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 30. 한국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
부산 해운대.
갑작스럽게 발발한 랜덤 게이트 현상으로, 인근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라미아(Lamia)에게 현혹되지 마!”
“조심해!”
라미아는 반인반수의 괴물.
그녀들이 내지르는 소음에 인간 남자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자, 해운대를 대표하는 천해문의 무인들이 마나로 귀를 보호하며 라미아들을 공격했다. 라미아는 B등급의 몬스터다. 개별 개체의 위력은 크게 강하지 않지만, 문제는 그들이 모였을 때 발휘되는 시너지 효과였다.
바다 위.
미끈한 뱀의 다리로 바다의 표면을 떠다니며, 그들은 무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정신 공격을 퍼부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냥 정면으로 부딪치는 A급 몬스터는 보다 수월하게 사냥할 수 있는데, 바다 위에 형성된 게이트로 인해서 천해문의 무인들은 고전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은 놀랍게도 강화 전사가 아니었다. 뒤늦게 등장한 한 마법사. 파란색의 로브를 펄럭이며 나타난 그는,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더니 빠르게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워터 실드(water shield).”
화악-
마나가 일었다.
푸른색의 얇은 막이 주변을 넓게 덮어버리더니, 사내는 곧바로 더블 캐스팅의 마법을 완성시켰다.
“사일런스 (silence).”
청각 차단 마법.
사내의 수는 매우 적절했다.
마나의 형태 변화를 사용해서 워터 실드를 소음의 방패로 사용하였고, 동시에 워터 실드와 사일런스의 효과를 합쳐버렸다. 이로 인해 라미아들의 소음이 방패 너머로 전해지지 않았다.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난 천해문의 무인들은 어렵지 않게 라미아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이후부터는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졌다. 지형적인 이점과 몬스터의 특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지, 순수하게 무력만 비교하자면 라미아들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워터 캐논(water Cannon)."
펑!
콰콰쾅!
마법사의 지원도 적절했다.
그의 마나에 주변에 풍성한 물의 마나가 반응하였고, 거대한 물의 포탄이 라미아들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일망타진 되는 상황. 마지막 라미아마저 쓰러지는 모습에, 그제야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해문의 1부대장.
그가, 마법사에게 다가가더니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도와드릴 수 있었습니다.”
“저희로서는 천만다행이었네요. 천호명 대마법사님이 근처에 없었더라면, 상당히 애를 먹었을 테니까요.”
둘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천호명.
그는 부산에서 상당한 명성을 떨치는 대마법사다.
물의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마법의 활용 능력이 정말 대단해서 강화 전사들에게도 인정받는 몇 안 되는 마법사였다. 특히 천해문과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천해문이 다른 강화전사들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마법사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간 천호명이 보여준 능력이라면 마법사라는 사실을 떠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입문을 제안했다.
“언제쯤이면 저희의 구애를 받아주실 생각이십니까? 천해문의 문도들은 천호명 대마법사님이 저희와 함께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무소속으로 활동하시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뒤를 맡아줄 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직설적인 제안.
천호명은 얕게 웃었다.
천해문에 입문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만약 그런 선택을 내린다면, 마법사라 할지라도 좋은 대우를 받으며 권력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죄송합니다만,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마법사로서의 성장입니다.”
단칼에 거절했다.
1년 전.
그는 심장에 6번째 서클을 형성했다. 그래서 6서클 마법사로서의 자격 요건을 갖추었지만, 6서클 마법을 알지 못해서 5서클로 지낸 세월이 벌써 1년이 흘렀다. 마음이 답답했다. 자신의 실력이 모자란 게 아니라 지식의 부재 때문에 생긴 일에, 그는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예."
며칠 전.
천호명은 가디언의 창단식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시연회에서 유재명이 사용하는 마법에, 이미 서울에 ‘지원서’를 보낸 상태였다.
사람들은 천호명을 해운대의 대마법사라고 부르지만, 이제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날 때였다.
천호명이 말했다.
“곧 서울로 떠날 생각입니다.”
SNS에 화제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디언 열풍’이라고 불렀다.
[급보: 천호명 김해 공항에서 포착!]
