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 28. 스페셜 원(2) >
강민혁의 안위를 가장 궁금해하는 곳은 어디일까.
강화 전사?
일반인들?
아니다.
바로 마법 학계였다.
안달이 날대로 난 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강민혁의 병실을 찾아왔다.
“몸은 어떠세요? 비무행이 끝나고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걱정되는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그래도 걱정한 것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리고 약소하지만 회복에 도움이 되라고 독일 마법 특제 영약(靈藥)을 챙겨왔습니다. 이거 드시고, 꼭 잘 회복하세요.”
독일 마법 협회의 마르코 도슨이었다.
험악하다고 소문 난 그의 평소 스타일과는 다르게, 그는 더없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르코 도슨은 한참이나 강민혁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기침을 하면 물을 가져다 주고, 옆에서 말동무를 해주면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민혁은 알고 있었다. 비무행에서 사용한 마법에 대해서 듣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차마 환자에게 물어볼 수 없어서 눈빛만 보냈다.
강민혁은 마르코 도슨의 눈빛을 외면했다.
일부러 중상자의 행세를 하고 있는 것도, 자신에게 향하는 질문들을 잠시동안 회피하기 위함이었다.
마르코 도슨이 떠나고.
정말 세계 각지에서 많은 마법사가 찾아왔다. 이름을 알만한 명망 높은 마법사들이 한국 문화랍시고 과일 바구니를 바리바리 싸들고 병실을 찾았다. 지금 강민혁은 마법 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비무행에서 보여준 강민혁의 모든 마법은 마법 학계의 미스터리라 불리는 것들이었고, 그것의 실마리를 얻고자 마법사들은 간과 쓸개를 모두 내줄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물론 목적을 가진 방문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상훈, 유재명, 이학범, 김성호와 같은 사람들도 병문안을 왔다.
특히 이학범의 경우에는, 영국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최병호.
그의 병문안은 시끌벅적했다.
사람을 대동하고 우르르 몰려오더니,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민혁이가 이런 병실을 사용하면 되겠어? 당장 VVIP 병실로 옮기자. 그리고 민혁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 병원 병원장이랑 잘 아는 사이라서, 최고의 의료진을 붙여주기로 약속했단다. 아이고, 우리 민혁이 얼굴 야윈 것 좀 봐라. 뭐, 먹고 싶은 것은 없고? 말만해. 호텔 뷔페라도 대령할 테니까.”
최병호는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이득으로 형성된 관계라지만, 적어도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은 진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끝나고.
강민혁은 드디어 원하는 손님을 맞이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는 바로 영국 마법 협회의 대마법사.
존 웨슬리였다.
존 웨슬리는 강민혁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강민혁을 처음 만났던 날.
그는 심사위원석에서, 아직 학과생에 불과한 강민혁을 평가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1년도 되지 않아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에 강민혁이라는 대단한 존재를 심사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강민혁은 빠르게 성장했다.
“괜찮습니다.”
“이번에 무리하셨습니다. 비무행을 왜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호문을 택한 것은 위험천만한 선택이었습니다. 만약 강민혁님이 비무행 도중에 죽었다면, 마법 역사는 최소 수백 년 이상 퇴보했을 겁니다.”
진심이었다.
강민혁은 마법 학계의 핵심이다.
그로 인해 마법 문명이 발전하고 있기에, 그 누구도 강민혁이 비무행에서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강민혁이 웃었다.
“그거 아십니까? 제가 병실에 있는 동안 수많은 마법사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반응을 보이더군요. 저라는 사람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걱정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비무행에서 보여준 마법들에 대해 알고 싶은데, 제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 지식이 모두 사장될 테니까요. 아마 존 웨슬리 대마법사님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하신 말씀처럼, 결국 저라는 마법사보다는 제가 아는 지식이 중요할 수밖에 없겠죠.”
".........."
할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다.
부정할 수 없기에, 존 웨슬리는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의 입장이었어도 저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제가 가진 지식은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과연 지식을 공공재로 공개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저는 그간 마법 학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하, 의료 마법 등등. 제가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동안 다른 마법사들은 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본인이 가진 것을 공개했나요? 아니요. 조금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제가 내놓은 마법들은 좋다고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내놓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게 참으로 씁쓸하더군요. 저는 모두의 발전을 위해 지식을 대가 없이 내놓았지만, 제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당연하다는 듯한 요구뿐이었습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저를 지식의 보고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마법 학계에 예외는 없었다.
모두가 그러했다.
무례하게 굴었던 미국 마법 협회도, 주제를 모르던 한국 마법 협회도, 그리고 예를 지키던 영국 마법 협회도.
결국 마법을 원했다.
공공재라는 것은 이제 그들이 행사하는 권리가 되었다.
강민혁은 배려를 베풀었던 것인데, 권리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겨났다.
“죄송합니다.”
존 웨슬리가 고개를 숙였다.
변명할 말이 없었다.
사실 이 자리를 찾은 것도, 강민혁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비무행에 사용한 마법의 실마리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마법사의 학구열이란 그러했다. 들끓는 궁금증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 또한 반대 입장이었어도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이대로라면 마법 학계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 몬스터에 대항하기를 바랍니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서 게이트 너머에 존재하는 이 재앙의 근원을 없애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강화 전사가 주류라서?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반대로 마법 학계가 주류라 할지라도, 상황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확신이었다.
