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 27. 비무행(比武行)(6) >
강민혁이 수호문에 도전할 거라는 소문에, 가장 많은 논란이 되었던 것이 바로 강민혁의 상대다.
과연 누가 현판의 문지기로 나설 것인가?
예상 후보는 많았다.
첫 번째로는 이준호.
-아마도 이준호가 유력하지 않을까? 강민혁이 과거의 후계자라면, 현재 수호문의 다음 세대를 맡은 사람은 이준호잖아. 이준호가 강민혁을 직접 쓰러트린다면 그 상징성이 대단할 것 같은데.
그림상으로는 가장 좋은 매치업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준호는 아닐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이준호는 검술의 천재고,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강화 전사임에는 분명하다. 문제는 이준호의 실력으로 강민혁을 확실하게 쓰러트릴 수 있느냐다. 세간에 알려진 평가대로라면 천무백은 이준호보다 강하다. 그렇다면 폐문이 걸린 싸움에서, 이준호를 내보내는 도박적인 수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정판호.
-정판호라면 문지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겠네. 천무백도 정판호보다는 밑이라는 평가가 많았잖아. S급 던전 암흑 도시를 공략했을 때도, 정판호는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홀로 쓰러트리는 엄청난 무력을 보여주었어. 그때 강민혁의 활약도 나쁘지 않았지만, 정판호는 급이 달라.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강덕철의 명예를 깎아내리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는 인물로는 정판호가 가장 적합해 보였다. 그 외에도 정판호 급의 장로들이 거론되었지만, 확실히 수호문에서 장로의 명함을 달고 있는 사람들의 무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천무백이 패배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호문의 장로라면 그 누구라도 강민혁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한 사람이 말했다.
그건 만일의 가능성이었다.
-혹시 수호검주가 직접 나설 수도 있지 않을까?
반응은 최악이었다.
중소 세력이라면 모를까, 수호문과 같은 거대 세력에서 문주의 직접 나서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미쳤다고 수호검주가 나서겠냐. 직접 나서면, 그건 수호문의 명예를 떨어트리는 일이야.
-비무행에서 문주가 나서는 것은 밑에 사람들로는 해결할 수 없을 때밖에 없어. 그래서 창천검문의 곽도열도 본인이 아니라 천무백을 내보낸 거고. 수호검주가 나선다면야 강민혁이 승리할 확률이 일 할도 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긴다 할지라도 수호문은 좋지 않은 소리를 듣겠지.
-그래도 명색이 강민혁의 아버지인데, 강덕철이 직접 상대할 것 같지는 않아.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최우선 후보는 정판호였다.
S급 던전 암흑 도시에서의 인연이 있으나, 정판호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만약 현판의 문지기로 그가 선택을 받는다면, 그는 전력을 다해서 강민혁을 쓰러트리려 할 것이다.
그러나 강민혁은 상대를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정보를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수호문에서의 경험이 말해준 정답이었다.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오는 사내.
그의 모습에, 밖은 이미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사내가 검을 뽑았다.
“내가 직접 상대해주마.”
강덕철.
그가, 서늘한 기세를 드러냈다.
강덕철은 실리적인 사람이다.
하나뿐인 아들이 마나의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이준호를 택한 것처럼, 그는 냉정하게 현실을 보았다.
강민혁은 강하다.
마법사로서 천무백을 쓰러트린 순간부터, 어떤 변수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건 정판호도 마찬가지다. 정판호는 강덕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나, 곽도열의 생각도 강덕철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뢰했기에 천무백을 내보냈고, 천무백의 패배는 창천검문의 현판을 박살냈다.
고로.
“선공을 양보하마.”
강덕철의 싸늘한 시선이 강민혁을 향했다.
입이 바짝 말랐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적으로서 대면하는 강덕철의 기세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선공은 결투에서 매우 중요하다.
강덕철의 양보는 아비가 아들에게 베푸는 자비와는 전혀 다르다. 그건 퍼포먼스다. 문주가 직접 나섰다는 사실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선공을 양보하는 모습은 상황을 반전시킨다. 강민혁에게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내줌으로써, 마치 자신의 선택이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강덕철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양쪽 세계의 힘을 비교했을 때.
강덕철은 논외의 대상이었다.
7서클의 힘으로도 그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S급 던전 암흑 도시에서 초월급 몬스터인 다크 리치의 머리를 날려버렸던 강덕철은, 천외천(天外天)의 경지인 8서클 정도는 돼야 승패의 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을 터. 강민혁은 선공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렸다.
확-
마나가 일었다.
가만히 서 있는 강덕철의 모습을 바라보며, 팽팽 돌아가는 머리가 빠르게 더블 캐스팅을 시도했다.
