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 24. 두 문명이 싸우는 방식 >
강민혁의 출전이 확정되자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클리스만은 1서클 마법사다.
그런데도 결투 대회에 출전한다는 것은,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로서 출전하겠다는 의미와 같다.
“결투 대회 역사상 이런 일이 있었나?”
“단 한 번도 없지. 그래도 클리스만 정도면 잘 싸우지 않을까? 그린 드래곤 상황에서 혼자 수십 마리의 웨어 울프를 상대했었잖아.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허무하게 떨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그래. 솔직히 클리스만의 검술 실력은 정말 의외였거든.”
강민혁을 인정하는 부류들.
그들은 강민혁의 출전에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대다수에 속하는 제임스 체스터 같은 경우에는, 그들의 말을 듣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게 말이 돼? 클리스만이 어떻게 결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있겠어. 웨어 울프들이랑 싸울 때야 그 녀석들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물리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었던 거지, 마법사와의 승부에서는 클리스만의 검법은 절대 통하지 않아. 생각해봐.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강력한 마법이 작렬할 텐데, 인간의 몸으로 그 파괴력을 감당할 수가 있겠어?”
제임스 체스터의 주장.
그 말에, 학생들이 동조했다.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렇네.”
“하긴, 결투 대회에 참여하는 마법사들은 못 해도 5서클 이상일 테니까.”
화이트 캐슬.
세계 3대 세력이 보물을 내건 자리다.
7서클이라는 제한을 두었으니, 5서클 이상의 왕실 마법 아카데미 출신 실력자들이 우르르 몰려들 터. 제임스 체스터의 말은 타당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제임스 체스터 일행이 강민혁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똑똑히 보았지만, 그때와 결투 대회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제임스 체스터 사건.
그건 마법사가 당한 것이 아니다.
제임스 체스터라는 일개 개인이 강민혁에게 당한 것이고, 마법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강민혁은 상대의 마법을 피하고, 마나의 흐름을 끊으며 마법사를 완벽하게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임스 체스터라는 사람이 당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3서클 마법사는 아직 마법사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얕은 경지다. 진짜 마법사들은 각인 마법을 배우는 5서클 마법사 이상이기에, 제임스 체스터와의 싸움은 의미가 없다.
제임스 체스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민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클리스만의 출전은 결투 대회 참가자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거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선배님들이 클리스만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 출전이 허락되었다는 거야. 사실 난 걔가 본선전은커녕 예선전이나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그만큼, 결투 대회는 만만한 자리가 아니야.”
“헐."
“정말?”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검과 같은 무기를 들고 설치고 다니는 녀석들은 마법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마법사는 1대1에서도 절대 약하지 않았고, 강민혁 정도야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마법의 제물이 되어버릴 터. 그리고 그걸 떠나, 제임스 체스터의 말처럼 예선 통과도 의심되었다.
“그래도 예선 통과는 했으면 좋겠다. 클리스만이, 다른 마법사들과 붙는 모습을 보고 싶긴 하거든.”
마법사들의 패배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세상이다.
그리고 며칠 뒤, 결투 대회 예선이 진행되었다.
예선 당일.
A 시험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결투 대회 참가를 희망하는 왕실 마법 아카데미 출신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만큼 화이트 캐슬의 보물이라는 이름값이, 멀리 떠나있던 졸업생들을 한 자리에 불러들였다.
웅성웅성.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었다.
재학생과 졸업생의 만남의 장이다 보니,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하기 바빴다.
그때였다.
예선 감독관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예선전의 룰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결투 대회는 실력자들이 우승을 두고 경쟁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본선에 진출 할 수 있는 참가자의 숫자는 64명으로 제한하며, 참가의 기준은 예선전의 성적으로 정해집니다. 이 예선전을 통해 여러분들은 결투 대회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해야만 합니다. 만약 64등 안에 들지 못하면, 출전은 불가능한 것이죠.”
64명.
인원에 제한을 두는 것은 당연했다.
