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 28. 스페셜 원 >
눈을 떴을 때, 강민혁의 눈에 병원의 천장이 보였다.
‘살았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몸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가슴에 베인 흔적이 있었으나, 피부 겉면만 갈라진 정도라서 미리 대기시켜두었던 마법사들 덕분에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의료 마법은 참으로 대단한 힘이었다. 수술을 받지 않았음에도, 강민혁은 더 이상의 치료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부상은 얕았다.
그런데도 강민혁이 기절한 이유는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생긴 정신적인 충격과 정령 빙의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더불어 육체적인 피로도 한 번에 몰려오다 보니, 강민혁은 억지로 정신줄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 차라리 그게 좋은 그림임을 알기에, 끊어지는 정신을 그대로 두었다.
‘겨우 5개의 서클로 아버지를 대적하는 건 역시 무리였나.’
사실 강덕철이 마음만 먹었다면 더 빠르게 끝날 수도 있었던 결투였다. 강민혁은 준비된 퍼포먼스를 위해서 전력을 표출하였으나, 강덕철을 상대로 허무하게 막혔다. 당연한 결과였다. 강민혁이 판단하기로 강덕철을 쓰러트리려면 적어도 7서클과 골렘의 힘이 필요하다. 강덕철의 힘은 8서클 정도로 추정하지만, 골렘을 앞세운 마법사의 힘은 상상 이상의 시너지를 폭발시킨다.
마법 문명.
그곳에서 육체적인 힘에 매달리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골렘에 있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강민혁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고영철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처음에는 상태를 물으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그가, 강민혁의 멀쩡한 모습에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친 새끼.”
“계획은?”
“네가 원하는 대로 됐어. 이제 네가 무슨 짓을 벌여도, 수호문의 꼬리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마지막 결투.
강덕철과의 싸움은 사실 도박이었다.
그로 인해 노리려는 바는 명확했다. 미국 마법 협회의 매그너스 라슨처럼, 강민혁의 행보에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호문의 태생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강민혁과 강덕철의 연결고리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사람들. 이번 결투는 그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아버지에게 칼을 맞은 강민혁을 보고도, 그런 음모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매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실수가 곧바로 죽음으로 직결되는 상황이었지만, 강민혁은 강덕철이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부정(父情)을 기대한 것이 아니다.
강민혁은 전력을 표출하였고, 명백하게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강민혁은 그러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일부러 보여주었다. 그렇게 되면 강덕철로서는 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죽일 수 없다.
비무행의 아이러니였다.
결투 도중에 일어나는 사고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대항할 여력이 없는 상대를 죽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도 검을 휘두른 강덕철의 선택은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강덕철로서는 상대를 죽이지 않되, 수호문에 도전하는 사람을 어떻게 처벌하는지에 대한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그게 부자의 연결고리를 끊는 강민혁의 계획일지라도, 수호문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강덕철로서는 할 수 밖에 없는 일. 그렇게, 강민혁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검에 베였다.
이후부터는 계획대로였다.
관중들 사이에 섞여 있었던 마법사들이 초기 조치를 해준 덕분에, 강민혁의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고영철이 말했다.
“넌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
“필요한 과정이었어. 내가 마법 학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조금의 의심도 걷어낼 필요성이 있어. 그래야 마법 학계를 완전히 집어삼킬 수 있거든. 그들이 나를 완전히 신뢰하게 만드는 것. 그것의 시작은,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마법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동질감에서부터 시작해.”
강화 전사.
그들은 마법사의 공공의 적이다.
비무행은 강민혁이라는 마법사의 실력을 인정 받음과 동시에, 같은 마법사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각인시킨다.
예정된 패배.
비무행은 마무리되었다.
고영철의 반응을 보면, 사람들은 강민혁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고영철이 웃었다.
이번 비무행이 끝나고, 강민혁의 위상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말하더라고. 너는 단 하나뿐인 매우 특별한 존재, 스페셜 원(special one)이라고.”
