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82화 (82/197)

82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5) >

상황은 종료되었다.

웨인 번즈는 마법 협회 사람들을 대표해서 강민혁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달했고, 강민혁도 더 이상의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강민혁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영국 마법 협회를 떠났다. 그들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고, 떠나기 전에 웨인 번즈에게 애달픈 목소리로 말했다.

“강민혁의 기분을 잘 풀어주셔야 합니다. 그가 만약에 앞으로 마법 지식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순간, 오늘 있었던 사람들은 입지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매그너스 라슨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리를 따로 마련하도록 하죠.”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발언이었다.

강민혁이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드러냈으니,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죄는 매그너스 라슨에게 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면서도 강민혁이 마법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아니면 대놓고 침묵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내버려 두었던 사람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매그너스 라슨을 강하게 제지했다면, 애초에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초라한 그들의 모습.

그들이 본래의 소속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는지를 알기에, 웨인 번즈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강민혁의 발언에 힘이 실렸어 마법 혁명이 아니라, 오늘 보여준 힘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인해서 말이야. 과연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사람이라는 건가. 힘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

문득 강민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민혁은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한국에서 발표한 수호문 관련 기사를 확인해보라고 했다.

마침 영문 번역된 기사도 있었다.

그 내용은.

[강민혁의 마법 혁명이 발표된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그간 침묵을 지키던 수호문은, 오늘 자 인터뷰에서 "강민혁은 수호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가 수호문으로 돌아오는 일은 절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더불어 수호문은 한국 마법 협회와 공식적으로 협약을 체결했다. 기존에 있었던 교류 관계와는 다르게, 앞으로는 수호문과 한국 마법 협회는 서로 공생하는 명확한 체계를 만들어갈 방침이다. 이는 마법 혁명의 여파로 보이며, 수호문은 변화하는 마법 학계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호문.

그들이 발 빠르게 변화했다.

아직 대부분의 단체는 마법사들의 변화에 권력을 놓치지 않고자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반면, 수호문은 태도를 단번에 돌변했다. 절대적인 갑이 그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일정 권력을 마법사들에게 내어주고, 본인들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는 실리적인 방법을 택했다.

과연 강덕철이었다.

그에게 강민혁은 최선이었고, 최선이 거절당했다고 해서 차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감정에 호소하고 강민혁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강덕철은 곧바로 다른 차선책을 진행했다.

“...매그너스 라슨이 참으로 곤란하게 됐군.”

그의 음모론.

그 배경에는 수호문이 있었다.

그런데 수호문이 이렇게 강경하게 입장을 밝힐 정도라면, 사실상 강민혁은 수호문에서 제명이다.

강민혁에게는 나쁜 소식일까?

아니다.

그는 강화 전사의 길을 포기하고, 마법사로서의 노선을 택했다. 이번 수호문의 결정은 그런 강민혁의 태도에 ‘신뢰’를 부여하는 것이고, 마법사들은 오히려 강민혁을 더욱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집안마저 버린 강민혁을 상대로, 매그너스 라슨은 음모론을 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로 인한 결과는 명확하다.

매그너스 라슨은, 아주 제대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

“당신도 늙었어. 주류인 수호문도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상황에서, 그런 실수를 저지른 걸 보면.”

매그너스 라슨.

그가 괜히 불쌍해지는 웨인 번즈 협회장이었다.

강민혁은 아직 영국 마법 협회를 떠나지 않았다.

존 웨슬리의 안내를 받아, 영국 마법 협회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이 협회의 일원들이 수련하는 공간입니다. 아시다시피 마법사들의 수련이란 마나의 파동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특수 물질로 구성한 개별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수련의 방은 이곳 말고도 영국 마법 협회 안에 약 150개 정도 있으며, 덕분에 수련할 공간이 부족할 일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존 웨슬리의 설명은 안내를 가장한 자랑이었다.

그는 영국 마법 협회가 얼마나 좋은 시설을 갖추었는지, 그것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확실히 좋긴 하네.’

수백의 마법사를 수용하는 규모.

영국 마법 협회의 건물 구조만 보더라도 그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세계 마법 연합의 중심세력답게 내부는 상당히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마법사들의 인원도 정말 많았다. 보통 일반적인 마탑들은 50~100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이곳은 오가는 길에 본 마법사들만 하더라도 그 정도는 될 것 같았다. 확실히 개인에 의해 운영되는 마탑과는 다르게, 국가 단위의 지원을 받는 마법 협회의 경우에는 그 규모와 시설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실험실에 도착했다.

“이곳은 영국 마법 협회가 자랑하는 실험실입니다. 이 공간에서 그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수많은 마법들이 탄생했죠. 잠시, 연구자들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실무자들과의 만남.

그들은 강민혁을 발견하자마자, 마치 아이돌이라도 만난 열성 팬인 것처럼 얼굴을 잔뜩 붉혔다.

“가, 강민혁님?!”

“강민혁님이 오셨어!”

“정말 영광입니다.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전투 마법사들에게 강민혁의 인식은 대단한 연구자다.

그러나 연구판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에게, 강민혁은 그야말로 마법의 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에 발표하신 의료 마법의 체계를 보고 제가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는 겁니까? 마나로 상처를 치료하다니. 그것도 생명력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자연의 마나를 활용하는 방법은, 직접 보고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강민혁님을 만나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마법 학계의 등불이자, 희망입니다.”

“팬입니다!”

“사인 부탁드립니다.”

