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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50화 (150/197)

150화.  < 37. 아웃브레이크(3) >

성수대교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상황이 끝나자마자 바닥에 주저앉는 아카데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가디언 마탑 연합은 바쁘게 움직였다.

“사상자를 수습하고 방벽을 점검하라.”

유재명의 명령이었다.

디펜더 2명과 마법사 1명이 조를 이루어서 부상자를 방벽 안으로 옮겼고, 마법사들은 빠르게 의료 마법으로 응급조치를 시도했다. 그들의 호흡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이루어지는 조치에,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부상자들이 점차 편안한 표정을 되찾았다.

완벽한 대응이었다.

가디언 마탑 연합은 전투뿐만 아니라, 전투 이후 상황에 대한 동선도 미리 맞추어둔 것 같았다.

김무진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명성에 걸맞게, 그는 이번 전투에서 백 마리가 넘어가는 몬스터를 도륙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지원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김무진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김무진은 유재명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서로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헌터 아카데미의 출신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습니까? 진행되는 상황을 전파받지 못한 상황이라, 현장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현재 상황.

전투 도중에도 김무진은 무전을 끄지 않았다.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미리 파악해둔 상태였고, 덕분에 대답에 막힘이 없었다.

“방어 진지는 총 5개의 지점에 설치했습니다. 이곳 성수대교와 용비교, 응봉교 교차로, 뚝섬역 사거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숲 입구 교차로입니다. 15분 전에 들었던 무전에 의하면, 대부분의 몬스터가 서울숲 입구 교차로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헌터 아카데미를 건설하면서 서울숲 입구 교차로로 향하는 큰 길목을 만드는 바람에, 몬스터들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몰려드는 것 같습니다. 그건......... 아카데미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규모입니다.”

최소 수천 마리.

우리 안의 몬스터는 그 숫자를 가늠할 수 없다.

만약 그 절반이 서울숲 입구 교차로로 향한다면, 옆으로 뻗어있는 성수동은 그대로 위험에 노출된다.

위험한 상황.

김무진의 눈빛은 당장 지원을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재명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숲 입구 교차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가디언 마탑은 그간 여러 상황에 대비하는 시뮬레이션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만약 헌터 아카데미 내부에서 위험이 발생한다면, 자연스레 가장 많은 몬스터가 몰리는 지점이 서울숲 입구 교차로라는 사실은 예상 범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뮬레이션 훈련이라니.

대체 가디언 마탑은 그간 어떤 시간을 보냈단 말인가.

당황으로 얼룩지는 김무진의 표정에, 유재명은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한 이름을 말했다.

“강민혁 마탑주님. 그가, 서울숲 입구 교차로로 갔습니다.”

헌터 아카데미.

그것은 한때 서울숲이라 불리던 땅에 자리를 잡았다.

지명은 옛날의 명칭을 그대로 따라 했는데, 서울숲 입구 교차로는 지금 거대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캬악!

“크아아악!”

앞에서 분전하던 검술 학과의 교수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검이 켄타우로스의 몸통을 두 동강 내버리는 순간,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에게 사지가 뜯겨나가고 말았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실전과는 동떨어진 시간을 보냈다. 갖춘 실력이야 출중하지만, 난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끝까지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곳의 상황도 성수대교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름 잘 싸우는가 싶었지만, 너무나 많은 몬스터가 몰려드는 바람에 무너지는 속도가 빨랐다.

“물러나지 마라!”

“죽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앞으로 달려드는 오창석의 뒤로, 마법 학과 교수들의 마법이 일제히 사용되었다.

콰앙!

화르르르르륵.

그러나 상황은 좀처럼 호전되질 않았다.

무려 수천 마리다.

서울숲 입구 교차로를 지키는 사람들은 이백 명도 되지 않는데, 상대는 최소 20배 이상은 많았다.

눈이 팽팽 돌았다.

쉴 틈 없이 싸우는 상황에, 오창석은 입이 바짝 말랐다.

서걱!

크아아악!

