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95화 (95/197)

95화.  < 25. 변화의 바람(2) >

강민혁은 결승전 영상을 보았다.

도미닉 그린.

자신을 4강전에서 떨어트린 그가, 대체 어떻게 엘리샤에게 패배했는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기가 라이트닝!”]

[쿠르르르릉.]

도미닉 그린의 기세는 대단했다.

시작부터 엘리샤에게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강력한 6서클 마법으로 선제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엘리샤는 예상했다는 듯이 파이어 실드를 겹겹이 사용해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고, 기가 라이트닝의 위력에 터져나가는 불꽃을 마법으로 변화시켰다.

불의 권능.

홍염의 마법이 사용되었다.

사방으로 퍼지는 수백의 불꽃이, 모두 화살의 형태로 변했다.

["파이어 애로우.”]

[화르르르르륵.]

겨우 1서클 마법.

도미닉 그린으로서는 손길 한방에 사그라질 마법이다.

그러나 엘리샤에 의해 발현된 파이어 애로우는, 그 위력과 숫자가 도미닉 그린을 단번에 압도하였다.

["도미닉 그린의 위기입니다! 엘리샤 선수의 전매특허인 화우(火雨)가 사용되었습니다. 주변의 불길을 마법으로 변화시키는 이 기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이대로 끝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MC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일제히 집중되는 파이어 애로우는 도미닉 그린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 와중에도 도미닉 그린의 반격은 대단했다. 땅을 일으켜 자신의 몸을 보호하면서도, 환상 마법을 섞어 상대의 눈을 속이고 엘리샤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의도는 통하지 않았다. 파이어 필드로 주변에 불길을 지른 엘리샤는, 그 불길을 활용해서 도미닉 그린이 숨을 돌릴 시간을 허락지 않았다.

[펑펑펑!]

[화륵, 화르르르르륵!]

일방적인 승부였다.

주도권을 움켜쥔 엘리샤는 강하게 상대를 밀어붙였고, 도미닉 그린의 계획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엘리샤.

그녀가 왕실 마법 아카데미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6서클 마법사라는 성취도 대단하지만, 홍염의 마법이라는 강점은 그녀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켰다. 소수의 대마법사에게만 허락되는 화이트 캐슬의 입성. 아직 7서클에 오르지도 않은 엘리샤를 그들이 눈여겨보는 이유는, 그녀의 폭발적인 재능이 그 이상의 발전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결투.

그것은 기세 싸움이다.

한번 정해진 기세는 뒤집기가 매우 힘들기에, 결국 본인 페이스를 잃은 도미닉 그린은 항복을 선언했다.

["도미닉 그린이 결국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결국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엘리샤가 도미닉 그린을 쓰러트리며, 화이트 캐슬이 주최하는 결투 대회의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결투가 끝났다.

엘리샤는 우승자가 되었고, 수상식이 진행되는 모습에 강민혁은 영상을 종료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강민혁은 생각에 빠졌다.

편견이라는 것은 정말 무섭다.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서 편견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강민혁도 마찬가지다.

강민혁은 마법을 인정한다.

클리스만의 세상을 경험하면서, 마법이 얼마나 가치 있는 학문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법의 가능성’에 한계를 두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1대1 대결에서는 강화 전사가 유리할 것이라는 편견. 수호문의 출신으로서, 정점에 오른 강화 전사들을 보며 자라났던 강민혁은 그들의 힘은 마법사가 1대1 대결에서 어떻게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무의식의 편견이었다.

결투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생각도 이와 같다.

강민혁은 마법사를 공략하는 강화 전사의 노하우를 사용하면, 마법사를 쓰러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는?

결승전에 오르지도 못하고 도미닉 그린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패배감을 맛보여준 도미닉 그린은, 엘리샤에게 이렇다 할 반항도 못 하고 쓰러졌다.

이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엘리샤가 세계 제일의 마법사인 것도 아니다.

현재 클리스만의 육체는 수호문의 일급 제자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강민혁은 7서클의 세계에는 닿아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상대가 아비드였다면. 혹은 다른 7서클 마법사거나, 그 이상의 경지였다면. 강민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내가 마법을 잘못 생각했어. 강화 문명이 그렇듯이, 마법에도 불가능이란 없어.’

마법사라 약한 게 아니다.

약한 마법사라 1대1에서 지는 것이고, 강한 마법사는 강화 전사라 할지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편견을 버렸다.

이번에도 확실히 버렸는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적어도 1대1 대결의 가능성을 열었다.

‘내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마법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해. 그래야 마법사로서 성장할 수 있고, 마법사를 상대할 때 모든 변수에 대응할 수 있어. 그간 나는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움직였을까. 만약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마법을 배우려고 했다면, 4강전에서 쓰러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도미닉 그린이었을 거야.’

지난 시간들.

강민혁은 나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아니었다.

강민혁은 겉핥기식의 노력을 보였다.

클리스만이 제시한 마법을 배우고, 그것을 벗어나 마법 도서관에서 공부한 것조차도 제대로 된 노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마법 문명의 마법사들은 마법사로서 성장하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을 마법에 바친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강민혁은 마법에 투자한 시간이 너무나도 적었다.

그 짧은 시간.

그 시간 안에 강해지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강해지려면, 더 많은 시간을 이 세상에서 보내야만 한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해. 책이 가르치는 문자 속의 정보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는 생생한 정보들이. 그 경험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줄 거야. 이 세상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을 분석하고, 파훼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두 세상의 문명을 활용하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야.’

