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03화 (103/197)

103화.  < 27. 비무행(比武行)(2) >

분위기가 변했다.

강민혁은 정확히 구광모를 지목했다.

벽력문의 왕에게 내려와 자신을 상대하라고, 마치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기회의 무대를 만들었다.

“문주님.........."

문도들의 시선이 구광모를 향했다.

그제야, 구광모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이런 상황을 노린 것이구나.’

강민혁은 강화 전사들의 세계를 잘 안다.

비무행을 도전한다 할지라도, 마법사가 문주를 끌어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마법 혁명을 통해 마법사의 가치가 아무리 상승했다지만, 강화 전사들의 자존심은 여전하니 말이다.

그래서 강민혁은 박철우를 압도적으로 쓰러트렸다. 방심을 이용한 틈을 정확히 공략하였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넋을 잃을 정도로 손 쉽게 승리를 쟁취했다. 그로 인해 강민혁은 명분을 얻었다. 박철우는 자신의 상대가 되질 않으니, 그를 대신해 다른 사람을 불러들일 수 있는 명분을.

‘빌어먹을 녀석.’

딜레마에 빠졌다.

사실 박철우의 선례가 없었다면, 구광모는 당장에 내려가 건방진 강민혁의 낯짝을 박살 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애매했다.

박철우는 강민혁의 ‘전력’을 조금도 드러내지 못했다. 강민혁은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무빙 캐스팅을 비롯한 처음 보는 기술을 사용했으나 그게 강민혁의 전력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강민혁이 만든 판이고,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숨겨둔 카드가 더 있을 것이다.

그간의 경험이 말했다.

절대 쉬운 싸움이 아니라고.

편견을 걷어내고 강민혁을 바라보자, 선뜻 결투에 응할 수 없었다.

‘패배할 경우 벽력문은 아주 큰 피해를 입는다.’

마법사에게 현판이 박살 난 문파.

그 꼬리표는 강화 전사 세계에서 매장을 당할 위험이 있다.

구광모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피하면 겁쟁이가 될 것이고, 승낙한다면 아주 위험한 리스크를 안고 강민혁을 상대해야만 한다.

구광모가 말했다.

“하나만 묻겠다.”

“말씀하시죠.”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거지? 예전에 수호문과 벽력문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는 하나, 마법사로 전향한 너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 않더냐. 현판을 박살 낸다고 해도 네가 얻을 것은 없다. 실력을 인정받는다고는 하나, 너는 그 대가로 많은 적을 만들게 될 것이다. 비무행으로 명성을 떨쳤던 실력자들은, 결국 대부분 비명횡사(非命橫死)로 제 명을 다 살지 못했음을 기억해라.”

경고였다.

현판을 부수면 그 세력과는 철천지원수가 된다.

원칙은 그 결투로 은원을 끝내는 것이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구광모는 방금의 발언으로, 이 결투가 강민혁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일지를 다시금 상기를 시켰다.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자신도 저랬을까.

수호문의 후계자로 있을 때, 저리도 오만한 태도로 마법사를 바라보았을까.

“마법사로서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어차피 평탄한 삶을 살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강화 전사가 주류인 세상입니다.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마법을 경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벽력문은 자연스럽게 저를 적대했겠죠. 제 안위는 알아서 지킬 테니, 이제 결정을 내리시죠. 벽력문의 현판이 박살 나는 것을 이대로 지켜보시겠습니까?”

마지막 수는 통하지 않았다.

이건 외통수다.

애초에, 도망칠 길은 없었다.

“오냐, 네 뜻대로 해주마. 하지만, 결과는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탁.

구광모가 나섰다.

위험성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나 결투를 마음먹은 이상, 구광모는 본인의 실력에 한 치의 의구심도 가지지 않았다.

“이 구광모가 건방진 네 녀석을 직접 상대해주마.”

벽력문주.

그는, 박철우와는 다르게 진짜 실력자였다.

벽력문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그 시각.

S 방송사의 기자 정민구는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수호문의 전 후계자였던 강민혁이 마법사로서 비무행을 나설 것입니다. 첫 상대는 벽력문이니, 시간에 맞춰 가시면 비무행의 영상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어?"