가장 선두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베었다. 그리고 발악하듯,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 보이는 족족 몬스터들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오창석을 필두로 아카데미의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실전에 능한 경비3팀이 대부분 이곳에 위치한 덕분에, 그들을 중심으로 자리를 지켰다.

후퇴?

그따위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김무진이 죽음으로 성수대교를 지키려고 한 것처럼, 오창석은 이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대체 지원군은 언제 도착하는 거야!’

시간이 너무 느리게만 느껴졌다.

위치상 가디언 마탑의 지원은 늦을 수밖에 없다.

가디언 마탑은 이촌역 근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세력들이 먼저 도착을 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히 지원 요청은 보낸 상태였는데, 다른 세력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들이 아카데미를 버린 걸까. 정치적인 문제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그때, 드디어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커억!”

“으악!"

“오른쪽이 뚫렸다!”

방어 라인이 붕괴되었다.

밀고 들어오는 몬스터에 조잡한 바리게이트가 완전히 부서지면서,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학살했다.

시야가 닿는 곳곳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학생.

교수.

경비팀.

소속을 가리지 않고, 그들은 치열하게 싸우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으로 점철되는 상황.

성수대교의 경우에는 20분이라도 버틸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현세(現世)의 지옥이 펼쳐졌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서울숲 입구 교차로는 이대로 뚫릴 것이고, 성수동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한 명의 지원군이 현장에 도착했다.

일인(一人).

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수호검이라 불리는 강덕철이 수천의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있지만, 그건 쓰러트린 것이 아니다.

그냥 막아낸 것일 뿐.

전투가 계속되었다면, 강덕철은 분명히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마법사는 다르다.

마나와 캐스팅할 시간이 있다면, 뛰어난 마법사 앞에서는 머릿수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바로 지금처럼.

“어스 퀘이크(Earth Quake)."

쿠르르르르르릉.

콰콰쾅!

땅이 흔들렸다.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폭삭 내려앉은 땅의 구렁텅이로 추락했고, 사방에서 가시 바위가 일어나며 몬스터들의 사지를 찢어발겼다. 무려 수백 미터의 범위. 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지진의 먹잇감이 되었다. 흔들리는 땅으로 인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주변의 지형이 변해버렸다.

쿠르르르릉.

마법의 형태 변화.

강민혁은 지진으로, 주변의 지형을 방어에 유리하도록 변형시켰다.

그리고.

“유성우(流星雨).”

등급 외 마법이 사용되었다.

하늘이 번쩍이더니, 불에 타오르는 유성들이 빠르게 지상으로 추락했다.

콰앙-!

콰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었다.

작은 알맹이와도 같은 유성이 땅바닥에 작렬하는 순간, 주변의 몬스터들이 강력한 폭발에 휩쓸렸다. 몬스터들에게는 비명을 지를 여유도 없었다. 유성을 발견하고 피하려고 하는 순간, 이미 주변은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숫자의 우위?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강민혁이 사용한 마법은 ‘범위 마법’이었고, 그 안에만 있다면 숫자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가, 가디언 마탑주다!”

“우린 살았어!”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절망에 빠졌던 그들이, 지금은 희망에 차오른 얼굴로 강민혁이 사용하는 마법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위치한 곳보다 조금 떨어진 지점. 그곳이 지금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생각했던 몬스터들이, 마법이 작렬할 때마다 수십 마리씩 사라졌다.

이길 수 있다.

희망이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힘을 내더니, 마법의 범위가 닿지 않는 몬스터들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돌겨억!”

“죽어!”

푹!

서걱!

크아아아아악!

반격이 시작되었다.

아카데미의 사람들이 바로 앞에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면, 강민혁은 그 뒤에서 밀려드는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몬스터들로서는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우리의 몬스터는 아무리 높아봤자 A등급이고, 그 정도의 몬스터로는 후방에 위치한 강민혁을 공격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이번 전투는 재앙이다.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강민혁은 다르다.

강민혁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십수 개의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했다.

그중에는 에픽급 몬스터도 있었고, 심연의 악마도 있었다.

