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06화 (106/197)

106화.  < 27. 비무행(比武行)(5) >

천무백의 패배.

곽도열은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강민혁이 창천검문에 도전하리라는 사실을 예상했고, 만반의 준비를 했으며, 창천검문 최고의 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천무백을 현판의 문지기로 내세웠다. 완벽했다. 강민혁에게 패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건만, 무릎을 꿇은 천무백은 창백한 안색으로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천무백이 졌다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상식이 뒤집혔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천무백이 약해서?

천무백이 방심해서?

‘둘 다 아니야. 강민혁이 더 강했을 뿐이야.’

천무백을 쓰러트린 강민혁의 전투 방식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천무백은 강민혁의 환상을 꿰뚫고 공략하려고 했지만, 겹겹이 설치한 함정은 천무백의 모든 수를 예상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건 강민혁이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모른다. 강민혁은 마법사이기 전에 강화 전사였던 사람이다. 창천검문과의 교류가 있었던 그는 창천검문의 비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그게 걸맞은 적절한 대응을 보여주었다.

특히 마지막.

천무백을 쓰러트린 한 수는 정말 대단했다.

‘검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법사라.’

천무백의 일격.

검 끝에는 자비가 없다.

베이는 순간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순간에서, 강민혁은 대담하게도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택했다.

한발 앞으로.

천무백의 영역이 허물어졌다. 눈앞에서 검이 지나가는 데도 강민혁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바람에 팔락이는 강민혁의 앞머리가 천무백의 검에 잘려나갔다. 그러한 상황에서 강민혁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침착하게 끝까지 천무백의 움직임을 보았다. 마치 강화 전사가 찰나의 순간에 카운터 일격을 날리는 것처럼, 그는 정확한 타이밍에 천무백의 틈을 공략했다.

그리고 작렬한 마법.

천무백이라고 해도 버틸 수 없는 공격이었다.

천무백은 강인한 무인이나, 타닥타닥 타들어가고 있는 그의 피부는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강민혁의 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무백마저 지다니.”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천무백은 잘 싸웠어. 다만, 강민혁의 능력이 상식 밖이었을 뿐이지.”

“그럼 창천검문은 이제 폐문하는 거야?”

그들은 경악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감정을 숨기지 않고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번쩍이는 플래시 세례.

카메라의 렌즈가 천무백의 모습을 클로즈업했고, 방송계의 사람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구나.’

곽도열의 심정은 참담했다.

창천검문.

푸르른 하늘 밑에서 선조들이 힘겹게 일군 세력이, 오늘부터 3개월간 폐문의 형벌을 받는다. 그 기간에는 창천검문의 이름으로 그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다. 상업적인 모든 일이 중단되며,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허락되지 않는다. 예외는 주변에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정도.

문제는 폐문 기간이 끝난 뒤다.

새로운 현판을 다시 내걸 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창천검문을 예전처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곽도열에게 집중되었다.

대답을 바라는 눈빛들.

곽도열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패배를 인정하겠다. 창천검문은 현판의 규율에 따라 폐문을 선언한다.”

폐문.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다.

한국 4대 세력이 문을 닫는 순간에, 강민혁의 의도대로 그들은 비무행을 밝히는 제물이 되어버렸다.

‘시대가 변하고 있구나.’

앞으로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예전에는 강화 전사가 주류였다면, 천무백의 패배는 그러한 인식을 바꾸어버릴 터.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민혁이라는 새로운 세상의 선구자가, 마법사의 가치를 인정받게 할 것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곽도열.

빌어먹게도, 그날의 하늘은 창천검문의 미래를 알았는지 깊은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비무행이 끝나고.

강민혁은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심장이 뛰었다.

아직도, 천무백과 싸웠던 그 치열했던 순간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어.’

누가 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싸움이었다.

만약 마지막 수가 통하지 않았더라면, 강민혁은 천무백의 날카로운 검에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겼다.

그게 중요하다.

만약, 어쩌면과 같은 말들은, 승리 앞에서 모두 녹아내린다.

‘클리스만으로서 지낸 시간은 옳았어. 나는 강화 전사로서 수많은 마법사를 상대했고, 그래서 마법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반대로 마법사로서는 강화 전사를 어떻게 무너트려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어. 그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천무백을 절대 쓰러트리지 못했을 거야.’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지내면서, 강민혁은 양쪽의 힘을 얼추 수치화시켰다.

