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49화 (149/197)

149화.  < 37. 아웃브레이크(2) >

이건 재앙이었다.

웨어 울프의 목을 날림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무전기에서 다른 구역의 상황이 전파되었다.

삐빅-

[오크 우리가 개방되었습니다!]

[켄타우로스(Kentauros)들이 학교 건물로 향하고 있습니다! 당장 막지 않으면, 학생들이 위험합니다!]

[고블린들이 북쪽 방향으로..........]

“씨발.”

머리가 팽팽 돌았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오창석조차도, 지금은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 감을 잡지 못했다. 당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적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웨어 울프의 모습에 검을 힘껏 휘둘렀다.

서걱-

푸화악!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오창석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포악한 기세를 드러내던 웨어 울프의 머리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작렬하는 마법 학과생들의 마법. 상황은 분명히 호전되고 있지만, 서울숲 전체에 퍼져나가고 있을 몬스터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이러고 있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퍽!

꿈틀거리는 웨어 울프의 머리를 밟아서 터트렸다.

진득거리고 역겨운 느낌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지만, 오창석은 굳은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삑-

“아카데미에서의 항전을 포기한다. 병력을 뒤로 후퇴시키고, 외부로 통하는 길목에서 방어 라인을 형성한다. 다시 말한다. 아카데미에서의 항전은 적들에게 둘러싸일 위험성이 있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방어의 이점을 살린다.”

[병력을 뒤로 물렸다간 몬스터들이 민가로 넘어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민가의 보호는 주변에 위치한 다른 강화 전사 세력들에게 맡길 일이다. 지금 우리는 당장의 생존에 집중한다. 그러니, 항전을 포기하고 빠르게 방어 라인을 형성하라.”

[알겠습니다.]

되돌아오는 대답.

파르르 떨리는 경비대원의 목소리에, 오창석도 참담한 기분이 일었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것이다.

중요한 길목으로 전장을 옮기면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겠지만,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든 몬스터들을 막아낼 수는 없다. 그러한 사실을 오창석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민간인의 목숨에 연연하다간, 더욱 큰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생존.

학생들을 모두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오창석은 후퇴를 명령하기 전, 무전기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지금 당장 가디언 마탑에 지원을 요청해라. 그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변에는 여러 세력이 있다.

대표적으로 수호문이 존재하고 있지만, 지금은 왠지 ‘가디언 마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오창석이였다.

무전을 끝내는 오창석.

그가 목소리에 마나를 실어 외쳤다.

“전군 후퇴한다! 아카데미의 우리가 모두 개방되었다!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간 고립될 가능성이 있으니, 지금부터는 쫓아오는 웨어 울프들만 상대하는 방식으로 뒤로 빠진다. 우리는 서울숲 입구 교차로로 이동한다!”

후퇴 명령.

발악하듯 외치는 오창석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표정이 창백해졌다.

두려움에 떨 시간은 없었다.

그들의 선택지는 딱 하나.

빠르게, 교차로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성수대교.

서울숲에서 압구정으로 이동하는 길목에, 미리 도착한 사람들이 빠르게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미리 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설치하는 바리게이트는 너무나도 조잡했다. 차량 검문에 사용되는 도구들. 주변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동원해서, 믿음직스럽지는 않더라도 일차적인 방어 라인을 형성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보겠다고 다짐했지만, 문제는 서울숲에서부터 밀려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크르르륵!

캬아악!

멀리서 몬스터들의 괴성이 들렸다.

언뜻 보아도 수백 단위 이상의 몬스터였다.

성수대교의 방어를 맡은 검술 학과 교수 김무진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적의 모습에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너무 많아.’

버틸 수 없다.

하지만 물러나는 선택지 따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아카데미 내부를 포기하는 것은 전략적인 선택이지만, 이 뒤로는 강남의 땅이 넓게 펼쳐져 있다.

성수대교를 뚫린다?