다들 수염 자국이 진한 아저씨들이다.

그들이 얼굴을 붉혀가며 말하는 모습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강민혁은 미소로 호의를 베풀었다.

그 모습을 존 웨슬리가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게 학자들의 세계에서 강민혁의 위상인가.’

강민혁은 4서클 마법사다.

힘이 필요한 전장에서는 아직 올라가야 할 단계가 많지만, 학자들의 세계에서는 그가 최고였다.

더블 캐스팅, 마나 동화, 의료 마법 등등.

현재 살아있는, 아니 역사를 통틀어도 강민혁만한 업적을 이루어낸 학자는 없다. 아직도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많은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지만, 강민혁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강민혁은 뛰어난 학자 한 명이 인생을 바쳐야 성공할 수 있는 평생의 역작(刀作)을 수차례 성공했고, 그로 인해 학자들은 입을 모아 강민혁이 최고의 학자라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분 전.

강민혁의 안내를 존 웨슬리에게 맡기며, 웨인 번즈는 신신당부했다.

“우리는 강민혁에게 실수를 저질렀어. 우리만이라도 강민혁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그의 기분을 풀어줄 필요성이 있어. 그러니 영국 마법 협회를 안내하다가 그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있다면, 협회장의 권한으로 허락할 테니 자네의 판단하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와.”

그 말의 의미.

내부자만이 알 수 있는 일정 선을 넘어도 된다는 뜻이다.

존 웨슬리가 말했다.

“강민혁 님.”

“예?”

“혹시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보시겠습니까?”

예민한 문제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먼저 요청할 수는 없으나, 주인이 허락한다면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면 저야 고맙죠.”

수석 연구자 웨인 라피에르(Wayne Lapierre)는, 마치 이학범 교수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판 이학범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강민혁과의 만남에 살짝 들뜬 표정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에 대해서 설명했다.

“사실 이번 연구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레드 게이트에서 A급 몬스터인 운디네(Undine)가 나타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정령 몬스터들은 등급을 넘어서는 매우 강력한 ‘권능’을 발현하는데, 운디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운디네를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저희는 매우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연구 자료를 넘겼다.

일명 운디네 프로젝트.

페이지를 넘기자, 웨인 라피에르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바닥에 고여있는 웅덩이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에서 ‘수(水) 속성의 마나’가 딸려 나오더니 마법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집중했습니다. 수 속성의 마나만을 빼내는 방식. 만약 저것에 성공한다면, 인간 마법사들도 강력한 물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작.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웨인 라피에르는 천재였고, 10년을 운디네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결과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다.

“실험 결과, 우리는 운디네의 방식을 구현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마나에서 원하는 속성의 마나만 빼내는 방식을요.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수 속성의 마나는 물의 마법을 증폭시키는 위력이 있으나, 저희의 힘으로는 컨트롤할 수 없었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마법사들은 서클이 붕괴되는 현상을 보였고, 그러한 실패 사례를 참고해서 저희는 마법을 발현시키는 서클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수 속성에 특화된 서클. 운디네와 마찬가지로 물을 다루는 원천이 있다면 우리 또한 물의 권능을 발현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현재는 물의 서클을 개별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

강민혁이 놀랐다.

웨인 라피에르.

그는 진짜 천재였다.

그가 말하는 수 속성의 마나라는 것은, 엘리샤가 사용했었던 홍염의 마법과 그 기반이 비슷했다.

‘엘리샤가 화염의 서클을 형성했던 것처럼, 웨인 라피에르는 물의 서클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알아냈어. 과연 영국 마법 협회 구나. 이런 인재가, 실험실의 수석 연구자로 있다니.’

웨인 라피에르가 말하는 물의 권능.

그것은 클리스만의 세상에도 있다.

홍염의 마법사라 불리는 엘리샤가 화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처럼, 포세이돈(Poseidon)이라는 마법사가 운디네와 같은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구 자료도 읽었었는데, 그 힘의 기반을 지금 웨인 라피에르가 발견한 것이다.

겨우 100년의 문명.

연구 기간은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영국 마법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는 하나, 웨인 라피에르는 2000년의 마법 문명에서도 대단하다고 말할 만한 지식에 접근한 상태였다. 완전한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백 년의 세월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험.

웨인 라피에르는 실험의 내용을 밝혔다.

서클을 완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도 실마리를 잡지 못한 상태라, 강민혁이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어.’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화염의 서클을 형성한 경험이 있기에, 시행착오를 겪는다면 물의 서클도 만들어낼 수 있다.

강민혁이 다른 속성의 서클을 만들어내지 못한 이유.

그것은 바로 특정 속성의 마나를 빼내오는 게 정말 위험천만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웨인 라피에르가 그러한 문제를 해결했으니, 사실상 강민혁의 입장에서는 거의 완성된 연구나 다름이 없었다.

강민혁은 영국 마법 협회에 방문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권력을 실체화시키는 것.

매그너스 라슨이라는 인물이 먼저 실수를 저질러준 덕분에, 강민혁은 손쉽게 의도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국 마법 협회에 ‘가능성의 씨앗’을 뿌리는 것.

그래서 존 웨슬리의 안내에 응했다.

그는 본인의 판단으로 강민혁을 연구실로 인도했다 생각하지만, 강민혁은 애초에 이곳에 목적이 있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혹시, 제가 이번 실험을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가능성의 씨앗.

그리고 물의 권능.

웨인 라피에르의 연구는, 일거양득(一學兩得)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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