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40화 (140/197)

140화.  < 35. 어중간한 재앙, 어중간한 평화(4) >

정말 오랜만에 만끽하는 바깥 공기였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강민혁은 표정을 찌푸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차원의 경계선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바깥도 시간이 제법 지났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자신의 공백으로 인한 마탑의 상황은 걱정하지 않았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지침은 모두 내려둔 상태였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정도로 오래 지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루도빅 바텔리.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경비대를 몰고, 멀리서부터 우르르 몰려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내 진입이 발각되었고 그 시기가 한 달이 넘진 않았겠지. 앞선 조사팀원들이 행방불명으로 사라진 사례가 있으니, 보름만 지났어도 병력을 철수시켰을 가능성이 커.’

딱 적당했다.

현장에 도착한 루도빅 바텔리는, 강민혁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눈을 부릅떴다.

“너, 너는.........?!”

그는 강민혁을 알아보았다.

담당자와 거래를 할 때는 분장을 하고 있었지만, 환골탈태의 과정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옷도 거의 넝마가 되어버린 상황이라 사실 살짝 민망한 광경이었지만, 루도빅 바텔리로서는 강민혁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챘다. 프랑스 마법 협회가 경계하고 있는 대상. 프랑스 정부 소속의 사람이라면, 강민혁의 용모파기를 한 번쯤은 접할 수밖에 없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여기는 프랑스 땅이다. 그것도 정부 소유의 땅에 함부로 진입한 것은 중범죄다.”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중범죄.

상대가 밑밥을 까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마중을 나온 것을 보면, 그들은 차원의 균열에 10억이나 투자한 자신의 목적이 궁금하다는 뜻일 터.

분명히 그냥 보내줄 리가 없었다.

사실 강민혁은 프랑스로 떠나면서 여러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는 부패한 담당자가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처럼 발각되는 경우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약 한 달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강민혁은 평화적인 행보로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강민혁이 말했다.

“패트릭 고든(Patrick Gordon)이라는 인물을 아나?”

“그게 누구지?”

“가디언 마탑에 입탑 신청을 했던 프랑스 마법 협회의 인물이다. 그가 스트라스부르 태생이라는 보고가 있어서, 그를 포획하기 위해 직접 이곳을 방문했다. 아무래도 패트릭 고든이라는 녀석이 우리 마탑의 기밀을 빼돌린 것 같거든. 그래서, 어쩌다 보니 이곳에 들어오게 됐고.”

“그걸 믿으라는 말인가? 80만 유로나 내고, 차원의 균열에 들어간 것에 대한 변명으로?”

말이 되지 않는 변명이다.

강민혁도 안다.

그러나 이건, 상대가 납득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상대가 A의 잘못을 지적하면, 강민혁은 A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B를 지적하며 논점을 흐렸다.

이런 상황에는 결국 ‘힘의 논리’가 중요하다.

루도빅 바텔리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이곳의 차원의 균열은 우리가 특별하게 연구하고 있었던 곳이다. 네가 무슨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든 간에, 우리는 프랑스의 영토를 침범한 너를 처벌할 이유가 있다. 만약 원만하게 타협을 보고 싶다면, 패트릭 고든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이 아니라 이곳에 어떤 목적이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보았는지 솔직하게 말해라. 그렇지 않다면, 넌 이곳을 절대 떠날 수 없다.”

척-

타다닥.

강화 전사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얼추 20명 정도.

그리고 뒤에는, 3명의 마법사가 당장에라도 강민혁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명백하게 불리한 상황.

강민혁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나는 너희들에게 분명히 경고했다. 이곳에 온 이유는 패트릭 고든이라는 첩자를 잡아들이기 위함이고, 이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법정에 설 의향도 있다. 그런데 상식적인 타협이 아니라 무기를 내게 들이밀겠다면, 나도 가만히 당해줄 생각은 없다. 잘 판단하길 바란다.”

화악-

감민혁도 마나를 끌어 올렸다.

기세에 당황한 것일까.

루도빅 바텔리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수하가 말했다.

“프랑스 마법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상대가 가디언 마탑의 강민혁이 맞다면, 후폭풍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으니 일단 제압하랍니다.”

“그래?”

환해지는 루도빅 바텔리의 얼굴.

프랑스 마법 협회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정부의 동의를 얻었다는 것을 터.

루도빅 바텔리가 바락 소리쳤다.

“당장 저 녀석을 포박해!”

타닥.

땅을 박차는 강화 전사들.

논리가 사라진 상황에서, 말보다 강력한 것은 바로 ‘힘’이었다.

선공은 바로 마법사들이었다.

후방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강민혁의 마법이 한발 빠르게 그들을 덮쳤다.

“스파이럴 토네이도(Spiral Tornado).”

휘이이잉.

콰앙!

나선형의 회오리가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경비대의 마법사들은 3~4서클의 수준. 4서클 마법이면서도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강민혁의 스파이럴 토네이도는, 그들이 발현시키는 마법을 하늘로 날려 보내 버렸다. 불길이 일어나며 강민혁을 상대로 사용되었던 화염의 마법이, 회오리의 중심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하늘 높이 사라졌다.

그리고.

쿵.

강민혁이 땅을 밟았다.

그라운드 웨이브가 일어나며 강화 전사들의 접근을 막는 순간, 강화 전사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어디서 개수작을!”

“양쪽에서 공격해!”

파박.

그들은 빨랐다.

A~B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뛰어난 강화 전사들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모양새에, 강민혁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만약에 균열을 경험하기 이전이었다면, 이들을 상대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굳이 큰 힘을 들이지 않더라도, 이들을 상대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파이어 월.”

화르르르륵!

불길이 일었다.

바로 앞에 불의 벽을 형성해서 진입을 막았는데, 강화 전사들이 마나를 몸에 두르고 불길로 뛰어들었다.

