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 36. 그들만의 준비(2) >
12분 58초.
10분의 방어 시간을 생각하면, 천호명조는 생존자를 구출하는 데 겨우 2분 58초의 시간이 걸렸다.
‘이게 말이 돼?’
불가능한 일이다.
시가지 훈련장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다. 생존자의 위치도 사전에 알려주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길을 고려하더라도 스타팅 포인트에서 1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인 것은 맞다.
문제는 몬스터다.
회의 시간을 5분으로 설정했기에, 게이트 생성 상황이 부여되자마자 몬스터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맨몸으로 생존자를 구출하러 간다? 그건 자살행위다. 강민혁의 도움으로 무빙 캐스팅을 배우기는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법사에게는 신체적인 한계가 있다.
만약 몬스터에게 둘러싸인다면?
그때는 끝이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상황과 무빙 캐스팅의 특성상, 고서클 마법은 사용할 수 없을 터.
너무나 위험한 선택이다.
케빈 고미스는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일단 몬스터의 숫자를 줄이는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10등은 안승주조의 14분 33초입니다.”
“하."
안승주라는 이름이 호명되자, 케빈 고미스 바로 옆에 있던 사내가 한숨을 내뱉었다.
“동선이 얽히지만 않았으면 15초 이상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아오, 10위라니.”
“그러게 정석대로 하자고 했잖아.”
“야, 그렇게 해서는 천호명의 발끝이나 쫓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반성하자. 다음부터는 무조건 13분대로 진입해야 돼. 이따위 기록으로는, 애들 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하겠다.”
10위.
가디언 마탑에서는 하위권의 기록이다.
안승주가 얼굴을 붉히며 수치감을 드러내는 모습에, 케민 고미스로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4분 33초가 부끄러운 기록이라니.’
자신의 기록은 18분 35초다.
안승주가 부끄러워하는 그 기록조차도, 자신에 비하면 무려 4분이나 앞서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이 얽혔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체 어떻게 이리도 빨리 구출에 성공했단 말인가.
가만히 지켜보니 호명되는 사람들이 전부 가디언 마탑 소속이라는 사실에, 문득 의구심이 불쑥 치솟았다.
발표가 모두 끝났다.
결국 17위라는 절망적인 순위표를 받은 케민 고미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게이트가 생성되고 보통 15분의 초동조치 시간을 골든 타임(golden time)이라고 부릅니다. 그 안에만 생존자들을 구출하더라도 훌륭한 조치라는 평가를 받는데,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의 구출 속도는 비정상적으로 빠릅니다. 5분의 소집 시간을 감안한다면, 실제 상황에서 천호명의 조는 7분 58초만에 생존자를 구출한 것이 됩니다. 만약 생존자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10분은 넘지 않았겠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겁니까? 10위권의 순위가 모두 가디언 마탑의 소속이던데, 혹시 훈련에 특혜를 부여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됩니다.”
타당한 의심이었다.
케빈 고미스뿐만 아니라, 강민혁을 좋게 생각하는 다른 동맹 세력의 마법사들조차 의문이 생겼다.
초동조치 15분.
그건 강화 전사의 도움을 포함한 시간이었다.
사실, 케빈 고미스의 구출 시간은 절대 느리다고 할 수 없었다.
17위라는 순위도 가디언 마탑 소속을 빼면 상위권에 속하는 기록이었고, 그의 조치는 매우 훌륭했다.
강민혁의 시선이 케빈 고미스를 향했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아니, 애초에 그가 이번 훈련에 참여하길 바랐다.
모두가 순종적인 훈련은 확실한 각인에 어려움이 있다.
케빈 고미스와 같은 인물이 날 선 송곳처럼 지적질을 해대야, 사람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영상을 분석해서 문제점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케빈 고미스는 예상이나 했을까.
독일 마법 협회장.
그가 케빈 고미스를 억지로 한국으로 보낸 이유가, 강민혁이 직접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팟-
영상이 재생되었다.
