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16화 (116/197)

116화.  < 30. 한국으로 몰려드는 사람들(2) >

기자들이 모인 자리.

앙투안 발라르가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에 세계 마법 연합 소속 마법사들이 무단으로 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디언 마탑의 정책이 마법사들에게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그건 겉만 번지르르한 공략에 불과합니다. 강민혁은 6서클 마법을 보상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강민혁은 16개의 6서클 마법을 개발하는 동안, 마법 학계에는 그 어떠한 티도 내지 않았습니다. 강민혁이 바라는 건 마법 학계의 발전이 아닙니다. 그는 본인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상황에 6서클 마법을 공개했을 뿐이고, 비무행에서 보여주었던 마법들에 대해서는 해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강민혁의 진실입니다. 강민혁은, 필요에 따라 마법 학계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의도를 깎아내리는 것.

그것이 정치의 시작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6서클 마법 공개는 대단한 일이나, 앙투안 발라르는 그걸 잘못된 일처럼 말했다.

“저는 가디언 마탑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로 프랑스 마법 협회뿐만 아니라, 세계 마법 연합의 마법사가 무단이탈을 할 경우에는 앞으로 강력하게 처벌하겠습니다. 마법 협회는 마법사들의 성장을 위해서 많은 것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득을 쫓아 본래의 자리를 이탈하는 것은, 처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강경책(强硬策).

앙투안 발라르는 힘을 택했다.

세계 마법 연합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마법사들의 무단이탈과 잡음을 막아내는 방법을 말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정점의 자리에 머무르고 있던 그는, 단순히 강경책만으로는 마법사들의 불만을 사그라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채찍은 항상 당근을 동반해야만 하는 법이다. 상대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여야만, 궁지에 몰린 쥐들이 고양이를 물 엄두조차 내지 못 한다.

“그리고 6서클 마법은 가디언 마탑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프랑스 마법 협회는 그간 6서클 마법 연구에 전념하고 있었고, 최근에 상당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만약 6서클 마법 개발에 성공한다면, 프랑스 마법 협회는 세계 마법 연합의 소속 단체에 한하여 마법을 공개할 생각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세계 마법 연합은 앞으로 연구를 공유하겠다는 협약을 맺기로 결정했습니다.”

길을 열었다.

가디언 마탑이 아니더라도 6서클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말뿐이라도, 미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기자들이 빠르게 앙투안 발라르의 발언을 기사로 작성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가 발표되었다.

효과는 탁월했다.

마법사들의 탈주 현상이 잦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강경책과 당근.

그렇게 앙투안 발라르가 발등에 떨어진 불을 처리하는 사이, 가디언 마탑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창단식 이후.

가디언 마탑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지원서가 몰려들었다. 창단식의 임팩트는 그만큼 대단했고, 세상에 마법사가 이렇게 많았나 의문이 생길 정도로 지원서가 산처럼 쌓였다.

[이름: 강성우]

[5서클 마법사]

[지원 동기: 강민혁 마탑주님의 연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왜 마법을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되돌아보았고, 가디언 마탑이라면 저를 옳은 길로 인도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가디언 마탑이 원하는 인재상이 마법에 대한 열망과 게이트 너머의 몬스터를 소탕하겠다는 의지라면, 지난 10년간 용병으로 활동했던 제 경력이 그를 증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참, 강성우 정도 되는 인물이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지원서를 작성하다니.”

이학범이 황당함에 웃음이 나왔다.

강성우.

프리랜서 용병으로 활동하는 마법사 중에서는 아마 제일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마법사답지 않게 호전적인 전투 방식으로 유명한데, 그가 가디안 마탑에 입탑 의사를 밝혔다.

사실 5서클 마법사의 지원은 프리 패스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가디언 마탑의 경우에는 달랐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5서클 마법사들로 인해서, 딱히 5서클 마법사의 영입이 아쉬운 입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은거기인(隱居奇人)들도 많다 보니, 지원서를 확인할 때 강민혁은 명확한 두 가지의 기준을 제시했다.

1. 확실한 신분.

2. 마탑의 의도와 부합하는 자.

실력은 그 뒤의 문제다.

확실한 신분의 경우에는 단순히 첩자를 걸러내기 위한 과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원자가 범법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일 가능성. 그것 또한 포함한 포괄적인 확인 절차를 말한다.

사실 첩자는 이미 예상하고 있는 부분이다.