왜 이제까지 그러지 못했을까.

웃긴 일이다.

양쪽의 문명을 알고 있다면, 양쪽의 문명을 서로의 문명에 대입하면 된다.

그리고 찾아낸 약점과 파훼법은, 반대로 다른 문명의 기술을 발전시킬 충분한 근거가 될 터.

4강전의 패배.

차라리 잘됐다.

만약 도미닉 그린을 쓰러트렸다면, 강민혁은 현실에 안주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그 사람의 발전은 끝난다.’

아버지의 가르침.

그것을 되뇌었다.

그리고 몸을 회복하자마자, 강민혁은 곧바로 본인의 선택을 행동으로 옮겼다.

결투 대회 4강 진출자들.

그들에 한하여 인터뷰가 진행된다.

강민혁은 부상으로 인해 불참했는데, 4강전이 끝나고 무려 1주일 만에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MC가 말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관심사일 텐데요. 클리스만 선수는 경기 도중에 마나를 육체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초인적인 육체 능력과 마법을 막아내는 검의 방패막, 그리고 마나의 파편 같은 기술을요. 이러한 것들을 어디에서 배우신 겁니까? 아니면 직접 개발하신 겁니까?”

중요했다.

배웠다고 말한다면, 그 근원(根源)을 찾으려고 난리를 피울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강민혁이 직접 개발했다고 말한다면, 강민혁이 바로 근원이 되어버린다.

강민혁은 차분한 음성으로 답했다.

“사실 저도 마법사를 희망하고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 입학한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1서클을 형성하고서, 저는 제가 마법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몬스터와 싸울 자격조차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마나를 이용한 여러 실험 끝에, 저는 마나로 육체를 강화하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예, 결투 대회에서 보여준 모든 것들은 제가 개발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 자신을 ‘강화 전사’라고 부릅니다.”

그럴 듯한 스토리를 만들었다.

문명의 시작.

그 공을 차지했다.

빙의와 같은 납득하기 힘든 얘기를 말하는 것보다, 지금과 같은 방법이 확실하고 빠르게 먹힌다.

강민혁의 발언에 촬영 스태프들이 시끄러워졌다.

강민혁은 지금 새로운 역사의 시작점을 말하고 있었다. 강화 문명에서 마법 혁명이 일어난 것처럼, 강민혁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강민혁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신을 보고 있을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저는 마법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화의 힘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지금은 저 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루기에는 매우 위험한 힘이기에, 앞으로 보급 형태의 기술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제 힘에 관심이 있는 분은 언제든 저를 찾아오셔도 좋습니다. 다만, 지식의 공유는 거래의 형태입니다. 마법사도 좋고, 학자도 좋고, 아니면 다른 일을 하는 그 어떤 분이든 좋습니다. 제게 도움이 될만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분에게, 저 또한 그만한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그리고 마법사분들의 도전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결투가 끝나고 서로의 대결에 토의할 열린 자세만 갖추고 있다면, 저는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탁-

인터뷰는 끝났다.

강민혁은 가능성을 열었다.

이 세상을 알아가기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경험으로 마법과 검술을 발달시켜, 양쪽 세계를 옳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 첫걸음.

그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강민혁은 ‘세상’을 위한 선택을 내렸으나, 그게 기존의 기득권들에게는 마법에 대한 저항으로 보였다.

전 세계 마법사를 자극하는 발언.

클리스만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표면 위로 떠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온 강민혁은 클리스만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했다.

[클리스만, 너의 목표는 이제 나의 꿈이 되었다. 네가 몬스터의 멸살(減殺)을 바라듯이, 나도 세상을 위협하는 그들을 몰아내고 평화를 되찾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법과 성장 속도로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더 희생하고, 조금 더 노력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니 앞으로 내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으면 한다. 나도, 너를 위해 많은 것을 할 테니.]

마침표를 찍었다.

앞으로 할 일이 많다.

방송에서의 선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들을 통해 경험을 얻을 것이고,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보급형 강화 기술을 사람들에게 퍼트릴 것이다.

힘이라는 것은 소수만을 위한 특권이 아니다.

마법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다른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로부터 변화하는 권력의 흐름에는 관심이 없다. 강민혁이 바라는 것은 인류(人類)의 힘이 강해지는 것. 그래야만, 인류는 그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장벽 너머의 땅을 넘보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마법사들의 반발은 예상한다.

그러나 그건 감당해야만 하는 가시밭길이다.

아비드가 자신을 퇴학 처리한다 할지라도, 강민혁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위해 희생할 것이다.

시간이 지났다.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강민혁을 찾았다.

그런데 아비드는 강민혁을 퇴학시키지 않았고, 덕분에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나날.

낮에는 학생으로서 수업에 충실했고, 학교가 끝나고 나면 정보를 교류했으며, 숙소로 돌아오면 장벽 너머에서 생사가 걸린 사투를 벌였다. 이전과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클리스만의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하며, 수백 갈래의 마법들을 머릿속에 넣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무려 반년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강민혁은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서로 반년의 재정비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강화 문명.

그곳에서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반년이라는 시간을 부탁했다.

머릿속에 가득한 2000년의 마법 역사.

클리스만의 세상을 완벽하게 받아들인 강민혁의 행보는, 이전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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