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 32. 3년 뒤(4) >
졸업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이건 학술 대회가 아니다.
마법사로서 본인의 성장을 증명하면 되는 일이기에, 굳이 학문의 발표가 아니라 마법을 보여주는 등의 다양한 케이스가 많았다. 가장 처음으로 발표하겠다고 나선 제임스 체스터의 경우에도,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에서 ‘마법의 컨트롤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쿠르르릉.
무대가 변했다.
넓은 무대 주변으로 실드가 형성되었고, 가상의 적이 나타났다.
제임스 체스터가 하려는 것은 사방으로 퍼지는 적들을 동시에 타격하는 것. 그것도 여러 마법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마법에서 비롯되는 번개 줄기를 일일이 컨트롤하는 방법이었다. 예정대로 가상의 적이 뿔뿔이 흩어지자, 제임스 체스터는 준비했던 마법을 발현시켰다.
“썬더 크로스.”
빠지지지직!
강력한 전기가 일어났다.
사방팔방으로 퍼지는 전기 다발을 일일이 조종하더니, 정확히 도망치던 적들의 뒤를 강타했다. 파스스스, 하고 연기를 일으키며 사라지는 적들. 그 모습에 관중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제임스 체스터는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손쉽게 해냈지만, 이건 정말 어려운 기술이었다.
과거 강민혁과 트러블이 있었던 제임스 체스터.
그때의 그는 아직 모자란 점이 많았던 마법사였지만, 3년의 시간이 흐르며 뛰어난 마법사로 성장하였다. 과연 체스터 가문의 후손이었다. 제임스 체스터는 교수들의 칭찬과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내려갔고, 곧바로 다음 학생이 무대로 올라오며 차례가 진행되었다.
발표 방식은 다양했다.
컨트롤 능력.
새로운 마법.
연구.
테이밍 등등.
수십, 수백 가지로 뻗어 나가는 마법의 갈래에서 본인이 내세울 수 있는 최대의 성과를 보여주었고, 그 어떤 학생도 기대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없었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란 그런 곳이다. 마법 학계의 미래. 밝게 빛나는 그들의 재능에,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제임스 체스터, 필히 영입.”
“음......... 맥그린의 창조적인 마법이 탐나긴 하는데.”
“역시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발표회는 보물 상자라니까. 전부 데려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졸업생들.
그들은 이제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를 때 그들을 낚아채야 하기에, 마법 세력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경쟁심을 불태웠다. 뚜쟁이가 결혼적령기의 남성들을 유혹하듯, 졸업생들은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재학생이라는 딱지를 떼는 순간 수많은 사람의 명함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미래를 택할 것이며, 엘리샤가 그랬듯 ‘명문 아카데미 출신’으로서 활활 날아오를 터.
열기가 들끓었다.
카메라도, 학생들의 모습을 잡기 위해 분주했다.
보통 졸업생들이 미래의 대마법사로 자라난다면, 졸업 발표회의 영상은 희소가치가 상승한다.
계속되는 발표.
한 교수가 말했다.
“올해 졸업생들의 수준이 뛰어나네요.”
“3년 전에 있었던 그린 드래곤 사건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의 일이 학생들에게 성장해야만 하는 동기를 부여했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성적이 전체적으로 상승했거든요. 듣기로는 이번에 장벽행을 희망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오호, 그래요? 마법 학계에 정말 희망적인 소식이군요.”
다들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심사와 평가.
잠시, 그러한 의무는 내려놓았다.
이 자리는 기나긴 과정을 마무리하는 축제고, 그렇기에 온전히 졸업생들의 성과를 즐기고 싶었다.
그러다.
잭 그리핀과 강민혁의 조가 호명되는 순간, 교수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 녀석들입니다.”
자세를 고쳐잡는 벤자민 우드.
이번 발표는 이전 차례들과는 다르다.
교수들의 눈빛은, 작정하고 깎아내릴 생각으로 무대 위로 올라서는 강민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대로 올라가기 전.
