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04화 (104/197)

104화.  < 27. 비무행(比武行)(3) >

S 방송사는 재빠르게 특집 방송을 편성했다.

오후에 예정되어 있었던 헌터 관련 프로그램을 휴방시키고, 그를 대신해서 비무행의 영상을 내보냈다.

영상은 정민구 기자의 멘트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점심이 지난 시각, S 방송사에 한 통의 제보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수호문의 전 후계자이자 마법 혁명으로 유명한 강민혁이, 벽력문을 시작으로 비무행을 나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확인한 결과 문자의 내용은 사실이었고, 다행히도 간발의 차이로 벽력문주 구광모와 강민혁의 대결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서론이 끝나고.

방송은 본격적으로 구광모와 강민혁의 대결을 보여주었다.

그건 강화 문명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대결이었다. 강민혁은 강화 전사를 상대로도 물러섬이 없었으며,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으로 구광모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격을 선사한 미라지. 결국 구광모가 쓰러지는 모습에, 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경악했다.

-구광모가 마법사에게 패배했다고?

-헐.

-진짜 미쳤다. 구광모 정도 되는 실력자가 지다니.

-내가 지금 CG를 보고 있는 거 아니지? 이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가?

-강민혁 아직 마법을 배운 지 1년도 되지 않았다며. 그런데 어떻게 5서클 마법을 사용하는 거야?

구광모의 패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구광모는 일반적인 헌터와는 다르다. 강화 전사 중에서도 ‘상위 레벨’에 해당하는 인물이고, 마법사의 힘으로는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다. 그런데 그런 구광모가 쓰러졌다. 그것도 치열한 접전 끝에 쓰러진 게 아니라, 구광모는 본인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당했다.

한 네티즌이 말했다.

-4서클 마법사인 나로서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네. 강민혁의 마법은 난생처음 보는 것들의 향연이었어. 화염 마법의 불꽃들이 다른 마법으로 변화하고, 움직이면서 캐스팅을 하고, 마지막에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마법도 사용했어. 대체 강민혁의 정체가 뭐야? 그가 사용하는 모든 마법이 내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어. 특히 무빙 캐스팅은 마법사의 염원(念願)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인데, 강민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잖아.

무빙 캐스팅.

댓글의 내용처럼, 마법사들은 그간 움직이면서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마나의 불안정함은 움직이는 것과 캐스팅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지 못했는데, 강민혁은 마치 평범한 기술1을 사용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무빙 캐스팅을 보여주었다. 구광모의 패배에 강화 전사들이 크나큰 충격을 받은 만큼, 그건 신기술을 마주한 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상식 밖.

강민혁에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렇게 네티즌들의 반응이 열광적으로 들끓고 있는 그때, 방송은 마지막 장면을 비추고 있었다.

["강민혁씨, 질문이 있습니다!”]

벽력문에서의 용무는 끝났다.

현판을 부수고 자리를 떠나는 강민혁의 모습에, 정민구 기자가 황급히 달려가서 강민혁을 붙잡았다.

["말씀하시죠.”]

["강민혁씨는 벽력문을 상대로 비무행을 신청하셨습니다. 강화 전사의 세계에서 비무행이란,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3번의 도전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혹시 강민혁씨도 벽력문을 시작으로 앞으로 도전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다음 상대는 어디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

강민혁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었다.

["다음 상대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비무행을 시작한 이상 끝을 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하루에 한 곳. 오늘 벽력문을 끝냈으니, 남은 이틀 동안 비무행을 차례로 진행할 것입니다. 그러니 미리 준비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마법사가 1대1에 약하다는 것은 편견이고, 벽력문주인 구광모 또한 저를 상대하기 전까지는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탁-

언터뷰가 끝났다.

그리고, 난리가 난 네티즌들만큼이나 ‘서울 강화 전사 세력’들의 발등에도 뜨거운 불길이 떨어졌다.

서울 중소(中小) 연합.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강화 전사 세력들이, 서로의 힘을 합치기 위해서 창단한 집단이다.

한국의 4대 세력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데, 서울 중소 연합은 평소에는 개개인의 목적을 위해 행동하다가 중소 세력에 위협이 되는 일이 있으면 뭉친다. 벽력문 또한 중소 연합에 포함되기 때문에, 벽력문의 폐문은 당연히 중소 연합으로서는 크나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사건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보아라.”