상황이 발생하자, 독일조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몬스터들에게 화력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삑-
영상을 정지시키는 강민혁.
차가운 음성이 케빈 고미스의 귀에 꽂혔다.
“독일조의 판단은 시작부터 잘못되었습니다. 골든 타임은 사실 허울 좋은 단어일 뿐입니다. 초동조치를 진행하는 동안 생존자를 구출해야만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고 가정하는 것이지, 당연히 최대한 빠르게 구출하는 것이 생존자를 위해서 옳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화력을 집중해서 타이밍을 지켜보는 것이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저 게이트 안에서 어떤 몬스터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몬스터가 출몰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만약 끝없이 몬스터들이 출몰한다면, 마법을 사용하느라고 발목이 붙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삑-
다시 재생되는 영상.
몬스터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애초에 오크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을 케빈 고미스도 알아채고, 뒤늦게 구출조를 투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석적인 판단입니다. 몬스터의 숫자를 줄이고, 초동조치가 끝나는 15분 안에 구출에 성공한 것이니까요. 10분의 방어 시간을 제외하고, 5분의 소집 시간을 포함한다면, 독일조의 실제 기록은 13분 35초입니다. 그런데 골든 타임 안에 구출했다고 해서 생존자가 살았을까요?”
다른 영상.
그곳에 인형의 모습이 보였다.
피냄새를 맡은 오크가 어느새 인형에게 접근했지만, 생명체가 아님을 알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생존자는 죽었다.
게이트가 생성되고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몬스터는, 이미 생존자를 발견해버린 상태였다.
“13분 35초는 생존자의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게이트가 발발할 경우, 주변에 있는 헌터들이 5분 안에 현장에 투입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5분 안에는 생존자를 발견하고 구출해야만 그들의 목숨을 보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조의 기록은 강화 전사들과 같이 구출하던 패턴을 그대로 답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마법사들은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죠.”
"그게 잘못된 판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괜히 사지에 뛰어들었다가, 몬스터들에게 당해버릴 위험성이 있지 않습니까? 마법사는 강화 전사가 아닙니다. 강민혁 마탑주님께서 강화 전사를 쓰러트릴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건 마탑주님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훈련.
단순히 재앙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100년간 쌓아온 세월이 마법사들의 머릿속에 심어놓은 편견을, 이번에 확실히 없애야만 한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이번 훈련에서 우리는 강화 전사들의 존재를 잊어야 합니다. 그들 없이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응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게 훈련의 시작입니다.”
반발을 끌어냈다.
케빈 고미스를 필두로, 동맹 세력의 마법사들은 조금 더 명확한 해명을 바랐다.
판이 깔렸다.
그러자, 강민혁이 다음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럼 1위의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1위.
12분 58초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보인 천호명조.
그들의 시작은 독일조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엄호를 부탁해.”
“알겠어.”
상황 발생.
천호명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0명의 인원을 3개의 조로 나누었는데, 5명은 케빈 고미스와 마찬가지로 화력을 집중해서 게이트에서 출몰되는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3명은 폐건물 옥상으로 달려갔고, 2명은 구출조의 임무를 맡았다.
옥상에 위치한 3명의 마법사.
그들은 골목길로 진입하는 오크를 공격하는 역할이었다.
구출조가 움직이는 방향을 주시하며, 몬스터들이 그리로 향할 경우 마법을 사용해서 길을 막았다.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몬스터들은 이미 생존자의 위치를 파악한 상태였다. 진하게 퍼져나가는 피냄새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고, 구출조를 맡은 천호명은 오크와 맞닥트리는 상황을 맞이했다. 마법사로서는 암담한 상황이다. 몬스터와의 근접전은 마법사의 장점을 완전히 죽여버리지만, 천호명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무빙 캐스팅으로 마법을 발현시켰다.
“아쿠아 랜스(Aqua Lance).”
퍼억!
크아악!
바로 코앞.
천호명은 오크의 공격을 피하며 급소에 마법을 작렬시켰다.
