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21화 (121/197)

121화.  < 31. 마법사들의 유토피아(4) >

피에르 라루스의 연락에, 프랑스 마법 협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죄송합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피에르 라루스가 앞으로 첩자 활동을 하지 못하겠다는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강민혁을 마탑주님이라고 칭하는 것을 봐서는, 아무래도 가디언 마탑에 회유당한 것 같습니다.”

앙투안 발라르의 눈썹이 홱 올라갔다.

보고하던 부하가 놀라든 말든, 그는 눈에서 불길을 뿜어댔다.

“이런 배은망덕한 새끼. 특수부대원 한 명을 키워내기 위해서 무려 수십억의 자금을 투자했는데, 뭐? 가디언 마탑에 회유를 당했다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좀 해봐. 피에르 라루스 그 자식은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따위 선택을 내린 거야? 가만히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프랑스 마법 협회에서의 미래가 탄탄대로일 텐데, 그걸 포기하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피에르 라루스.

일반 협회원 1이 아니다.

프랑스 마법 협회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큰 문제만 없다면 무조건 높은 자리가 보장되어 있다. 특수부대원 중에서도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른 케이스는 손에 꼽지 않던가. 그래서 앙투안 발라르가 평소에 매우 아끼던 인물이었는데, 그가 배신했다고 하니 충격을 받았다.

핑크빛의 미래를 대가로 많은 임무를 부여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프랑스 마법 협회’ 정도 되는 세력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당장에라도, 피에르 라루스의 머리칼을 잡아 내리찍어버리고 싶었다.

“다른 협회의 첩자들은?”

“실은...그들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6서클 마법을 확인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는데, 피에르

라루스의 연락을 시작으로 그들의 연락도 두절되었습니다. 세계 마법 연합의 첩자는 총 4명이었는데, 그들 중 지금 연락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길.”

이상했다.

당한 것일까?

아니다.

가디언 마탑에서 직접 처리를 했다면, 아티팩트를 통해 메시지를 보낼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설마 정말, 피에르 라루스와 마찬가지로 4명의 첩자가 모두 세계 마법 연합을 배신해버린 것일까?

“이해가 되질 않아.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회유한 거지?”

사실 이번에 첩자로 보낸 인물들은 특이 케이스였다. 세계 마법 연합에게 약점을 잡힌 부류들은, 강민혁이 걸러낸 정보망에 의해서 적발되었다. 그래서 순수하게 세계 마법 연합을 따르는 실력자들만이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러한 점이 오히려 지금의 사단을 만들어 버렸다.

약점이 없다는 것.

그건 노출될 정보가 없다는 뜻임과 동시에, 오히려 족쇄를 풀어준 선택이었다.

항상 마법에 대한 욕망이 강했던 첩자들은, 강민혁의 발언에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고 말았다.

앙투안 발라르로서는 그 진실을 알 수 없었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히 모르기에, 지금 당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뿐이다.

“빠른 시일 내로 6서클 마법을 빼돌릴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가디언 마탑의 기술이 외부에 유출되겠지만, 문제는 지금 당장 기자들이 프랑스 마법 협회의 연구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협회의 인물을 보내 피에르 라루스를 한번 만나볼까요?”

“아니. 그랬다가는 첩자라는 사실이 걸리겠지.”

표정이 참담해졌다.

첩자의 침투가 성공했기에 기자회견을 질렀던 것인데, 프랑스 마법 협회는 참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우리로서는 선택지가 없어. 기자들에게는 연구가 진척되고 있다는 뉘앙스만 풍기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악의적인 기사만 내보내지 못하도록 막아. 그 과정에서 회유를 해도 좋고, 협박을 해도 좋아.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가디언 마탑에서 마법이 유출될 때까지의 시간이니까.”

그리고.