중소 연합의 수장.

스틸 레인(Steel Rain)의 주인인 백범영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벽력문도를 바라보았다.

마치 취조의 분위기와도 같았다.

벽력문도를 중심으로 중소 연합의 수장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고, 그로 인한 압박감은 상당히 대단했다.

“처음에는 박철우가..................."

설명이 시작되었다.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은, 정확한 자초지종을 들으며 중소 연합의 수장들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래도 벽력문은 중소 연합 중에서는 상당한 세를 자랑하는 세력인데, 그들의 패배가 설명을 듣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결국 설명이 끝났다.

잠시 침묵이 맴돌자, 흑창(黑權)의 수장이 나섰다.

“이건 명백하게 강민혁이 강화 전사 사회에 경고하는 것입니다. 마법 혁명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수호문 출신이라고 해서, 강화 전사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마법 혁명으로 마법사가 득세했듯이, 이번에도 그는 마법사로서 강화 전사의 위상을 깎아내려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비무행이라는 위험한 선택을 내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도는 빤히 보였다.

강민혁.

그는 이제 마법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강화 전사들의 위상이 떨어지면, 자연스레 강민혁이라는 사람이 부각되는 것은 당연할 터.

중소 연합의 수장들이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벽력문주 구광모가 쓰러지는 모습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폐문의 위기를 맞이했다.

백범영이 말했다.

"문제는 우리가 비무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벽력문주는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패배했다면 강민혁의 힘은 진짜라는 의미겠죠. 고로, 우리는 지금 머리를 맞대야만 합니다. 강민혁은 멍청하게도 우리가 비무행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부여했습니다. 딱 하루. 24시간 동안, 비무행의 영상을 철저하게 분석하면 됩니다. 벽력문주는 갑작스러운 변수에 당한 것으로 보이지만, 강민혁이 사용하는 마법을 파악하기만 한다면 우리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타당한 의견이었다.

모두의 눈빛이 비장하게 변하자, 백범영이 살의를 보였다.

“어차피 강민혁은 4대 세력에는 도전하지 못합니다. 벽력문주는 어떻게 쓰러트렸다고는 하나, 4대 세력에 도전했다가는 비무행이 그 자리에서 끝나고 말겠죠. 결국 목표는 중소 연합입니다. 강민혁은 우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고, 그 시작으로 벽력문을 택한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똑똑히 보여줍시다. 서울 하늘 아래에는, 우리 중소 연합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럽시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그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중소 연합이 힘을 합쳤다.

비무행의 영상을 분석하는 일은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들은 다음 날이 되자 본인들의 거처로 돌아갔다.

폭풍전야.

날카로운 분위기가, 서울을 휘감았다.

서울 중소 연합이 한참 시끄러울 그 시각.

강민혁은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연락에 시달리고 있었다.

[웨인 번즈입니다.]

영국 마법 협회의 수장.

그는, 조심스러운 어투로 강민혁에게 물었다.

[솔직히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벌써 5서클의 경지에 오르신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강화 전사를 근접전에서 쓰러트리다니. 전화하기까지 비무행 영상을 수십 번 이상 되돌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화를 드린 이유는......... 대체 강민혁님이 사용하신 마법들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말도 안 되는 성장을 떠나, 정말 무빙 캐스팅에 성공하신 겁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이번에도 공공재로 공개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비무행 영상.

그것을 보고는 도저히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강화 전사를 근접전에서 쓰러트리는 마법사는, 그야말로 모든 마법사가 꿈꾸는 이상이지 않던가.

강민혁이 말했다.

“제가 사용한 마법에 대해서는 이번 비무행이 모두 끝나고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공공재 여부에 대해서도, 그때 말씀을 드리죠. 미리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예. 무빙 캐스팅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

웨인 번즈가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는 정신이 없는지 횡설수설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강민혁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번 비무행은 단순히 강화 전사들의 세력에만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마법 학계도 비무행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길.

강민혁이, 이제껏 상상만 했던 워 메이지의 세상을 열고 있었다.

선구자의 행렬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았다.

그렇게 웨인 번즈와의 연락이 끝나고.

그 외에도 수많은 연락이 있었다.