문자의 내용.

너무 허무맹랑해서,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보았다.

분명했다.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상대가 보낸 문자는, 강민혁이 벽력문을 상대로 비무행을 신청한다고 했다.

“에이, 설마.”

비무행.

그건 강화 전사들의 전통이다.

실력을 증명하고자 하는 자는, 총 3개의 문파에 비무를 신청한다. 패배하는 문파는 현판이 박살이 나며 3개월 동안 폐문(閉門)을 하는데, 웬만해서는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강화 전사들도 비무행을 선호하지 않는 세상에서, 마법사가 비무행이라니.

그래도 혹시 몰라 은평구 쪽에 연락을 넣었다.

주변에 있는 지인에게, 벽력문의 상황을 파악해서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지인이 충격적인 연락을 보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지금 강민혁이 벽력문을 방문했어. 안에서 들리는 말로 보아서는 진짜로 비무행을 신청한 모양이야. 빨리 와. 아직 시작 안 했으니까, 지금 오면 영상을 딸 수 있어.]

‘헉.'

정민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문자가 진짜였다니.

그럼 이건 대박이었다.

강민혁의 비무행?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성이 엄청나다.

그리고 정말 혹시라도 강민혁이 승리한다면, 이것의 파급력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강민혁은 승산이 없는 싸움에 도전할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면 강화 전사를 1대1로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가? 아마 벽력문에서는 구광모가 나설 일은 없을 테니까, 박철우 정도를 상대하겠네. 후우, 진정하자 민구야. 강민혁이, 결국 내게 특종을 물어다 주는구나.’

과거.

정민구는 강민혁과 관해서 항상 사실적인 기사만을 작성했었다.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왠지 그때의 일이 자신에게 보답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서둘렀다.

은평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지만, 그래도 비무행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벽력문.

다행히도 그는 늦지 않았다.

그가 황급히 카메라를 들자, 막 결투를 시작한 구광모와 강민혁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구광모는 멍청하지 않았다.

한발 뒤에서.

박철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벽력문의 현판이 걸린 상황에서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았다.

화악-

그의 몸에서 마나가 일었다.

마나를 단단하게 두르고 빠르게 달려드는 모습에, 강민혁도 서클의 상관관계로 2서클의 캐스팅을 생략했다.

“파이어 볼.”

화르르르륵.

콰앙!

화구가 작렬했다.

화끈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뚫고 구광모가 달려들었지만, 강민혁의 공격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강민혁은 무빙 캐스팅으로 이동하면서 ‘불의 권능’을 발현시켰다. 강민혁의 강력한 불의 지배력에 불꽃들이 응하더니, 수십 개의 불꽃이 파이어 애로우로 변했다.

“화우.”

화르르르륵!

펑펑펑!

저서클 마법.

그러나 위력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최상급 마법은 항상 예상을 웃도는 데미지를 선사했고, 강민혁의 마법은 분명히 위력적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구광모라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쉽게 흔들릴 상대였다면, 그는 벽력문의 문주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딜!”

팍!

불길이 마나의 파동에 흩어졌다.

동시에 그는 오라를 뿜어냈다.

강민혁이 도미닉 그린을 견제했던 것처럼, 그는 오라의 파편으로 마나의 흐름을 공략하려 했다.

‘재밌네.’

히죽.

그건 참 신선한 경험이었다.

클리스만으로 지낸 반년의 시간 동안, 강민혁은 강화 전사로서 수많은 마법사를 상대했다. 그때마다 자신이 사용했던 수단이다. 그렇기에, 마법 문명의 마법사들이 오라의 파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도미닉 그린이 사용한 방법도 좋았지만, 강민혁은 그보다 좋은 방법을 알았다.

“윈드 웨이브(wind Wave)."

화아아악-

바람의 파도.

마나의 힘을 담은 바람이 일어나더니, 오라의 파편을 휩쓸어버린 채로 그대로 구광모를 공격했다. 구광모의 공격은 오히려 그를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다. 처음에 이 방법에 당했을 때, 강민혁은 윈드 웨이브를 정교하게 컨트롤하면 오라의 파편을 막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경험.

그것이 강민혁의 내면에 쌓였다.

