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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02화 (102/197)

102화.  < 27. 비무행(比武行) >

벽력문주 구광모는 처음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문주님도 강민혁이라고 아실 겁니다. 수호문의 전 후계자이자 마법 혁명의 주인공인 그가, 방금 비무행을 신청했습니다. 이를 어찌할까요? 현판의 규율에 따르면 강민혁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지만, 문제는 상대가 강화 전사가 아니라 ‘마법사’로서 도전을 했다는 겁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쾅!

구광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현판의 규율.

현판을 내걸고 세력을 선포한 사람이라면, 의무는 아닐지라도 암묵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문제다.

그래서 보통은 도전자를 반려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밖으로 나선 구광모는, 벽력문도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강민혁의 모습에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네 이놈-! 벽력문이 그리도 만만하게 보였더냐!”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만만히 보았다면, 도전의 가치도 없었기에 이리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건방진 새끼. 나는 예전부터 네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호문을 등에 업고 날뛰는 모습에, 언제고 제 발에 걸려 넘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 이곳은 벽력문이다. 눈을 똑바로 뜨고, 이 구광모의 모습을 보아라. 겨우 네 녀석 따위가, 벽력문의 현판을 넘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벽력문과 강민혁.

과거에 얽혔던 기억이 있다.

당시 벽력문의 문도들과 수호문이 시비가 붙었던 적이 있었는데, 강민혁은 수호문의 선두에서 벽력문의 문도들을 박살을 내버렸다. 그때부터 벽력문에게 수호문과 강민혁의 이름은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강민혁이 말했다.

"현판의 규율을 잊으셨습니까? 패배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현판의 도전에는 자격의 제한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말씀해주십시오. 현판이 걱정돼서 도전을 망설이는 것이라면, 벽력문의 사정을 생각해서 물러나 드리겠.........."

“오냐!”

구광모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강민혁의 발언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애초에 마법사와 싸우는 것 자체가 진흙탕을 구르는 일이나, 상대가 강민혁이라면 그럴 가치가 있었다.

“너의 도전을 받아주마. 이 벽력문의 문이 얼마나 높은지, 네게 똑똑히 보여주지!”

구광모는 확신했다.

비무행.

결투가 끝나고 나면, 강민혁의 저 건방진 낯짝은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현판의 문지기.

그 상대는 구광모가 아니었다.

벽력문의 승리가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구광모가 직접 나서는 것이나, 그건 벽력문의 자존심을 바닥에 떨어트리는 선택이다. 도전자는 겨우 마법사다. 아무리 강민혁이 수호문의 출신이고 마법 혁명의 장본인이라고는 하나, 그가 강화 전사의 먹잇감에 불과한 마법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법사를 상대로 문주가 직접 나선다?

주변의 강화 전사들이 비웃을 일이다.

그래서 구광모는 한발 뒤로 물러났고, 그의 애제자인 박철우가 결연한 태도로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군.”

과거의 인연.

박철우는 강민혁을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벽력문의 문도들이 수호문에게 박살이 나는 과정에서, 박철우는 강민혁에게 가장 먼저 쓰러지는 굴욕을 맛보았다.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너에게 패배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은 네 녀석에게 복수할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의 너는 수호문의 후계자이자, 검사로서도 매우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사람의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지. 너는 결국 강화 전사의 길을 포기하고 마법사로 전향하는 겁쟁이가 되었지만, 나는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게 현실이다. 네가 기억하는 박철우는, 벽력문을 대표하는 전사가 되었다.”

피식.

강민혁이 웃었다.

박철우의 모습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비장했고, 결의에 찼다.

강민혁을 반드시 쓰러트리겠다는 의지가 보였으나, 문제는 강민혁의 기억에 그가 없다는 것이다.

“미안한데, 난 네가 기억나지 않아.”

“이 새끼가 어디서 개수작을!”

“마음대로 생각해. 혼자 나에 대한 상상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너와 같이 발밑에 쓰러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어. 그러니 패자들을 일일이 기억할 이유 따위는 없었지. 만약 네가 정말 기억할 가치가 있었다면 얼굴을 알아보았겠지만, 글쎄. 난 박철우라는 사람을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박철우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과거의 회상은 끝났다.

그가 말했다.

“그래, 기억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평생 기억하도록 만들어주지.”

타닥!

땅을 박차는 박철우.

드디어, 현판을 내건 결투가 시작되었다.

비무행.

현판을 내건 결투에서는 모든 결과가 용납된다.

누가 죽거나 다치더라도, 박철우에게는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죽인다...!’

벽력문도들이 보는 자리.

그 앞에서 강민혁은 자신에게 엄청난 굴욕을 주었다.

자신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말은, 그때 패배했던 것보다 박철우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인탱글.”

파바바박!

땅에서 나무줄기들이 일어났다.

자신의 접근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였으나, 박철우는 코웃음만 나왔다. 겨우 2서클 마법으로 자신을 막아낼 생각을 하다니. 박철우의 도에서 오라가 뿜어졌다. 수십 다발의 나무줄기가 박철우의 몸을 휘감으려는 순간, 오라가 번뜩이더니 나무줄기가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겨우 이 정도로...."

“파이어 볼.”

펑!

화르르르르르륵!

강력한 화염이 일었다.

박철우는 황급히 마나를 둘러 파이어 볼을 막아냈는데, 마법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했다.

‘이게 파이어 볼이라고?’

동공이 흔들렸다.

파이어 볼은 2서클 마법이다.

