손으로 마나를 일으켰다.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가, 곧바로 마법으로 변했다.

“라이트닝 블레이드(Lightning Blade).”

파지지지지직.

서걱!

강력하게 일어나는 전기의 칼날!

그것이 몬스터의 가슴팍을 갈라버리자, 몬스터의 몸이 번쩍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결국 쓰러지고 마는 몬스터.

순식간에 정리되어버린 상황에, 오창석은 놀란 표정으로 강민혁을 보았다.

‘이게 마법사야, 강화 전사야?’

정말 찰나의 공방이었다.

마법사이면서도 강화 전사처럼 싸우는 모습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충격을 받은 오창석이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자, 강민혁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툭 내뱉었다.

“서두르죠.”

오창석 일행은 곧 적응하게 될 것이다.

강민혁이라는 마법사는, 그들이 알던 상식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카데미 본관에는 금방 도착했다.

오는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강민혁과 오창석 일행의 적절한 대응에 큰 문제는 없었다.

본관 앞 150m 지점.

수풀에 몸을 숨긴 오창석은, 본관 앞에 펼쳐진 상황에 표정을 찌푸렸다.

“너무 많은데요?”

무전의 내용대로였다.

얼추 2천 마리는 넘어 보이는 숫자.

그들이 지금 본관에 진입하려고 건물의 시설을 모두 때려 부수고 있었다. 창문은 이미 처참하게 박살이 나버린 상태였고, 단단한 문도 형체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마 안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도 지형적인 이점 덕분에 2천 마리의 몬스터를 동시에 상대하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본관이 함락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게다가.

“제길, 트롤도(Trolls)도 있어요.”

“아무래도 트롤 우리에서 나온 녀석들이 본관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

경비3팀의 보고.

다소 까다로운 몬스터가 많았다.

이들을 상대로 겨우 30명도 되지 않는 인원으로 정면에서 싸운다?

자살행위다.

이번에는 강민혁의 힘으로도 힘들다.

넓은 평지에서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있을 때는 강민혁의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잘못 도발했다간 그대로 둘러싸일 가능성이 있다.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처음에 걱정했던 대로 그들을 구하는 것은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오창석이 강민혁을 보았다.

왠지는 모르겠다.

마법 학과의 학생들이 나름 숙달된 대응을 보여주었을 때부터, 그는 강민혁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다행히도요.”

시뮬레이션 훈련.

강민혁은 다양한 상황을 대입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고립되는 상황은 반드시 훈련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다. 그것이 강민혁이 홀로 서울숲 입구 교차로에 나타난 이유였다. 처음부터 무전을 통해서 고립의 사실을 확인한 상태였고, 강민혁은 이미 상황에 걸맞은 지시를 내린 뒤에 가장 위험한 지역부터 정리하는 것을 택했다.

강민혁이 말했다.

“던전 안은 다른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세상이, 그리고 어떤 몬스터가 나타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죠.”

상식적인 말.

그러나, 강민혁은 그 포인트에 집중했다.

“하지만 적어도 헌터 아카데미의 던전들은 변수가 크지 않습니다. 샐러맨더의 불길에 던전의 모습이 모두 드러나면서부터, 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모두 소탕해버린 상태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몬스터들은 훈련을 위해 길러진 ‘우리의 몬스터들’입니다. 그 말인즉, 우리가 모르는 몬스터는 이곳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지하 깊숙이에 존재를 알아챌 수 없는 던전이 존재한다는 말이 있지만, 100년간 던전의 위험에서 안전했던 이곳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하늘이 안전하다는 의미입니다. 헌터 아카데미의 던전에는, 비행형 몬스터가 있는 우리는 없으니까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투투투투투투투투-

하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오창석의 시야에 헬기 3대가 빠르게 본관 옥상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알았다.

생존자들의 지원은 굳이 육로를 고집할 필요성이 없다.

하늘이 안전하다면.

그 넓은 공간을 활용하면 되는 일이다.

“준비하시죠. 곧 전투가 벌어질 겁니다.”

강민혁의 말에, 오창석과 경비3팀은 이제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고 각자의 무기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투투투투투-

헬기는 착륙하지 않았다.

옥상에서 조금 떨어진 부근에서 멈추어 서더니, 여러 개의 로프가 촤르르륵 지상으로 떨어졌다.

“전원 하강!”

“하강!”

스르르륵-

가디안 마탑의 마법사들이 마치 특수부대의 전사처럼 로브를 타고 빠르게 내려왔다. 가디언 마탑에서의 훈련은 절대 ‘정신적인 훈련’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강민혁은 마법사의 육체적인 능력을 강조했고, 그간의 훈련을 통해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은 일반인이상의 육체 능력을 갖추었다.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마법사들.

그들은 대형을 갖추더니, 곧바로 캐스팅을 시작했다.

