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 24. 두 문명이 싸우는 방식(3) >
보통의 마법사들.
그러니까 강화 문명의 마법사들은, 강화 전사들이 달려들기 시작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손은 꼬이고 캐스팅은 실패하고.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강화 전사에게 당하는 것이, 강민혁이 기억하는 마법사의 현실이다.
그런데 크리스 카일은 달랐다.
마법 실패.
썬더 캐논을 뚫고 나온 강민혁의 모습에도 그의 눈빛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강화 문명의 마법사들처럼 패배를 직감하고 덜덜 떠는 것이 아니라, 그는 침착하게 마나를 마법으로 변화시켰다.
확-
“라이트닝 볼(Lightning Ball).”
찌지지지직.
전기의 구체 수십 다발이 생성되어 강민혁을 덮쳤다. 아무리 서클의 상관관계로 2서클 마법은 캐스팅 없이 사용할 수 있다지만, 수십 다발을 한 번에 일으킨 것은 분명히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촘촘하게 전기의 망을 형성하는 크리스 카일. 만약 강민혁이 라이트닝 볼을 맞으면서 달려드는 선택을 내린다면, 크리스 카일의 의도대로 판이 진행될 것이다.
전기 마법.
그것의 데미지는 겹겹이 쌓인다.
마비의 효과로 육체적인 움직임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내부에 남은 잔여 전기는 후속 마법의 피해를 증폭시킨다. 그뿐만이 아니라 전기 마법으로 인한 피해 범위가 넓어진다. 주변으로 번지는 전기의 충격이 내부의 잔여 전기를 타고 올라오기 때문에,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라이트닝 볼 하나가 어느새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다.
이건 덫이다.
매우 치명적인 덫.
그리고 강민혁의 선택은, 크리스 카일의 의도를 예상했다는 듯이 라이트닝 볼을 전부 피해냈다.
“와!”
“저걸 다 피해내다니!”
관중석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날랜 움직임에, 간발의 차이로 라이트닝 볼이 터져나갔다. 항상 한발 빠르게 치고 나가는 강민혁. 그러한 모습에 크리스 카일은 무빙 캐스팅으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강민혁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리면서, 강민혁의 접근을 방해할 마법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아쿠아 볼(Aqua Ball).”
펑!
물의 마법.
그건 미끼였다.
마법이 발사되는 도중에 터져버렸고, 수백 개가 넘어가는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리고.
“라이트닝 쇼크.”
찌지지지직!
물방울을 타고 번지는 전기의 힘!
그건 정말이지 정석과 같은 플레이였다.
완벽주의자라는 별명답게, 크리스 카일은 교과서에서 나온 근접 몬스터의 공략법을 그대로 실행하고 있었다. 보통은 이쯤 되면 덫에 발이 빠질 법도 하건만, 강민혁의 반응 속도는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또한 단순히 피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크리스 카일이 캐스팅을 진행하는 모습에, 강민혁은 오라를 일으켰다.
‘오라웨이브의 변형.’
파바박!
마나의 파편이 발사되었다.
오라 웨이브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기술이다.
그것의 형태를 축소시켜서, 위력이 강하지는 않지만 정확히 마나의 흐름을 끊어내는 암기로 사용했다.
“크윽."
크리스 카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찰나의 틈.
마법의 캐스팅이 무산되고, 이동을 방해하는 마법의 공격이 중단되었을 때.
강민혁은 순식간에 크리스 카일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게 끝이야?’
만약.
크리스 카일에게 비장의 수가 없다면, 강민혁은 이대로 승부를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강화 전사.
강민혁의 세상에서 그들은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불린다. 빠른 움직임은 마법을 모두 피해내는 데다, 마나를 두른 피부는 마법에 맞아도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리고 마법을 방해하는 기술까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힘의 발현에 시간이 필요한 마법사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강민혁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강화 전사다.
그 결과, 강민혁은 결국 크리스 카일의 앞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끝났다.’
나쁘지 않은 승부였다.
마법사의 가능성을 보았으나, 결국 마법사는 한계가 있었다.
