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 30. 한국으로 몰려드는 사람들(3) >
강민혁을 처음 보면 사람들은 똑같은 생각을 떠올린다.
‘생각보다 더 어리네.’
마법 혁명.
비무행.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을 떠나, 강민혁의 외모에 사람들은 아주 잠깐이지만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10대 후반의 나이에 하나의 문명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탄과 당황을 동반할 뿐이었다.
마법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
최소 10년 이상 마법을 공부한 사람들이기에, 강민혁은 지원자들 앞에서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쾅!
화르르르륵!
강렬하게 일어나는 불길에, 23번 지원자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멕시코에서는 5서클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사내였지만, 강민혁의 마법 연계에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23번 지원자의 문제는 마법의 연계가 매끄럽지 않습니다. 마법이란 시간과 마나를 투자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얻어내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틈을 주는 마법의 연계는, 오히려 반격의 여지를 허락하게 됩니다. 강력한 마법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가 실패했을 때, 치밀하지 못한 마법의 연계가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목소리는 냉정했다.
5서클 마법사는 어디 가서 대가(大家)의 소리를 들을 텐데도, 강민혁은 주저 없이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말투는 공손했으나, 그게 끝이다.
강민혁은 명확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같은 5서클이어도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
다음 도전자가 호기롭게 나섰지만, 그 또한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여러분들이 명심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마법과 마법의 대결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승리하는 방법은 상대의 캐스팅을 방해하고 먼저 타격하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본인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하지 않은 무모한 수입니다. 그다음을 생각하십시오.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그 반응에 따라 어떤 대응을 보여야 할지. 여러분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머릿속으로 결투의 양상을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지도 대련이었다.
강민혁이라는 압도적인 실력자 앞에서, 5서클 마법사들조차도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실망했던 것이 사실이다.
강민혁은 한국에서도 어린 나이인데,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더욱 어려 보인다. 최소 30대 이상의 사람들로서는 당연히 나이에서부터 오는 불신을 어찌할 수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생각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어린 나이는 잊게 만들어버리는 위압감. 실력을 동반한 가르침이 주변의 분위기를 압도해버리자, 어느 순간부터는 강민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확실했다.
이 사람이었다.
마법 혁명을 일으키고, 비무행에서 강화 전사를 무너트린 세계 최고의 마법사.
같은 5서클 마법사마저 어린애로 만들어버리는 강민혁의 무력에, 사람들은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이게 우리가 한국을 찾은 이유지.’
강민혁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지도 대련과 같은 방식을, 그 누구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만약 시험에서 탈락한다 할지라도.
강민혁의 가르침은 천금과도 같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무너지는 참가자들.
그러다, 30번째 참가자가 호명되었다.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 사내.
그 사내는 바로 해운대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천호명이었다.
삑-
대련이 시작되었다.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천호명은 주저하지 않고 마나를 일으켰다.
화악-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
천호명의 매서운 눈빛이 강민혁을 향했다.
“아쿠아 웨이브(aqua wave).”
콸콸콸!
메말랐던 땅바닥에서 물길이 범람했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파도에 강민혁의 눈빛이 변했다. 예민한 감각에 마나의 움직임이 보였다. 천호명은 아쿠아 웨이브라는 3서클의 간단한 마법으로 자신의 시야를 현혹하는 사이에, 파도 너머에서 다른 마법의 캐스팅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앙!
파도가 강민혁을 덮쳤다.
강민혁이 실드로 막아내는 순간, 파도를 뚫고 나타난 강력한 물줄기가 있었다.
“워터 스트라이크(Water Strike)!”
퍽!
콰콰콱!
일직선으로 발사된 물줄기가 그대로 강민혁을 강타하였다.
강민혁은 간발의 차이로 물줄기를 막아냈다. 상대의 의도가 후속타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워터 스크라이크가 작렬하는 순간 스톤 월(Stom Wall)을 일으켰다. 상당히 매끄러운 방어였다. 그러나 천호명은 본인이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연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아쿠아 애로우.”
펑펑!
1서클 마법.
하지만 캐스팅을 방해하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천호명은 더블 캐스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마법을 섞었고, 틈이 날 때마다 강력한 일격을 먹였다.
“아쿠아 캐논(aqua Cannon)."
콰앙!
퍽!
작렬하는 물의 포탄에 강민혁이 히죽 웃었다.
사실 마법사들의 가장 큰 문제는 1대1 전투 경험이 떨어지는 마법사가 많다는 것이다. 5서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보통 강화 전사 뒤에서 안전하게 마법을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지금과 같은 1대1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게 마법 학계의 현실이다. 그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천호명의 전투 감각은 지원자 전체를 통틀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물의 마나가 천호명의 마법에 반응하고 있어.’
엘리샤와 같은 케이스였다.
엘리샤는 불의 지배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불의 마법을 사용하는 반면, 천호명은 본인이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물의 마법이 본인에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물의 마법을 위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물의 지배력의 특별한 효과는 알지 못했다.
천호명의 마법에 반응하는 마나.
강력한 물의 지배력으로 인해서, 그가 사용하는 물의 마법은 일반적인 것보다 1.5배 이상은 강했다.
‘괜찮네.’
이제껏 상대한 지원자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천호명만큼은 아니었다.
천호명이 본인의 재능에 걸맞은 마법 지식을 배운다면, 그가 발전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30번째 지원자 천호명, 기억해야겠어.’