강덕철과 강민혁의 대결.
충격적이었다.
비무행의 모든 과정이 충격의 연속이었으나, 마지막 대결이 선사한 충격은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강덕철이 어떤 인물인가?
수호문의 문주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최강의 검사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를 상대로 강민혁은 접전의 승부를 보여주었다. 실상은 강덕철의 압도적인 우세였으나, 적어도 일반인들의 시선에서는 그러했다. 세상을 무너트릴 것 같이 쾅쾅 터지는 엄청난 폭발. 특히 마지막에 사용한 겁화는, 마법사들조차도 입을 떡 벌리고 보았다.
결투 직후.
현장에 있었던 한 사내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그는 은퇴한 헌터로서 평론가 생활을 하는 인물이었는데, 그가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강민혁의 비무행은 세상의 상식을 부정하는 행보였다. 나는 수십 년의 세월을 헌터로서 생활하며, 세상에 저런 마법사가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강민혁이 사용하는 마법, 강민혁이 보여주는 전투 능력, 그 모든 것이 세상의 상식을 초월하였다. 그런데도 수호검은 본인의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강민혁 정도의 마법사도 수호검을 쓰러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사실상 그건 수호검의 패배라고 할 수 있다. 수호검은 ‘성혈의 방패’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강민혁의 마지막 일격에 성혈의 방패를 사용했고, 수호문의 권능을 사용했음에도 피해를 입은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만약 방어에 특화된 수호검이 아니었다면, 다른 강화 전사들이 강민혁의 마지막 일격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그만큼 강민혁의 화력은 충격적이었고, 말을 번복한 수호검은 체면을 구기는 결과를 낳았다.]
초라한 패배가 아니었다.
강덕철이 강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바지만, 강민혁의 경우에는 다르다.
강민혁이 얻을 수밖에 없는 싸움.
강덕철은 승리한다 할지라도 당연한 것이나, 강민혁은 결과를 떠나 결투의 내용이 모두에게 어필되었다.
난리가 났다.
모두가 강민혁의 이름을 말했다.
그가 최고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최고의 마법사는 유재명이었지만, 실질적인 전투 능력은 강민혁이 우위라는 말이 나왔다. 유재명은 서클을 기준으로 했을 때 최고의 마법사일 뿐이다. 아무리 유재명이 6서클 마법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결투를 지켜본 사람은 유재명의 승리를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강민혁은 최초로 강화 전사를 쓰러트린 마법사야. 그간 낮은 경지에서는 그래도 마법사가 강화 전사를 쓰러트리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비무행은 상위 레벨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행보였어. 강민혁은 마법사도 근접전에서 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어. 그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 스페셜 원이야.”
스페셜 원.
강민혁을 부르는 별명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것은 강화 전사의 대항마(對抗馬)라는 표현이자, 마법사들이 강민혁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그 시각.
강덕철과 이준호가 만났다.
“너를 내보내지 않은 선택에 많이 실망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강민혁의 비무행은 수호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맹독(猛毒)이었다. 최악의 결과를 걱정하느니, 내가 나서는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다.”
지난 긴급회의.
강민혁이 창천검문을 무너트린 그날, 가주와 장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준호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제가 싸우고 싶습니다. 사람들도 현재 수호문의 후계자인 제가, 전 후계자였던 강민혁을 쓰러트리는 그림을 바라고 있을 겁니다.”
자신은 있었다.
이준호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난 강자였고, 천무백이 패배했다 할지라도 자신은 마법사를 상대하는 노하우를 알았다. 천무백은 약해서 패배한 게 아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이준호로서는, 비무행이라는 무대에서 새로운 후계자인 자신이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를 바랐다.
강민혁에 대한 악감정이 아니다.
검사로서의 호승심.
그리고 후계자로서 인정받길 원하는 마음.
이준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으나, 강덕철은 단호하게 이준호의 요청을 거절하였다.