동시에 완성된 마법.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그때, 강민혁의 마력이 폭발했다.
“자이언트 홀드.”
파바박!
홀드의 힘이 그대로 강덕철을 포박했다. 강하게 억압하는 마나에도, 강덕철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건 방심이 아니다. 힘에 대한 자신감이었고, 강자가 보일 수 있는 오만함이었다.
“폭발."
등급 외 마법.
움직일 수 없는 상대에게, 그 강력한 힘이 발휘되었다.
퍼엉!
콰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자욱하게 일어나는 연기가 강덕철을 그대로 집어삼켰고, 강민혁은 멈추지 않고 마법을 사용했다.
‘불의 권능.’
불길이 모여들었다.
그것이 수십 발의 파이어 애로우로 변하더니, 아직 불길이 가시지 않은 강덕철에게 작렬했다.
“파이어 애로우.”
펑펑!
화르르르르르르륵!
그야말로 폭격이었다.
강민혁의 양쪽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강덕철이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마법을 사용하였다. 상대의 상태는 확인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이런 공격에 쓰러질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약한 상대였다면, 강덕철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점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파스스스스-
연기가 가라앉았다.
그 안에서, 강덕철은 처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끝이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의 몸 주변에 형성된 투명한 검막은, 강력한 마법의 폭격에도 건재하게 그 빛깔을 유지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민혁이 사용한 폭발은 한눈에 보아도 최소 6서클 이상의 위력이었다. 그런데 그런 공격을 맞았음에도 멀쩡하다니. 그들은 문득 다크 리치와 싸우던 강덕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크 리치는 엄청난 마법을 폭격했지만, 그런 공격에도 강덕철은 투명한 막으로 수호문도들을 지켰다.
가주만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
성혈(聖血)의 방패.
대대로 내려오는 수호문의 특수한 능력에, 강민혁이 힘들게 사용한 마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끝내면 재미가 없겠지.”
팟-
방패가 사라졌다.
권능을 거두어들인 강덕철이, 오만한 어투로 말했다.
“다시 공격해보거라.”
강민혁은 그제야 알았다.
강덕철이 하려는 퍼포먼스가 무엇인지.
그는 이 자리가 비무행이라는 사실을 잊혀지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아버지가 엇나간 아들을 훈육하는 것 같은 모습.
처음에는 강덕철의 선택에 실망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넋을 잃은 표정으로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피식, 웃었다.
‘역시.’
아버지다웠다.
압도적인 무력.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찍어누른다면, 사람들은 강덕철이 나섰다는 사실보다는 강덕철의 대단한 무력에 대해서 떠들어댈 것이다.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 강덕철이야말로 한국 최고라고 말이다.
안다.
이 싸움에 승산이 없음을.
그러나 그런데도 이 자리에 찾아온 이유는, 자신이라는 사람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함이다.
“알겠습니다.”
강민혁이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의식의 저편에서 ‘정령’에게 신호를 보냈다.
폐관 수련에서 얻은 하나의 힘.
‘정령 빙의(愚位).’
지금은 마법사의 화력을 폭발시킬 때다.
정령과의 계약으로 인간은 2가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소환과 지배.
강민혁이 사용한 정령 빙의는, 소환의 변형된 행태로 샐러맨더의 마나를 화염의 서클에 받아들인다.
일부의 마나.
이로 인해 당분간은 불의 지배력을 잃지만, 그 대가는 확실했다.
화르르르르르륵.
강민혁의 주변으로 화염의 마나가 넘실거렸다. 화염의 서클이 마나로 충만하게 차오르는 상황에, 강민혁은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폭발."
쾅!
콰르르르르르릉.
엄청난 위력이었다.
화염의 서클이 폭발의 위력을 증폭시키면서,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나 강덕철은 이미 자리를 피한 뒤였다. 성혈의 방패를 사용하지 않은 그는, 일반적인 검막으로 폭발의 여파를 막아내더니 순식간에 강민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일루전.’
강민혁의 몸이 나누어졌다.
상대를 현혹시키기 위한 방법.
그 순간, 강덕철의 검이 번뜩였다.
서걱!
일루전의 몸이 잘려나갔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
동시에 일루전과 자신을 노리는 공격에, 강민혁은 마법을 캔슬하고 블링크로 일단 자리를 피했다.
팟.
".........?!"
그런데 블링크로 도착하자마자 강덕철이 눈앞에 나타났다. 강민혁이 사용하는 초감각의 경지가 절정에 달한 사람이 바로 강덕철이었다. 그는, 강민혁이 사용하는 방법을 더 발전된 형태로 사용할 수 있었다. 강덕철이 검을 휘두르려고 하자, 강민혁이 뒤로 빠지며 각인을 발동시켰다.
“자이언트 홀드.”
