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4) >
사람들이 자리를 옮겼다.
영국 마법 협회의 마법 연무장.
그 무대를 바라보는 웨인 번즈의 옆으로, 존 웨슬리가 다가왔다.
“협회장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강민혁이 정말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러기엔 조건이 좋지 않아.”
어제.
웨인 번즈는 존 웨슬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강민혁이 본인을 증명하기 위해 영국 마법 협회를 방문한다고 말이다. 직접 A급 몬스터를 상대하겠다는 발언도 했으나, 존 웨슬리는 일부러 그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았다. 혹시라도 강민혁에게 부담을 안길 수도 있음을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매그너스 라슨이라는 낚시꾼은 결국 강민혁을 무대로 불러들였고, 아주 위험한 조건의 무대가 성사되고야 말았다.
“나는 강민혁의 말을 믿는다. 그간 마법 학계를 발전시킨 그가, 사람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강민혁이 A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렸을 때는 강화 전사라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었어. 앞에서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법사의 위력은 2배가 되겠지만, 지금처럼 혼자서 감당해야만 한다면 본인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겠지.”
너무나도 무모했다.
강민혁.
그는 매그너스 라슨의 미끼를 물면서, 아주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안전장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겠습니다.”
사실 매그너스 라슨도 강민혁이 1대1로 A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그림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강민혁이 6서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근접전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할 경우 캐스팅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당연히 안전을 확보한 뒤에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정도의 화력이 있는지만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상치도 못한 형태로 상황이 진행되었다.
덕분에 매그너스 라슨도 난처하게 되었다.
무대로 걸음을 옮기기 전, 몇몇 사람들이 그에게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당신이 무엇을 의심하는지는 알겠습니다만, 혹시라도 강민혁이 죽는다면 그 책임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신 겁니까? 강민혁이 그리도 의심스러우셨습니까? 만약 강민혁에게 특별한 목적이 있다 할지라도, 그는 마법 학계를 위해 헌신한 사람입니다. 이건 정말 아닙니다.”
강민혁의 지지자들.
그들의 사나운 기세에, 매그너스 라슨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단순히 강민혁의 힘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 생각지도 못하게 자충수(自充手)가 되어버린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무대를 향했다.
정말 가능할까.
A급 몬스터에게 화력이 먹히냐는 사실을 떠나서, 1대1로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건 다른 문제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시선들.
이내, 강민혁이 연무장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쿵.
케이지의 문이 닫혔다.
바로 앞에는, A급 몬스터인 자이언트 멘티스(giant mantis)가 있었다.
키에엑.
결박되어 있는 자이언트 멘티스.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듯이 움찔거리는 그의 모습에,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자이언트 멘티스라.’
A급 몬스터.
그중에서는 약한 편에 속하며, 그래서 실험의 용도로 많이 사용되는 개체다.
그렇다고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외피의 단단함만 따지자면 A급에서도 상위 레벨에 속하며, 날카로운 앞발은 강철이라도 두부처럼 베어버리는 위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사정거리도 일반 몬스터보다는 긴 편이기 때문에, 먼 거리에서 휘두르는 앞발 공격은 마법사에게 매우 위협적이다.
‘내가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초의 상징성.
이제 그것은 없다.
유재명이 최초가 되었고, 강민혁으로서는 후발주자로서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전에는 수호문 출신의 강민혁이라는 거부감이 있었다면, 수호문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마법 혁명을 발표한 강민혁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자신이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린다?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 분위기에 불을 붙이는 일이 될 것이다. 유재명에게 최초의 상징성을 넘겼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자신을 ‘마법사’로 대우하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확실히 인정을 받을 기회다.
판이 깔렸다.
웨인 번즈의 고집으로, 강민혁은 마법을 캐스팅할 최초의 시간을 벌었다.
강민혁이 마나를 일으키며 마법의 캐스팅을 모두 끝내는 순간, 자이언트 멘티스의 결박이 풀렸다.
탁!
키에에에엑!
자이언트 멘티스가 뛰쳐나왔다. 둘의 거리는 50M도 되지 않는 상황. 자이언트 멘티스가 순식간에 강민혁의 지척에 도달했다. 그런데, 자이언트 멘티스가 공격을 시도하기도 전에 강민혁의 마법이 주변의 지형을 변화시켰다.
“태산.”
쿵!
쿠르르르르르릉.
땅이 뒤흔들렸다.
강민혁이 위치한 땅이 치솟으며, 강민혁은 적의 공격이 닿지 않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하지만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자이언트 멘티스는 날개를 펼치며 허공으로 뛰어올랐고, 비행형 몬스터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높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
“폭발.”
쾅!
콰콰콰쾅!
키에엑.
본격적으로 마법이 사용되었다.
강력한 폭발에, 자이언트 멘티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추락했다. 펄럭이던 날개는 방금의 폭발로 새카맣게 타버린 상태. 구멍이 숭숭 뚫린 날개는 날개로서의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강민혁은 일부러 날개에 화력을 집중하였고, 바닥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자이언트 멘티스를 향해 마법을 폭발시켰다.
더블 캐스팅.
머리가 팽팽 돌며, 마법들이 빠르게 완성되었다.
“룬 플레어.”
“룬 플레어.”
콰앙!
화르르르르르르르륵!