러시아 마법 협회는 첩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먼저 발을 뺐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아직도 모습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는 첩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뻔하다. 강민혁이 6서클 마법을 공개한다고 했으니, 그걸 터득하고 빼돌리려는 속셈일 터. 그러나 강민혁은 그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고, 어떻게 대처할지도 생각을 끝냈다.

지원서에 첨부된 자료.

그것에는, 강성우의 사생활이 담겨 있었다.

[...강성우는 여성 편력이 심한 인물이다. 그래서 용병 고용의 대가로 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과정에서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총 세 차례의 살인 사건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피해자의 가족이 고소를 진행했으나 강성우의 인맥에 의해 묻혔으며, 최근에도 달라지지 않은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학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성우를 영입할 생각에 흐뭇해하고 있던 그로서는, 강성우에 대한 정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강성우의 범죄 사실.

이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마법 학계에서 소문이 나지 않을 정도라면 강성우가 일을 잘 처리했다는 것인데, 정보에는 강성우의 행적이 샅샅이 기록되어 있었다. 새삼 감탄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지원서를 받은 이후에 일차적으로 괜찮은 인물을 추리고, 강민혁은 개인 정보 세력을 이용해서 그들을 분석했다.

그것의 결과가 이것이다.

강성우라는 사회적 입지가 높은 인물이 작정하고 숨긴 진실조차, 강민혁에 의해 완전히 드러났다.

“역시 대단하다니까.”

강민혁.

그는 보면 볼수록 양파 같은 사람이었다.

분명히 강민혁의 전부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모습이 보였다.

이것 또한 강민혁의 힘일 터.

가디언 마탑이 정보력마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자,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강성우 같은 쓰레기는 가디언에 필요 없지.”

툭.

지원서를 휴지통에 던졌다.

아마 강성우가 탈락했다는 소식이 퍼진다면, 마법 학계가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그가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 할지라도, 가디언 마탑에는 그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많다. 그리고 이런 엄격한 확인 절차가 있어야만, 가디언 마탑은 외부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철옹성을 쌓을 수 있다.

점점 쌓여가는 쓰레기통.

가디언 마탑의 수뇌부는, 며칠간 밤을 새워가며 그렇게 서류 면접을 마무리했다.

열흘 뒤.

드디어 1차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뜨거운 합격 후기다. 아래는 가디언 마탑에서 받은 메일이다.]

(안녕하세요. 가디언 마탑입니다. 이번에 실시한 가디언 마탑원 모집에서 안타깝게도 귀하를 선발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귀하가 보여주신 의지와 열정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 귀하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뜨거운 합격 보소.

-ㅋㅋㅋ 너무 뜨겁잖아.

-너 저번에 2서클 마법사라고 하지 않았냐? 2서클 주제에 지원을 신청하니깐 당연히 탈락하지.

뜨거운 합격.

불합격 지원자들의 인증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당연히 합격자들도 있었는데, 합격의 기준이 예상되지 않을 정도로 각양각색이었다.

[2서클 지원자인데 가디언 마법 서류 심사에 합격했다.]

[마법에 입문한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가디언 마탑에서 합격 메일을 보냈다. 대체 왜 나를 합격시켜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최종 합격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강민혁과 마찬가지로 2년 전에 검을 포기하고 마법으로 전향한 케이스라서, 마법만이 내 유일한 희망이거든. 만약 가디언 마탑에 들어가게 되면, 진짜 내 인생을 걸고 마법을 배울 거다.]

[충격적인 소식! 강성우 서류 면접에서 떨어짐!]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강성우가 가디언 마탑에 지원했다가 광탈했음. 대체 가디언 마탑의 심사 기준이 뭐지? 강성우는 5서클 마법사인데, 그런 실력자를 떨어트릴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아까 보니까 2서클 마법사도 합격했다는데, 진짜로 합격 기준을 예상할 수가 없다.]

-헐.

-2서클 마법사가 합격했다고?

-아니, 그럼 강성우는 대체 왜 떨어진 거야?

난리가 났다.

합격과 불합격으로 인해, 일희일비(一喜一悲)가 갈렸다.

1차 서류 전형의 결과는 전적으로 2가지의 기준을 내세운 결과였고, 강민혁은 그 이후에 실력으로 선발하는 인원은 100명 중에 30명으로 제한했다. 마탑은 만들어진 결과물로 세력을 키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 단단한 기반이 되어줄 인재들이 필요하기에, 나머지 70명은 어린 대신에 마법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마법에 재능이 있는 부류들을 위주로 선발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애초에 심사 전형도 달랐다.