하지만.
강민혁은 정령 계약을 함부로 말해줄 생각은 없다.
6서클 마법과는 다르게, 정령 계약과 같은 특별한 방법은 돈독한 신뢰 관계를 형성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천호명은 자신에게 그러한 신뢰를 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아무리 특별한 재능을 보인다 할지라도 곁에 둘 생각은 없다.
천호명은 특별하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마법 연계를 보여준다 할지라도, 강민혁이라는 태양 앞에서는 한낱 반딧불이에 불과하다.
“썬더 크로스(Thunder Cross).”
파바박!
빠지지지지직!
단 한 번의 반격.
천호명이 눈을 부릅떴다.
그는 황급히 방어 마법을 사용했지만, 틈을 절묘하게 노린 공격에 그는 전기에 노출되고 말았다.
강력한 충격.
결국 천호명조차 무릎을 꿇었다.
“다음.”
그때, 지원자들은 깨달았다.
실전 테스트에서 강민혁을 이기는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테스트가 모두 끝났다.
정확히 30명.
마탑 수뇌부들과 회의 끝에, 합격자 명단을 선별했다.
탈락한 사람들도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마법사들이었지만, 강민혁은 아쉬움을 보이지 않았다.
서클의 경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강민혁은 싸울 줄 아는 마법사가 필요한 것이고, 30명의 합격자는 적어도 그 조건에 부합했다.
회의가 끝나고.
유재명이 강민혁에게 다가왔다.
“아무리 철저하게 신원을 조사한다 할지라도, 합격자들 중에는 분명히 세계 마법 연합의 첩자가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닐지라도, 원하는 마법 지식만 충족하고 곧바로 마탑을 떠나는 마법사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마탑의 규율은 강제성을 부여하지 못합니다. 가디언이 세계 마법 연합의 일원이라면 강제성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저희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입장이지 않습니까?”
괜한걱정이 아니다.
강민혁의 방법은 위험하다.
마법 학계의 발전을 위한 일인 것은 알겠으나, 이러한 방법으로는 마법의 유출을 막을 수가 없다.
“알고 있습니다.”
유출의 가능성은 다양하다.
굳이 내부의 첩자가 아닐지라도, 협력 관계에 있는 마법 세력들을 통해서도 유출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소중한 지식이었다면, 강민혁은 다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마법 학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제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런 방식이라도, 마법 문명이 6서클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6서클 마법을 알아내는 것과 저희의 행보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은 가디언 마탑의 비전을 알고 계십니다. 만약 유재명 대마법사님이라면, 6서클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진다 할지라도 가디언 마탑을 떠날 것 같으십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유재명이 피식, 웃었다.
맞는 말이다.
6서클 마법의 가치를 알기에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사실 가디언의 진정한 가치는 6서클 마법에 있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유출을 통해 얻는 마법은 중급 마법에 불과해.’
중급 마법.
그것도 대단한 것임에는 맞다.
그러나 유재명과 같은 강민혁의 최측근 라인은 모두 상급 마법을 익혔다.
강민혁은 최상급 마법을 사용하기에, 다른 이들이 6서클의 세계에 들어서도 위력에서는 차이가 난다.
강민혁이 말했다.
“6서클 마법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명분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가치는 가디언 마탑에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첩자들이 마탑에서의 생활을 충분히 즐겼으면 합니다. 그들이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질수록, 가디언 마탑이 세계 마법 연합의 견제로 무너질 수 없는 세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요.”
오만했다.
아니, 그것은 정확한 근거를 가진 자신감이었다.
강민혁의 발언에 유재명은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는 그와 거래의 관계를 맺었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자신보다 ‘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마침내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합격자 발표.
명단이 공개되는 순간, 인터넷이 발칵 뒤집혔다.
-헐.
-합격자들 이름값 봐.
-대한민국 무소속 5서클 마법사는 전부 가디언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해운대의 대마법사가 가디언 소속이라니. 한국 마법 협회는 이제 가디언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겠네.
사람들이 경악했다.
강민혁은 가능성과 열정을 보고 3서클 이하의 마법사를 70명이나 선별했지만, 나머지 30명의 이름값이 너무나도 대단했다. 5서클 마법사만 무려 13명에 달하는 상황. 이 정도의 세력이라면, 사실상 세계 마법 연합의 3대 세력과 비교해도 전력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3대 마법 세력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프랑스 마법 협회도 5서클 마법사가 10명이 넘지 않아. 그런데 가디언 마탑은 시작부터 13명의 5서클 마법사를 데리고 시작하다니. 게다가 유재명은 세계 최초의 6서클 마법사고, 강민혁은 세계 최고의 마법사잖아. 이건 말도 안 돼.
가디언 마탑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세계 마법 연합의 의도는 실패했다.
그들은 가디언 마탑을 시작부터 무너트리려고 했지만, 결국 강민혁은 범접하기 힘든 세력을 만들어버렸다.
가디언 마탑에서 합격자들에게 메일을 돌렸다. 지정된 날짜부터 마탑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는 알림이었고, 합격자들은 앞으로 가디언 마탑에서 6서클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가디언 마탑에서 어떤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달콤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몰랐다.
강민혁의 말은 옳았다.
6서클 마법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퍼포먼스였고, 진정한 가치는 마탑 안에 있었다.
가디언 마탑.
마법사들의 유토피아(Utopia).
합격자들은 곧,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기회를 쟁취하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