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96화 (96/197)

96화.  < 26. 수확의 계절 >

클리스만으로서의 반년.

강민혁은 많은 것을 경험했다.

예전에는 클리스만의 지식을 중점으로 두었기에 수업에 소홀했다면, 이제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교육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방과 후에는 멀리서 찾아왔다는 마법사들의 도전을 받아들였고, 강민혁의 ‘힘’을 바라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공유했다.

한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날.

농기구 대신 검을 잡고 싶다고 말하던 농부는, 강민혁과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저를 대농(大農)이라고 부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제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올랐는지 아십니까? 사실 이건 비밀인데, 저는 흉작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마나의 힘이 충만한 명당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요. 사람들은 보통 명당에서 ‘산삼’과 같은 기연을 얻고 떠나지만, 사실 진정한 힘은 그 땅에 있습니다. 저는 그 땅에서 비료를 숙성시킵니다. 명당이 넓은 땅이 아니라 농작물을 키우는 것에는 제한적이기에, 명당의 힘을 비료에 담아가는 것이죠. 그럼 그해 농사는 대박이 나는 겁니다.”

농부는 상당한 부자였다.

그는 자신도 힘을 얻고 싶다면서, 검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수십억이 예금된 통장을 내밀었다.

강민혁은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농부와 대화를 나눌 뿐이었고, 기본적인 강화법을 알려주자 그는 자신의 비밀을 말했다.

수많은 경험 중 하나.

하지만 그의 말은 강민혁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명당(明堂)이라. 농부의 말대로라면, 명당의 기운이 농작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겠지. 그걸 만약 마법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마나 룸은 평범한 환경에서도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어. 그런데 만약 명당에서 마나 룸을 사용한다면? 그 효과는 대단하지 않을까?’

그건 가능성일 뿐이다.

일단 기록해두었고, 강민혁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다.

며칠 뒤.

본인을 막스 플랑크(Max Planck)라고 밝힌 5서클 마법사와 대결했다. 그는 놀랍게도 혼자만의 힘으로 마법을 익힌 사람이었는데, 그와의 대결이 끝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었다.

“저는 말입니다.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태생부터 축복을 받았기에, 그들은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들은 매일 엄청난 돈을 들여서 마나 룸 훈련을 진행하지만, 사실 자연에도 그를 대신할 해답은 있습니다. 자연의 기운이 충만한 장소. 그곳에서 마나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반복한다면, 마나 룸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5서클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도움이 되는 말들이었다.

학교 수업으로 지식을 머릿속에 쌓고.

사람들과의 교류로 이 세상이 경험을 얻으며.

마법사들의 도전을 받아들이며 전투의 경험, 그리고 다양한 마법사가 성장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마법.

하나의 학문이라 할지라도, 사람에 따라 수백 갈래의 길로 나누어져 있는 법이다.

강민혁은 그간 클리스만이 제시하는 정석의 길을 걸었다면, 결투 대회 이후로는 본인 스스로가 얻은 정보들로 새로운 그림을 머릿속에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마법을 분석하고, 마법을 어떻게 파훼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자신이 강해질 방법을 고민하고. 반년의 시간은, 정말 짧게 지나갔다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현재.

본래의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강민혁은 곧바로 고영철에게 연락했다.

[영철아. 서울 근처에 마나의 기운이 강한 ‘명당’을 찾아줘.]

명당을 잦는 것.

그것이, 강민혁이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계획이었다.

고영철의 정보력은 대단했다.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고영철은 적합한 장소를 찾았다.

[최근에 사람들에게 명산(名山)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어. 강원도 홍천군에 위치한 공작산이라는 곳인데, 이곳에서 다량의 산삼이 발견되고 산의 약수를 마시면 미약하지만 재생의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 그래서 한국 마법 협회에서 공작산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곳보다 마나의 분포가 높아서 특별한 효과가 나타난다는 결론을 내렸어. 네가 원하는 것이 명당이라면, 공작산 어딘가에 그에 적합한 장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공작산.

목적지가 정해졌다.

강민혁은 짐을 챙기고 강원도로 떠났고, 공작산에 도착하자마자 초감각을 이용해 마나의 흐름을 살폈다.

‘확실히 마나의 분포가 높아.’

