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 31. 마법사들의 유토피아(2) >
마법사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강화액은 저효율의 쓰레기다.”
마나석에서 마나를 추출한 강화액으로는, 꾸준히 맞는다 할지라도 서클에 쌓는 실질적인 마나의 양은 많지 않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마나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강민혁이 ‘마나 동화’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 문제점이 어느 정도는 해결되었지만, 애초에 서클에 존재하는 마나의 절대량이 떨어지기에 아직도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만약.
강화액을 사용하지 않고도 양질의 마나를 다량으로 쌓을 수 있다면?
그건 기적이다.
그리고 지금 가디언 마탑의 마법사들은, 강민혁의 설명을 들으면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나 룸의 시스템은 간단합니다. 마법진에는 특별한 체계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로 인해 마나석의 힘으로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마나 룸은 마나가 충만한 공간을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훈련은 이 공간에서 마나를 서클로 인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나의 압력을 버티고 마나를 올바른 방법으로 인도한다면, 강화액을 주입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서클에 마나를 쌓을 수 있습니다.”
다들 심장이 뛰었다.
입이 바짝 메말랐다.
강민혁의 말대로라면 얼마나 엄청난 기술인지를 알기에, 그들은 섣불리 동조할 수 없었다.
말이 안 된다.
정말 저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강화 문명을 대표하는 ‘강화의 기술’ 자체가 부정을 당하는 것이다.
한 마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게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마나를 집중시키는 마법진, 자연의 마나를 서클로 인도하는 방법, 그 모든 것이 세상의 상식과는 다릅니다. 강민혁 마탑주님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 의료 마법. 그간 강민혁 마탑주님은 상식을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믿고 싶지만, 그래도 이건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모두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가디언 마탑.
이곳에서의 생활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매 순간이 의문투성이였다.
항상 물음표가 떠올랐고, 강민혁의 설명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면 그것은 느낌표 수십 개로 바뀌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마나를 집중시키는 마법진은 직접 경험해보시면 됩니다. 아마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마나를 인도하는 방법일 텐데, 저는 이 방법을 강화 전사들이 사용하는 심법을 참고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심법의 이름을 소월(小月) 심법이라 부릅니다. 소월 심법을 사용하면 주변의 마나를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강화액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으로 양질의 마나를 서클에 축적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과정을 위해서는, 강화액으로 만들어서 당장에 무너질 것 같은 약하디약한 서클이 아니라 단단하고 자연의 마나에 익숙한 새로운 서클이 필요하겠죠.”
소월 심법.
정상훈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강민혁은 가디언 마탑을 준비하면서, 일반 마탑원들에게 가르칠 다운 그레이드 버전을 만들었다.
가장 위에는 월하 심법.
그 밑에는 정상훈의 소월 심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운 그레이드 버전의 소월 심법.
이들이 배우게 될 소월 심법은 가장 마지막에 있는 것이었다.
보급 형태의 소월 심법이었고, 강민혁의 설명에 그들은 마른침만 삼켰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강민혁이 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개소리라고 치부할 말도, 그의 입에서 나왔다면 그 의미와 무게가 전혀 다르다.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었다.
“마나석을 사용하는 마법진이라면 훈련을 할 때마다 상당한 비용이 소모될 텐데, 혹시 그건 어떻게 처리되는 겁니까?”
정말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그는 강민혁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이었고, 성공을 전제로 물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마나석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가디언 마탑은 마법 학계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여러분들을 상대로 상업적인 이득을 취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세계 마나석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제가 이곳의 마탑주이지 않습니까?”
싱긋, 웃는 강민혁.
그러자 마법사들은 동시에 생각했다.
‘아아.’
‘마탑주님 졸라 멋있어.’
‘진짜 이게 꿈이 아니기를.’
이제는 강민혁이, 그들의 인생을 밝혀주는 신(神)처럼 느껴지는 마탑원들이었다.