자이언트 멘티스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 연무장 주변으로는 10m 높이의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강민혁은 바로 그곳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자이언트 멘티스의 점프력으로도 닿을 수 없는 위치. 자이언트 멘티스는 앞발의 가시를 태산의 기둥에 박아서라도 강민혁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조금 올라오기도 전에 강민혁의 마법이 작렬했다.
“룬 플레어!”
콰앙-!
화르르르륵!
강민혁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근접 전투 능력이 아니다.
강화 전사의 도움이 없다 할지라도, 본인의 몸을 스스로 보호하고 A급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
무빙 캐스팅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강민혁은 S급 던전 암흑 도시에서 토벌을 진행하며 ‘태산’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공격적으로는 크게 의미가 없는 마법이지만, 정판호와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분리시켰던 태산의 효과는 확실히 활용성이 뛰어났다. A급 몬스터도 넘볼 수 없는 높이. 태산이라는 카드가 생기면서, 강민혁은 마법사에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당연히 태산에도 제약은 있다.
높이가 낮은 공간이나, 자이언트 멘티스가 아닌 진짜 비행형 몬스터를 상대로는 높이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이언트 멘티스는 발딱 뛰어오르며 강민혁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위치의 이점은 너무나도 컸다.
“폭발."
콰앙!
콰콰쾅!
어김없이 작렬하는 마법.
두 개의 뇌가 ‘하나의 마법’을 위해 힘을 집중했다. 몇 분은 걸려야 할 마법이 순식간에 완성되었고, 자이언트 멘티스는 강민혁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이루지 못했다. 벌써 수차례나 얻어맞은 상황에 자이언트 멘티스의 외피는 새카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5서클의 마법으로도 상처를 입히지 못하는 몬스터가 바로 자이언트 멘티스인데, 강민혁은 그걸 넘어서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건 무력시위였다.
자이언트 멘티스는 외피가 단단하다.
단순히 마법의 방어력만 따지자면, 웨어 울프보다 더 골치 아픈 상대다.
그런데 그런 자이언트 멘티스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휘청거리면서 이제는 제대로 기둥을 타고 올라오지도 못하는 모습은, 이미 자이언트 멘티스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그나마 자이언트 멘티스라 이 정도라도 버틴 것이지, 다른 몬스터였다면 진즉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허어.”
“어찌 이런 일이.”
“...세상에 저런 마법이 존재하다니.”
당황하는 사람들의 음성이 들렸다.
당황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압도.
강민혁은 아무런 위기 없이 자이언트 멘티스를 제압하고 있었다. 단순히 위치라는 이점을 하나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마법사들의 재앙이라 불리는 A급 몬스터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후발대 영상 안.
그 화면에서 강민혁은 강화 전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만의 힘으로도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건 이 자리에 모인 마법사들에게 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강민혁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면서도, 마법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는 사실에 벅차오르는 것이 있었다.
마지막 마무리.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마나가, 결국 자이언트 멘티스의 숨통을 끊었다.
“폭발.”
콰콰콰쾅!
폭발의 위력.
끝까지 저항하던 자이언트 멘티스가 바닥에 추락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그의 피부는, 이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변했다.
“...이게 대체.”
“정말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다니.”
4서클 마법사.
강민혁이 자이언트 멘티스를 쓰러트리는 것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연무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치 석상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마나로 목소리를 키웠다.
“사실 지금 조금 화가 납니다. 저에게 마법 지식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이제는 증명을 바라는 당신들의 태도가 말입니다.”
이건 연기다.
저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연기.
"저에게 마법 지식을 팔라고 하셨습니까? 10억 파운드는 큰돈입니다. 그 돈만 있다면, 평생 금전적인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겠죠. 그런데 제가 이전에 공개한 지식의 가치는 대체 얼마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제가 대가를 바랐다면, 이미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맞는 말이다.
돈?
강민혁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붉은 마나석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나, 외적으로 비추어지는 상황도 아쉬울 게 전혀 없다.
“제가 마법 지식을 공개하지 않아서 그리도 못마땅하셨습니까? 수호문과 저를 묶어서, 제가 이루어낸 일을 깎아내릴 정도로? 이 자리가 끝나면 한국에서 발표된 수호문 관련 기사를 확인해보십시오. 그 기사를 본다면, 제가 수호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좌중이 압도를 당했다.
마법 학계의 명사들.
그들이 지금 강민혁에게 문책을 당하고 있었다.
다들 어딜 가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닐 위치인데, 강민혁을 상대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이언트 멘티스를 쓰러트린 마법의 위력.
그것은 충격적이었다.
자이언트 멘티스의 단단한 외피가 흐물흐물 녹아내려 버린 모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부여했다.
강민혁.
그의 시선이 매그너스 라슨를 향했다.
순간 움찔거리는 그를 향해, 강민혁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 마법 협회의 매그너스 라슨님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기억하도록 하죠.”
그것으로 끝이었다.
기억하겠다는 말로 상황을 끝내는 강민혁의 모습에, 순간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강민혁.
그가 누구인가?
마법 혁명의 주인공이자, 미래의 대마법사다.
그가 기억한다는 것은, 앞으로 그로 인해 만들어질 미래에서 배척이 된다는 의미일 터.
매그너스 라슨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크흠.”
“왜 그러게 그런 무례한 발언을 해가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본능적으로 매그너스 라슨과의 친분이 없다는 듯이, 시선을 회피하거나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중에는 상당한 친분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굳이 친분을 티 내려고 하지 않았다.
강민혁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권력이, 지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실체화’가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