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35. 어중간한 재앙, 어중간한 평화(8) >
사건 직후.
언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 사건을 다루는 기사를 발표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프랑스 마법 협회와 강민혁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났는데, 강민혁은 그 과정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무려 200명의 마법사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마법 협회의 동맹 세력인 쏠리드가 도중에 개입했지만, 오히려 쏠리드의 검이라 불리는 알랭 로베르가 강민혁에게 당하고 말았다.]
기사는 아주 자세했다.
현장의 사진들을 다각도로 보여주면서 기사가 사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어떤 기사의 경우에는 영상을 편집해서 올렸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 전문적인 손길이 닿은 증거들은, 기자들이 처음부터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다.
이건 강민혁이 계획한 무대였다.
프랑스로 떠나면서 강민혁은 많은 가능성을 생각했고, 그중 가장 극단적인 무력 충돌을 대비해서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과 기자들을 파리로 보냈다. 언론을 활용한 네거티브(negative)는 프랑스 마법 협회만의 영역이 아니다. 그들이 그간 악의적인 기사로 가디언 마탑의 명성을 깎아내렸다면, 강민혁은 명확한 팩트를 기반으로 해서 반격을 시도했다.
[사건이 발발한 이유는 강민혁의 발언으로부터 알아낼 수 있다. 프랑스 마법 협회는 가디언 마탑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서 첩자를
보내고, 악의적인 기사를 작성하는 등의........ 결국 이번 싸움의 경우에는 프랑스 마법 협회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강민혁은 더 이상 프랑스 마법 협회의 행보를 좌시할 수 없었고, 홀로 그들을 상대하는 충격적인 선택을 내렸다. 이번 전투로 인해 프랑스 마법 협회의 마법사 수십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강민혁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상대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기 위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세력이 있는데, 개인의 힘으로 반격했다고 해서 문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강민혁의 행보는 정당한 반격이었고, 프랑스 마법 협회의 잘못은 맹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겁 없이 건드렸다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팩트를 조목조목 따져가면서 비난하는 기사에, 사람들은 대부분 강민혁의 편을 들었다.
-내가 강민혁이라도 프랑스 마법 협회랑 한바탕 했겠네.
-그런데 혼자서 200명의 마법사를 상대하다니. 이건 좀 충격적인 사건인 것 같은데. 프랑스 마법 협회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법 세력이잖아. 강민혁이 아무리 세계 최고의 마법사라 불린다지만, 일개 개인이 집단이랑 붙었을 때 이긴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아.
-나는 그것보다 알랭 로베르의 패배가 더 믿기질 않아. 그런 괴물도 강민혁을 이기질 못하다니.
난리가 났다.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지는 강민혁의 엄청난 무력. 펑펑 터지는 마법에 상대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은, 사람들로서는 충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상대가 이름 모를 악역1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다. 그러나 프랑스 마법 협회와 쏠리드라는 이름값에,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기사는 적절했다.
아무도 강민혁에게 책임을 묻질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 마법 협회의 잘못을 비난하며, 강민혁의 행동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디언 마탑의 부정적인 인식.
그것이 사르르 녹았다.
강민혁의 의도대로, 이번 사건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그런데.
-강민혁이 사용한 마법은 대체 뭐지? 저건 절대 5서클 마법이 아니야. 그렇다고 6서클 마법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게, 저 정도의 위력이 6서클일 리가 없잖아. 이건 매우 조심스러운 예상인데, 강민혁의 마법이 어쩌면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지의 마법일지도 몰라.
7서클의 가능성.
그것이 제기되는 순간, 전 세계의 기자들이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강민혁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들의 숫자는 정말 많았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기자들은, 프랑스 파리에서의 사건이 아니라 ‘단 하나의 대답’을 듣길 바랐다.
한 기자가 대표로 나섰다.
“세간에 이런 소문이 있습니다. 강민혁 마탑주님이 7서클의 경지에 올랐고, 프랑스 마법 협회를 상대하면서 사용한 마법이 바로 7서클 마법일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게 정말 사실인 겁니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7서클.
인류는 얼마 전만 하더라도 6서클의 경지조차 미지(未知)의 세계라 불렀기에, 7서클은 감히 상상조차 하질 못했다. 그러니 기자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어렸다. 강민혁이 7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마법의 발전 가능성은 마법 학계를 새로운 길로 인도할 것이다.
“예, 사실입니다.”
“헉."
“정말 7서클의 경지가 존재하다니!”
파파팟.
파파파파팟.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경악하는 기자들.
예상하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을 직접 듣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강민혁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 최초의 마법사가 되었다. 비무행을 통해서 최강의 마법사라는 타이틀은 얻었지만, 마법사로서 최고라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절대적인 평가 기준인 서클의 경지가 유재명보다 낮았기에, 그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무려 7서클.
강민혁은 모든 면에서 최고의 마법사였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담고자 셔터를 쉴새 없이 눌렀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7서클 마법의 공개 여부였다.
“강민혁 마탑주님. 만약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7서클의 경지에 오른다면, 그에게 7서클 마법을 공개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공개할 생각입니다. 저는 저 혼자만의 발전을 위해서 가디언 마탑을 창설한 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확실히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뿐만 아니라,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중에 그 누구든 7서클의 경지에 오른다면 저는 그에게 7서클 마법을 알려줄 것입니다.”