“강민혁 마탑주님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지금부터, 곧바로 몬스터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알겠습니다.”

방금 전.

헬기조의 리더인 정상훈은 무전을 받았다.

20명의 마법사가 일제히 캐스팅에 들어갔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가 마법의 형상을 만들었다.

“파이어 웨이브.”

“체인 라이트닝."

“룬 플레어.”

콰앙!

화르르르르르륵!

일제히 마법이 작렬했다.

지상에 있던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옥상을 쳐다보았지만, 그들로서는 특별하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발악하며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몬스터들. 그러나 좁은 통로는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했다. 건물 안에서는 최병호를 필두로 아카데미의 사람들이 나름 견고한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있기에,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은 생존자들은 신경 쓰지 않고 캐스팅에 집중했다.

쾅쾅!

콰르르르릉.

본관 앞이 혼란에 빠졌다.

괴성을 질러대는 몬스터와 마법의 폭음으로 인해서, 멀리 떨어진 오창석 일행은 귀가 먹먹해졌다.

그때, 강민혁이 말했다.

“지금입니다. 제가 마법을 사용하고 나면, 제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확-

마나의 발현.

캐스팅에 들어갔다.

강민혁의 머리가 쪼개지더니, 빠르게 하나의 마법에 집중했다.

그러자.

“썬더 스톰(Thunder Storm)."

쿠르르릉.

콰콰콰콰콰콰쾅!

먹구름이 일어난 하늘에서 사람 몸통보다도 큰 거대한 번개 다발이 땅바닥에 작렬했다.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번개의 폭풍에, 방금까지만 해도 본관으로 들어가려던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단번에 증발하였다. 순간 몬스터들의 시선이 강민혁을 향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강민혁의 위험성을 알았고, 거의 오백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콰르르릉.

그 와중에도 썬더 스톰의 힘은 그들을 휩쓸었다.

겨우 강민혁이 있는 부근에 도달한 몬스터들은, 의도를 이루기도 전에 경비3팀의 검에 목이 날아갔다.

“어딜!”

서걱-

오창석과 경비3팀.

그들의 실력은 진짜였다.

변수가 연이어 벌어지는 상황에 당황한 기색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전투에서조차 미숙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반격에 바로 앞에 시체가 쌓여갔다. 강민혁과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은 몬스터들을 몰살시켜버리겠다는 듯이 강력한 공격 마법에 집중했고, 오창석과 경비3팀은 악착같이 강민혁을 지켰다.

2천 마리?

그들이 정리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숫자가 줄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본관에서 버티고 있던 사람들이 반격에 나섰다.

“지금이야!”

“반격하라!”

“와아아아아아아!”

힘차게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생존이 아니라 몬스터들을 몰살(沒殺)시키는 것이었다.

상황이 종료되었다.

그 많은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해버린 상황에, 최병호는 거의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강민혁을 힘껏 안았다.

“혁아!”

와락!

몬스터들에게 고립되고.

최병호는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오창석의 판단을 받아들인 아카데미의 병력은 이미 외부로 빠져나간 상태였고, 본관에 남아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밖에는 무려 2천 마리의 몬스터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만약 강민혁이 미리 주었던 무전기를 통한 연락이 아니었다면, 그는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강민혁이 최병호를 떼놓았다.

강민혁을 바라보는 최병호의 눈빛은,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애정이 넘쳤다.

“괜찮으세요?”

“괜찮다마다. 나는 말이다.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인생을 밝게 빛내줄 귀인(責人)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예감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마법 학과는 부흥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죽고 말았겠지. 전에 내게 그런 말을 했었지. 앞으로 재앙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이번 사건이 모두 마무리되면, 내 이름과 얼굴, 명성을 전부 이용해서 네가 하는 일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겠다. 그 빌어먹을 언론들이 네가 틀렸다고 말한다면, 기자단을 찾아가서 엉덩이를 걷어차는 일이 있더라도 말을 듣게 만들어 주마.”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최병호의 애정은 극에 달했다.

강민혁의 ‘재앙 대응법’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 닥쳤을지 아직도 가슴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그와의 만남.

그 시작은 계산적이었다.

최병호는 강민혁의 재능을 이용하고자 했고, 강민혁은 그의 욕심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쓰던 최병호가, 주변의 비난을 무시하고 마법 학과에 재앙 대응법 훈련을 도입시키는 것을 허락했다. 그만큼 최병호에게 강민혁은 특별해졌다. 그의 발언은 단순히 살았다는 안도감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강민혁에 대한 진심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사람이란 단순하지 않다.

최병호라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이었던 인간은, 어느새 강민혁에게 완전히 녹아들고 말았다.

그리고.

‘.........저 모습이 왜 이렇게 부럽지?’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

오창석의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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