5서클 마법사는 수호문의 일급 제자와 비슷하다.

6서클 마법사는 황금세대와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정도.

그리고 7서클 마법사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정판호와 같은 장로급의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5번째 서클을 형성한 강민혁이 최상급 마법과 같은 강점을 고려해서 6서클 마법사의 수준이라고 생각했을 때, 사실 천무백은 쓰러트릴 수 있는 수준의 상대가 아니다. 천무백은 정판호급의 강자다. 강민혁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번 비무행의 승자는 자신이 아니라 그여야만 한다.

하지만.

‘결투라는 것은 단순히 수치로만 판단할 수 없어.’

결투(快關).

승패를 두고 온갖 변수가 난무하는 싸움에서, 강민혁이 정한 수치는 무조건 결과로 직행하지 않는다.

결투란 그런 것이다.

성인과 아이가 싸우더라도, 방심한 성인이 아이의 칼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법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성인의 패배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이나, 결투라는 룰 아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천무백이 방심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전력을 다했고 분명히 대단한 무력을 보여주었지만, 마법의 변칙적인 공격은 변수를 만들어내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뿐이었다.

다음에 싸운다면 그때는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패배를 경험 삼아 발전한 천무백에게 패배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비무행의 승자는 강민혁이었다.

‘양쪽의 세계를 모두 이해하는 것. 그게 발전의 시작이야.’

클리스만의 지식.

그것이 있다고 해서 강민혁이 강한 게 아니다.

강민혁이 천무백을 쓰러트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곽도열의 생각처럼 강화 전사로서의 경험 덕분이었다.

강민혁은 마법사이면서도 강화 전사처럼 싸운다. 승리를 위한 모든 수에는 제한이 없었고, 마법사처럼 멀리서 마법을 난사하면서도 순간 승부수가 필요한 타이밍에는 강화 전사처럼 망설임 없이 목숨을 걸었다. 그게 주요했다. 어렸을 때부터 쌓여온 내면의 경험. 그것이 전혀 다른 형태의 마법사를 만들었다. 도미닉 그린은 강민혁에게 마법사로서의 용기를 강조했지만, 사실 그건 이미 강민혁이 갖추고 있던 부분이었다.

비무행의 승리.

너무나도 기쁜 일이다.

하지만 강민혁은 아주 잠시만 기쁨을 즐길 뿐, 이내 감정을 가라앉히고 비무행의 기억을 되새겼다.

기억해야만 한다.

이번 결투를 통해, 또 다른 발전의 실마리를 얻어야만 한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강민혁은 발전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민혁의 내면에 자신을 성장시켜줄 또 다른 ‘경험하나’가 쌓여가고 있었다.

비무행은 연일 화제였다.

특히 천무백이 패배한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고, 방송계는 발 빠르게 마법 학계의 인터뷰를 따냈다.

한국에서 명망 높은 마법사.

그가,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민혁과 천무백의 결투를 보면서 솔직히 경악했습니다. 같은 마법사이지만, 강민혁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공간의 영역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환상 마법으로 천무백의 눈을 속였습니다. 그 모든 마법은 현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입니다. 강민혁이 지구보다 수천 년 더 발달한 문명에서 내려온 우주인이라면 결투의 내용을 이해 할 수 있겠지만, 강민혁은 겨우 1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그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그냥 괴물입니다.”

이번 비무행.

강화 전사들은 패배했다는 사실에 절망했다면, 마법사들로서는 경악해야 할 포인트가 너무도 많았다.

불의 권능.

블링크.

각인 마법.

환상 마법 등등.

강민혁이 사용하는 모든 마법은 그 실마리가 밝혀지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공간 실험에 성공해서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던 영국 마법 협회는, 블링크를 사용하는 강민혁의 모습에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소기의 성과만으로도 대단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민혁은 이미 완성된 형태의 공간 마법을 세상에 공개했으니 그 충격이 대단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

“강민혁은 새로운 체계의 마법과 의료 마법을 공개하면서 ‘마법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번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법사가 강화 전사 보다 약하다는 것이 이 세상의 상식이고 진리입니다. 그런데 천무백과 같은 전사가 강민혁에게 쓰러지는 순간, 이미 제2의 마법 혁명은 시작되었습니다. 마법사도 강화 전사만큼이나 강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 앞으로 많은 것이 변할 겁니다.”