기자들이 감탄했다.
7서클 마법은 엄청난 보물이다.
금전적인 가치를 떠나서,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은 강민혁에게 엄청난 이점으로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강민혁의 음성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
기자들은 진심으로,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사람이라면 따를 가치가 있겠지.’
기자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이후에도 간단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고, 원하는 성과를 얻은 기자들은 만족하는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끝냈다.
그리고 발표된 기사.
[강민혁, 7서클의 경지에 오르다!]
[가디언 마탑의 진정한 가치]
[마법 학계의 미래는 가디언 마탑에 있다!]
상황이 반전되었다.
프랑스 마법 협회의 악의적인 기사로 바닥에 떨어졌던 가디언 마탑의 위상이, 단번에 반등하는 순간이었다.
상황이 반전되고 있는 흐름에, 앙투안 발라르는 뒤늦게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부 계획되었던 것이구나.’
스트라스부르.
파리에서의 전투.
그리고 지금까지.
강민혁의 행보는 즉흥적인 것이 없었다.
완벽한 계산 하에, 프랑스 마법 협회를 나락으로 빠트리는 계획을 착실하게 진행했다.
소름이 돋았다.
상대가 자신보다 까마득하게 어렸지만, 나이에서부터 비롯되는 미숙함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세계 마법 연합이 와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사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강민혁에게 화합을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그간 저지른 잘못이 있어서 관계를 회복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7서클의 경지에 오른 괴물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안전한 방법이다. 그러나 앙투안 발라르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라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투쟁하고 이겨내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앙투안 발라르는 곧바로 세계 마법 연합의 수뇌부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경고했다.
"이번 사건을 보면 알겠지만, 강민혁은 세계 마법 연합 전체를 집어삼킬 괴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를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대체 어떻게 말입니까? 앙투안 발라르 협회장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는 혼자서 프랑스 마법 협회 마법사 200명을 상대했습니다. 그런 괴물을, 어떤 방법으로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네덜란드의 협회장이었다.
평소에는 조용하던 그가, 처음으로 우려를 표했다.
다른 협회장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앙투안 발라르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던 그들이, 파리에서의 전투를 보고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의 힘.
그것은 압도적이었다.
적어도, 강민혁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인정해야만 했다.
앙투안 발라르가 말했다.
“최근에 저희 조사팀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차원의 균열 현상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강민혁의 말은 옳았습니다. 정말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재앙이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강민혁과 타협하자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이용하자는 의미입니다.”
앙투안 발라르가 서늘한 눈빛을 보였다.
그는 남들 위에 서야만 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강하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는 협회장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재앙을 대비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 마법 연합의 소속이 아닌 곳은 철저하게 외면할 것입니다. 가디언 마탑의 힘만으로는 절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영국과 독일은 한국과 멀리 떨어진 곳이고,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면 가디언 마탑으로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때, 세계 마법 연합의 힘이 부각될 것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친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증명되는 순간, 배신자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가디언 마탑이 아니라 우리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재앙은 새로운 권력 체계를 탄생시킨다.
빼앗긴 흐름?
그것은 다시 되찾으면 그만이다.
재앙의 시작점에서 지금의 마법 협회들이 탄생한 것처럼, 앙투안 발라르에게 재앙이란 세상의 위기가 아니라 반등의 기회로 보였다.
“우리는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세상의 재앙이,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부여할 것입니다.”
재앙.
그때만 하더라도, 앙투안 발라르는 재앙이라는 단어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 시각.
강민혁은 고영철의 보고를 받았다.
“네 예상이 맞았어. 앙투안 발라르가 곧바로 세계 마법 연합의 수뇌부 회의를 진행했고, 회의가 끝나자마자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래?”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강민혁은 파리에서 앙투안 발라르와 끝을 볼 수 있었지만, 계획을 위해 일부러 그에게 시간을 주었다. 만약 앙투안 발라르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강민혁이 생각했던 완벽한 그림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강민혁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강하면 강할수록, 재앙이 닥쳤을 때의 임팩트는 정말 대단할 테니 말이다.
“사람이란 동물은 그래.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일은, 아무리 경고해도 받아들이려고 하질 않지.”
자신도 마찬가지다.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에서 십수 개의 게이트가 동시에 생성되는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앙투안 발라르와 마찬가지로 상식적인 선에서 재앙을 대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앙투안 발라르가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주었다면, 관계가 이렇게 틀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강민혁이 말했다.
“최근에 스트라스부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차원의 균열 현상이 잦아지고 있어. 사람들은 균열을 통해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 그 위험성을 제대로 모르고 있지만, 분명히 세상에는 새로운 종류의 재앙이 시작될 거야. 그리고 그때 우리는 완벽해야만 해.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확실하게 재앙에 대항해야만, 사람들이 내 주장이 옳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마법 문명의 역사가 증명한다.
차원의 균열.
그것은 재앙의 징조다.
균열로 인한 충격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세상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가 계획의 시작점이었다.
고로.
“지금 당장 동맹 세력들에게 연락해.”
가디언 마탑과 동맹 세력들.
지금부터 그들을 재앙에 대항할 ‘완벽한 상태’로 만들 생각이다.
그래야 재앙이 닥쳤을 때, 그들의 활약은 강민혁의 말이 옳았음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