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92화 (92/197)

92화.  < 24. 두 문명이 싸우는 방식(5) >

해리 윌슨.

그린 드래곤 상황에서 강민혁의 도움을 받았던 그는, 4강 상대가 정해지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떠들어댔다.

“정말? 정말 도미닉 그린(Dominic Green)이 누군지 모른다고?”

“어."

“너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도미닉 그린을 모를 수가 있어? 5년 전에 왕실 마법 아카데미에서 수석 졸업을 하고, 곧바로 장벽에 자원해서 화제가 되었던 선배잖아. 적어도 왕실 마법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그 정도의 이름은 알아야 되는 거 아니야?”

해리 윌슨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도움을 받은 이후로, 그는 강민혁을 생명의 은인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강민혁이 그를 친근하게 대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4강전을 치르려면 도미닉 그린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아야 해.”

강제로 설명이 시작되었다.

강민혁으로서는 들어서 나쁠 것이 없는 정보기에, 해리 윌슨이 하는 말을 경청했다.

“너도 알다시피 장벽은 매일 같이 몬스터의 위협을 받는 땅이야. 일정한 주기로 발생하는 몬스터 웨이브 현상이 아니더라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공격은 장벽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 그래서 사실 졸업생들은 장벽행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 마법이 몬스터에 대항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도 장벽은 너무 위험하거든. 그래서 수석 졸업생이 장벽행을 지원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야. 수많은 마탑에서 도미닉 그린 선배를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도미닉 그린 선배는 옳은 일에 힘을 쓰고 싶다고 모두 거절했거든.”

도미닉 그린.

당시 그의 선택은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그렇게 장벽으로 떠난 그는, 온갖 위험한 임무를 자처하면서 워 메이지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3년 전에 있었던 몬스터 웨이브.

그 재앙에서 도미닉 그린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몬스터들을 상대했고, 1년에 1번 진행되는 토벌대에도 참여하는 적극성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도미닉 그린은 6서클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의 성장에, 장벽에서는 도미닉 그린을 강철의 심장을 가진 마법사라고 불렀다.

크리스 카일?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물이다.

전장에서의 경험도, 그리고 실력도.

크리스 카일이 졸업하고 만약 장벽행을 택한다면, 빠르게 발전한다는 전제하에 5년 뒤에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도미닉 그린인 것이다.

“사실 이번 결투 대회는 엘리샤 선배의 참가 소식으로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출전을 포기했어. 학과생의 신분으로 6서클에 오른 엘리샤 선배는 정말 역대급의 천재고, 그녀의 우승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거든. 벌써 화이트 캐슬 입성이 논의되는 것을 보면 말 다 한 거지. 그런데 만약 엘리샤 선배가 우승하지 못한다면, 그 상대는 도미닉 그린 선배일 거야.”

유일한 대항마.

도미닉 그린은 엘리샤와 같은 선상에 두는 이름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4강전이라는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드디어 ‘진짜 실력자’들과 붙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강민혁이 말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검으로 도미닉 그린을 쓰러트린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궁금했다.

도미닉 그린은 이 세상에서 강자라고 불린다.

그런 사람이 ‘새로운 힘’에 쓰러지는 모습은, 모두가 상상하지 못한 그림일 터.

해리 윌슨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되긴. 당장 왕실 마법 아카데미를 때려치우고, 검을 수련하는 데 집중해야지. 평범한 마법사들은 평생 노력해도 도미닉 그린 선배의 수준으로 올라설 수 없는데, 그걸 검으로 이루었다면 마법을 익힐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그런 결과라면, 전 세계가 널 주목하게 될 거야.”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는 듯한 뉘앙스.

그게, 바로 4강전의 현실이었다.

강민혁이 고개를 들었다.

원형의 경기장.

빼곡하게 자리한 관중들.

그리고 눈앞에 위치한 그 대단하다는 4강전 상대.

어느새 4강전 결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 강민혁은 전신에서 올라오는 피로감을 마나로 진정시켰다.

‘피곤하네.’

어제 저녁.

강민혁은 장벽 너머로 떠났다.