당연히 강민혁이 발표할 줄 알았던 잭 그리핀은, 강민혁으로부터 의외의 얘기를 들었다.
“네가 발표해.”
“...왜? 이건 네가 발견해낸 기술이잖아.”
“그건 맞지만,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실제로 구현해낸 사람은 너야. 새로운 골렘 제작법을 설명함에 있어, 실무자보다 디테일이 있는 설명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어차피 직접 골렘 슈트를 착용하고 움직이는 사람도 필요하잖아? 내가 그 역할을 맡을 테니, 네가 발표를 대신해줘.”
그건 의무를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합동 발표.
같이 조가 묶이는 상황에서, 마이크를 잡는 사람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강민혁은 지금 그러한 영광을 넘겨주는 것이었고, 잭 그리핀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발표회 자리.
잭 그리핀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도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고, 그렇기에 굳이 강민혁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대 위에서 앞으로 나선 사람은 잭 그리핀이었다. 아직 자신이 어떤 충격적인 발표를 할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흥미로운 눈빛으로 무대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잭 그리핀이 말했다.
“지금부터 발표할 것은 ‘새로운 골렘 제작법’입니다. 저희 조는 이번에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골렘 제작의 체계를 발견했습니다. 출력은 2배 이상 높으며, 각종 기술을 탑재할 수 있는 고성능의 골렘이죠. 화면을 보시면, 그중에서도 골렘 슈트의 제작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팟-
화면이 떠올랐다.
2배라는 수치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사람들이, 주르륵 나열된 정보의 향연에 눈을 부릅떴다.
웅성웅성.
관중석이 시끄러워졌다.
2배.
그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현재 대중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골렘도 뛰어난 병기로 취급받고 있는 상황에서, 잭 그리핀은 갑자기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다. 아직 사람들은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충격이 확산되기 전에, 잭 그리핀은 나머지 설명을 이어갔다.
“골렘 슈트의 이름은 R-1입니다. 이미 직접 실험을 마친 상태고, 실험 결과 2배의 출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R-1의 장점은 마나의 감응력(感應刀)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나를 활용하는 기술을 사용함에 있어 골렘 슈트는 그 효과를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구현해냅니다. 직접 R-1의 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강민혁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R-1을 작동하자, 시계에서 하얀 불빛이 일어나더니 골렘의 외골격이 강민혁을 감쌌다.
철컥, 철컥철컥!
순식간에 R-1이 강민혁의 몸에 동화되었다.
강민혁은 일단 R-1을 착용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빠른 스피드로 무대 끝에서 끝으로 순간이동을 하듯이 움직였고, 점프를 하자 천장에 닿을 것처럼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나의 감응력. 강민혁이 골렘 슈트에 마나를 불어넣자, 슈트가 마나의 힘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쾅!
쿠르르르르릉.
앞으로 내지른 일격에 미리 준비되었던 강철이 찢겨나갔다. 이게 바로 마나 감응력의 효과였다. 마나란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데, 그게 골렘 슈트에 적용되는 부분은 다른 문제다. 보통 골렘 슈트와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이질감에 위력이 대폭 하락하는데, R-1은 그런 것이 없었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엄청난 위력. 지켜보는 이들이 입을 떡 벌렸다.
2배의 출력만 대단한 게 아니다.
이 정도의 마나 감응력이라면, R-1의 실질적인 효과는 생각 이상으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R-1.
강민혁이 착용한 건 모형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모형 제작을 목적으로 했으나, 잭 그리핀은 실제 모델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보였다.
“이렇듯 저희는 새로운 골렘 슈트인 R-1을 개발해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아직 모형을 제작하지는 못했지만, 골렘 병사와 기간트의 새로운 버전 또한 만들어냈습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자료로 대체하겠습니다. 모두 화면을 주목해주십시오.”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떠오른 정보.
그러자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바로 플루토.
R-1만으로도 이 세상의 상식을 벗어났는데, 플루토의 체계를 읽어내려가자 경악성이 저절로 나왔다.
“말도 안 돼!”
“저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사람들이 동요했다.