“...알고 있습니다.”
이해한다.
강덕철의 선택은 옳았다
강민혁의 힘은 생각보다 더 강했고, 만약 자신이 나섰다면 현판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준호는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무력감. 고개를 숙인 이준호는,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난 대체 뭘 한 걸까?’
사람들은 강민혁과 이준호의 관계를 모른다.
단순히 강민혁이 이준호에게 밀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강민혁이 후계자의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밤하늘이 맑았던 그날.
강민혁은 말했다.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는 결국 검사로서의 재능이 필요해. 지금은 내가 후계자로 있어도 문제가 없다지만, 진정한 위기가 닥친다면 힘이 없는 후계자는 사람들의 외면을 받겠지. 그러니 네가 내 뒤를 맡아줘. 재능이 없는 내가 아니라 너라면, 수호문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건 감성에 취한 말이 아니었다.
며칠 뒤에 강민혁은 정말로 후계자 자리를 내려놓았고, 마법 학과로 떠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준호는 안다.
강민혁의 행보가 자신을 배려해주는 선택이었음을. 강민혁은 이준호가 빠르게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스스로가 수호문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강민혁은 신신당부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절대 자신에게 친근하게 대하지 말라고. 이준호는 강민혁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한명이었지만, 후계자의 자리에 오른 후로는 강민혁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후계자가 되었다.
그런데도 강민혁의 그림자는 짙게 남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강민혁을 추억했고, 강민혁이 쑥쑥 성장하는 모습에 이준호는 호승심이 일었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후계자가 되고 싶었다.
강민혁에게도, 너라면 해낼 줄 알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은 비무행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먼발치에서 감탄하는 것이 전부였고, 크나큰 사건이 끝났음에도 자신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난 그저 방관자였어.’
사람들은 말한다.
강덕철에게 부정은 결여되어 있다고.
그러나 이준호의 생각은 다르다.
강덕철 또한 아버지다.
강덕철은 강민혁이 집에 나간 이후로, 차가운 태도를 일관했지만 기회가 생기면 가문으로 다시 돌아올 것을 제안했다. 강덕철이라는 사람은 원래 그렇게 기회를 자주 주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가 강민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번 일로 인해서 이준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강민혁.
수호문이라는 배경을 벗겨내면, 강민혁은 현재 마법 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수호문의 권위를 무너트리려고 도전했다면, 아무리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할지라도 치명상을 입혔을 것이다. 죽지는 않는 선에서 도전의 대가를 치렀을 터. 그러나 강덕철은 아들이라 할지라도 베어버릴 수 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선에서 상황을 끝냈다. 평소의 그라면 비무행을 이용해서 최대한 이득을 취했겠지만, 강민혁을 상대로는 그런 잔인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강민혁을 내친 사람은 강덕철이 아니다.
강덕철은 끝까지 후계자의 자리를 지켜주었지만, 강민혁 스스로가 자리에서 물러났을 뿐이다.
이준호라서 보이는 진실이었다.
사람들은 강덕철을 비난하고 부정도 없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이준호가 보기에는 전혀 달랐다.
강덕철을 보았다.
강인한 얼굴에는, 어느덧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아직 부자의 정이 남아계시는군요.’
대화가 끝났다.
가주실을 빠져나온 이준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인정하는 친구.
자신이 존경하는 문주.
그 사이에서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요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의문이 생긴다.
답답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후계자로서 잘 해낼 줄 알았다.
그러나 강덕철의 곁에 머물다 보니 너무나도 외로웠다.
후계자라는 겉보기에는 명예로운 자리보다는, 강민혁과 같이 있을 때가 더 즐거웠던 것 같았다.
“답답하네.”
하얀 입김이 퍼져나갔다.
아무래도 오늘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곧바로 수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가 할 수 있은 일이라고는 단 하나.
검사로서 강해지는 것 .
이준호는 그날, 날이 밝을 때까지 밤새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