그건 어제 하루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강민혁은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장벽에서의 사투를 벌였고, 바닥에 흘린 피만큼이나 육체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루에 자는 시간이라고는 3~4시간 정도. 몬스터들에게 당한 상처로부터 올라오는 욱신거리는 통증이 아직도 생생했지만, 강민혁은 상대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최악의 상태?

아니다.

오히려 최상의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이루어진 전투로 인해, 강민혁의 기세는 마치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과 같이 변했다.

사실 클리스만의 육체는 강민혁에게 적합한 상태가 아니었다. 수호 심법을 단련하지 않은 몸이라 수호문의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고, 다소 투박한 움직임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장벽 너머에서의 시간 덕분에 클리스만의 몸은 점점 변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강민혁은 검사 클리스만으로서 완벽하게 적응해나갈 수 있었다.

꽉.

검이 알맞게 잡힌다.

투박한 굳은살은, 이제 강민혁에게 믿음을 주었다.

“드디어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던 4강전입니다! 모든 상대를 압도적으로 쓰러트린 장벽의 워 메이지 도미닉 그린과 최초로 검을 사용하는 참가자인 클리스만의 대결! 과연 어떤 참가자가 이번 대결의 승자가 될까요?”

MC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시작될 결투.

강민혁은 기세를 숨기지 않았다.

예민하게 피어오르는 감각에, 도미닉 그린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보통 녀석이 아니로군. 마치 짐승 같은 기세야.”

강민혁이 웃었다.

상대가 자신의 기세를 느끼는 것처럼, 강민혁도 도미닉 그린이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주변.

도미닉 그린으로부터 엄청난 마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그는 이미 전투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강자다.

해리 윌슨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강민혁의 감각이 그가 얼마나 위협적인 상대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를 이길 수 있을까? 그건 확신할 수 없다. 클리스만의 육체는 겨우 몇 개월의 성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상대는 그것을 뛰어넘는 힘과 경험이 있다.

고로.

‘전력을 다한다.’

삐익-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MC의 외침.

시작 신호에, 강민혁이 곧바로 땅을 박찼다.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 표현이 딱 적절했다.

빠르게 시야의 사각지대를 돌아가는 강민혁의 움직임에, 도미닉 그린은 땅을 힘껏 밟았다.

“그라운드 웨이브(Ground Wave).”

쿵!

크그그그극.

땅이 흔들렸다.

물결치는 땅으로 인해 지반의 형태가 이상하게 변했고, 불쑥 튀어 오르는 땅이 강민혁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강민혁으로서는 돌아가 거나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가벼운 몸놀림이 솟아오른 땅을 넘어가는 순간, 도미닉 그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강력한 화염 다발을 일으켰다.

“파이어 랜스(Fire Lance).”

화르르르르륵!

캐스팅 과정은 없었다.

서클의 상관관계로 인해서, 6서클 마법사인 그는 3서클의 마법을 캐스팅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대로 작렬하는 화염!

강하게 일어나는 불길이 강민혁을 집어삼켰다.

펑!

화르르륵!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그러나 도미닉 그린의 후속타는 계속되었다.

그는 크리스 카일과는 다르게 전기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기 계열의 마법은 한 번만 적중하면 매우 효율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나, 문제는 강민혁이 쉽게 맞아줄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략을 바꾸었다. 정석적인 플레이가 아니라 전장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판단. 화염 마법의 강력함은, 굳이 상대를 맞추지 않아도 피해를 입혔다.

“파이어 랜스.”

펑, 펑!

화르르르르륵.

강민혁의 움직임을 따라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으로 퍼지는 화염의 뜨거움에 강민혁은 마나로 피부를 보호했다.

3서클 마법이라고는 하나, 6서클 마법사가 사용하는 상급 3서클 마법은 절대 만만히 볼 수 없다.

도미닉 그린의 시선이 차분하게 강민혁을 따라붙었다. 일반인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움직이었지만, 파란색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는 강민혁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사용되는 마법. 그라운드 웨이브의 효과로 움직임에 방해를 받고 있는 강민혁으로서는, 도미닉 그린의 마법 연계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말 짐승 같은 녀석이네.”

