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11화 (111/197)

111화.  < 29. 파격적인 행보(2) >

전화기 너머.

친절한 얼굴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목소리에, 고영철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 처리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예예,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박동진 협회장이 최근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지만, 애초에 정부의 도움이 없다면 허수아비에 불과한 인물입니다. 저희는 절대 강민혁님과 나쁜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한국 마법 협회는 세계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 곳을 밀어줄 바에야, 매년 막대한 세액을 납부하고 미래의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한 강민혁님의 마탑에 배팅하는 것이 당연히 국익(國益)을 위한 일이겠죠.]

상대는 정부 쪽 인물이었다.

처음에도 이처럼 말랑말랑하게 굴었던 건 아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상대는 고영철의 힘, 정확히는 강민혁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건 한국 마법 협회와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었다. 어느 쪽의 가치가 높은지 명백하다 보니, 정부는 빠르게 노선을 바꾸는 선택을 내렸다.

탈칵-

전화를 끊었다.

새삼, 강민혁의 능력에 감탄했다.

‘하여간 괴물이라니까. 정부를 이렇게 쉽게 구워삶다니.’

붉은 마나석의 비밀.

그것은 상당한 이점이었다.

강민혁은 아직 비밀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에, 붉은 마나석을 전부 매입하고 붉은 마나석의 유통망을 독점할 것을 지시했다. 그로 인해 강민혁은 막대한 부를 쌓았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도 많았지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붉은 마나석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데 강민혁의 계획은 단순히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내 무대에서만 일을 진행할 거라면 모르겠지만, 세계 무대로 진출하고 가공해야 할 붉은 마나석의 양이 많아지면서 필연적으로 정보의 유출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민혁은 붉은 마나석의 비밀을 공개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마치 ‘새로운 발견’처럼 세상에 밝혀버렸고, 강민혁의 세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밀을 공개한 그들 또한 강민혁이 만들어낸 세력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가공의 특허를 냈다.

국제 협약(國際協約)에 따르면, 마나석과 관련된 기술은 특허의 관리가 엄격하다.

전 세계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사람들은 강해지기 위한 수단조차 잃을 가능성이 크기에, 특허법을 어기는 순간 엄청난 재앙이 닥친다. 고로 강민혁은 비밀을 공개하고도 매우 안전한 체계를 갖추었다. 한국에서 나오는 마나석은 독점했고, 세계 무대는 완벽한 독점은 불가능할지라도 가공의 특허권으로 인해서 받아내는 수수료의 액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또한, 비밀 공개 직후에 가격이 떨어지는 푸른 마나석을 다량으로 매입했다.

결국 수요가 많은 푸른 마나석의 가격은 다시 올랐는데, 일시적인 현상 덕에 강민혁은 색깔의 구분을 떠나 마나석 부자가 되었다. 그건 단순히 재력을 뜻하는게 아니다. 마나석은 강화문명의 기반이기에, 강민혁은 마법사로서의 실력을 떠나서 상당히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되었다.

강민혁의 수완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옆에서 상황이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며, 고영철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결과에 감탄할 정도였다.

상황이 이러니, 정부는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이 벌어들이는 돈은 최소 조 단위고, 세액은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나다. 그리고 강민혁은 마나석 거래 과정을 투명하게 밝힘으로써, 애초에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과거 산유국(産油國)의 위상은 대단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나석이라는 대체 에너지가 생긴 지금 강민혁은 일개 개인이 산유국의 위상을 뛰어넘어버렸다.

그렇게 정부의 계산은 끝났다.

강민혁.

마법사로서의 가능성을 떠나, 마나석 시장을 독점한 것만으로도 그는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세계 최고의 마법사라고까지 불리는데, 밀어주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정부의 파트너가 변했다.

정치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듯, 전화를 끊자마자 정부의 인물이 문자를 보냈다.

띠링.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고, 시간이 나면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한번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고영철이 피식, 웃었다.

앞으로 정부는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고영철이 정부의 사람과 식사할 일은 없다.

자신은 강민혁의 그림자고, 정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테니 말이다.

소문이 퍼졌다.

강민혁이 마나석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배경이라는 소문.

당연히 세계 마법 연합은 난리가 났다.

며칠 전에도 긴급회의로 만났던 그들이, 이번 일로 인해서 또다시 한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 큰 문제입니다. 강민혁의 세력은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마나석 시장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와 트러블이 생긴다면, 마나석 확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크흠.”

“정말 곤란한 상황이군요.”

다들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마나석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헌터로서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강화액이 필요한데, 이 강화액은 마나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마나석을 확보할 수 없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겠는가. 단순히 마나석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난감했다.

그러자 프랑스 마법 협회장 앙투안 발라르가 나섰다.

“강민혁의 세력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한번 타협하는 순간 끝납니다. 강민혁은 가지고 있는 마법 지식만으로도 우리를 위협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나석 시장을 독점했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민혁은 무서운 인물입니다. 우리가 한발 물러서는 것은 일보 후퇴가 아니라,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 버리는 최악의 악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강민혁에게 타협안을 제시하는 순간 주도권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들 동조했다.

그들은 강민혁의 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리 필요한 것이 있더라도, 강민혁의 세력을 성장시키는 일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강민혁의 세력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나, 아직 세계 마나석 시장을 완전히 독점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와의 거래를 끊고 새로운 거래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세계 마법 연합은 강민혁과의 타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결론을 내렸다.

타협 불가.

강민혁의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 결국 그가 창설하는 마탑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마탑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을 확장할 것이다. 마나석 시장을 독점한 데다 강민혁의 마법 지식까지 더해진다면, 그 성장세는 상상만으로도 몸이 떨릴 정도였다.