붙으면 끝난다는 것.
그런데.
히죽.
‘웃어?’
크리스 카일이 웃었다.
그리고.
“블링크(Blink).”
팟.
서걱!
강민혁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크리스 카일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트랩(trap) 발동!”
화악!
파파파팍!
미처 반응할 틈도 없었다.
바닥에서 일어나는 푸른 불빛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었고, 강민혁의 몸을 강하게 억압하였다.
‘대체 언제?’
트랩이라니.
그걸 설치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애초에 크리스 카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렇다면 트랩의 위치도 고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리스 카일은 마법 트랩으로 강민혁을 묶었다. 홀드(hold)의 효과를 보이는 수십 다발의 실이 강민혁의 사지를 붙잡았고,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크리스 카일이 웃으며 말했다.
“왜? 근접해서 붙으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말했잖아. 넌 내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화악-
마나가 일었다.
또 다른 각인 마법.
다른 손등에서 빛이 뿜어지더니, 마법이 발현되었다.
“썬더 캐논.”
펑!
찌지지지지지직!
이번에는 피할 수 없다.
또한 버틸 수도 없다.
아무리 상대가 단단한 방어력을 지녔다 할지라도, 무려 6서클에 버금가는 상위 마법의 위력을 버텨내기는 힘들 것이다. 잘 짜인 함정. 자잘한 마법으로 시간을 끄는 사이에, 크리스 카일은 결국 승부를 끝낼 판을 만들었다. 썬더 캐논이 강민혁에게 작렬하는 순간, 크리스 카일뿐만 아니라 결투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 카일의 승리’를 확신했다.
당연하다.
인간이라면.
5서클의 마법을 맨몸으로 버텨낼 수는 없다.
“의료진! 얼른 치료를...."
의료진을 호출하는 관계자.
그런데 그가 무대를 확인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푸스스스스스슥.
연기가 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당연히 쓰러졌을 거라고 생각한 강민혁이 무사한 모습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를 보호하는 무형의 막.
그건, 마법사들조차 처음 보는 생소한 것이었다.
“어, 어떻게?!”
크리스 카일의 동공이 흔들렸다.
실드일까?
아니다.
1서클 마법사인 강민혁은 실드를 사용할 수 없다. 아니, 사용한다 할지라도 5서클의 썬더 캐논을 버텨낼 정도의 방어력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강민혁을 보호하는 저 힘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강민혁은 찌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크리스 카일을 바라보면서 사납게 웃었다.
“좋아, 아주 좋아.”
재밌었다.
공간 마법이라니.
이들이 ‘공간’을 지배한 문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방금 강민혁이 사용한 기술.
그것은 바로 검막이었다.
오러를 얇게 펼쳐 몸을 보호하는 방법.
만약 검막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마나를 두른 피부로도 방금의 공격은 버터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단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끝까지 반격하는 마법사.
그건 자신의 세계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 보여달라고, 크리스 카일.’
강민혁은 상대를 한계까지 밀어 붙여보고 싶었다.
5서클 마법 블링크.
그건 참 특별한 마법이다.
공간 자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경우, 특별한 캐스팅 없이 마나와 정신력만 소모하고 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5서클을 경계선으로 두는 것이다.
각인 마법.
블링크.
그 모든 것의 기준점이 5서클이니 말이다.
파밧.
이번에도 크리스 카일의 모습이 사라졌다.
강민혁과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난 크리스 카일. 그에게서 파란 마나가 일어나며, 수십 다발의 라이트닝 볼이 강민혁을 그대로 덮쳤다. 이미 그가 준비한 비장의 수는 모두 사용한 상태. 그러나 크리스 카일로서는, 마나가 아직 남아있는 한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고!”
파지지지직.
전기의 다발이 일어났다.
그것을 일일이 컨트롤하며, 크리스 카일은 강민혁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의 공간을 좁혀들어갔다.
강민혁의 반격은 통하지 않았다.
기어코 마법을 뚫고 다가와도, 블링크로 피하면 그만이다.
파밧.
크리스 카일은 확실히 마법의 천재였다.
