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45화 (145/197)

145화.  < 36. 그들만의 준비 >

며칠 뒤.

가디언 마탑의 동맹 세력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밟아보는 한국 땅에, 독일 마법 협회의 케빈 고미스(Kevin Gomis)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한 달이나 지내야 한다니.’

사실 그는 한국행을 바라지 않았다.

독일 마법 협회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할 때, 케빈 고미스는 적극적으로 세계 마법 연합의 잔류를 주장했던 사람이다. 가디언 마탑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계 마법 연합이 갖추고 있는 강력한 힘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고, 그러한 생각은 아직도 같았다.

반대파의 수장.

그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못마땅했다.

바로 어제.

독일 마법 협회장은, 절대 가기 싫다는 케빈 고미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가디언 마탑과 한 배를 탔습니다. 그러니 케빈 고미스 대마법사님이 직접 가셔서 가디언 마탑의 현실을 확인해주십시오. 우리가 옳은 선택을 했는지, 아니면 케빈 고미스 대마법사님의 말처럼 정말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머나먼 타국에서 입으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직접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습니까?”

원래는 마르코 도슨이 파견을 자처했다.

그는 본인의 의지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독일 마법 협회장은 그가 아니라 케빈 고미스를 택했다.

독일은 영국과 다르다.

영국은 공통된 의견으로 가디언 마탑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독일 마법 협회의 경우에는 케빈 고미스를 필두로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길 바랐다. 가디언 마탑의 현실을 확인하고도 케빈 고미스의 태도가 그대로라면, 독일 마법 협회장으로서도 자신의 선택을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었다. 케빈 고미스의 부정적인 태도는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독일 마법 협회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억지로 파견 대표를 맡은 케빈 고미스는, 툴툴대며 인솔자를 따라갔다.

‘내가 이 나이에 재앙 대응 훈련을 받다니. 그런 거는, 초급 마법사일 때나 받는 훈련이잖아.’

제일 불만인 부분이었다.

세계 최고의 마법사인 강민혁이 직접 마법을 가르치겠다고 말한다면, 그도 두 팔 벌려 반길 것이다.

그러나 이번 훈련 프로그램은 개인 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헌터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상황 대응법.

그런 걸 가르치겠다고 하니, 짜증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훈련 프로그램은 매우 훌륭하다.

실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독일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은 완벽한 대응법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독일 마법 협회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의 수호자라고 부른다. 굳이 한국에서까지 대응법을 배울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한 달간의 일정이라고 생각하자,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불만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머릿속을 장악해버렸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

케빈 고미스와 비슷한 사람들을 한데 모아놓다 보니, 독일 마법 협회의 분위기만 좋지 않았다.

그에 반해 다른 동맹 세력들은 달랐다.

영국 마법 협회.

그리고 세 개의 마탑.

그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였다.

“자, 그럼 가디언 마탑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인솔자의 말.

그의 외침에, 케빈 고미스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서울행 마력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침내 가디언 마탑에 도착했다.

건물 외관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짐을 간단하게 풀고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이번 훈련은 시뮬레이션 훈련장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실전 훈련장을 대여해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그들 앞에, 강민혁이 나타났다.

“먼 길을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가디언 마탑의 마탑주인 강민혁이라고 합니다.”

“오오!"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민혁.

그 이름이 주는 특별함은 대단하다.

케빈 고미스야 매우 특별한 케이스고,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강민혁의 얼굴을 보고자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파견에 합류했다. 강민혁은 최초의 7서클 마법사이자, 비무행에서 마법의 강력함을 증명한 최강의 마법사이지 않은가. 그의 가르침은 천금(千金)과도 같은 것. 꼭 마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더라도, 마법사들은 강민혁에게 훈련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동이 있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번 훈련을 계획한 이유는 앞으로의 재앙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최근에 전 세계 곳곳에 차원의 균열이 일어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장은 게이트 형태로서 몬스터가 출몰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현상은 언제 재앙으로 직결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재앙의 시작점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했을 그때, 우리는 몬스터라는 존재가 실제한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미래에 닥칠 재앙을 미리 대비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재앙.

그 단어를 피력하는 강민혁의 의지에, 사람들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보였다.

강민혁은 재앙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부터, 마법 학계로부터 비웃음을 받고 있다.

하지만 동맹 세력들의 생각은 다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민혁이다.

남들이 6서클 마법의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강민혁은 완벽한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였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강민혁의 이름값은, 그 어떤 말도 신뢰하게 만든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한 달간 재앙 대응법을 훈련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 오늘 진행할 훈련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훈련의 명칭은 ‘상황 대응 훈련’이며, 특별한 상황에서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하시면 됩니다. 이번 훈련의 필드는 폐허가 되어버린 시가지이며,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10분 동안 버티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만약 생존자들을 구출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구출하더라도 방어에 실패하면 탈락 처리를 하겠습니다.”

방법은 심플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를 첨부하는 순간 특별한 훈련이 된다.

“훈련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생존자를 빠르게 구출하고 완벽한 방어를 선보인 팀은, 그 시간을 책정해서 차례로 원하는 소원을 들어 드릴 예정입니다. 당연히 말이 되지 않는 것은 들어드릴 수 없겠지만, 상급의 마나석이나 저의 개인 지도 같은 것을 원한다면 들어드릴 생각입니다.”

"헉."

“...개인 지도를요?!”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마나석?

그딴 단어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개인 지도.

그 말이 귀에 콱 박혔다.

강민혁에게 개인 지도를 받는 것은,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강민혁이 씨익 웃었다.

예상했던 반응.

강민혁은, 사람들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 방법을 알았다.

“그럼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재앙 대응 훈련.

그 1일차 훈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독일 마법 협회의 차례가 되었다.