후방에 있는 마법사들조차도 안전할 수 없는 그 위험한 전투를 경험하고 나니, 지금 상황이 강민혁으로서는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A급 몬스터의 비율도 많지 않았다. 말이 수천 마리의 몬스터지, 그 안에 A급 몬스터는 겨우 5%도 되지 않을 정도. 강민혁의 마법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 때마다, 일반 몬스터들로서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

그 특성의 차이였다.

강화 전사는 수천의 몬스터는 죽이지 못할지언정, 혼자만의 힘으로 에픽급 몬스터는 쓰러트릴 수 있다.

그러나 마법사는 반대다.

에픽급 몬스터에게는 약할지 몰라도, 이러한 상황에서 마법사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폭발."

콰앙!

콰콰콰콰콰콰쾅!

“...이게 7서클 마법이구나.”

마법의 위력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미 앞에 있던 대부분의 몬스터는 처리한 상태.

그들은 넋을 잃고 마법의 향연을 지켜보았다.

위기는 끝났다.

재앙에서 살아남았다는 확신이 생겼지만, 그들은 지금 마법사의 위력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서울숲 입구 교차로.

그곳의 위기는, 단 한 명의 힘으로 해결되었다.

상황이 안정되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를 처리한 상황에, 강민혁은 마나를 거두고 무전기를 켰다.

삑-

“안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지금 아카데미 건물 밖에 얼추 2천 마리 이상의 몬스터가 몰려들었어. 민혁아, 내게 방법을 알려다오. 이곳에 있는 사람들로는 절대 저 많은 몬스터를 상대할 수 없어. 이대로라면 모두 죽을 거야.]

무전기 너머.

최병호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상황이 발생한 직후.

최병호를 비롯한 일부 관계자와 학생들은 아카데미 건물에 남았다. 그곳이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는데, 그들은 우리 전체의 개방을 예상하지 못하는 바람에 대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안에 고립된 상황.

그들이 위험했다.

강민혁이 말했다.

“제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니, 안에서 절대 나오지 마십시오.”

[정말 고맙다. 정말, 정말 고마워.]

최병호는 아마 지금 죽을 맛일 것이다.

재앙 대응법.

그걸 가르치는 과정에서 최병호는 분명히 우리 개방에 대해서 들었다. 그러나 수업을 따를 수밖에 없는 학생들과는 다르게, 최병호는 설마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강민혁을 믿는 최병호조차도 진심으로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재앙의 가설은 허무맹랑했다.

그러나 현실로 이루어진 상황.

옆에서 무전의 내용을 들은 오창석이, 당황한 얼굴로 강민혁에게 다가갔다.

“설마 안으로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예."

“위험합니다. 이곳은 넓은 평지라서 마법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지만, 안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니 일단 이곳의 상황을 정리하고, 다른 강화 전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연락을 넣었으니, 분명 금방 지원 병력을 보낼 것입니다.”

오창석.

그는 강민혁의 마법에 진심으로 경악했다.

이게 마법의 위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지만, 안에 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위험하다.

그리고 방금 전투로 마나도 제법 사용했기에, 휴식을 취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데.

“지원 병력은 도착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우리는 아카데미에서 던전을 달리 부르는 명칭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서 몬스터가 탈출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오창석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에서 몬스터가 탈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실제로, 지금 헌터 아카데미 외에도 전 지역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원군은 본인들의 거점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지원군은 도착하지 않을 것이고, 고립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직접 구하러 가야만 합니다.”

최악의 재앙.

헌터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지금 전 세계로 재앙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강민혁은 일부의 병력을 가디언 마탑에 남겨두었고, 오는 길에 상황을 정리하느라 조금 늦었다.

이제 재앙은 헌터 아카데미만의 일이 아니다.

이곳의 상황을 빠르게 처리해야만, 다른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헌터 아카데미.

마법 학과.

그리고 최병호.

강민혁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이름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흔들리는 오창석의 눈동자.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며, 강민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움직이기 힘들다면 이곳에 남으십시오. 저 혼자라도,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구하고 오겠습니다.”

재앙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강민혁은, 이제부터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세상에 보여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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