프랑스 마법 연합.

미국 마법 연합.

그리고 여러 마탑들.

그들이 모두 강민혁의 비무행 승리를 축하하며,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고자 꿀 발린 소리를 말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무빙 캐스팅.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그것만큼은 쟁취하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런데 웃기게도, 세계 연합이 강민혁을 인정하는 와중에 한국 마법 연합은 대세를 거스르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 자리를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한국 마법의 유망주들에게, 비무행에서 사용한 기술들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아마 좋은 자리가 될 겁니다. 강민혁님으로 인해 한국 마법이 발전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들은 강민혁의 도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마 수호문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세계 연합은 수호문과 강민혁을 별개로 치며 어떻게든 마음을 사로잡고자 노력한다면, 한국 마법 연합은 마치 수호문과 본인들의 특별한 관계가 강민혁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거절을 염두하지 않은 부탁을 했고, 강민혁은 별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지금은 저런 곳들에 심력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비무행.’

감각이 날카롭게 돋아올랐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했다.

클리스만으로서 보낸 지난 반년의 시간.

강민혁은 그 시간 동안 싸우고 또 싸우면서, 마법사로서의 자신을 날카롭게 갈았다.

그리고 지금.

강민혁은 시험의 무대에 올랐다.

쿵쿵 뛰는 심장에, 강민혁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일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벽력문과의 비무행은 전초전(前時戰)일 뿐이다.

내일.

강민혁은,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다음 날이 밝았다.

사람들은 강민혁이 곧바로 비무행을 진행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랐다.

강민혁은 아카데미에 등교했고, 평범하게 수업을 받으면서 비무행과 무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아카데미를 모두 끝내고 가려는 건가.”

강민혁을 보며 사람들이 속닥였다.

아카데미 밖에는 외부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대부분 방송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강민혁이 나오길 기다리며 방송 장비를 세팅했다. S 방송사의 영상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강민혁의 비무행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일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인파가 아카데미로 몰려들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점심이 지나도 강민혁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도 했다.

“혹시 겁을 먹은 게 아닐까? 벽력문주는 어떻게 쓰러트리긴 했는데, 막상 일을 심각하게 벌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지. 보니까 어제 오후에 중소 연합의 비상소집이 있었다던데. 지금 중소 연합이 칼을 갈고 준비하는 상황이라, 잘못 도전했다가는 결투 도중에 죽을지도 몰라.”

수업이 모두 끝났다.

밖으로 나서는 강민혁.

취재진들이 몰려들어서 질문 세례를 퍼부었지만, 강민혁은 그 어떠한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딱 하나.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약속대로 지금부터 두 번째 비무행을 진행하겠습니다.”

강민혁은 겁쟁이가 아니었다.

방송 장비를 챙긴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알자, 그들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강민혁의 뒤를 따라붙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모습이 이러할까?

강민혁을 필두로 우르르 몰려가는 수백 명의 행렬에, 뒤에서 따라붙는 사람들이 말했다.

“어디로 갈까?”

“음, 아마 스틸 레인에 도전하지 않을까? 중소 연합의 수장이라, 나름 상징적인 의미가 있잖아.”

“스틸 레인에 도전할 것 같기는 한데, 그건 마지막 차례이지 않을까? 스틸 레인을 쓰러트리고 나면 사실상 4대 세력만 남잖아. 두 번째에 강한 상대를 상대하고 세 번째에 약한 상대를 상대하면 모양이 빠지니까, 스틸 레인은 피날레를 위해 남겨두겠지.”

“...혹시 4대 세력에 도전하지 않을까?”

“절대 그럴 일은 없어. 구광모도 솔직하게 말해서 방심해서 진 게 컸어. 그런데 4대 세력에 간다고? 구광모 이상의 실력자들이 널리고 널린 그곳에 갔다간 강민혁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어.”

그들의 의견도 중소 연합과 동일했다.

4대 세력을 배제한 나머지.

그들이야말로 강민혁의 목표라고 말이다.

그런데.

“어?”

“설마.”

“이런 미친.”

강민혁의 걸음이 멈춘 곳.

당황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강민혁은 현판에 걸린 문자를 올려다보았다.

[蒼天劍門]

창천검문.

그곳은 수호문과 같이, 한국 4대 세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