그건 거대한 혼란을 의미한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몬스터들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자리를 지켜라! 그간 내가 가르쳤던 수업을 떠올리고, 절대 이 뒤로 몬스터를 내보내지 마라!”

“예!”

학생들의 외침.

이곳에는 아카데미의 경비팀과 관계자, 그리고 검술 학과생들이 많았다. 그들이 실전 수업 교수인 김무진을 중심으로 뭉쳤다. 이 자리에서 최고의 실력자는 김무진이다. 과거 엄청난 명성을 떨쳤던 김무진이 선두에서 자리를 지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캬악!

“어딜!”

서걱-

김무진의 검이 몬스터의 가슴팍을 갈랐다.

그때부터 목숨이 걸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머릿수의 비율은 10대1일 정도로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아카데미의 사람들은 성수대교라는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해서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픽픽 쓰러지는 몬스터들. 초반의 기세는 나쁘지 않았다. 몬스터의 숫자는 약 천 마리에 달했지만, 그들 모두가 상위 등급의 몬스터인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C급 이하의 몬스터였기 때문에, 검술 학과생들의 실력으로도 충분히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이 가능했다.

문제는 전투가 길어지면서부터였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입에서 단내를 풍기는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득!

“크아아아아악!”

학생이 비명을 질렀다.

B등급의 웨어 울프가 학생의 어깻죽지를 물어뜯었고, 그 강력한 치악력에 팔이 뜯겨 나갔다. 강화 전사의 강력한 육체도 소용이 없었다. 학생은 극심한 고통에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지만, 아직 남아있는 나머지 팔로 검을 쥐고는 웨어 울프의 눈에 검을 박아넣었다. 그러자 웨어 울프가 고통에 포효했다. 그리고 시도한 앞발 공격에, 학생의 가슴팍이 갈라지며 피를 콸콸 쏟아냈다.

풀썩!

“호영아!”

김무진이 눈에서 불길을 뿜었다.

정호영이라는 이름의 학생.

그의 제자다.

김무진이 순식간에 이동하더니, B급이라는 등급이 무색할 정도로 간단하게 웨어 울프의 목을 날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정호영의 죽음은 시작일 뿐이었고, 아카데미의 사람들이 빠르게 목숨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준비가 너무 미비했다.

나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답시고 구비되어 있던 트랩들을 설치했지만, 사람들의 예상은 지금과 같은 천여 마리의 몬스터들을 대비 하지는 못했다. 겨우 수십 마리의 몬스터를 처리하는 선에서 끝난 트랩의 효과. 결국 방어 라인의 이점은 의미가 없었다. 사람과 몬스터가 한데 뒤엉켜 있는 상황에, 김무진은 이대로라면 뚫리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인가.’

절망적인 감정.

하지만 물러나진 않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헌터인 이상 학생들은 목숨을 바쳐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

“지원군이다!”

“드디어 지원군이 도착했어!”

사람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무려 20분이나 소식이 없었던 지원군들이, 마침내 성수대교 끝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력 버스였다.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로 시속 200km 이상으로 달려가던 차가, 바로 뒤에서 급정거를 했다.

끼이이이익-

푸슈욱-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등장한 사람들은 바로 ‘실드’의 멤버들이었다.

“방벽(防壁)을 형성한다!”

실드 2팀의 리더.

김성호의 동생 중 한 명인 정민철이 소리쳤다.

그러자 실드의 멤버들이 일사불란하게 커다란 방패를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당장 앞에서 비키라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그들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몸을 피했고, 그들은 그대로 몬스터들을 들이 받았다.

퍽!

빠악-

차징(charging)이었다.

그 강력한 충격에, 몬스터들이 일제히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후속타.

또 다른 마력 버스에서 내린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강력한 화력을 표출하였다.

“룬 플레어.”

“블레이즈.”

“윈드 토네이도.”

화르르르륵-

콰앙!

강력한 충격이 전방을 휩쓸었다.