구광모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점프를 하더니, 벽력의 기운이 담긴 도를 힘껏 휘둘렀다.

쾅!

쿠르르르르르릉.

바람이 소멸되었다.

동시에, 그가 어느새 강민혁의 앞으로 쇄도했다.

빨랐다.

벽력문주의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마법사를 쓰러트리는 방법을 알았다.

구광모의 날카로운 눈빛이 강민혁에게 향하는 순간, 강민혁의 본능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블링크?

아니다.

공격이 먹혔다고 확신하는 상대에게는, 아주 적절한 방법이 있었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구광모의 도가 강민혁의 몸를 가르자, 강민혁의 몸이 모래가 흩어지는 것처럼 사라졌다.

파사사사삭-

".........?!"

구광모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 세상에는 없는 기술이 발현되는 상황에, 그는 황급히 강민혁의 위치를 찾으려고 시선을 돌렸다.

그때.

“썬더 캐논.”

팍!

빠지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악.”

강력한 전기 계열의 마법이 사용되었다.

구광모는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물러났다. 그는 수호문과 비교하면 황금세대 정도에 버금가는 실력자였지만, 5서클 마법에 노출된 상황에서 버틸 방법은 없었다. 멀리 떨어진 구광모의 눈빛이 흔들렸다. 강민혁이 보여주었던 마법 같은 순간에, 구광모는 입이 바짝 말랐다.

“...어떻게?”

강민혁이 마나를 일으켰다.

당혹스러울 것이다.

많이 충격적일 것이다.

자신은 ‘마법’을 많이 알고 있는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크리스 카일을 상대로 고전했고, 도미닉 그린에게는 패배했다.

그러니 구광모는 오죽하겠는가.

보통은 오라 파편에 픽픽 쓰러지고, 근접으로 붙으면 끝나야 맞는 상황에서 강민혁은 오히려 반격을 시도했다. 구광모는 방심하지 않고 마나를 피부에 둘렀지만, 썬더 캐논은 버티지 못했다.

조금 떨어진 거리.

그건 구광모의 마음에 생긴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강민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메모라이즈.’

초고속 캐스팅.

머리가 팽팽 돌았다.

강력한 마력이 발현되며,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구광모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젠장.”

구광모가 땅을 박찼다.

마법을 피하려고 하자, 땅에서 가시 바위가 일어났다.

“스톤 에지(stone edge).”

퍽!

그의 이동을 방해했다.

구광모는 가시 바위 위를 뛰어넘으며 다시 한번 강민혁에게 접근하려고 했지만, 썬더 캐논을 맞은 순간부터 그는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 되었다. 썬더 캐논은 강화 전사를 늪으로 빠트리는 지옥의 시작점이다. 강민혁이 발현한 마나가 또 다시 썬더 캐논을 뿜어내자, 구광모의 눈이 뒤집혔다.

팍!

빠지지지지지직!

분명히 피했다.

하지만 그의 내부에 남은 잔여 전기가 썬더 캐논의 힘을 끌어들였고, 그로 인해 충격을 받았다.

“허억, 허억.”

구광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숨을 헐떡였다.

그는 실험실의 생쥐였다.

강민혁이 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적절한 수로 궁지에 몰아붙이고 있었다.

구광모가 약하다?

그건 아니다.

수십 마리의 A급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있는 그는, 결코 약한 강화 전사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경험이 부족할 뿐이었다.

현재 세상에 알려진 상식으로는, 강민혁이 사용하는 전투 방식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보아라, 마법사의 힘을.’

강민혁은 강화 전사들에게 시간을 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기자를 불렀다.

자신의 영상을 촬영하게 하고, 자신의 마법을 분석할 넉넉할 시간을 부여할 생각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구광모라는 강자가 허무하게 쓰러진 모습에, 그들은 본인들의 현판을 걱정해서 열심히 분석할 터.

피날레는 그때 시작된다.

구광모 이상의 강자.

그가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도 쓰러진다?

생각만으로도 짜릿한 일이지 않은가.

강민혁이 활짝 웃었다.

“이제 끝내죠.”

그리고 작렬하는 마법에 구광모가 쓰러지는 순간, 영상을 촬영하던 정민구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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