“우리로서는 직접적으로 가디언 마탑을 공격할 명분이 없어. 분하지만, 그들을 고립시켜서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어야 하지. 그러니 세계 마법 연합 소속들에게 전해. 앞으로 가디언 마탑과 교류하는 세력이 있다면, 곧바로 세계 마법 연합에서 퇴출하고 피의 보복을 해 줄 것이라고.”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완전히 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디언 마탑의 상황은 좋아지겠지만, 재앙이 닥친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다려보자고. 세계 마법 연합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 오기를.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재앙이 닥쳤을 때, 혼자라는 고립감은 그들을 내부에서부터 무너트릴 테니까. 우리는 그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면 돼. 다수가 소수를 무너트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거든.”

맹수는 때를 기다리는 방법을 안다.

앙투안 발라르는 분노를 속에 갈무리했다.

가디안 마탑이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프랑스 마법 협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강민혁과 이학범이 만나는 자리.

이학범이 말했다.

“상황은 매우 긍정적이야. 마탑의 일원들이 훈련 프로그램에 만족도를 드러내고 있고, 정부는 가디언 마탑이 한국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어. 그리고 마법 학과와 한국 마법 협회가 도와주고 있는 덕분에, 외적으로 처리하는 일들도 크게 문제가 없고.”

공통 마탑주.

외부에서는 동등한 자리처럼 비추어지지만, 이학범은 강민혁을 자신보다 ‘윗사람’으로 대했다.

그건 강민혁이 부탁한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이학범은 강민혁에게 보고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한 거지? 한국 마법 협회의 늙은 여우를 구워삶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궁금했다.

이학범은 한국 마법 협회장인 박동진을 안다.

직접적으로 대화도 나누었던 사이기에, 기회주의자인 그 사람이 절대 세계 마법 연합을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박동진은 가디언 마탑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했다. 평소에 세계 마법 연합의 구성원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것과는 다르게, 박동진은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면서 가디언 마탑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간의 일.

그것은 모두 강민혁이 처리한 부분이었다.

“현실을 알려주었을 뿐입니다. 그에게, 세계 마법 연합은 너무 멀리 있는 힘이거든요.”

이학범이 속으로 감탄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일반 학생에 불과했으나, 강민혁이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제는 박동진마저 무릎을 꿇렸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가디언 마탑에 대항할 마법 세력은 없다. 강화 전사들과의 관계는 새로 정립해야 할 문제이지만, 앞으로 한국의 마법 학계는 가디언 마탑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세계 마법 연합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들은 호시탐탐 우리를 무너트릴 계획을 찾을 것이 분명해. 현재 세계 마법 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앙투안 발라르는, 결코 포기할 인물이 아니야.”

“제 생각도 같습니다.”

앙투안 발라르.

그에 대해서는 공을 들여 알아보았다.

나름 마법사로서 청렴결백하게 살았지만, 그가 잘못된 길을 걷게 된 이유는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경쟁자.

그들을 상대로 앙투안 발라르는 악마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마법 협회와 전쟁을 벌일 수는 없는 법이다.

“언제고 그들과 싸워야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저희의 목적은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와 싸울 수 있도록 인간의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세계 마법 연합의 힘을 품기 위해서는, 저희도 때를 기다렸다가 앙투안 발라르만 쳐낼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앙투안 발라르도 품을 수 있으면 좋다.

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앙투안 발라르가 순순히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일 인물이었다면, 진즉에 대회의 여지가 생겼을 터.

"세계 마법 연합은 가디언 마탑의 고립을 택했습니다. 교류를 완전히 끊고, 점차 압박을 넣겠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의 대화가 아니라 자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키우다가 그들과 결단을 내려야 할 자리가 생긴다면, 그때는 잔인해질 필요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떠올렸다.

몬스터의 섬멸.

강민혁이 바라는 목적은 명확하다.

앙투안 발라르가 인류의 구원이 아니라 개인의 이득을 추구한다면, 싸움을 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 시간을 두고 가디언 마탑을 성장시켜야 할 때.

강민혁의 말에 이학범은 동조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클리스만의 세상으로 떠날 시기인가.’

약속했던 반년이 지났다.

그래도, 그 안에 계획했던 모든 것을 이루었다.

강민혁은 5서클 마법사가 되었고, 세계 마법 연합의 견제에도 가디언 마탑을 창설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는 약속을 지킬 차례다.

그런데.