강민혁은 빨랐다

솟아오르는 땅을 밟아서 튀어 오르며, 점점 도미닉 그린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그 순간.

“파이어 필드(Fire Field).”

화르르르륵!

주변에 화염이 타올랐다.

강민혁과 자신의 앞에 불의 경계선을 만들더니, 강민혁이 넘어설 수 없는 ‘불의 벽’을 형성하였다. 그러한 상황에도 도미닉 그린의 마법은 계속되었다. 강민혁에게 숨을 돌릴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빡빡하게 작렬하는 마법에 강민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불의 벽?

돌아가면 상대의 의도에 걸려드는 것일 터.

강민혁이 마나로 강한 회전을 일으켰다.

‘검풍.’

화악-

파바바바박!

검에서 일어나는 마나가 불길을 밀어냈다. 그건 일시적인 효과. 강민혁은 잠깐 생겨난 틈으로 몸을 내던졌다. 파이어 필드의 화력은 인간의 피부를 단번에 태워버릴 정도로 매우 강력하였으나, 마나로 보호한 강민혁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정도로 버틸 수 있었다. 그건 관중들로서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설마, 파이어 필드를 맨몸으로 돌파할 거라 생각하진 못했다.

히죽.

도미닉 그린이 웃었다.

그는 마나가 담긴 목소리로, 강민혁이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동시에 캐스팅도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장벽 너머에는 너와 같은 짐승들이 정말 많아. 너무 빨라서, 매직 아이(magic eye)를 사용한 눈으로도 움직임을 따라잡기가 힘들지. 참 곤란한 상황이야. 마법사의 마법은 적중해야 그 의미가 있거든. 그럴 때마다, 내가 어떤 방법으로 그 괴물 같은 녀석들을 제압했는지 알아?”

신경 쓰지 않았다.

속삭이는 말들을 흘려보내며, 강민혁은 도미닉 그린의 품을 파고들었다.

뚫었다.

그리고 혹시 ‘블링크’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강민혁은 감각을 예민하게 일으키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파사사사삭-

그의 몸이 흩어졌다.

마치 신기루처럼.

“생과 사의 경계선. 상대가 내 목숨을 끊으려고 다가오는 그 순간은, 스피드도 의미가 없지.”

미라지(mirage).

환상 마법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도미닉 그린은 멀리 도망친 것이 아니라, 상체만 살짝 뒤로 뺀 모습으로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바로 눈앞에서 휘둘러지는 강민혁의 검을 피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기가 라이트닝(Giga 니ghtning).”

콰앙!

빠지지지지지직!

강력한 6서클 마법이 작렬했다.

그 엄청난 위력에 강민혁은 황급히 검막을 형성하였다. 다행히도 강민혁의 대응은 빨랐으나, 검막을 타고 들어오는 충격에 강민혁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강민혁으로서는 일단 기가 라이트닝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판단에 도미닉 그린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인탱글 (entangle).”

확!

파바바박!

바닥에서 일어나는 나무줄기들.

그것이 강민혁을 포박하려고 했다.

강민혁은 날랜 움직임으로 나무줄기를 피해내더니, 검이 몇 번 번뜩이자 나무줄기가 모두 잘려나갔다.

탁-

뒤로 착지했다.

앞을 올려다보며, 강민혁의 표정이 굳었다.

‘워 메이지는 다르다 이건가.’

숨 가빴던 공방.

그 상황에서 도미닉 그린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그 자리에 서서 강민혁의 접근을 견제했고,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상황에도 그는 상체를 뒤로 젖히는 동작으로 강민혁의 공격을 피했다. 그에 강민혁은 당할 수밖에 없었다. 미라지의 환상은 공격이 통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강민혁은 상대의 공격에 노출당하고 말았다.

대체 언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라지를 사용한 걸까.

“대단하네요. 워 메이지는 다들 이런가요?”

“아니.”

도미닉 그린이 마나를 사납게 일으켰다.

“내가 특별한 거야.”

해리 윌슨의 말은 옳았다.

그는, 강민혁으로서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진짜 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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