마나.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 땅의 마나는 자연스럽게 소모되는데, 공작산의 마나는 강민혁이 지내는 서울숲 인근보다 무려 2~3 배 이상은 높은 것 같았다. 산의 초입부터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마나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명당의 마나 분포는 상상 이상일 터. 강민혁은 오랜 시간을 들여 산을 돌아다녔고,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눈에 띄는 장소를 찾았다.

‘여긴가?’

마나의 분포가 월등히 높았다.

그런데 그 범위가 상당히 좁았는데, 풀숲을 헤치고 바위 너머를 확인하자 안에 형성된 동굴이 보였다.

던전.

이곳은 던전이었던 것이다.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것을 보면 미확인 던전이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공작산의 기운이 강해진 것이 이 던전으로부터 비롯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일단 던전으로 들어갔다. 만약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던전이라면 몬스터를 처리하고, 그게 아니라면 일행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미 공략된 던전이구나.”

던전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던전을 발견하더라도 신고하지 않고 처리하는 헌터들.

아마 공작산의 던전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공작산은 명산으로 이름을 떨치면서 많은 사람의 발길이 오갔다. 그 과정에서 던전의 존재가 발견되었고, 헌터들은 던전을 공략했을 터. 그런데도 던전의 힘은 아직 건재했다. 던전 너머의 차원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마나가, 공작산 전체를 뒤덮어 명산으로 만들어내는 효과를 보였다.

‘어떤 몬스터의 던전이지?’

강민혁은 땅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반년간 익힌 수많은 마법 중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필요한 등급 외 마법을 사용했다.

“어스 메모리(earth memory)."

화악-

머릿속으로 땅의 기억이 빨려 들어왔다.

어스 메모리.

등급 외 마법인 그것은, 서클에 따라 땅의 기억을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다.

4서클 마법사인 강민혁으로서는, 이 땅에서 있었던 일을 파악할 만큼의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

[미확인 던전... 정령 몬스터.... 값비싼 마나석.... 독식]

단편적인 정보였다

제법 실력 있는 파티가 이 던전을 발견했는데, 미확인 던전이었고 정령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던전에 내장되어 있는 값비싼 마나석에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이걸 독식하면 상당한 부를 얻을 테니, 정부에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선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몬스터는 사라졌지만, 텅텅 비어있는 던전은 남았다.

“그렇다면 이 던전은 정령계로 통한다는 뜻인데.”

정령.

그들은 자연을 뜻한다.

공작산이 어떻게 명산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명당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심법을 사용해보자.’

강민혁의 목적은 하나다.

명당의 힘을 빌려, 보다 효율적으로 마나 심법을 사용하는 것.

강민혁이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곧바로 심법을 운용하자, 서울숲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마나가 빨려 들어왔다.

마나 룸보다는 적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마나를 그냥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박이었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공작산.

이곳이 바로, 강민혁이 찾고 있던 바로 그 명당이었다.

수많은 마법사와의 대결.

그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강민혁은 자신이 현실에서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최소한 5서클의 경지가 필요해.’

5서클.

그게 진정한 마법의 시작점이다.

5서클부터는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각인 마법.

블링크.

메모라이즈 등등.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5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빠른 캐스팅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서클의 상관관계 덕분이 아니었다. 서클의 상관관계는 본인보다 낮은 서클의 마법에만 해당되는 것. 강민혁을 애를 먹였던 마법의 향연은, 모두 메모라이즈라는 기반에서 부터 비롯되었다.

메모라이즈.

예전에 읽었던 오토 캐스팅에 관련된 책에서, 저자는 메모라이즈에 대해 언급했었던 적이 있다.

[오토 캐스팅은 마법의 체계를 마나에 기록해두는 형태다. 메모라이즈(Memorize) 마법의 변형된 형태이며, 마나를 일정한 형태로 분배해서 반복적으로 같은 마법을 사용하면, 해당 형태의 마나를 사용할 경우 자동으로 마법이 발휘된다.]

메모라이즈는 캐스팅을 생략하는 것이 아니다.

