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36화 (136/197)

136화.  < 34. 나아가야 할 길(4) >

충격을 받았다.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는 머릿속에, 강민혁은 아비드의 질문에 그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화이트 캐슬이 클리스만의 배경이라고?’

말이 되질 않았다.

화이트 캐슬이 어떤 곳인가.

그들은 이 세상의 정점에 올랐다.

블랙캣과 그레이 로브가 화이트 캐슬과 같이 묶여서 3대 세력이라고 거론되지만, 사람들은 화이트 캐슬이야말로 제일(第一)의 세력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세력이 클래스만의 배경이라니. 그간 클리스만으로 지내면서 조금의 연관성도 없었기에, 강민혁은 사실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 화이트 캐슬이 클리스만의 배경이라면 그간의 일을 이해할 수 있어.’

지난 일들.

뛰어난 재능을 지녔거나 명문가의 자식들에 한해서 입학을 허락하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가, 출신이 불분명한 데다 1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클리스만의 입학을 허락했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는 외부의 압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왕실의 비호를 받는 곳이기에 모두가 클리스만의 배경에 의문을 가졌는데, 화이트 캐슬이 배경이라면 클리스만의 입학은 당연한 결과다.

무려 화이트 캐슬이다.

그들의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밖에 없고, 화이트 캐슬이라는 이름값에 1서클에 불과한 클리스만이 마법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비드가 말했다.

"당시에도 의문이었지. 화이트 캐슬 정도 되는 세력이, 직접 입학 청탁을 의뢰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평소에는 그런 부탁을 절대 받아주지 않는 편이었지만, 화이트 캐슬이기에 예외로 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그렇게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네 실력, 네 재능으로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일원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화이트 캐슬의 입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비드만이 아는 진실.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변종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제임스 체스터와의 폭력 사건.

체스터 가문이 나서서 강력하게 징계를 건의했지만, 그때도 화이트 캐슬이라는 배경이 문제였다.

애초에 잘못은 체스터 가문이 저질렀다. 그런데 화이트 캐슬의 보호를 받는 클리스만을 부당하게 처벌할수 없었기에, 아비드는 징계 처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약에 클리스만에게 배경이 없었더라면, 강민혁이 저질렀던 일들은 결국 퇴학 처리로 직결되었을 것이다.

강민혁이 말을 잃었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에, 아비드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설마 몰랐다는 건가.”

그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본인도 잘 알 것이다.

겨우 1서클 마법사가,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말이다.

그런데도 묵묵히 아카데미를 다녔다.

강민혁이 당연히 자신의 배경을 알고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강민혁의 표정은 명백하게 진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결국, 아비드는 나중에 얘기하자고 말했다. 지금의 상태로는 대화를 계속 나눈다 할지라도, 그가 원하는 진실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총장실을 빠져나온 강민혁.

아직도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다.

클리스만과 화이트 캐슬의 관계.

대체 어떻게, 마법의 3대 세력이라고 불리는 화이트 캐슬이 클리스만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마침 강민혁은 의문을 해소해줄 사람을 알고 있었다.

엘리샤.

화이트 캐슬의 일원이라면, 그들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을 터.

강민혁은 곧바로 엘리샤를 찾아갔다.

엘리샤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화이트 캐슬이 네 배경이었다고? 그럴 리가. 화이트 캐슬은 결투 대회에서 처음으로 널 알게 된 것 같은 기색이었어. 내가 졸업하고서 화이트 캐슬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너라는 사람에 대해 분석하고 있었거든. 네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검술을 사용하는지. 만약 화이트 캐슬이 네 배경이었다면, 그들은 애초에 너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엘리샤는 화이트 캐슬에서 지내던 시절, 아비드가 말한 진실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진실을 알아내는 방법은 단 하나다.

바로 화이트 캐슬을 직접 만나보는 것.

그 방법이라면 의문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런데.

“미안한데, 나는 이제 화이트 캐슬의 일원이 아니야. 며칠 전이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들과 연락할 방법이 없어.”

며칠 전.

엘리샤는 결단을 내리면서 화이트 캐슬에게 탈퇴 의사를 밝혔다. 화이트 캐슬은 마법사로서의 능력을 상실한 엘리샤에게 새로운 직책을 부여하겠다고 말했지만, 엘리샤는 그러한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탈퇴와 동시에 그들과 연락하는 수단인 아티팩트를 반납했다.

화이트 캐슬.

마법의 3대 세력은 기본적으로 신비주의다.

먼저 연락이 되지 않기에, 보통 그쪽에서 연락을 취하는 경우에만 그들과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

강민혁으로서는 화이트 캐슬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상황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간 클리스만이 자신에게 전달했던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20일 차. 이제는 확신이 생겼다. 수호문의 심법을 통해서 나는 강해지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도 떼지 못한 수준이지만, 이것이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예전에만 하더라도 나는 이 세상의 힘은 마법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칼을 쥐고 몬스터와 싸우던 그 시절, 로브를 펄럭이며 마법을 사용하는 선택받은 자들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도 새로운 길이 생겼다. 나는 수호문의 심법을 통해 강해질 것이고, 심연(深滿)의 악마들을 모조리 몰살할 것이다.]

그중 하나.

안에 적힌 내용에는, 로프를 펄럭이며 마법을 사용하는 선택받은 자들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바로 이 사람들.

이들이 화이트 캐슬의 마법사들일까?

몬스터와 싸우던 클리스만이 화이트 캐슬의 마법사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마법 지식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 말이 안돼.’

앞뒤가 맞질 않았다.

