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 31. 마법사들의 유토피아(3) >
처음에 논란이 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가디언 마탑 창설 이후 세계 마법 연합의 대응은 미적지근했다.
딱 예상한 정도.
마법 학계에서 가디언 마탑을 배척하는 행위를 보여주었지만,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선을 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세계 마법 연합이 포기했다고 말했다. 교류를 끊고도 아무런 타협을 제시하지 않는 가디언 마탑의 행동에, 세계 마법 연합으로서도 직접적으로 건드릴 방법이 없었다.
어느 정도는 옳은 말이다.
세계 마법 연합은 가디언 마탑의 고립(孤立)을 택했는데, 그 이면에는 검은 음모도 포함되어 있었다.
연합의 수뇌부들이 모인 자리.
앙투안 발라르가 말했다.
“세계 마법 연합의 첩자들이 무사히 가디언 마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 빌어먹을 녀석들을 당장에 무너트리고 싶지만, 가디언 마탑의 지식이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부정적인 소식을 퍼트려서 가디언 마탑의 인식을 깎아내리는 것 정도에 만족하고, 첩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그들의 지식을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수뇌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첩자는 결국 가디언 마탑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신원 확인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무리 대단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정보에 걸릴 사람이라면 첩자로 선정되지 않는다.
강민혁이 이중 삼중으로 신원을 확인했지만 그런데도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남들의 시선을 속이고 가디언 마탑의 일원이 되었다. 그래서 세계 마법 연합은 최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은, 가디언 마탑이 하고 싶은 대로 둘 때라고 판단했다.
“프랑스 협회장님께서 6서클 마법에 성과가 있다고 발표하신 이후, 기자들이 계속 그 시기를 묻고 있습니다. 일단 중요한 건 가디언 마탑이 보유한 6서클 마법을 빼돌리는 겁니다. 그래야만, 사람들로 하여금 가디언 마탑이 아니라 할지라도 선택지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첩자에게 지시한 사항입니다. 6서클 마법이 공개되었다고 하니, 금방 결과가 있을 겁니다.”
지난 기자회견.
앙투안 발라르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근거 없는 공략을 내걸었다.
6서클 실험?
아직 성과랄 게 없었다.
계속해서 도전하고는 있지만, 성공을 확신할 만큼의 유의미한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 마법 협회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것은 본인들의 연구가 성과를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첩자를 통해서 마법을 빼낼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었다.
공개 모집.
그것이 가디언 마탑의 실수였다.
마법 지식은 대단하나, 아직 사회 경험이 없는 애송이라는 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한 사내가 말했다.
“그런데 정말일까요? 첩자의 말에 의하면, 가디언 마탑은 자연의 마나로 서클을 형성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강민혁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가디언 마탑을 무너트린 이후에, 반드시 그를 생포해서 앞으로 마법 지식 발전에 활용해야만 합니다.”
“아마 사실이겠죠. 첩자가 거짓을 말할 리는 없을 테니까요.”
그들이 동요한 이유였다.
첩자의 보고는, 세계 마법 연합의 수뇌부들을 감탄시킴과 동시에 ‘공포’에 빠트렸다.
강민혁.
그에 대해 알아갈수록 소름이 돋았다.
평생을 마법에 바친 대마법사들도 닿지 못한 영역을, 강민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결과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강민혁을 이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첩자를 성공적으로 침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안감에 한참이나 회의를 진행했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일단 첩자가 정보를 빼돌리는 것.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첩자가 임무에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첩자의 하루, 첫째 날-
프랑스 마법 협회의 첩자 피에르 라루스(Pierre Larousse)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최우선으로 6서클 마법을 빼돌리자. 그래야, 프랑스 마법 협회가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
앙투안 발라르의 특명이었다.
처음부터 나서면 의심을 받을 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죽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과하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되도록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지 않도록 질문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가디언 마탑의 시설에 감탄했는데도,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시작된 수업.
그의 평정심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그때부터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이건 신세계야.’
서클 형성.
마나 룸 훈련.
강민혁이 말하는 것은 그를 신세계로 인도했다.
피에르 라루스는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마법 협회에서 교육을 받았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특수부대의 일원이었고, 프랑스 마법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 그래서 그는 세계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한다. 같은 세계 3대 세력인 영국과 미국의 교육 수준이 프랑스보다 좋다고 말하는 부류가 있지만, 직접 경험해본 그의 입장에서는 프랑스가 단연 최고였다.
그런데.
영국도, 미국도 아니었다.
가디언 마탑의 교육 과정을 경험하니, 자신이 얼마나 작은 우물 안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위험해, 정말 위험해.’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가디언 마탑은 위협적이었다.
기존의 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릴 잠재력이 있었다.
그날의 훈련이 끝나자, 피에르 라루스는 사람들 몰래 미리 준비해둔 마법 아티팩트로 연락을 보냈다.
[1일차 보고를 보냅니다. 가디언 마탑은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방법을 통해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자연의 마나를 받아들여서 서클을 형성하는 방법과..]
왠지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정보를 빼돌리는 행위라서?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냥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첩자들은 안다.
보통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는 그 세력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런데 이런 교육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풀 정도라면, 가디언의 실체는 대체 어느 정도일까?
입이 메말랐다.
결국 간략하게 축약해서 보고를 마친 피에르 라루스는, 한참이나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았다.
-첩자의 하루, 둘째 날-
그날의 훈련은 조금 달랐다.
강민혁은 마탑원들에게 말했다.