설명은 끝났다
훈련의 방법과 소월 심법을 충분히 숙지한 마법사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훈련을 진행했다.
“후우.”
헨리 덴커가 숨을 크게 내뱉었다.
마나 룸.
정말 낯선 훈련이다.
아직도 이게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지만, 보상이 너무 크기에 도전하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삑-
[마나의 압력에 휩쓸리면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천천히 마나를 일으키고, 적응되었을 때 마나를 서클로 인도하시면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아는 자연의 마나는 거칠고 공격적이겠지만, 소월 심법을 사용한 후부터는 마나를 적대해서는 안 됩니다.]
훈련장 바깥.
정상훈이 헨리 덴커의 훈련을 지켜봐 주고 있었다.
아직 훈련이 익숙하지 않기에, 강민혁은 정상훈과 유재명의 추종자들을 동원해서 마탑원들의 훈련을 지도해주도록 명령했다. 사실 3서클 마법사인 정상훈이 헨리 덴커를 가르치는 그림은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상훈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헨리 덴커는 그의 말을 명심했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화악.
마나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마법진이 빛을 발하면서, 정말 강민혁이 설명했던 대로 마나의 압력이 그를 덮쳤다.
“...흐읍?!”
숨이 턱 막혔다.
마나의 압력은 일부러 최하 출력으로 떨어트려 놓았다.
그런데도 헨리 덴커로서는 매우 생소한 충격이었다.
강화 문명의 사람들은 자연의 마나와 친숙하지 않다. 정제된 마나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힘을 쌓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마나와 직접 부딪치면서 강해지는 방법은 그들에게 강한 압력을 선사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마음 같아서는 훈련을 중단하고 싶었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인물들은 마법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연의 마나를 굴복시킨다면.
마법사로서의 자신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참았다.
소월 심법을 운용하였고, 강민혁이 말해주었던 대로 최대한 안전하게 마나를 인도하려고 노력했다.
삑-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정상훈의 칭찬이 들렸다.
서클의 경지가 자신보다 낮고, 나이도 17살밖에 되지 않은 상대지만 그래도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정상훈은 밖에서 계속 옳은 방법을 지도해주었다. 이미 성공한 그의 선례가 많은 도움이 되었고, 헨리 덴커는 어느 순간부터 마나 룸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무아지경(無我之境)의 경지. 주변의 소음이 사라져버렸다. 강민혁은 이번 시간을 통해서 ‘마나 룸 훈련’에 적응하는 정도로 끝내자고 말했지만, 헨리 덴커는 자신도 모르게 그 이상의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게 위험한 상태였다면.
정상훈은 훈련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출력을 끊어버린다면, 헨리 덴커를 압박하던 압력은 모두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헨리 덴커의 표정이 너무나도 편안했다.
헨리 덴커의 서클이 활짝 열리더니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그의 몸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삑-
[훈련이 종료되었습니다.]
파스스스-
마나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헨리 덴커의 안에는 새로운 형태의 서클이 형성되어 있었다.
헨리 덴커는 천재였다.
자신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자연의 마나와 친숙한 육체를 타고났다.
그로 인한 성과.
헨리 덴커가 서클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주변에 있던 마탑원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이었어?”
“서클을 새로 형성하는 건 어떤 기분이야? 내게도 말해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관심에, 헨리 덴커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나도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어. 서클로 인도한 마나로 인해서 서클의 외피가 녹아내리더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서클이 형성 됐어. 확실한 건 마탑주님의 말씀처럼 자연의 마나로 형성한 마나는 단단하고 더 강력한 힘을 품고 있어. 예전에는 서클에 마나가 회전하면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지금은 어떠한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을 단단함이 있어.”
사람들이 감탄했다.
어쩌면.