로브인이 화이트 캐슬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클리스만과 거래해서 얻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마법 지식이 그들로부터 비롯되었다면, 화이트 캐슬로서는 클리스만과 거래할 이유가 없다. 클리스만은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하다. 마법 지식을 전수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화이트 캐슬은 클리스만의 배경을 자처했다. 화이트 캐슬 정도되는 세력이 직접 움직여서 클리스만의 입학을 청탁하였고, 그렇다면 클리스만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로.

‘반대로겠지. 로브인은 화이트 캐슬이 아닐 가능성이 커. 클리스만은 본인이 직접 개발했거나 아니면 다른 기연으로 고차원의 마법 지식을 얻었어. 그리고 화이트 캐슬은 그러한 지식을 알고 싶기에, 클리스만과 거래를 한 것일 테고.’

퍼즐이 맞아들어갔다.

클리스만의 지식.

그건 화이트 캐슬도 탐낼만한 것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화이트 캐슬이 굳이 클리스만의 배경을 자처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왜 왕실 마법 아카데미지. 화이트 캐슬을 움직일 수 있다면,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

빙의의 시작.

그 처음에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라는 배경이 자신이 마법사로서 성장하는 데 최적의 환경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화이트 캐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들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아니, 클리스만의 지식이라면 애초에 혼자 마법을 공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런데도 클리스만은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입학을 추진했다. 그곳에 특수한 목적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결정이었던 걸까.

‘분명히 의도한 거야.’

클리스만과의 관계.

이 모든 순간들은 필연의 연속이다.

엘리샤의 초대가 가브리엘 칼데론의 아바타 마법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브리엘 칼데론은 심연의 악마를 알고 있었어. 그리고 클리스만도 내게 심연의 악마에 대해서 경고했었고. 하지만 그건 이번 일에 연관성이 없을지도 몰라. 어떠한 계기로 화이트 캐슬과 클리스만은 접촉하게 되었고, 클리스만에게는 화이트 캐슬로서도 탐낼 수밖에 없는 엄청난 마법 지식이 있었겠지. 그래서 그들은 클리스만과 거래를 했어. 클리스만의 계획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입학은 거래로부터 비롯된 결과였겠지.’

가설을 내세웠다.

글에 나온 로브인의 정체는 모른다.

클리스만은 로브인에게 마법을 얻었거나, 아니면 본인의 말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렇게 얻은 마법 지식으로 클리스만은 화이트 캐슬과 거래를 진행했고, 화이트 캐슬은 클리스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였다.

“대체 뭘 계획하고 있는 거야, 클리스만.”

클리스만.

그의 목적이 몬스터들의 멸살은 맞다.

그러나, 그곳으로 향하는 방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에 빠졌다.

한동안 화이트 캐슬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이상 알아낼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이만 생각을 정리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세상에 재앙이 닥친 상황에서, 해소되지 않는 의문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클리스만에게 직접 해명을 듣는 게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겠지.’

미련을 털어냈다.

어차피 당장 들을 수 없는 대답.

클리스만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강민혁은 다시, 클리스만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무려 1년.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엘리샤는 생각보다 검술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다. 애초에 마법의 천재라는 사실은 마나를 느끼고 다루는 것에 능통하다는 뜻이었고,

그녀는 금세 검술에 적응했다. 그 과정에서 강민혁과 엘리샤는 사제(師弟)의 연을 맺었으며, 그녀에게는 수호문의 비기를 전부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편한 관계였지만, 강민혁은 엘리샤가 이 세상에서 수호문을 전파하는 시작점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왕실 마법 아카데미.

사람들의 반발을 이겨내고 검술 학과를 편성한 그곳은, 이름을 왕실 아카데미로 개명하였다. 강민혁의 도움으로 검술 학과는 빠르게 틀을 갖추었고,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입학을 희망했다.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강민혁의 무력에 매료된 사람들이었다. 강민혁이 몬스터들을 상대로 보여주었던 모습에, 마법사였던 사람들도 뒤늦게 검술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년간 세계 연합은 착실하게 전쟁을 준비했다.

플루토와 골렘 병사, 보급형 R-1의 제작도 성공했고, 장벽에서는 정찰대가 꾸려져 전쟁을 대비했다.

그리고 강민혁.

강민혁은 훈련에 열을 올렸다.

심연의 악마.

그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했다.

그렇게 1년간 훈련에 몰두하고서야, 강민혁은 이제는 본인의 세계로 돌아갈 때임을 알았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되겠지.’

엘리샤와 검술 학과.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강민혁은 이렇게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일을 클리스만에게 남길 메시지에 기록했다.

[.........그간 이런 일이 있었다.]

잠시 펜을 멈추었다.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재앙은 어떻게 예상했는지.

그리고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심연의 악마는 무엇이며, 화이트 캐슬과 어떤 관계인지 같은 것들 말이다.

선택권은 클리스만에게 있다.

그는 지금껏 본인의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는 뜻일 테고, 그가 입을 다문다면 강민혁은 진실을 알 수 없다.

클리스만의 목표.

그것이 몬스터의 멸살이라는 확신은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라면 앞으로 그와의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강민혁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의 관계가 계속 지속되려면, 적어도 화이트 캐슬과의 관계와 네가 생각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할 거야. 신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네가 나로서는 공감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계속한다면, 나도 너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협박이었다.

강민혁은 이득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다.

명분과 신뢰는 중요한 요소다.

이로 인해 지식의 공급이 끊긴다 할지라도, 강민혁은 자신이 얻을 이득에 연연할 생각이 없었다.

강민혁은 그 말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일부러 남겨두었던 골렘의 지식을 모두 습득하자, 강민혁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강민혁으로서 살아갈 차례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았다.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겪은 재앙.

그것은, 강민혁의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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