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3) >
다음날.
영국 마법 협회에서 보낸 전용기를 타고 강민혁이 영국에 도착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영국의 땅을 밟았을 때, 강민혁을 반긴 것은 수 많은 취재진이었다. 이미 강민혁이 온다는 소식이 퍼진 모양인지, 언뜻 보아도 수백이 넘어가는 취재진이 우르르 몰려들며 강민혁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강민혁님, 영국에 오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마법 학술 대회 이후, 강민혁님을 원한다고 밝힌 마법 단체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단 한 번도 초대에 응하지 않았던 강민혁님이 오늘 영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이는 영국 마법 협회의 입회를 생각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시그널로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강민혁님의 마법 혁명으로 인해 마법 학계의 판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대체 무한한 지식의 원천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겁니까? 더블 캐스팅, 마나 동화, 의료 마법 등등. 강민혁님의 행보는 지금 마법 학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영어가 뒤얽혀 들렸다.
마법의 본고장.
강민혁의 방문에 헐레벌떡 마중을 나온 취재진은, 강민혁을 수호문의 후계자로 대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한국은 강민혁이 수호문의 출신이라는 사실을 항상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수호문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마법 혁명.
그것이 강민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강민혁이라는 이름의 상징성이 대단해지면서, 사람들이 알아서 수호문이라는 과거를 묻어버렸다.
‘계획이 통했구나.’
최근 며칠.
강민혁의 인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새로운 마법 체계와 의료 마법을 발표했기 때문이 아니다.
강민혁은 수호문과의 토벌에서 갑과 을의 위치를 바꾸었다. 항상 갑으로 군림하던 강화 전사들이 강민혁을 지키겠다고 스스로 나섰으며, 강민혁은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민혁은 전장을 지휘했고, 강력한 공격 마법은 A급 데스 나이트마저 무너트렸다.
상식이라는 것이 와르르 무너졌다.
마법사가 주도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 마법과 관련된 사람들은 강민혁에게 푹 빠졌다.
마법의 희망.
마법의 얼굴.
수호문이라는 배경이 옅어지며, 강민혁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오히려 취재진의 경우에는, 강민혁의 업적이 퇴색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수호문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강민혁이, 마법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한 명의 마법사’로서 인정을 받았다.
강민혁이 말했다.
“제가 영국을 방문한 이유는 특정 세력에 소속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서로 정보를 교류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며, 영국 마법 협회가 저를 초대해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마법사로서, 영국 마법 협회는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니까요.”
다소 형식적인 멘트.
강민혁은 짧게 말을 끝냈고, 영국 마법 협회가 준비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영국 마법 협회.
철옹성이라 불리는 거대한 건물의 모습에, 강민혁은 감회가 새로웠다.
‘클리스만의 세상에서는 저 자리에 왕실 마법 아카데미가 있었지.’
교차하는 기억.
서로의 세상이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영국 마법 협회의 회의실.
강민혁의 방문에, 알만한 얼굴들이 먼저 악수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꼭 한번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독일 마법 협회도 방문하시죠. 강민혁님을 위해서, 성대한 파티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법 학계의 명사(名士)들.
그들은 강민혁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강민혁은 현재 마법 학계를 구성하고 있는 중심이다. 최근에 ‘마법 학계는 강민혁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민혁이라는 이름은 강력한 힘을 지녔다. 아무리 마법 학계의 대단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강민혁을 상대로는 최대한 인자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들은, 강민혁이 예상한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부류였다.
“다들 자리에 앉으시죠.”
영국 마법 협회의 협회장.
웨인 번즈의 말에, 강민혁의 주변을 얼쩡거리던 사람들이 자리로 돌아갔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게 앞서,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강민혁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아닙니다. 저 또한 영광입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자면....사실 후발대의 영상을 보고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알려진 마법들은 A급 몬스터를 상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유재명 대마법사님이 세계 최초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고는 하나, 그건 강민혁님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6서클 마법이 아닌, 새로운 마법으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으니까요. 저희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들 마법을 위해 평생을 바쳤지만, 강민혁님이 사용한 마법에 대해서 아는 분은 단 한 명도 없었습 니다.”
조심스러웠다.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웨인 번즈가 운을 띄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미 존 웨슬리 대마법사님에게도 전달한 말이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마법의 체계를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마법인지는 설명해드리죠. 제가 사용하는 마법의 이름은 등급 외 마법이라는 것입니다. 서클의 특성을 활용해서, 등급을 초월하는 위력을 보여주는 마법이죠. 이 마법의 경우에는 서클의 제한은 없지만, 서클에 따라서 위력이 달라집니다. 저는 4서클 마법사지만, 등급 외 마법을 통해서 A급 몬스터에게도 통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허어.”
“등급 외 마법이라니.”
사람들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나타났다.
난생 처음 듣는 마법.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기에, 웨인 번즈가 대표로 나섰다.
“등급 외 마법이라니. 그런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겁니까?”
“예."
“마법의 소유권은 강민혁님에게 있습니다. 직접 개발하셨으니,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죠. 하지만 혹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마법을 공개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저희들끼리 상의한 결과, 강민혁님이 제안을 승낙만 하신다면 10억 파운드(1조 4,994억)의 대가를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다.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을 원할지라도, 저희는 어떤 조건이든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웨인 번즈의 태도는 적극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4서클 마법사가 A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릴 수 있는 마법.