그건 교수들도 마찬가지였고, 당황한 교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발표는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개한 플루토의 제작 체계가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솔직히 말해서 기간트의 제작 방법은 그 자체만으로도 억만금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보물을,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했다고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
잭 그리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애초에 그럴 목적이었습니다.”
잭 그리핀의 발언.
졸업 발표회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난리가 났다.
졸업생들의 발표?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서로 앞다투어 플루토의 제작 체계를 기록하려고 했다. 그건 카메라 너머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TV로 발표회를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플루토의 제작 체계가 나온 장면을 확대해서 보았다.
혼란에 빠진 발표회.
만약 주최 측에서 화면을 다른 것으로 넘기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무대 위로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일단 다들 진정해주십시오. 기술의 원작자가 공개하기로 했으니, 따로 왕실 마법 아카데미 공식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다들 품위를 유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의 조치는 적절했다.
완전히 무너질 뻔한 발표회가 겨우 진정되었고, 흥분으로 달아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를 향했다. 잭 그리핀의 발표는 졸업 발표의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골렘 혁명이다. 세상에 골렘이라는 기술이 발명되면서 한 단계 나아갔다면, 이번에는 그 골렘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냈다.
플루토.
그것과 마법사들의 시너지는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물론 복잡한 제작 체계로 인해 방법을 알아도 많은 숫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방법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기간트는 이제까지 특별한 소수에게만 부여된 혜택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부터는, 기간트의 대중화가 현실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흥분되었다.
다들 달아오른 그때, 벤자민 우드가 찬물을 끼얹었다.
“잭 그리핀 학생이 골렘 제작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의 수준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골렘의 제작법을 만들어낸 것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며, 그리고 그것을 마법 학계의 발전을 위해 무상으로 공개한 점에 대해서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졸업 발표회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경악할 때.
그의 표정은 오히려 싸늘하게 식었다.
대단했다.
플루토는 혁명이었고, 아마 오늘 이후로 잭 그리핀의 이름은 마법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길 것이다.
문제는 너무나도 대단한 발표를 하는 바람에 모두가 강민혁의 존재를 잊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잭 그리핀의 발표를 작정하고 깎아내리자고 말하던 교수들도, 골렘의 제작 체계에 매료되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건 강민혁의 계획대로 되는 일이었다. 잭 그리핀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의 곁에서, 강민혁은 자연스럽게 졸업장을 획득할 터.
용납할 수 없었다.
역사적인 발견을 떠나, 교수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잭 그리핀 학생은 클리스만과 같이 한 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클리스만의 역할은 무엇인 겁니까? R-1의 착용자? 이 자리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생들의 졸업 발표회입니다. 우리는 마법사로서의 성과를 바라는 것이지, R-1을 착용해서 강철을 찢어발기는 모습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누가 클리스만을 마법사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건 명백하게 클리스만이 잭 그리핀 학생을 이용해서 졸업장을 획득하려는 속셈이며, 나 벤자민 우드는 이러한 문제를 절대 간과.........."
“잠시만요.”
잭 그리핀이 말을 뚝 끊었다.
벤자민 우드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에, 잭 그리핀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클리스만은 R-1의 착용자로 저와 같은 조를 이룬 게 아닙니다. 애초에 지금 발표한 골렘 제작법은, 제가 아니라 클리스만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뭐라고?”
벤자민 우드의 눈이 커졌다.
클리스만이 골렘의 원작자라니.
이건 믿을 수도, 아니 믿기지도 않는 말이었다.
그때, 잭 그리핀이 종지부를 찍었다.
“저는 합동 발표에 ‘기술자’로서 참여했습니다. 골렘의 설계와 관련된 부분은 모두 클리스만의 영역이었고, 클리스만은 저를 배려해서 발표의 기회를 양보해주었습니다. 만약 감사의 말을 전하려거든, 제가 아니라 클리스만에게 하십시오. 저는 아직도, 클리스만이 이 대단한 기술을 공개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진실.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벤자민 우드를 비롯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충격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