“저는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이 실험실의 마법사로 남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고로 일주일에 최소 2번 이상 실전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테스트의 방식은 다양합니다. 마법사들끼리 1대1 대결을 진행하기도 하고, 외부 세력을 초빙해서 강화 전사를 상대하는 자리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팀을 이루어서도 대결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실전 테스트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한 마탑원의 경우에는, 매월 점수를 정산해서 특혜를 부여할 생각이니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1대1 대결.
피에르 라루스는 자신이 있었다.
그는 5서클 마법사고, 실력이 있기에 실력 전형에서 당당하게 합격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훈련의 대상은 100명의 마탑원만이 아니었다.
유재명의 추종자들도 이제 훈련에 합류하였고, 본인을 한태주라고 밝힌 4서클 마법사와 붙었다.
그리고.
“체인 라이트닝!”
치지지지직!
그의 마법은 위협적이었다.
체인 라이트닝을 피했는데도 끝까지 따라오더니, 피에르 라루스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시간의 여유를 두지 않았다. 유재명의 추종자들은 이미 수백, 수천 번의 대련을 반복했던 사람들이다. 마법사를 상대하는 그들의 노하우는 평범하지 않았고, 서클의 차이마저 넘어버리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패배했다.
넘실거리는 번개의 마나가 자신을 위협하자, 피에르 라루스는 마나를 거두는 것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내가 지다니.’
충격적이었다.
피에르 라루스는 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프랑스 마법 협회 특수부대 출신이기에, 사실 싸우는 것에 오히려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한태주와의 대련은 뭔가 달랐다.
강민혁에게서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을 터득한 그는, 피에르 라루스가 번거로운 부분만을 집요하게 공략해서 결국 5서클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게 바로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차이였다. 강화 전사는 성장함에 따라 인간 자체가 강해지지만, 마법사는 결국 마법을 사용해야만 자신의 위력을 선보일 수 있다. 5서클 마법을 철저하게 봉쇄를 당한 상황에서, 피에르 라루스는 4서클 마법사에 불과한 한태주에게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충격에 빠졌다.
자부심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은 보고고 뭐고, 자신이 패배했던 순간을 되새기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첩자의 하루, 셋째 날-
마법 도서관에 들렸다.
경악스럽게도, 그곳에는 마법 학계의 보물인 ‘6서클 마법서’가 아무렇지도 않게 꽂혀 있었다.
그는 곧바로 6서클 마법을 확인했다.
가장 최우선으로 강조되는 임무기에, 6서클 마법의 체계를 익혀서 프랑스 마법 협회에 알릴 생각이었다.
마법의 체계는 정말 대단했다.
일반적인 마법이 아니다.
무려 중급의 마법.
이런 마법을 강민혁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자, 그는 감탄이 생김과 동시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는 정말로 마법 학계를 위해 가디언 마탑을 창설한 걸까?’
앙투안 발라르는 말했다.
강민혁은 철저하게 본인의 이기심을 위해 마탑을 창설한, 오히려 가장 위험한 종류의 인간이라고.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서클 형성과 마나 룸과 같은 비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했으며, 마탑의 시설만 보더라도 마법사들을 배려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장 마나 룸 훈련에 사용되는 마나석의 가격만 하더라도 엄청나지 않은가. 이미 그러한 혜택을 겪은 상황에서 마법 도서관에 배치된 마법서들을 보자, 그의 목적의식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확실했다.
강민혁은 마법 학계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 밑에 있다면, 굳이 ‘임무’를 강요받지 않아도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게 정말 옳은 일일까?’
피에르 라루스도 마법사다.
한때는 순수하게 마법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의 행동으로 프랑스 마법 협회는 세력을 키울 수 있을지 몰라도, 마법 학계는 어떻게 될까?
강민혁은 마법 학계에 필요한 사람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강민혁을 무너트리는 행위가, 갑자기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기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마법 협회가 평생을 그에게 투자했는데도, 지금은 강민혁이라는 사람에 끌리고 있는 것이니까.
그날도 그는 보고를 포기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첩자의 하루, 일주일 째-
그는 결국 새로운 서클을 형성했다.
다운 그레이드의 소월 심법이라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서클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날.
강민혁은 마탑원들에게 말했다.
“밖에서 저에 관한 온갖 유언비어가 떠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지난 일주일간 저의 진실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마법 학계의 발전이고, 가디언 마탑이 이 세상의 재앙을 무너트리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각자만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좋은 것일 수도,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난 과거를 묻고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저는 여러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러니 저와 같이 나아갑시다.”
담백한 음성이었다.
그건 진심이었고, 강민혁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만약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면죄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다.
그 말에 피에르 라루스는 매료되었다.
사실 그간 고민이 많았다.
진심으로 가디언 마탑의 일원이 되고 싶은데, 자신이 첩자라는 사실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면죄부를 부여받았다.
피에르 라루스는, 그날 저녁에 아티팩트로 연락을 보냈다.
[죄송합니다만, 강민혁 마탑주님을 배신하는 행위는 더 이상 하지 못하겠습니다. 마법 학계를 위해서는 강민혁 마탑주님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간 받았던 은혜를 이렇게 갚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것이 마지막 연락이었다.
프랑스 마법 협회가 15년간 공들여 키운 첩자가 배신을 택하는 데, 겨우 일주일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피에르 라루스와 마찬가지로, 세계 마법 연합의 첩자들이 가디언 마탑으로 마음을 돌렸다.
마법사들의 유토피아.
그곳에서는, 마법사인 이상 첩자들마저도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