그런데 마법의 위력이 최소 3서클 이상인 것 같았고, 문제는 강민혁이 인탱글에 이어 곧바로 파이어 볼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마법사에게는 캐스팅이라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렇다면 마법을 빠르게 연계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래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다 이건가.’

하지만 승리를 의심하진 않았다.

강화 전사와 마법사의 대결.

마법사가 아무리 수십 발의 마법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딱 한 번 접근을 허용하면 대결은 끝난다.

그리고.

“마법사의 한계는 움직이지 못한다는 거지!”

강민혁이 있던 위치.

확인하지도 않았다.

박철우는 도에서 일어난 오라로 오라 웨이브를 일으키더니, 멀리서 강민혁을 공격했다.

사사삭!

바람을 가르는 오라.

그러자 강민혁이 자리를 피했다.

그 모습에 박철우가 히죽 웃었다.

‘걸렸어.’

오라 웨이브는 미끼다.

강민혁이 피하는 선택을 내림으로써, 강민혁은 캐스팅을 사용할 수 없을 터.

그 또한 마법사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캐스팅 상황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위치를 확인하지 않아도 마법사를 공격할 수 있다.

“끝이다!”

타다다닥!

박철우의 몸이 사라졌다.

마나가 폭발하며 그가 빠르게 강민혁에게 접근했다. 강민혁으로서는 지금 마법을 사용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겨우 몇 초 사이에, 자신을 쓰러트릴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할 방법은 절대 없을 터. 그렇다면 자잘한 마법은 그냥 버티면 그만이다. 그래서 박철우는 마나를 피부에 두르는 선택보다는, 마나를 최대한 다리에 집중시켜서 빠르게 강민혁에게 달려드는 선택을 내렸다.

그 선택은 옳았다.

박철우가, 순식간에 강민혁의 앞에 도달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였다.

박철우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륵!

“.........?!”

어느새 형성된 수십 발의 파이어 애로우.

그것이 그대로 박철우에게 작렬했다.

펑펑!

화륵, 화르르르르륵!

“크윽."

박철우가 뒤로 튕겨 나갔다.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예상치도 못한 공격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고, 불길에 휩쓸린 그는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방심의 대가였다. 캐스팅을 사용할 수 없다고 믿었던 그 확신이, 그를 궁지에 몰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대체 어떻게?

상대는 어떤 방법으로 움직이면서 마법을 사용했단 말인가?

마법의 캐스팅은 또 왜 이리 빠르단 말인가.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아직 비무행은 끝나지 않았고, 박철우는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차려고 했다.

그 순간.

강민혁은 ‘메모라이즈’의 고속 캐스팅을 통해, 이미 박철우를 끝낼 마지막 캐스팅을 끝마친 상태였다.

“파이어 캐논.”

5서클 마법.

그것이 작렬하는 순간, 결투는 허무할 정도로 싱겁게 종지부를 찍었다.

쾅!

화르르르르르륵!

퍼억!

박철우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그대로 정신을 잃은 박철우.

타닥타닥 타오르는 화염에, 결투를 지켜보고 있던 벽력문도들의 표정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벽력문이 정적에 빠졌다.

아무도, 이 결과에 대해서 그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멍청한 녀석.’

박철우.

그의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그는 강민혁이 가지고 있는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을 내리는 우를 범했다.

강민혁은 이번 비무행이 마탑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법사가 강화 전사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사람들로서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문명의 기술을 사용해야만 한다.

방금 사용한 기술들.

불의 권능.

서클의 상관관계.

그리고 무빙 캐스팅.

박철우가 당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강민혁을 판단했고, 몸으로 버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

".........."

벽력문도들이 충격에 말을 잃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호기롭게 나섰던 박철우는 허무하게 패배하고 말았고, 그렇다면 강민혁이 비무행의 승자가 된다.

현판을 박살 낼 권리.

그것이, 강민혁에게 있었다.

그때였다.

구광모가 말했다.

“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

상식 밖.

눈으로 빨려 들어오는 지금의 상황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박철우는 결코 약하지 않다.

수호문과 비교해도, 일급 제자 정도의 수준은 된다. 얼마 전에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면서 본인의 실력을 증명했기에 박철우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다. 박철우가 방심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도 이렇게 쓰러지는 것은 아니다. 당황해서, 그로서는 생각이 정리되질 않았다.

강민혁이 웃었다.

이건 상식을 박살 내기 위한 행보다.

박철우는 전형적인 상식 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법사는 캐스팅하며 움직일 수 없다.

마법사의 마법은 버티면 된다.

마법사는 연계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편견으로 가득 찬 그의 생각은, 강민혁의 마법 앞에서 생각 이상으로 안일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파이어 볼을 맞았을 때.

그는 상황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겨우 1서클 마법 수십 발에 얻어맞는다고 해서, 그가 큰 충격을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6서클의 위력을 보이는 파이어 캐논이라 할지라도, 박철우는 그것을 버틸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이건 방심이 만들어 낸 결과였고, 강민혁은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박철우는 본보기다.

강민혁이라는 마법사를 경시(輕視)하지 말라는 본보기.

강민혁이 말했다.

"이렇게 쉽게 벽력문의 현판이 박살 난다면, 벽력문으로서는 고개를 들고 다닐 면목이 없겠죠. 그러니 한 번 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문주님이 직접 내려오신다면, 저는 방금의 대결을 없던 일로 하고 문주님을 상대할 의향이 있습니다. 어떠십니까? 벽력문의 벽이 그리도 높다면, 문주님이 직접 보여주시죠.”

위치가 바뀌었다.

강민혁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방금까지는 구광모가 포식자처럼 굴었다면, 이제는 강민혁의 사나운 기세에 벽력문도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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