“어딜!”

그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파이어 월.

대중적인 마법이다.

그들의 경험상 4서클의 불길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그들은 상대가 누구인지를 간과했다.

화악-

화염의 서클이 팽팽 돌았다.

그곳에서부터 분출되는 화염의 마나가 파이어 월에 힘을 보탰고, 방금까지만 해도 3M의 높이로 타오르던 불길이 무려 5M까지 치솟았다. 불길의 힘은 엄청났다. 안으로 뛰어들었던 강화 전사들이, 전신을 덮치는 고통스러운 충격에 그대로 불길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털썩!

“크아아아악!”

“으아악!”

그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강화 전사들의 단단한 피부가 불길에 타닥타닥 타들어가고 있었고, 육체도 재생되질 않았다.

강민혁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파이어 월의 불길이 사방으로 번짐으로써, 강민혁은 주변에서 ‘화염의 마나’가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화르륵.

권능의 발현.

눈을 번뜩였다.

화염의 서클을 다시 한번 회전시키자, 불의 마나가 강민혁에게 집중되더니 그대로 마법으로 변했다.

“화우.”

화륵!

화르르르르르르르륵!

화마(火魔)가 넘실거리는 세상.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이, 그대로 사방에 있는 강화 전사들에게 작렬했다. 이건 2서클 마법의 충격이 아니었다. 화끈하게 타오르는 불길에, 강화 전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폭발.”

콰콰쾅!

콰콰콰콰콰쾅!

곧바로 작렬한 폭발의 위력은, 상황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20명의 강화 전사?

3명의 마법사?

수적 우세는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폭발에 휩쓸려 나가떨어졌고, 먼발치에 있었던 루도빅 바텔리의 얼굴이 경악으로 얼룩졌다.

“이, 이게 무슨.”

믿기질 않았다.

세상에 이런 마법이 있다니.

그리고, 강민혁은 4서클 마법을 마치 캐스팅이 ‘없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황급히 도망을 치려던 루도빅 바텔리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화륵.

화르르륵.

땅바닥이 타올랐다.

그 불길을 맨발로 밟으며, 강민혁이 루도빅 바텔리에게 다가갔다.

“지금 당장 프랑스 마법 협회에 연락해.”

“뭐, 뭐라고?”

“길게 말하면 내가 알아서 하고.”

화륵.

강민혁이 불길을 일으켰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루도빅 바텔리는 황급하게 프랑스 마법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탈칵.

[그래, 일은 어떻게 처리됐지?]

익숙한 목소리.

흥분한 앙투안 발라르의 모습이 떠오르자, 강민혁이 피식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접니다. 가디언 마탑의 마탑주, 강민혁.”

한 달의 노력.

허탈한 결과에, 강민혁은 이런 생각을 했다.

‘평화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해.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면서까지 훈련을 시킨다면 의미가 있을까? 진심이 결여된 그들의 노력은, 진짜 재앙 앞에서는 무력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어. 내 욕심이 컸어. 현재 인류가 갖춘 전력을 모두 몬스터와 싸우는 데 동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적인 생각에 불과했어.’

인정했다.

모두가 같이 나아갈 수는 없다.

아직 실체화되지 않는 재앙 앞에서, 사람들을 한데 뭉치려면 타협이 아니라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상대를 억제할 강력한 힘이.

강민혁이 말했다.

“그간 프랑스 마법 협회가 저지른 일을 저는 그냥 넘어갔습니다. 패트릭 고든을 비롯해서 첩자들이 마탑의 지식을 넘보고, 언론이 악의적인 기사로 가디언 마탑을 깎아내려도, 저는 화합을 위해서 프랑스 마법 협회의 행태를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이번 일도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패트릭 고든의 일만 처리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넘어가려고 했죠.”

무단 침입.

그것을 상대의 잘못으로 덮었다.

침묵을 지키는 상대의 반응에, 강민혁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분명히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방금 프랑스의 경비대가 저를 일단 제압하려고 하더군요. 선을 넘었습니다. 제가 당신들에게 고개를 숙인 이유는, 정말로 대응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제가 싫으셨습니까? 프랑스 마법 협회는 제가 발표한 마법 지식들로 큰 이득을 보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제가 커지는 것이 그리도 싫었던 겁니까?”

[싫을 수밖에. 그게 문제야. 넌 너무 뛰어난 마법사고,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내버려 둔다면 마법 학계를 집어삼킬 괴물이야.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있겠나. 고분고분하게 명령을 따르지 않는 녀석이라면, 우리로서는 세력을 지키기 위해 이럴 수밖에 없어.]

앙투안 발라르가 진심을 말했다.

강민혁은 가늠이 되질 않는 존재다.

그래서, 앙투안 발라르는 강민혁만 생각하면 권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었다.

“CCTV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마법 협회가 그간 가디언 마탑을 상대로 저질렀던 불법적인 일들에 대한 근거도 미리 확보해둔 상태입니다. 지금 곧바로 그리로 가겠습니다. 무력으로 막든, 정부의 병력을 부르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강민혁은 계획을 변경했다.

재앙을 대비하는 방법.

타협이 불가능하다면, 강민혁은 그들이 경계하는 적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강해질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그리고.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 자들은 짓밟을 것이다.

모두를 챙길 수는 없다.

그러한 사실을, 강민혁은 이번 일을 통해 느꼈다.

“어떤 발악을 하든, 이번에는 사과를 들어야겠습니다.”

툭-

전화를 끊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 마법 협회는 발칵 뒤집힐 것이다.

선의(善意)를 베푸는 것은 이제 끝이다.

아군이라면 확실하게 보상해주고, 적이라면 가디언 마탑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될 터.

강민혁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전화기를 던지더니, 꿈틀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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