“...이게 대체.”

다음 날, 강민혁은 ‘강민혁’으로서 눈을 떴다.

클리스만과 약속한 날.

당연히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눈을 뜰 거라 생각했는데, 창밖에는 가디언 마탑의 바깥 풍경이 보였다.

당혹스러웠다.

혹시라도 날짜가 미루어진 것일까.

그래서 기다렸다.

하루가 지났고, 이틀이 지났고,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도 강민혁은 여전히, 클리스만의 세상이 아니라 강화 문명의 강민혁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언제고 이런 순간이 오리라는 생각은 했었다.

클리스만과의 링크는 일방적이었고, 그쪽에서 응답하지 않는다면 넘어갈 방법이 없었다.

‘혹시 클리스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걱정되었다.

강민혁에게 클리스만이라는 사람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링크가 끊긴다면 지식을 공급받지 못하겠지만, 지금의 강민혁에게 그건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난 이미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갖추었어.’

지난 빙의.

반년을 클리스만으로서 지내며 많은 것을 얻었다.

최상급 마법도 무려 7서클까지 숙지해둔 상태.

이대로 클리스만과의 인연이 완전히 끊길지라도, 강화 문명에서 계획한 것들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클리스만의 안위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무사하게 지내는지,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지만 일방적인 관계에서, 상대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다려야 할 뿐.

시간이 지났다.

강민혁은 마법적인 성장에 집중했고, 가디언 마탑은 세계 마법 연합의 견제에도 꿋꿋이 세력을 키워나갔다. 세계 마법 연합은 한국 밖의 힘. 그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서 가디언 마탑을 공격하지 않는 한, 마나석을 독점하고 있는 가디언 마탑을 쓰러트릴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위태로운 행보가 계속되었다.

그 사이 하늘에서는 눈이 내렸고, 하얗게 물들었던 세상이 점차 녹아내리며 봄이 찾아왔다.

클리스만과의 관계.

일방적으로 시작되었던 관계가 일방적으로 끊긴 채로, 강민혁은 18살이 되는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가 밝았다.

강민혁은 가디언 마탑을 창설한 이후, 마법 학과는 그만두고 본인의 성장에 집중했다.

마탑의 일은 대부분 이학범의 선에서 처리가 되다 보니, 강민혁이 직접 나설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계속 기다렸다.

클리스만에게 연락이 오기를.

그의 안위라도 확인할 수 있기를.

그러나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자, 강민혁도 ‘만약의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대로 그와의 관계는 끝인가.’

이맘때 쯤.

처음 클리스만의 몸으로 눈을 떴을 때는, 강민혁은 마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문외한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5서클 마법사가 되었고, 어엿한 한 세력의 지도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서클이 가장 높은 마법사는 유재명이지만, 세계 최고의 마법사는 단언컨대 강민혁이다.”

외적으로 인정받는 존재.

강민혁을 중심으로 가디언 마탑은 성장할 수 있었다.

강민혁은 본인이 쟁취한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고, 지금은 가디언 마탑을 무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세계 마법 연합의 견제는 여전했지만, 그들도 가디언 마탑이 자력으로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는 눈치였다. 사실 애초에 그들의 견제는 성립되지 않았다. 마탑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과 마법 지식, 그리고 마나석이다. 그런데 정부의 지원을 받는 가디언 마탑이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할 리는 없기에, 우월한 마법 지식과 마나석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가디언 마탑은 오히려 흥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나석 시장은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세계 시장이 강민혁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발악했지만, 특허권의 존재가 너무나도 컸다.

계획은 착실히 진행되었다.

1년 만에 생긴 변화.

강민혁은 클리스만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관계가 끊기지 않길 바랐다.

적어도.

자신이 그의 염원을 이룰 때까지는, 그가 자신의 행보를 지켜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클리스만의 빙의는, 첫 만남 때처럼 갑작스러웠다.

최병호와의 약속을 앞에 두고 있었던 강민혁은, 눈을 뜨고 보니 클리스만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빙의는 조금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의 시간은, 마지막 만남으로부터 무려 3년이 지난 시점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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