클리스만의 세상이 그러했다.
2000년의 마법 문명을 이룬 그곳도, 결국 몬스터와의 공존을 택하며 알인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결국 어느 정도의 강제성은 필요하다.
강력한 세력이, 사람들을 이끌어야만 한다.
“인간들끼리 이권을 다투는 동안 게이트 너머의 몬스터들은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력을 하나로 규합하고, 제가 그 중심에 서고자 합니다.”
“그 말은.........?”
존 웨슬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에는 마법사들의 태도를 비난하던 강민혁의 말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향하는지가 눈에 보였다.
강민혁이 말했다.
“예. 제가 마탑을 세우고자 합니다. 제가 세상의 중심에서 몬스터와의 전면전(全面戰)을 계획하고 있다면, 영국 마법 협회는 제게 힘을 실어주시겠습니까?”
존 웨슬리가 눈을 부릅떴다.
이건, 그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존 웨슬리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강민혁이 말한 것은 이상적인 이론이었다.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당연히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게 불가능한 이유가 있었다.
‘이 세상에는 딱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시련이 닥쳤어.’
몬스터가 처음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 1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현실에 적응해나갔다.
게이트와 던전은 일상이 되었고,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추었다. 헌터라는 사람들이 일반인들의 안전을 지켜주었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공존하더라도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
그게 문제였다.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시련.
정말 궁지에 몰렸다면 이권 따위는 생각하지 않겠지만, 숨을 돌릴 틈이 생기니 인간이라는 것들은 머리를 굴려댔다. 지금의 판도를 이용해서, 본인의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결국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영국 마법 협회의 주인은 따로 있기에, 곧바로 영국으로 날아간 존 웨슬리는 웨인 번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웨인 번즈는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위험한 계획이구나.”
강민혁.
대단한 인물이다.
세계 최고의 마법사이며, 학자로서도 그의 위상을 넘볼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가 세력을 형성하는 건 다른 문제다.
강민혁의 이름값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파급력이 너무 대단해서 기존의 세력들이 반발할 것이다. 강민혁은 소속이 없을 때는 크게 제재할 이유가 없었지만, 강민혁에게 소속이 생기고 힘이 쥐어진다면 마법 학계는 급격하게 강민혁의 세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걸 기존의 세력들이 받아들일 리 없다. 강민혁이 아무리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본인들에게 권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주도권이 중요하다.
처음 마탑을 세울 때.
기존의 기득권들은, 아직 강민혁이 자리를 잡지 못한 그 타이밍에 확실히 찍어누르려 할 것이다.
존 웨슬리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섣불리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강민혁이 세계 마법 연합의 옹호를 받는 이유는, 그가 무소속으로서 가지고 있는 마법을 베풀었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강민혁을 ‘도구’로서 이용하길 바라지, 본인들의 머리 위에서 지시를 내리는 지도자로서는 바라지 않아. 결국 이권이 걸린 전쟁이 벌어지겠지. 당장 세계 마법 연합만 하더라도, 어떤 선택을 내릴지 몰라.”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강민혁은 영국 마법 협회에게만 손을 내밀었다.
만약 혼란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영국 마법 협회는 적대가 아니라 자신의 곁을 지키라고 말이다.
현기증이 일었다.
섣불리 선택을 내릴 수 없었다.
권력?
중요하다.
하지만 강민혁의 마법은 권력 이상의 힘이 있다.
만약 강민혁의 마탑이 무사히 자리를 잡는다면, 그들의 힘이 확장하는 것은 결코 막을 수 없다.
생태계를 파괴해버릴 포식자(捕食者).
강민혁의 마탑은 그러한 의미가 있었다.
이제야, 비무행의 의미가 파악되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강민혁은 비무행을 통해서 본인이 세계 최고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증명했어. 학술 대회에서 얻은 A급 자격증과 최고의 마법사라는 명성은, 그가 마탑주로서의 자격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증명하지. 그렇다고 수호문의 배경을 지적하기에도 애매 해. 이번에 수호검과 완전히 천륜(天倫)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보여줌으로써, 강민혁은 반박할 말이 충분히 있어.’
소름이 돋았다.
비무행은 갑작스러운 면이 있었다.
모두가 강민혁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끝에 마탑이라는 계획이 있다면 상황이 딱딱 들어맞는다.
서늘한 기분이 맴돌았다.
강민혁은 계획적이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힘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붙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기득권의 힘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100년의 세월 동안 쌓은 그들의 힘과 야망은, 강민혁이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단번에 무너트릴 수 있다.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선택의 갈림길.
웨인 번즈는 고민의 늪에 빠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고민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강민혁은 존 웨슬리에게 제안한 이후, 이미 D-Day를 정해두고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바로 며칠 뒤.
강민혁이 TV 앞에 나섰다.
S 방송사의 PD는 강민혁의 촬영 요청을 덥석 받아들였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지도 못했다.
강민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여야 했고, 그렇게 생방송이 진행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아마 비무행에 대한 썰을 풀겠지.
왜 비무행을 시도했는지, 그리고 강덕철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그러한 상황을 기대하던 PD로서는, 강민혁의 멘트에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마탑의 시작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TV를 지켜보는 사람들.
그들 모두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리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