그때부터는 전투의 양상이 변했다.

이제까지는 조잡한 바리게이트를 활용해서 몬스터들과 난전을 벌였다면, 지금은 가장 선두에서 디펜더들이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뒤에서 마법을 사용했다. 완벽하게 방어의 이점을 살리는 형태였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라, 마력 버스가 앞으로 치고 나오더니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철컥, 철컥.

푸슈슈슈슈숙-

마력 버스가 변화했다.

버스 위에 설치되어 있던 강철판(마력으로 강화한)이 외부를 뒤덮었고, 차량 밑바닥에 다리가 생기면서 더 높아졌다. 순식간에 철벽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범위가 적어졌고, 정민철은 그러한 구역을 직접 막아내면서 김무진에게 소리쳤다.

“빨리 병력을 버스 위로 보내세요! 올라오는 적만 막아내면, 방어의 이점을 살릴 수 있어요!”

“아, 알겠습니다.”

김무진과 정민철.

김무진이 사회적 위치가 높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가디언 마탑 연합의 능숙한 방어에, 김무진은 황급히 정민철의 명을 따랐다.

그리고 화룡점정 .

성수대교 지원군에는 강력한 마법사가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가디언 마탑의 수식이 달린 로브를 펄럭이며 등장한 유재명이, 캐스팅 끝에 마법을 발현시켰다.

“파이어 레인(Fire Rain).”

쿠르르르르릉.

화르르륵-

그건 몬스터들에게 재앙이었다.

먹구름이 일어나더니, 하늘에서부터 불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위력에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렀다. 천 마리에 달하는 숫자의 이점이 방금까지는 위협적이었지만, 지금은 떼로 몰려있는 상황에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몬스터들이 픽픽 쓰러졌다. 퇴로를 잃어버린 그들은, 유재명이 사용한 파이어 레인의 제물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장관이었다.

실전 수업의 교수인 김무진조차도, 지금과 같은 장면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게 무슨.’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몬스터를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가디언 마탑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치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해서 훈련한 것처럼, 몬스터를 상대하는 움직임이 매우 능수능란하다.’

우리의 개방.

예상치 못한 변수다.

그래서 아카데미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인데, 가디언 마탑 연합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디펜더들은 시체가 사방에 널려져 있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방패를 앞으로 내세웠고, 발에 밟히는 시체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지금을 위해서 준비된 것만 같은 마력 버스를 활용한 방어벽. 그 중심에서 소리치는 정민철의 모습은, 디펜더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후방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의 마법은 강했다.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적절하게 전장의 밸런스를 맞추는 모습이, 적어도 김무진의 눈에는 보였다.

‘확실해. 이 정도의 전투 능력은 절대 우연히 나올 수 있는 모습이 아니야.’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강민혁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 MC는 강민혁에게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물어보았던 적이 있는데, 강민혁의 대답은 신랄했다.

"우리는 그간 어중간한 평화 속에서 살았습니다. TV에서는 누군가가 몬스터에게 죽었다는 소문이 매일 같이 전파되지만, 사람들은 본인이 겪은 문제가 아니기에 세상의 위험을 외면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떨 것 같냐고요? 우리는 언제고 감당하지 못할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그때는 울고 빌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멍청하고 안일하게 행동한 것은 여러분이고, 그 대가는 목숨으로 치를 수 밖에 없습니다.”

강민혁의 발언은 비난을 받았었다.

혼자만 특별한 척.

강민혁의 선민의식이 극에 달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김무진은 지금에야 깨달았다.

강민혁은 진심으로 세상에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홀로 재앙을 대비했다.

바로 지금.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겨우 5분.’

지원군이 도착하고 지난 시간.

방금까지만 해도 뚫릴 위기에 처했던 성수대교가, 겨우 5분 만에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강민혁.

지금은 그의 선견지명을.

그리고 재앙을 대비한 그의 방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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