세계 마법 연합의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들은 의견을 하나로 모았지만, 문제는 한국에 있는 박동진이였다.

세계 마법 연합의 선택에, 박동진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서 결정의 불합리함을 어필했다.

“아니, 강민혁과 거래를 하지 말라니요.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한국 마법 협회는 한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거래를 하지 말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이미 결정된 사항입니다. 만약 마나석이 필요하다면, 시세보다는 조금 비싸겠지만 저희가 확보한 마나석의 일부를..........]

“이런 개 같은 새끼들!”

빠각!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전화기를 던져버렸다. 처참하게 박살나는 전화기의 모습에, 박동진은 좀처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분명히 며칠 전만 하더라도, 세계 마법 연합과 손을 잡는 일이 자신을 영광의 길로 인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마나석 시장이라는 변수로 인해서, 한국 마법 협회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국 밖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이야 차선책이라도 있지만, 박동진의 경우에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에서 마나석을 확보할 수 없다?

그건 곧 사형 선고다.

세계 마법 연합마저 발을 빼버리는 상황에서,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선택밖에 없었다.

“씨발,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다니.”

그날 저녁.

박동진은 결국 강민혁을 찾아갔다.

한순간에 인생이 무너지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강민혁을 적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등을 돌렸고, 마법의 핵심인 마나석의 공급이 중단되었다.

보통 일차적으로 붉은 마나석을 획득하는 부류는 강화 전사들이다. 그들은 붉은 마나석의 가공을 위해서 강민혁을 거칠 수밖에 없는 데, 대신 일정량의 붉은 마나석의 공급을 약속받는다. 그래서 강화 전사들의 경우에는 강민혁의 시장 독점으로 인해서 존폐의 위기를 맞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한국 마법 협회는 다르다.

그들이 소모하는 마나석은 대부분 시장에 풀린 마나석을 구매하는 것이기에, 상황이 상당히 절망적이었다.

강민혁과의 만남.

박동진은 위압적인 기세는 어디 갔는지, 곧바로 태도를 돌변했다.

“제가 욕심에 눈이 멀어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강민혁님의 마탑이 한국에서 무사히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할 테니, 거래 중단을 철회하고 다시 마나석을 공급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희도 결국 마법의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강민혁님이 바라는 게 마법 학계의 성장이라면, 한국 마법 협회도 상생(相生)할 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음성은 더없이 비굴했다.

박동진은 마법사로서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겨우 4서클 마법사에 불과하지만, 옛날 정치의 시작점에서 큰 이득을 보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에야 머리가 커서 상황 파악이 빠르게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정말 위급한 상황에서는 어느 게 똥이고 된장인지는 구분할 줄 알았다. 세계 마법 연합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마나석을 공급받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분명히 한국 마법 협회를 파멸로 이끄는 길 임을 확신했다.

강민혁이 말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얼마 전만 하더라도 협박을 하시던 분과 상생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요.”

".........."

"저로서는 한국 마법 협회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세계 마법 연합과 붙어먹든, 아니면 저희와 결사의 항전을 벌이든. 정부가 방관을 택한 상황에서, 한국 마법 협회의 이름값은 제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습니다. 전면전을 택하시겠다면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한국 마법 협회가 무너지면 저로서는 이득이 되는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박동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면전.

강민혁은 전쟁도 불사할 기세를 보였다.

아직 강민혁의 세력을 모르기에, 박동진으로서는 한국 마법 협회가 무시당하는 발언에 울컥했다.

‘우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이건가?’

한국에서 한국 마법 협회는 절대 위상이 떨어지는 집단이 아니다. 강화 전사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리 무시를 당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겉으로 표현하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순간부터, 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강민혁의 마탑은 아직 그 힘이 강하지 않아. 아직 창설도 하지 않았으니, 강할 수가 없는 상황이지. 하지만 강민혁의 곁에는 영국 마법 협회가 있어. 세계 마법 연합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 그들이라면, 강민혁을 도와주겠다고 참전 의사를 밝히는 일도 충분히 가능해.’

영국 마법 협회.

그들의 이름값이 컸다.

박동진도 세계 마법 연합에 붙어먹으면 그들의 지원을 받겠지만, 사실 이건 조금 애매한 문제였다.

세계 마법 연합은 마나석이라는 문제가 생기자마자 외면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에 반해, 영국 마법 협회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강민혁의 편을 들었다. 그것은 엄청난 차이였다. 세계 마법 연합은 한국 마법 협회를 위해 희생하지 않겠지만, 영국 마법 협회는 사정이 다르다.

강민혁의 몰락은 그들에게도 큰 문제.

영국 마법 협회가 작정하고 힘을 보탠다면, 강민혁과의 트러블은 진흙탕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궁지에 몰렸다.

강민혁의 수가, 박동진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체 저희가 어떻게 해야 마음을 푸시겠습니까? 정답을 알려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판세를 읽었다.

옛날 정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래도 궁지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정도는 잘 알았다.

일부러 과하게 비굴한 태도를 보이는 박동진.

그는 살아남고 싶었다.

마나석의 공급이 중단된다면, 한국 마법 협회는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강민혁이 박동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충분히 무르익었나.’

채찍질은 가했다.

강한 채찍질로, 상대를 죽여버릴 생각은 없다.

그들과의 전쟁은 결국 희생을 감수해야 할 테니, 지금은 적절하게 당근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강민혁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상생하는 방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단, 제가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박동진은 늪에 빠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상생이라는 단어에 박동진이 활짝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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