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29. 파격적인 행보(4) >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사람은 바로 이학범이었다.
“이학범 교수님은 마법 학과에서 공부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입니다. 저와 같은 공동 마탑주로서 마탑의 대소사(大小事)를 처리하고, 연구팀을 직접 이끌어갈 예정입니다. 생방송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바라는 것은 ‘마법의 발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학범 교수님과 같은 훌륭한 학자는 반드시 필요한 퍼즐이었고, 그래서 어렵게 모실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어갈 연구팀의 규모는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 최고가 될 것입니다.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당장 내일부터 연간 최소 1천억 이상의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학범.
예전에는 일개 교수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마법 학계에서도 인정을 받는 뛰어난 학자다. 그런 사람의 합류는 당연히 그 의미가 클 수 밖에 없었다. 강민혁의 말처럼 강민혁의 지식과 이학범, 그리고 금전적인 지원마저 더해진다면 ‘연구팀’의 미래는 이미 보장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역시.’
웨인 번즈는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이학범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던 그는, 이학범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가 강민혁의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랐다.
이학범이 강민혁의 은사(恩師)이면서 연구 파트너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 경험한 이학범은 마치 ‘주종 관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강민혁이 윗사람이고, 이학범은 그를 따르는 신하와도 같은 포지션. 그래서 적어도 강민혁이 창설하는 새로운 마탑에서 연구적인 부분은 전혀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연구팀이 완전하게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강민혁과 이학범의 조합은 둘만으로도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은 누구냐.’
다음 차례.
이학범이야 예상 범위 안에 있었지만, 다음으로 합류할 사람들의 정체는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강민혁과 연관된 사람은 많다.
그러나, 마탑에 합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강민혁이 말했다.
“다음은 마법 학과의 정상훈입니다.”
정상훈.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현재 한국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라고 불리는 마법사가 강민혁의 마탑에 합류하다니.
이번에는 강민혁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훈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나서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자리에는 저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17살의 마법 학과생인 정상훈이고,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2서클 마법사였습니다. 그러다 동급생이었던 강민혁을 스승님으로 모신 이후로 제 인생은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제가 한국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라고. 그런데 그 모든 것은 강민혁 스승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3번째 서클을 형성하고, 마법적으로 발전하고. 강민혁 스승님은 저를 마법사로서 성장하게 만들어주었고, 새로운 마탑에서 저는 제가 경험한 것을 마탑의 제자들과 같이 공유할 생각입니다.”
그의 설명.
그로 인해 정상훈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유망주의 합류라고 생각했다면, 사람들은 이제 그 이름을 강민혁의 업적으로 받아들였다.
마탑주의 자질은 무엇이 있을까?
마법사로서의 실력?
강력한 힘?
모두 맞다.
그러나 결국 마법의 발전을 위해 합류하는 마법사들에게는, 가르치는 실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정상훈의 등장은 그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2서클 마법사였던 정상훈이 몇 개월 만에 3서클로 성장했다는 것은, 그의 재능을 떠나 강민혁이 가르치는 것에 있어 재능이 있다는 뜻일 터.
웨인 번즈가 속으로 감탄했다.
이건 신의 한 수였다.
흥미를 보이는 주변 사람들이 표정만 보더라도, 이학범에 이은 정상훈의 등장은 적절했다.
‘세계 최고의 마법사 강민혁, 세계에서 인정받는 학자 이학범, 그리고 한국을 넘어서 세계에서도 최고의 유망주라고 거론되고 있는 정상훈이라니.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라인업이구나. 강민혁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 중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어.’
대단했다.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라인업이었다.
문제는 아직 2%가 부족했다.
강민혁이 말하는 마탑으로서의 순기능은 하겠지만, 마탑을 지킬 ‘순수한 힘’은 보이지 않았다.
강민혁 혼자서는 안 된다.
그가 세계 최고라 할지라도, 강민혁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는 없는 법.
그를 대체할 사람.
모두가 인정할 만한 실력자가 필요하다.
‘자, 마지막 임팩트를 보여다오.’
누가 나타날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때, 무대 위로 올라오는 한 사내의 모습에 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헉!"
“설마?!”
“말도 안돼!”
사람들이 경악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무대 위로 올라온 사내의 정체.
그는 바로 최초의 6서클 마법사이며, 강민혁과 같이 세계 최고라 불리는 유재명 대마법사였다.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유재명이라니.
그가 대체 왜 이 자리에 나왔단 말인가.
최초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유재명의 등장에, 사람들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유재명이 말했다.
“유재명이라고 합니다. 아마 저의 합류에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저에게 영입을 제안한 세력들은 많았지만, 사실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힘과 권력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저와 마찬가지로 5서클의 경지에서 오래 머무른 마법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실력이 없기에 5서클 마법사였던 것이 아닙니다. 이미 6서클의 경지에 오른 상태지만, 새로운 마법 체계를 발견하지 못해서 반쪽짜리 6서클 마법사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결국 지식이 결여된 발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저와 같이 마법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마법사가 있는 반면, 실험실의 마법사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좌중이 압도되었다.
유재명의 발언에는 힘이 있었다.
세계 최초의 6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발언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6서클 마법사로서 인정받았던 그 시기에, 저는 강민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마탑의 합류를 결심했습니다. 만약 그때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직도 반쪽짜리 6서클 마법사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발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재명은 지금 본인이 사용하는 6서클 마법이 강민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인지, 이제까지는 말없이 지켜보던 사람 중 한 명이 직접 나섰다.