[해운대의 대마법사 천호명이 김해 공항에 나타났음. 보니깐 서울행 비행기를 타던데, 역시 소문대로 가디언에 지원하려는 게 아닐까? 그런 거라면 진짜 대박이다. 유재명과 강민혁, 벌써 2명의 대마법사를 보유하고 있는 가디언 마탑이 천호명마저 영입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와, 실화냐?
-사진을 보니깐 진짜네.
-천호명으로서는 가디언이 매력적이기는 하겠지. 6서클 마법을 무상으로 지급하겠다는데, 무소속인 천호명의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바로 인증 릴레이.
서울로 향하는 대마법사들이 포착되면, 사람들은 그들의 사진을 개인 SNS에 올렸다.
그렇게 공개된 대마법사의 숫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알려진 무소속 대마법사들은 모두 움직이는 것 같을 정도로, 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널널했던 한국행 비행기가 도착할 때마다, 이전과는 다르게 외국인들이 비행기에서 우르르 내렸다.
[전 세계적으로 서울행 비행기 매진 현상]
[...가디언의 창단식 영상이 발표된 이후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의 좌석이 모두 매진되고 있다. 가디언 마탑은 국적을 제한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를 잡기 위해서 전 세계의 마법사들이 한국행을 택한 것으로 보이며, 그로 인해 인천 공항은 몰려드는 인파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편, 비행기 티켓 가격이 폭등하며 비행기 좌석을 고가에 양도하는 암표(暗票) 판매도 성행하고 있다.]
-여기가 한국이 맞습니까?
-외국인들 머릿수 좀 보소. 가디언이, 한국 관광 산업에 큰 힘을 보태네.
-아니, 적당히 좀 와야지. 외국인들이 이렇게 많이 오면, 한국인이 가디언에 들어갈 자리는 있냐?
서울.
가디언의 본거지로 향하는 모든 이동 수단이 매진되었다.
그만큼 가디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다.
강민혁의 의도는 먹혔고, 유재명의 시연회를 지켜본 사람들은 가디언에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해. 마법 혁명을 일으킨 강민혁이 마탑주이고, 학자로는 이학범이 있으며, 강민혁은 ‘정상훈’이라는 제자를 만들어냈어. 그리고 세계 최초의 6서클 마법사인 유재명도 있는 데다, 강민혁은 6서클 마법을 무료로 공개하겠다고 약속까지 했잖아. 그야말로 마법사로서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곳인데, 마법사라면 당연히 가디언에 들어가고 싶겠지.
가디언.
그 이름 하나에 세계가 들끓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지금의 현상이 단순히 소속이 없는 마법사들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속이 있는 마법사들.
그들도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창단식이 진행되던 시각.
미국 마법 협회의 마법사 헨리 덴커(Henry Denker)는 몰래 창단식의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마탑의 시작을 알리겠습니다. 마탑의 이름은 가디언. 가디언이, 앞으로 마법 학계를 옳은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강민혁의 발언은 곧바로 번역되었다.
가디언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에, 헨리 덴커는 그대로 매료되고 말았다.
‘강민혁은 진정한 마법사야.’
멋있었다.
마법 지식을 가지고 개인의 이득만을 추구할 수도 있는 건데, 강민혁은 6서클 마법조차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미국 마법 협회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미국 마법 협회의 수뇌부들은 6서클 마법을 공개하기는커녕, 고위 계층만 마법을 알고 있을 것이 뻔하다.
“에휴, 그러게 왜 강민혁이랑 갈라서가지고는.”
한숨이 나왔다.
세계 마법 연합이 강민혁을 받아들였다면, 6서클을 공개하는 대상에 자신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사실 헨리 덴커는 진심으로 강민혁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었다. 지금은 창단식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어 있는 것 같지만, 비무행 영상을 본 사람들이라면 강민혁의 지식은 6서클 마법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등급 외 마법. 그 특별한 마법을 기억하고 있는 헨리 덴커로서는, 마법만 배울 수 있다면 강민혁을 스승으로 모실 의향이 있다.
헨리 덴커는 4서클 마법사다.
당장 6서클 마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법사의 마음이란 그렇다.
‘하지만 힘들겠지.’
세계 마법 연합이 태도를 고수하는 한, 미국 마법 협회의 일원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부러워하는 수밖에.