제2의 마법 혁명.

강민혁의 이름으로 세상이 들끓었다.

다들 비무행이 끝나길 바랐다.

비무행이 끝나면, 강민혁에게 듣고 싶은 말이 많았다.

마지막 차례.

강민혁은 어떤 곳에 도전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네티즌들은 한 군데를 말하고 있었다.

-아마 마지막은 수호문이지 않을까?

-강민혁이 수호문 출신이라서 좀 애매하기는 한데, 이제 도전할 곳은 수호문밖에 없어. 처음에는 벽력문, 그 다음에는 창천검문. 강민혁의 도전은 점점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 그리고 창천검문을 쓰러트린 이상, 수호문을 제외한 다른 곳에 도전한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어.

-그렇긴 하네. 그럼 수호문으로 가겠네.

그건 확신이었다.

모두가 수호문을 예상했다.

강민혁과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있는 곳이라지만, 이 스토리의 피날레를 장식할 곳은 수호문밖에 없었다.

수호문에게 집중된 시선.

비무행이 끝을 향하고 있었다.

수호문.

그곳은 이미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면서, 수호문의 제자들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기색을 보였다.

‘정말 수호문에 비무행을 신청할까?’

‘그래도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사람인데..........'

‘강민혁 도련님은 영리한 분이셔. 비무행을 성공적으로 끝내려면, 수호문은 피하시겠지.’

강민혁의 비무행.

그것은 수호문 내부에서도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그들은 천무백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 잘 알기에, 강민혁이 천무백을 쓰러트리는 모습에 하루종일 말이 많았다. 한때는 수호문을 대표했던 사람. 그는 현실을 포기했던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아니라고 말하는 마법으로, 천무백이라는 강자를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가능성의 씨앗.

그것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어떤 제자들은 강민혁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강민혁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아직 강민혁의 도전을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그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수호문의 황금세대, 하민성.

그는 전날에 강민혁에게 연락했었다.

“민혁아.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수호문에는 도전하지 마라. 창천검문이 쓰러지는 순간, 수호문에서 긴급회의가 진행되었어. 그곳에서 강덕철 문주님의 태도는 확고했어.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수호문의 명예만을 생각할 거라고. 네가 얼마나 대단한 경지를 이루었는지는 알겠지만, 수호문에 도전했다가는 너 죽어.”

하민성도 강자다.

비무행 영상을 돌려보면서, 강민혁이 강화 전사조차도 위협하는 마법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천무백.

그는 수호문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최고의 무인이라고 할수 없다. 강덕철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아버지나 정판호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창천검문과 수호문을 한국 4대 세력이라고 묶어서 부르지만, 수호문이라는 세력은 그들과는 갖추고 있는 힘의 수준이 다르다.

그래서 위험성을 전달했다.

긴급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에게 전달받은 내용만으로도 그 심각성은 알 수 있었다.

하민성의 경고.

강민혁의 대답은 그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알아. 하지만 알잖아. 세상에는, 위험한 것을 알고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는 거.”

강민혁의 음성은 담담했다.

강민혁은 수호문의 힘을 모르지 않다.

후계자였던 사람이, 그리고 문주의 아들인 강민혁이 수호문의 진짜 힘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선택은 내렸다.

애초에, 비무행은 시작부터 피날레가 정해져 있었다.

강민혁은 마법사로서의 삶을 택했다.

그간의 행보로 편견이 사라졌다지만, 새로운 마탑을 건설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많은 꼬리표가 따라붙을 것이다.

새로운 세력이 생겨나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온갖 유언비어로 강민혁의 명성을 깎아내릴 것이다.

그래서 택한 길이다.

비무행의 마지막.

이것은, 도전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끼이이익.

마침내 열리는 문.

덤덤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서는 강민혁의 모습에, 하민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미친 새끼.”

결국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어떻게든 강민혁을 말리려고 했지만, 강민혁은 창천검문에서처럼 사람들을 대동하고 수호문에 나타났다.

이제 물은 엎질러졌다.

강민혁은 앞으로 다가오더니, 강덕철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수호문의 현판을 걸고 비무행을 신청하겠습니다.”

마지막.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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