헨리 덴커의 말은 쇼일지도 모른다.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면, 헨리 덴커의 말만 믿고 서클 형성이 가능하다는 건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실 마나 룸 훈련을 진행한 마법사들은 ‘서클 형성’이라는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모두 소기의 성과를 얻었다. 생기로 넘실거리는 서클. 그것만으로도 강민혁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강민혁이라는 괴물은, 정말 본인의 힘으로 새로운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확신했다.
‘가디언 마탑은 진짜다.’
마탑원들에게는 각자만의 사연이 있다.
헨리 덴커처럼 위험을 무릅쓴 인물들도 있지만, 지금만큼은 그 선택이 절대 후회되지 않았다.
처음에 가디언 마탑에 합격한 사람들은,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도 숨길 수 없었다.
세계 마법 연합.
그들은 마법 학계의 지배자다.
그런데 그들의 미움을 받는 가디언 마탑의 일원이 된다면,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그래서 제발 가디언 마탑이 위험을 감수한 가치가 있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세계 마법 연합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목숨을 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며칠이 지난 지금.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번에 새로이 합류한 100명의 마탑원들은, 그 누구도 가디언 마탑에 소속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특히 헨리 덴커.
강민혁의 추종자가 되어버린 그는,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때?]
“마탑의 기밀이라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이곳은 정말 마법사들의 유토피아에요.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미국 마법 협회도 좋은 훈련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지만, 가디언 마탑과 비교하면 교육 수준이 발끝도 쫓아오지 못해요. 강민혁 마탑주님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어요. 마법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곳보다 좋은 환경은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
[...그 정도야?]
선배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디언 마탑.
아직 외부에서는 말이 많다.
그들을 깎아내리는 온갖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헨리 덴커의 반응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예. 제가 어제 가디언 마탑에서 제공하는 마법 도서관에 갔어요. 그런데 거기에 뭐가 있었는지 아세요? 무려 6서클 마법까지 무료로 공개되어 있었어요. 가디언 마탑의 일원이라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마법 도서관에, 마법 학계의 보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있었다고요. 솔직히 선배님도 얼른 가디언 마탑으로 소속을 옮기셨으면 좋겠어요. 가디언 마탑이라면, 선배님이 그토록 바라던 6서클의 경지에 오르는 것도 절대 불가능한 게 아니에요.”
[세상에 그런 곳이 있다니.]
경악스러웠다.
6서클 마법.
그건 보물이라 할만한 것이다.
공략을 내걸었기에 공개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았으나, 마법 도서관 배치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탄생한 시스템.
헨리 덴커는 가디언 마탑에 푹 빠졌다.
계속되는 헨리 덴커의 자랑에, 선배로서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너라도 일이 잘 풀려서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난 가디언 마탑으로 갈 수 없을 거야. 프랑스 마법 협회에서 강경책을 펼친 이후로,
한국행을 시도하던 마법사들이 줄줄이 처벌을 받았거든. 하지만......... 정말 만약에 한국으로 갈 일이 생긴다면, 꼭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줘.]
이미 그의 마음은 가디언 마탑을 향했다.
헨리 덴커라는 믿을 수 있는 후배의 말이라면, 유언비어와는 다르게 가디언 마탑 안에는 마법사들의 유토피아가 있을 터.
헨리 덴커가 말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헨리 덴커는, 의자에 몸을 파묻고는 숙소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참 비교되었다.
미국 마법 협회에서는 이보다 좋지 않은 숙소에서 지냈는데, 지금은 과분할 정도로 좋은 숙소를 혼자 사용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가디언 마탑의 혜택은, 다시 확인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완전히 달라진 삶.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가디언 마탑에 대한 자부심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이었다.
‘이곳은 마법사에게 미래가 있다는 확신을 부여해.’
그게 중요했다.
세상의 편견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가르침.
마법사도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강민혁의 말은, 헨리 덴커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건 비단 헨리 덴커만의 일이 아니었다.
100명의 합격자.
그들에게도, 동시다발적으로 헨리 덴커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