“그 말인즉, 강민혁이 6서클 마법을 알려주었다는 뜻입니까?”
“예. 저는 6서클 마법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강민혁의 도움으로 6서클 마법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단언컨대, 강민혁은 마법의 천재입니다. 6서클 마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보았지만, 강민혁처럼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인류가 6서클을 넘어서는 7서클을 바라보는 단계가 된다면, 그때도 해답을 제시 할 수 있는 사람은 강민혁밖에 없을 겁니다. 실제로 저를 제외하고는, 아직 6서클 마법을 배웠다는 마법사가 없지 않습니까?”
“와!”
“그런 일이!”
사람들이 감탄했다.
유재명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합류만으로도 대단한데, 알고 보니 그가 최초의 상징성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강민혁 덕분이라니.
웨인 번즈도 인정했다.
유재명이라면, 마지막 임팩트로 매우 훌륭했다.
‘강민혁의 마탑은 힘을 얻었어.’
단순히 6서클 마법사의 합류가 아니다.
유재명에게는 그를 따르는 추종자가 약 50명 정도 있다.
최소 3서클 이상으로 이루어진 그 집단은, 유재명을 따라 새로운 마탑에 합류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곧 강민혁의 힘이 된다.
강민혁은 이미, 많은 것을 갖추고 출발점에 섰다.
‘지난 자리에서 우리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함이었어. 단순히 지식이 탐나서 초대에 응한 사람들은, 창단식에 얼굴을 비추는 위험한 선택을 하지 못하겠지.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겨우 17살의 나이에, 어떻게 이런 판단을 내릴 수가 있는 거지?’
사람이란 가진 것을 자랑하길 원한다.
그게 사람의 본능이다.
그런데 강민혁은 냉철하게 평정심을 유지했고, 불신의 감정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서늘한 기운이 일었다.
이 정도의 판단력이라면.
그리고 이 정도의 준비성이라면.
강민혁은 충분히 세계 마법 연합의 공격에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웨인 번즈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때였다.
강민혁이 말했다.
“제가 약속드릴 하나의 공약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잠시 시연회(試演會)를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시연회.
아직, 퍼포먼스는 끝나지 않았다.
시연회의 의도는 상당히 노골적이었다.
남들은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
그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아주 노골적인 의도가 담긴 퍼포먼스였다.
보통은 이러한 의도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번만큼은 알고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의 이름은 파이어 레인(Fire Rain)입니다. 6서클 화염 속성 마법으로, 하늘에서부터 화염의 비가 떨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강민혁의 설명이 끝나면.
유재명이 곧바로 마법을 사용하였다.
미리 마련된 마법 연무장에서, 유재명이 사용하는 마법이 주변을 화염으로 뒤덮었다.
“파이어 레인.”
화륵.
화르르르르르륵!
하늘에 먹구름이 꼈다.
강민혁의 말처럼 화염의 비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난생처음 보는 6서클 마법의 위력에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도 그들은 이 퍼포먼스를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강민혁의 목적은 압도적인 퍼포먼스였고, 파이어 레인의 여파가 사라지자 곧바로 다음 마법을 말했다.
“마법의 이름은 플레임 캐논(Flame Cannon)입니다.”
“마법의 이름은 스톤 샤워(Stone Shower)입니다.”
“마법의 이름은 기가 라이트닝(Giga Lightning)입니다.”
.
.
.
계속되는 시연.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충격과 공포로 물들었다.
강민혁의 학자로서의 재능?
안다.
그간 발표한 것만 보더라도, 강민혁의 재능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유재명의 마법이 강민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강민혁이 6서클 마법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강민혁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이룰 만한 명성을 쌓은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6서클.
인류가 오랫동안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미지의 경지다.
사람들은 그 실마리도 찾지 못해서 5서클의 경지에서 답보하고 있었는데, 강민혁은 지금 그러한 사람들을 비웃는 것처럼 수많은 6서클 마법을 공개하고 있었다. 강민혁이 발표하는 모든 마법은 상당한 완성도를 갖추었다. 그리고 마법의 위력 또한, 예상한 것을 훨씬 상회했다.
시연회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나 소모가 상당하다 보니, 유재명으로서도 중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마법을 캐스팅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전설의 시작.
새로운 마법 역사가 꽃을 피우는 순간에, 불만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마지막.
“이번 마법은 트윈 싸이클론(Twin Cyclone)입니다.”
마법의 시연회가 끝났다.
강민혁은 총 16개의 6서클 마법을 설명했고,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 보여주었듯이 저는 16개의 6서클 마법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가장 궁금해는 부분일 겁니다. 제가 만들어낸 새로운 마법들. 그걸 배우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알고 싶으시겠죠.”
클리스만의 세상을 보며 강민혁은 생각했었다.
마법 도서관.
일반인들도 출입할 수 있는 그곳에는, 하급이지만 무려 7서클 마법까지 모두 공개되어 있었다.
그것이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7서클, 그리고 나아가 8서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식을 일부 사람의 특권으로만 제한하지 않아서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마법을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만 한다.
마법의 진정한 목적.
강민혁은 그것을 말했다.
“마탑의 일원이라면 누구에게든 마법을 공개할 생각입니다. 특별한 조건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마법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마탑의 지식은 언제든 개방되어 있습니다.”
넋을 잃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보물을 ‘그냥’ 내어주겠다는 강민혁의 발언은, 직접 들었음에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그런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