제임스 체스터의 말처럼 실력자들이 대거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그중에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 3서클밖에 되지 않은 재학생들도 많았고, 졸업생이지만 그 경지가 낮은 이들도 있었다. 결투 대회 명성에 이끌려 참가 의사를 밝힌 이들을 모두 올려 보내면 대히가 혼잡해지고 질이 떨어질 수 있기에, 예선전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걸러야만 했다.
평가 방법은 간단했다.
“참가자 여러분은 지금부터 차례로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 것입니다. 방어력이 강한 C급의 아르마딜로(armadillo) 30마리고, 이 많은 몬스터를 얼마나 빠르게 처리하느냐가 평가의 기준입니다. 아르마딜로는 여러분들을 공격하지 않도록 공격적인 본능을 제거한 상태이나, 마법의 캐스팅을 방해하기 위해서 여러 장치가 가동될 예정입니다. 그러니 집중력이 흐트러진다면, 잠시 주춤하는 그사이에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빠르게 예선전의 임무를 끝내겠죠.”
다수의 적을 상대 하는 것.
그건 마법사를 위한 임무였다.
그러한 사실을, 예선 감독관은 모르지 않았다.
‘이번 참가가 중에는 검사가 있다고 했지.’
클리스만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 예전부터 고정적으로 진행되던 예선전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예선전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럼 떨어지면 된다.
검사가 소수라고 해서, 그의 편의를 봐줄 의향은 전혀 없었다.
사실 마법사가 아닌 이들이 결투 대회 출전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예선전에 있었다. 검사가 통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아르마딜로는 마법 방어력뿐만 아니라, 물리 방어력도 매우 강한 몬스터다. 공처럼 몸을 돌돌 말고 버티는 그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텐데, 마법사처럼 범위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답이 없다.
그래서 예선 감독관은 단언했다.
시작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클리스만의 출전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을 맺을 것이라고 말이다.
‘애초에 결투 대회는 마법사들을 위한 축제. 남의 축제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그 기준에 부합하는 활약을 보여주어야겠지. 하지만 힘들 거야. 대체 어떻게, 마법사보다 빠르게 다수의 적을 처리하겠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예선 감독관은 클리스만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제 예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삑-
[참가번호 038]
[클리스만 입장]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강민혁이 안으로 들어서자, 강민혁을 따라 카메라들이 같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C급 아르마딜로라.’
잘 아는 몬스터다.
아르마딜로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실제로는 더 포악하고 마치 장갑차와 같은 단단한 외피를 지닌 몬스터다. 그런데 웃긴 것은 아르마딜로가 강민혁의 세상에서는 D급의 몬스터라는 사실이다.
‘평가 기준은 세계마다 다르다 이건가.’
강화 문명과 마법 문명.
두 세상은 똑같은 등급 구분법을 사용하지만, 서로 형성한 문명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 등급이 있었다.
아르마딜로가 그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몬스터였다.
예선 감독관의 생각처럼 아르마딜로의 방어력은 매우 단단하다. 그래서 웬만한 파괴력으로는 쓰러트리는 것이 힘든데, 그건 마법사들의 기준일 때나 하는 얘기다. 아르마딜로를 처리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은 일정 이상의 화력을 내야 한다면, 검사들은 외피 사이에 드러나 있는 약점을 공략하면 그만이다. 그럼 아르마딜로의 단단한 외피조차도, 쉽게 공략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숫자가 좀 많아.’
30마리라는 것.
그게 문제가 되겠지만, 강민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아직 ‘편견’에 갇혀 있지만, 강민혁은 이미 100년이나 발달된 문명을 안다.
그건 매우 강력한 이점이다.
삐익-
[시작!]
타닥.
시작 신호에 강민혁이 땅을 박찼다.
순간 허벅지가 크게 부풀어 오르며 엄청난 스피드를 내주었다. 클리스만이 장벽 너머에서 보낸 시간. 그 시간으로 인해, 클리스만의 육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충만하게 차오르는 힘에 강민혁은 마나를 끌어 올렸고, 곧바로 아르마딜로를 향해 마나를 분출했다.