그래서 가디언 입탑 신청서는 작성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창단식 영상을 돌려보며 꿈을 꾸었지만, 미국 마법 협회의 미움을 사는 도전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한국행 비행기가 매진되었다는 소문이 들리는 그때쯤, 헨리 덴커의 심경을 변화시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헨리 덴커의 선배.
5서클 대마법사인 선배가, 술에 취하고는 하소연을 내뱉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영국과 독일 마법 협회는 가디언 마탑에 협력한다는 이유만으로 6서클 마법을 무상으로 배운다던데, 우리는 대체 뭐냐고. 헨리야. 내가 5서클의 경지에 오른 지도 벌써 8년이나 지났어. 6서클에 오르고 싶은 열망은 이미 타오르다 못해 가슴이 시커멓게 변해버릴 정도인데, 이 빌어먹을 협회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장의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어. 강민혁이 권력을 잡는 게 그리도 큰 문제야? 씨발, 강민혁 정도면 세계 마법 연합도 받아먹은 게 있는데 좀 양보해야 되는 거 아니야? 진짜 너라도 나처럼 되지 마라. 나는 협회의 특별관리 대상이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지만, 헨리 너는 아니야.”
특별관리 대상.
이미 협회에 가입한 대마법사들의 경우에는, 쉽게 소속을 옮길 수 없다.
그의 하소연이 헨리 덴커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5서클을 형성한 대마법사도 저리 아쉬워하는 기회인데, 본인이 뭐라고 망설이고 있단 말인가.
‘그래, 이건 기회야.’
뒤늦게 깨달았다.
탈주(脫走)만이,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그날 새벽.
미국 마법 협회가 깊은 잠에 빠져든 사이에, 헨리 덴커를 포함한 몇몇 마법사들이 짐을 싸 들고 도망쳤다.
세계 각국 마법 협회가 발칵 뒤집혔다.
마법사들의 집단 탈주 현상.
그들이 한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프랑스 마법 협회장 앙투안 발라르는 분노한 기색을 보였다.
쾅!
“얼빠진 녀석들!”
화가 났다.
아무리 6서클 마법이 탐난다고 해도, 긍지 높은 세계 마법 연합의 일원들이 탈주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다니.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강민혁이 제시한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그 또한 창단식 영상을 보면서, 아주 잠깐이지만 본인의 선택을 후회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안 돼.’
겨우 하나의 사건.
창단식만으로, 강민혁은 마법 학계를 뒤흔들 정도로 크나큰 임팩트를 주었다.
그런데 그런 세력을 세계 마법 연합에서 인정해버린다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권력의 붕괴.
미래가 뻔히 보였다.
앙투안 발라르가 멍청해서 강민혁을 외면하는 게 아니다. 6서클 마법과 신비했던 등급 외 마법. 강민혁이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았지만, 앙투안 발라르는 마법사로서의 성장보다는 권력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창단식은 겨우 시작일 뿐이고, 초기에 진압하지 못한다면 강민혁으로 인한 변화는 마법 학계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절대 안 될 일이지.’
권력이란 달콤하다.
정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권력에 집착하는 ‘소수 권력자’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앙투안 발라르가 수하를 호출했다.
“상황을 보고해.”
“지난 며칠간 프랑스 마법 협회 마법사 중 5% 정도가 협회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공항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에 저희가 보낸 감시 병력에 의해 붙잡혔습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탈주하는 마법사들이 끊이질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단 탈퇴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면서도 그런 일들을 벌이다니.”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무단 탈퇴.
그건 협회의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다.
상황에 따라 크게 처벌받을 수 있는 일인데도, 마법사들은 담장을 넘어 도망치는 선택을 내렸다.
인간의 욕망이 문제였다.
세계 마법 연합은 지난 세월 동안 6서클의 실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는데, 강민혁은 이미 완벽한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인 사람이다. 그런데 6서클로 향하는 선택지를 세계 마법 연합에서 주도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니, 손아귀에 잡힌 사람들이 그 틈을 비집고 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불나방처럼 지식을 쫓아가는 사람들.
창단식의 파급 효과는 생각 이상이었다.
이학범, 유재명과 같은 인물들이 언급되는 순간부터, 상황은 앙투안 발라르의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타협할 수는 없다.
앙투안 발라르가 말했다.
“지금 당장 기자들을 소집해.”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