아주 간결한 움직임이었고, 마치 강화 전사처럼 근접전을 망설이지 않는 그의 판단에 상황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허무하게 쓰러진 오크. 구출조는 빠르게 생존자를 챙겼고, 엄호조의 엄호를 받으며 달려왔던 위치를 돌아갔다.
그렇게 구출에 성공했다.
천호명의 과감한 판단과 행동력이, 12분 58초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끝나는 영상.
넋을 잃은 동맹 세력 마법사들에게, 강민혁이 물었다.
“이래도 특혜가 있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케빈 고미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대단해.’
2분 58초라는 짧은 시간.
천호명조의 판단은 과감했다.
인원을 적절하게 분배해서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이 밀려드는 것을 일차적으로 막아냈고, 엄호조는 생존자의 위치를 파악해서 주변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생존자의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많지 않았다. 해봤자 2~3마리 정도였고, 그 정도는 구출조가 직접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파격.
교과서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던 방법이다.
마법사들이 이런 식으로 구출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케빈 고미스는 살면서 처음 경험했다.
‘단순히 뛰어난 마법사라서 성공한 게 아니야.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어.’
각조들.
그들은 각자만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5명의 공격조는 그 안에서도 2/2/1 명의 인원으로 나누었고, 2명의 2개조가 번갈아 마법을 사용하면서 마법의 공백이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1명은 무빙 캐스팅으로 적절하게 화력 지원을 해줌과 동시에, 직접 움직이면서 간단하게 바리게이트를 쌓았다. 폐건물의 잔해를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마법사답지 않게 꿈틀거리는 팔근육은 이게 무슨 일인지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엄호조.
그들도 비슷했다.
그들은 세 명이 번갈아 마법을 사용하면서 적절하게 몬스터를 견제했고, 서로 캐스팅이 맞물리면서 몬스터들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특히 다수의 몬스터가 한 골목길로 몰려들 경우에는, 2명의 마법사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한 명이 파이어 월 같은 다소 위력적인 마법을 사용했다.
마지막 구출조.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빠르고 신속한 움직임과 망설임 없는 근접전.
오크의 공격을 피하고 그의 급소에 아쿠아 랜스를 적중시키는 장면은, 보면서 감탄사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인정했다.
특혜 따위는 없었다.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은, 마법사의 강점을 살리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이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상황이 발생하고 헌터들이 도착할 때까지 약 5분. 그 이후에 곧바로 생존자를 구출해야만, 생존자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습니다. 강화 전사들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근접전은 그들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들이 없다면, 마법사들이 직접 나서서 생존자를 구출하면 되는 일입니다. 몬스터와 맞닥트리는 상황? 보셨다시피, 10위권의 기록은 모두 저런 방법으로 몬스터를 직접 처리했습니다.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면, 결국 마법사는 제한된 역할밖에 수행할 수 없습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불신이 사라지며, 동맹 세력들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사실 그들도 안다.
무빙 캐스팅.
강민혁이 동맹 세력에게 신세계의 지식을 알려주며, 그들도 근접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행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평생을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마법사들이다.
그들이 안전지대 밖으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강민혁은 그러한 점을 지적했다.
재앙이 닥쳤을 때 마법사들만의 힘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안전지대 안에서만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 지키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강화 전사들의 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직접 움직여서 원하는 것을 쟁취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방법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이번 훈련의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수많은 재앙 상황을 미리 대비 하는 것도 있지만, 여러분들의 마음에 잠재되어 있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훈련의 시작입니다.”
강민혁은 마법사가 강해지길 바란다.
마법사들의 재앙 대응법.
강화 전사들의 힘을 빌리고.
세계 마법 연합의 힘을 빌리고.
그런 것 따위는 재앙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구의 힘도 빌릴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결국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힘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강민혁의 얘기가 모두 끝났을 때.
‘아아.’
강민혁을 바라보는 케빈 고미스의 눈빛에는, 존경심과 경외심 같은 감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제는 인정했다.
자신의 한국행.
아니, 가디언 마탑과 손을 잡은 것부터가 옳은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