그야말로 혁명이다.
욕심으로 차오르는 사람들의 눈빛에, 강민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등급 외 마법을 공개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여러분과 거래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저의 확고한 생각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어두워지는 사람들의 표정.
그때, 구석에 있던 한 사람이 나섰다.
“제가 말해도 되겠습니까?”
50대 중반의 사내.
메부리코에 인상이 상당히 강한 그는, 강민혁의 기억에도 있는 인물이었다.
‘미국 마법 협회의 매그너스 라슨(Magnus Larsson).’
유명한 인물.
그리고,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사람 중 하나였다.
‘드디어 시작인가.’
속으로 웃었다.
강민혁은 웨인 번즈와의 형식적인 얘기가 얼른 끝나고, 저런 사람이 나서길 기다리고 있었다.
매그너스 라슨.
그는 의심과 질투가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의 행보에 마냥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없는지 의심부터 했다.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지.’
더블 캐스팅.
마법의 형태 변화.
마나 동화.
그리고 이번에 마법 혁명까지.
대단한 행보다.
강민혁은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업적을 보여주었지만, 문제는 그가 마법을 입문한 시기였다. 강민혁은 과거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수호문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분명히 17살의 나이에 마법에 입문한 것이 확실한데, 그렇다면 지금 보여준 모습은 말이 되질 않는다.
마법의 천재?
그런 단어가 모든 의구심을 가라앉히기는 한다.
강민혁이 천재라면, 남들을 발견하지 못한 ‘대단한 발견’이 이렇게 연속적으로 터져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4서클의 경지에 오른다? 그건 재능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야. 어쩌면 강민혁은 오래 전부터 마법을 익히고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감춘 것일 수도 있어.’
의심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진실을 부정하고 퍼즐을 맞추자, 제법 그럴 듯한 그림이 맞추어졌다.
‘강민혁은 수호문이 마법 학계를 집어삼키려고 만들어낸 가상의 마법 천재일 수도 있어. 아니, 17살의 나이에 4서클 마법사라면 천재라는 사실은 분명하겠지만 의도적으로 그 업적을 부각시킨 거지. 강민혁이 개발했다고 알려진 지식들은 수호문에서 따로 팀을 개설해서 연구를 진행한 것일 수도 있고,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는 영상도 사실 믿을 만한 자료는 아니야. 그 토벌은 수호문에서 진행한 것이니까,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조작할 가능성은 있어.’
그것은 음모론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부분이 있었으나, 애초에 강민혁을 부정하고 보자 제법 그럴듯하게 보였다.
그래서 나섰다.
강민혁이라는 인간을 부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실 전 강민혁님의 말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더블 캐스팅, 마나 동화, 의료 마법 등등 그 대단한 지식들을 공개해놓고, 등급 외 마법만 비밀로 붙이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생각해보면 A급 몬스터를 쓰러트렸다고 하는 증거는, 강민혁님의 가문인 수호문의 제자들이 증언한 것과 당시 촬영한 영상 뿐입니다. 강민혁님의 업적이 마법 학계에 얼마나 대단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이번 문제는 그와 별개로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멘트를 순화시켰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밝힐 수는 없기에, 매그너스 라슨은 음모론을 돌려서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강민혁의 추종자다.
너무 공격적으로 말했다가는 역으로 당할 수도 있기에, 그는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정도로 만족했다.
당연히 긍정적인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강민혁을 대신해서 분노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당사자인 강민혁은 매우 침착했다.
‘재밌네.’
하나의 가능성.
그것이 이 자리에 파문을 일으켰다.
매그너스 라슨은 의혹을 제기했고, 사람들은 그에 분노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림은 묘하게 강민혁에게 해답을 바라고 있었다. 분노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강민혁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대답을 강요했고,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은 매그너스 라슨의 의견을 말없이 지지했다.
매그너스 라슨의 말이 틀려도 상관 없다.
아무런 손해 없이, 진실을 확인하는 방법일 테니 말이다.
‘이해해. 내가 겨우 몇 개월 만에 이루어낸 업적은, 천재라는 단어로도 납득할 수 없을 테니까.’
예상한 상황이다.
강민혁이 쌓은 탑은 아직 견고하지 못하다.
짧은 시간에 너무도 높이 올라오는 바람에, 신뢰라는 지지기반이 나약하다.
그래서 마탑 건설을 서두르지 않았다.
과유불급(過植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한 욕심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일을 망쳐버릴 것이다.
‘이 자리를 통해 단단한 기반을 쌓는다.’
하나씩.
그렇게 하나씩 이루어간다.
후일 자신이 건설할 난공불락의 성을 위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마법을 증명할 의무는 없지만, 면전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 괜한 오기가 생기는군요. 매그너스 라슨님이 원하시는 게 진실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드리죠.”
“어떻게 말입니까?”
“방법이 따로 있겠습니까?”
강민혁이 웃었다.
아주 간단한 해결책.
그것은, 이 자리에 참석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직접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들, 그걸 원하시는 거지 않습니까?”
떡밥을 강하게 물었다.
매그너스 라슨이라는 의심과 질투가 많은 낚시꾼을, 현실이 통용되지 않는 심해(深海)로 끌어들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