‘오라 웨이브(aura wave).’
사사사삭.
전방으로 뿜어지는 마나의 칼날들.
그것은 바로 강화 전사가 사용할 수 있는 ‘범위 공격’이었다.
한 번에 많은 양의 마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무조건 마법사보다 빨리 끝내야 한다. 마나의 칼날은 무차별적으로 아르마딜로의 외피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컨트롤에 의해 정확히 틈을 파고들었다.
서걱!
사사삭!
크에에에에엑!
아르마딜로들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흩뿌렸다.
마법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강민혁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솟아올랐지만, 강민혁은 육체적인 능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검사다. 통통 튀어 오르며 방해하는 것들을 모두 피해냈고, 아르마딜로의 몸뚱이에 검을 우악스럽게 찔러넣으며 생명줄을 끊어버렸다.
푹!
푸화하학!
피가 튀었다.
클리스만이 사용하는 대검이 아니라, 얇고 긴 검이 아르마딜로의 내부를 난도질했다.
죽이고 또 죽이고.
강민혁의 검술은 경이적일 정도로 매우 간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세상에서 알려진 검사들은 한두 마리를 처리하는 데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강민혁의 속도는 매우 빨랐다.
순식간에 정리되는 현장.
마지막 아르마딜로가 쓰러지는 순간,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다.
삑-
[참가번호 038]
[예선 통과 시간 4분 52초]
[4번째 통과자]
".........?!"
4분 52초.
30마리의 아르마딜로를 처리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였다.
그런데 10명이 동시에 진행하는 예선전에서, 강민혁은 그런 속도에도 4위밖에 하지 못했다.
그 말인즉.
‘내 앞에 더 빠르게 처리한 사람이 3명이나 더 있다고?’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곳은 마법 문명이다.
마법이 발달된 이 세상에서, 아르마딜로의 단단한 마법 방어력은 마법의 파괴력을 버티지 못했다.
‘어쩌면 예선전에서 떨어질 수도 있겠어.’
예상과는 다른 상황.
그런데 그건 감독관도 같았다.
강민혁은 조금 더 빨랐어야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감독관들은 경악했다.
강민혁의 기록.
그건,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와!”
“이런 미친!”
강민혁의 예선 상황을 지켜보던 감독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민혁의 검술.
순식간에 아르마딜로를 난도질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게 말이 돼?”
세상에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검이라는 무기로는 아르마딜로의 외피를 절대 베어낼 수 없다. 그 틈을 노리고 공격한다 할지라도, 아르마딜로의 질긴 피부를 뚫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강민혁이 10분 안에 끝냈어도 정말 대단한 실력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마법 문명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선이었는데, 강민혁은 이대로라면 전부 처리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말이 되질 않았다.
검에서 뿜어내는 마나의 칼날과 단단한 피부도 단번에 베어버리는 오라는 상식을 완전히 벗어났다.
얼떨떨했다.
그 사이, 다른 참가자들이 예선을 끝냈다.
[참가번호 031]
[예선 통과 시간 3분 34초]
[참가번호 035
[예선 통과 시간 4분 2초]
[참가번호 039]
[예선 통과 시간 4분 9초]
그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모두 5분 안에 아르마딜로를 처리했지만, 그건 예상이 가능한 범위였다.
앞선 3명의 통과자.
그들은 모두 5서클 이상의 마법사였다.
5서클의 강력한 화력은 아르마딜로라 해도 버틸 수 없었고, 그래서 이른 시간 안에 통과하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이번 결투 대회에 참가한 5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결코 64명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4서클 마법사부터는 5분 이상의 기록이 나올 텐데, 때마침 강민혁이 5분 안에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가번호 038]
[예선 통과 시간 4분 52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이 예선전에서 통과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는데, 이렇다면 본선 진출의 가능성이 보였다.
그때였다.
“아쉽네. 조금 더 빨리 끝냈어야 했는데.”
강민혁의 말.
그게 카메라를 통해 들렸다.
그러자, 예선 감독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상식 밖.
강민혁의 참가는 예선전에서부터 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