케빈 고미스를 필두로 10명으로 구성된 조가, 곧 진행될 상황 훈련을 위해 시가지로 진입했다.

[훈련을 진행하기 전, 5분의 회의 시간을 부여하겠습니다.]

보통 상황 발발 직후.

헌터들은 5분 안에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진압을 시작한다.

사실 마법사들 위주로 진압을 하는 것은 흔한 케이스가 아니었다. 상황이 발발했을 때, 마법사들이 가장 먼저하는 것은 인근에 있는 강화 전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앞세워서 전투를 진행하는데, 강민혁의 훈련법에서는 강화 전사들이 배제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물었을 때, 강민혁은 이렇게 답했다.

“제가 말한 재앙이라는 것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재앙을 말합니다. 만약 동시다발적으로 전 지역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강화 전사들은 일단 본인들의 거점부터 지켜야 할 텐데, 그때도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실 겁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강화 전사들이든, 세계 마법 연합이든, 그들의 도움을 바라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상황을 해결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일반적인 대응 체계는 이렇다.

1. 상황 파악.

2. 강화 전사에게 연락.

3. 문제 해결.

만약 강화 전사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1. 상황 파악.

2. 마법 연합에게 연락.

3. 문제 해결.

결국 마법사들은 독자적인 힘으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세계 마법 연합이다. 마법사들은 강화 전사들과 다르게 뭉치지 않으면 약할 수밖에 없기에, 서로를 도와주기 위해서 연합의 형태를 만들었다. 마법 세력들이 세계 마법 연합에 가입하길 바라는 이유는,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민혁은 그 울타리를 벗어났다.

사람들이 가디언 마탑에 들어가는 것을 겁냈던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케빈 고미스가 말했다.

“이번 훈련은 조금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다. 이왕 하는 거라면, 독일 마법 협회의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있겠지. 상황이 발발했을 때, 일단 화력을 집중해서 처음에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처리한다. 그리고 상황이 호전되면, 2명을 보내서 생존자를 구출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예."

계획을 세웠다.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이다.

마법사가 섣불리 움직였다간 몬스터에게 당할 수 있으니, 일단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옳다.

‘반드시 1위를 차지한다.’

사실 처음에는 의욕이 없었다.

그런데 강민혁의 보상을 듣고서는 마음이 달라졌다.

케빈 고미스는 5서클 마법사.

강민혁에게 개인적으로 6서클 경지의 실마리를 얻고 싶었다. 여전히 가디언 마탑과의 연합이 위험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강민혁의 실력과 위상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독일 마법 협회.

본인의 보금자리가, 무너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삐익-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200m가량 떨어진 거리.

그곳에 설치된 ‘우리’에서 몬스터들이 배출되었다.

이번에 상대할 몬스터는 오크였다.

특별하게 등급이 높은 몬스터는 아니지만, 강화 전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매우 위험하다.

크르르륵.

취익.

달려드는 오크들.

그들의 모습에, 독일의 마법사들은 일찌감치 마법의 캐스팅을 시작했다.

“워터 스트라이크.”

“아쿠아 랜스.”

“체인 라이트닝."

“라이트닝 스피어.”

퍼엉-

치지지지직!

마법의 조합을 맞추었다.

오크들의 발을 묶기 위해서, 일부러 물의 마법과 전기의 마법을 섞었다. 강력하게 발휘되는 마법이 오크들에게 작렬했다. 선두에 선 오크들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픽픽 쓰러졌고, 그들은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강민혁의 마법 혁명.

그때부터 마법사들은 발전된 형태의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조금 떨어지는 위력에 고전했을 텐데, 확실히 마법사들의 위력은 전보다 강해졌다.

이어서.

“썬더 크로스.”

빠지지지지직!

크에에엑!

케빈 고미스의 마법이 사용되었다.

5서클의 마법은 강력했다.

B급의 몬스터에게도 통하는 마법에 오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몬스터들의 숫자를 빠르게 줄였다. 계획은 적절했다. 우리에서 배출되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케빈 고미스는 미리 언질을 해두었던 마법사에게 말했다.

“지금이야!”

“예!”

2명의 마법사.

그들이 시가지 안으로 진입했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서 생존자들에게 접근했고, 그곳에는 생존자로 지정해둔 피 묻은 인형이 있었다.

그리고 복귀하는 구출조.

생존자를 안전하게 확보하고 나서부터, 10분간 자리를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0분 뒤.

마침내 훈련이 끝났다.

삐익-

[훈련이 끝났습니다.]

[독일조의 기록은 18분 35초입니다.]

18분 35초.

그 기록에, 케빈 고미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기록이다.

상황 발생 직후 겨우 8분 만에, 마법사들만의 힘으로 생존자를 구출했다.

‘역시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어.’

굳이 이런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다.

독일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은 이미 훈련을 받은 상태고,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다.

훈련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앞선 기록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케빈 고미스는 기록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자리를 지킨 10분의 시간을 제외한다면, 겨우 8분 35초 만에 구출에 성공한 것은 상당히 좋은 기록이다.

한참 뒤.

모든 조의 훈련이 끝나자, 강민혁이 발표를 진행했다.

“지금부터 등수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케빈 고미스가 웃었다.

솔직히 1등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3등 안이라고는 확신한다.

그러한 기대감에 차오르고 있는 그때, 강민혁의 발표는 그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1등은 천호명조의 12분 58초입니다.”

‘...응?’

당황스러웠다.

12분 58초라니.

이게 말이 되는 기록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기록 책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자기 위안을 하는 순간, 다음 등수도 차례로 발표되었다.

“2등은 헨리 덴커조의 13분 23초입니다.”

“3등은 드웨인 루드윅 (Duane Ludwig)조의 13분 34초입니다.”

경악스러운 수준의 기록들.

그제야, 케빈 고미스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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