“썬더 캐논.”
꽈악!
빠지지지지지지직!
도미닉 그린이 사용하던 연계였다.
그러나 이 정도의 공격이 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잠시의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강덕철은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자이언트 홀드의 구속력. 그것을 힘으로 파훼시켜버린 것이다.
“태산.”
쿵.
쿠르르르르르릉.
강민혁이 지형을 변화시켰다.
땅이 솟아오르자, 강민혁은 높은 위치에서 ‘초월 각인’을 발동시켰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7서클 마법.
그 강력한 힘이, 정령 빙의에 축복을 받아 화염의 폭풍을 일으켰다.
쿠르르릉.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엄청난 위력이었다.
멀리 떨어진 사람들도 화끈한 열기에 뒤로 물러날 정도로, 화염의 폭풍이 그대로 강덕철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불의 권능이 발현되었다. 화염의 폭풍에서 일어나는 불길들이 다시 파이어 애로우로 변했고, 안에 갇힌 강덕철에게 작렬했다.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os) 의 권능이 이러할까. 강민혁의 손에 따라 움직이는 불길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였다.
폭발이 끊이질 않았다.
화우가 발동되며, 주변의 불길이 모두 강덕철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다.
그런데.
화악-
“제법이구나.”
강덕철은 무사했다.
수호문의 비기인 강철을 극성으로 끌어올린 그는, 불길에 타오른 채로 화염의 폭풍을 뚫어냈다.
수호문.
그들의 힘은 마법과 상극이다.
수호하는 것에 특화된 기술은, 마법을 막아내는 데 탁월했다.
높은 위치?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다리에 부여한 마나를 폭발시키자, 강덕철의 몸이 허공에 날아오르더니 태산의 정상에 떨어졌다.
탁!
서걱!
그리고 번뜩이는 검.
순간 강민혁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파스스스스-
변하는 강민혁의 모습에, 강덕철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확!
강덕철은 미라지의 종착점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극성의 초감각. 그건, 환상의 영역마저 공략해냈다. 강덕철의 검이 본체를 베어내는 순간, 강민혁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강덕철이 반응하리란 사실은 예상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강민혁은 상황을 만들었다.
파지지직.
그건 일루전이었다.
고난이도의 스킬.
강민혁은 미라지로 사라짐과 동시에, 블링크로 본체를 숨기고 새로운 일루전을 생성하였다.
태산 위에 홀로 남은 강덕철.
그리고 강민혁은, 그보다 높은 하늘 위에서 나타났다.
“겁화(却火).”
불의 재앙.
화염의 서클에서 마나가 모두 소진되었다.
쭉 빨려들어간 마나가 주변의 불의 원소와 합쳐지더니, 인간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폭발을 일으켰다.
쾅!
콰르르릉!
콰콰콰콰콰콰쾅!
그건 정말 재앙이었다.
동귀어진의 수.
태산 위로 유인한 것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한 선택.
강민혁 본인도 완벽한 마법을 위해 겁화의 위력에 휩쓸렸지만, 불길에 잡아먹히기 직전에 블링크로 빠져 나왔다. 그건 분뇌의 능력이었다. 엘리샤가 겁화를 동귀어진의 수라고 말한 이유는,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 엄청난 마나 소모로 인해 정신이 공황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겁화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두 개로 나누어진 강민혁의 두뇌는, 극한의 상황에서 블링크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지막 수.
강민혁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이었다.
지금의 이 순간을 위해서, 강민혁은 정령 빙의를 사용해서 화염의 서클을 충만하게 채웠던 것이다.
털썩!
강민혁이 쓰러졌다.
피부는 검게 그을렸고, 마나가 모두 떨어져 숨을 헐떡였다.
한계였다.
겁화를 사용하느라, 마나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마법이 있었다니. 내 식견이 좁았구나.”
화마(火魔)의 불길 속.
그 안에서, 불길을 뚫고 강덕철이 걸어 나왔다.
그는 성혈의 방패를 사용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충격이 있는 것 같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강덕철은 무사했다.
강민혁이 사용한 마지막 수조차도, 강덕철이라는 괴물을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나.’
강민혁이 히죽, 웃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덕철이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를 알면서도, 강민혁은 끝까지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화륵, 화르르륵.
잦아드는 불길.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이쪽을 향했다.
그들은 보게 될 것이다.
강덕철이 처음의 말을 무르고, 성혈의 방패를 사용했다는 것을.
최강의 전사가 말을 번복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얼른 끝내시죠.”
강민혁이 차갑게 말했다.
강덕철이 다가왔다.
그리고 번뜩이는 검.
수호문의 승리를 알리는 마지막 일격에, 강민혁의 가슴팍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강민혁의 비무행.
그 충격적인 행보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