블링크를 이 정도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많지 않다. 보통 평범한 5서클 마법사는 2~3번 정도 연달아 사용하는 것이 한계인데, 크리스 카일은 벌써 5번이 넘도록 사용했다. 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왔지만 억지로 억누르며, 크리스 카일은 이 승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을 공격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포기할 이유가 없다.
딱 한 번.
강민혁이 전기의 덫에 발을 들이는 순간, 크리스 카일은 상대를 무너트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모습.
크리스 카일을 상대하며, 강민혁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공간 마법.’
대단했다.
마법 문명은 공간을 지배했다.
아무리 쫓아가도 거리를 벌릴 수 있는 공간의 힘은, 이들이 왜 마법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이들은 정말 강했고, 수호문 제자들의 실력으로도 크리스 카일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크리스 카일 정도라면, 웬만한 강화 전사들은 다가가지도 못하고 당해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기지 못할 상대는 아니야.’
클리스만의 육체.
그리고 강민혁의 경험.
강민혁은 평범한 강화 전사가 아니다.
강민혁이 정신을 집중하자, 예민한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초감각(起感覺).’
수호문의 비기.
그중 하나가 발현되었다.
그러자 크리스 카일이 사용하는 마나의 흐름이 보였다. 라이트닝 볼을 사용하면 마나가 강하게 일어났고, 블링크를 사용할 때는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 마나의 흐름이 쭉 이어졌다. 그건 정말 찰나의 순간에 포착되는 흐름. 그것만으로도, 강민혁은 크리스 카일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파밧.
크리스 카일이 사라지면.
타닥.
강민혁이 위치를 확인하기도 전에 땅을 박찼다.
그리고 크리스 카일이 나타났을 때.
".........?!"
강민혁은 어느새 그를 공격하고 있었다.
크리스 카일의 표정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그는 황급히 블링크로 도망쳤지만, 강민혁은 점점 빠른 반응 속도로 크리스 카일의 움직임을 따라붙었다. 머리가 팽팽 돌았다. 블링크는 마나와 정신력의 소모가 대단하기에, 아무리 크리스 카일이라 할지라도 무한정 사용할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마나가 바닥을 드러냈다.
반응 속도도 점점 느려졌다.
크리스 카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간을 따라잡는 강민혁의 움직임은, 크리스 카일이 보았던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파밧.
“웩.”
공간을 이동하자마자 크리스 카일이 바닥에 무너졌다. 결국 블링크가 그의 몸에 무리를 준 것이다. 크리스 카일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이미 승부는 결정이 난 상태였다.
척.
“이만 포기하지?”
목을 겨누는 검.
크리스 카일이 고개를 들자,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민혁의 모습이 보였다.
치열했던 승부.
마침내 경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경기장이 침묵에 빠졌다.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크리스 카일이 패배했다고?”
크리스 카일.
우승 후보는 아니다.
그 위에 쟁쟁한 마법사들이 있지만, 그래도 64강에서 떨어질 만한 실력자는 아니다. 더구나 상대는 검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이 세상의 상식에서는, 검사는 마법사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쓰러지는 그림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강민혁은 크리스 카일이 사용한 공간 마법조차 따라붙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충격.
사람들이 넋을 잃은 반응을 보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대체 내가 뭘 본 거지?”
“검 하나로 마법사를 저렇게 몰아붙일 수가 있다니.”
검으로 다양한 것을 했다.
오라의 파편을 뿌려 마나의 흐름을 방해했고, 오라로 막을 형성해서 썬더 캐논을 막기까지 했다.
상식 밖의 일.
MC가 뒤늦게 소리쳤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클리스만이 크리스 카일을 무너트렸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마법 트랩에 발이 묶이고 썬더 캐논에 맞았을 때 클리스만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결국 크리스 카일을 굴복 시켰습니다. 이변입니다. 결투 대회 64강에서, 생각지도 못한 클리스만이 32강에 진출합니다!”
이변.
그야말로 이변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이변의 제물이 되어버린 크리스 카일은, 패배라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절망에 빠졌다.
천재라고 불리는 마법사.
그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