오토 캐스팅의 발전된 형태로서, 미리 기억해둔 특정 마법의 체계를 빠르게 완성되게 도와주는 형식을 말한다. 그래서 천재가 아닌 사람들도 동시에 더블 캐스팅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메모라이즈였다. 메모라이즈의 도움을 받아서, 양쪽의 캐스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메모라이즈와 각인 마법.

5서클 마법사가 강한 이유였다.

메모라이즈는 마나의 소모량이 심하다는 조건이 있지만, 5서클은 확실히 마법사에게 다른 세계를 펼쳤다.

그래서 목표를 설정했다.

현실로 돌아가면, 가장 우선으로 5번째 서클을 형성하겠노라고 말이다.

“이 정도면 준비는 끝났나.”

강민혁이 마나 룸의 설치를 마쳤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이번에 공부해두었던 마법 트랩으로 주변의 상황을 경계했다.

그리고 마나 룸 가동.

5단계의 출력이 강한 흡입력을 일으키며, 명당의 힘을 끌어들였다.

“흐읍.”

그 압력은 대단했다.

확실히 명당에서 사용한 마나 룸의 효과는 집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전에는 마나의 양이 5정도였다면, 지금은 최소 2배 이상. 엄청나게 밀려드는 마나의 파도에 강민혁은 호흡을 안정시켰다. 이어서 천천히 월하 심법을 운용하면서, 마나의 힘을 서클로 안전하게 인도했다.

그런데 월하 심법의 체계가 전과는 달랐다.

그것은 하나의 의문에서 비롯된 변화였다.

‘월하 심법은 수호문의 심법에서부터 비롯되었어. 서클이 아니라, 단전을 위한 단련법이라는 거지.’

심법은 만능이 아니다.

그 근원에 따라서 효능이 천차만별로 나뉘는데, 강민혁은 월하 심법의 힘이 마법에 특화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관해서는 도움이 되는 말들을 해주는 마법사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강민혁을 다시 찾은 도미닉 그린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도 자기만의 마나 호흡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영감을 얻었다.

자신이 마법사로서 도약하기 위해서는, 월하 심법이 그 토대인 단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반년.

그 시간 동안 월하 심법을 개조했다.

발전한 형태라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서클에 특화된 형태로 말이다.

그 결과.

화악-

".........!"

서클이 미친 듯이 마나를 빨아들였다.

밀려드는 마나를 모두 집어 삼켜버리겠다는 듯이, 거대한 탐욕을 보이면서 마나를 전부 받아들였다.

효과는 탁월했다.

이제껏 맞지 않은 옷을 입었던 월하 심법이, 시련의 탑에서 보았던 효과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빠르게 차오르는 서클. 머리에 현기증이 일었다. 과도하게 차오르는 마나로 인해서 몸에 부담이 심했지만, 강민혁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은 끝까지 훈련을 버텨낼 수 있었다.

스으으윽.

마나가 사그라졌다.

숨을 헐떡이는 강민혁의 표정은 밝았다.

“통했어.........!"

지난 시간은 효과가 있었다.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길을 열었고, 강민혁은 결국 본인이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하지만 아직.

하나 더 실험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엘리샤는 강민혁을 찾아왔었다.

그때의 엘리샤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강민혁을 와락 안았다.

“정말 고마워! 내가, 내가 드디어 정령 계약에 성공했어. 샐러맨더가 내 부름에 응했다고! 네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거야. 넌 내 평생의 은인이고, 홍염의 마법은 너의 은혜를 잊지 않을 거야.”

그녀는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엘리샤는 정령과 계약했던 방법, 그리고 자신이 계약할 수 있었던 노하우와 관련된 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강민혁도 정령 계약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화염의 서클.

조건은 갖춘 상태다.

그런데 마침 금상첨화(錦上添花)로, 정령계가 연결되어 있는 던전을 찾았다.

사실 그건 따로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명당이라는 조건과 정령계는 서로 부합하는 부분이 있었다.

‘정령 계약을 시도해보자.’

심법은 성공했다.

이제는 정령 계약.

이것만 성공한다면, 자신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강민혁은 곧바로 클리스만이 말해준 정령 계약법을 사용했고, 화염의 서클에서 마나가 강하게 일었다.

그러자.

확-

의식의 링크 (link).

강민혁의 정신이, 차원 너머에 있는 정령계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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