유망주 전형의 테스터들은 간단한 마법 테스트와 면접을 진행한다면, 실력자 전형은 대련을 진행했다.

실력자 전형.

최소 4서클 이상의 지원자들을 상대할 사람은, 바로 마탑주인 강민혁이었다.

마법 연무장.

강민혁이 지원자들을 둘러보았다.

약 백여 명의 마법사들.

고르고 고르고 뽑았는데도, 4서클 이상의 마법사 백여 명이 1차 서류 면접에서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시작은 성공했어.’

창단식의 의도는 먹혔다.

일반 마탑은 지금 지원한 마법사들 중에 5분의 1도 보유하지 못한 것이 현실인데, 강민혁은 이 중에서 30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떨어트릴 생각이었다. 특별 전형은 없다. 정확히 기준에 부합하는 30명만을 선발할 것이고, 그들에게 집중해서 마법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 있다.

지원자들은 각자의 목적이 있다.

어떤 이는 마법사로서 성공하고 싶어서, 어떤 이는 6서클 마법이 탐나서, 어떤 이는 첩자라서.

단순히 고영철의 정보만으로는 이들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자리를 통해 마탑주로서의 위엄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강덕철은 편한 지도자는 상황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지도자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서 위압감을 보여주어야만 하고, 그래야 ‘얕은 신뢰’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딴생각을 할 수가 없다.

강민혁이 검을 포기한 이유.

힘이 없기 때문이다.

후계자로서 위엄을 보여줄 수 없었고, 검사로서는 자신이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마법사로서의 강민혁은, 이들이 범접할 수 없는 까마득한 위치에 있었다.

“1번 지원자.”

“예."

한 사내가 나섰다.

이름은 존 조스트(Jon Jost).

미국 태생의 4서클 마법사였다.

그가 앞으로 나서자, 강민혁이 말했다.

“대련은 상대의 수준에 맞춰서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5서클 마법사지만, 4서클 마법사로서 보여줄 수 있는 역량만으로 싸우겠다는 뜻이다. 합격의 여부는 승패와는 상관이 없다. 만약 나를 쓰러트린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합격하겠지만, 패배가 탈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원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존 조스트를 향하는 강민혁의 시선.

그리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럼 시작하지.”

삑-

시계에 불이 들어왔다.

카운트 다운.

3부터 시작했던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존 조스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캐스팅을 진행했다.

화악-

마나가 빠르게 퍼졌다.

강민혁은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서클의 상관관계와 각인 마법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사실 지원자들은 자신을 상대로 10초도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선공(先攻)의 권한을 허락하였다. 존 조스트의 마법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순간, 강력한 불길이 주변을 휩쓸었다.

“인페르노(Inferno).”

화라라락!

강력한 화염 방사 마법!

위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4서클 마법에 전념한 존 조스트의 선택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막혔다.

“워터 실드.”

팍!

파스스스슥.

불의 원소가 꿈틀거리는 모습에 강민혁은 발 빠르게 워터 실드로 대응했다. 워터 실드와 인페르노의 불길이 맞닥트리면서 수증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강민혁은 인페르노의 범위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그런데 존 조스트는 강민혁의 모습에도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수증기가 시야를 방해하는 바람에, 좌표를 입력하지 못한 것이다.

예상한 상황이다.

강민혁은 일부러 수증기를 일으켰다.

상대의 공격을 역으로 활용하는 방법.

방어가 곧 공격이 되어버린 수에, 존 조스트는 마법을 사용하기도 전에 복부에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을 얻어맞고 말았다.

퍽!

“커억.”

존 조스트의 눈이 커졌다.

복부의 고통에, 그가 침을 줄줄 흘리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고개를 들지 못한 그의 위에서, 강민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실수는 상대의 대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가 불의 원소를 노출하는 순간, 상대는 네 공격을 활용해서 역으로 반격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안일하게 인페르노 마법으로 상황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너의 패배로 이어졌다. 마법의 캐스팅 속도와 위력은 훌륭했다. 그러나 1서클 마법인 매직 미사일에 얻어맞았다고 해서 짐을 칠칠 흘리고 있는 모양새로 봐서는, 네가 전장보다는 실험실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음을 알 수 있지. 그리고 이번 모집은 학자를 선별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목소리는 냉정했다.

강민혁은 포근한 지도자가 될 생각이 없다.

강민혁의 날카로운 시선이 지원자들을 향하자, 그 위압감에 짓눌린 지원자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다음.”

실전 테스트.

아마 백여 명의 지원자를 모두 확인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