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79화 (79/197)

79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2) >

“민혁아!”

정판호였다.

강민혁이 나가자마자 따라 나온 그는, 강민혁을 불러세우더니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맙다. 네 덕분에 판수가 살았다.”

“...판수가 깨어난 겁니까?”

“그래. 의사의 말로는 초기에 조치하지 않았더라면, 화타가 살아 돌아와도 죽었을 거라고 말하더구나.”

“다행이네요.”

진심이었다.

정판수.

호감이 가는 인간은 아니나, 그렇다고 그가 죽길 바란 적은 없었다. 그도 한때는 강민혁의 동료였던 사람. 전장에서 등을 맞대고 싸우던 그를 기억하기에, 강민혁은 정판수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와의 관계가 어떻든 간에, 몬스터와 싸우다가 죽어가는 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생각을 정판호도 안다.

강민혁이 정판수를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해서 살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정판호에게 중요한 것은 강민혁의 도움으로 정판수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건, 그에게 매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정판호가 말했다.

"병실에서 판수를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난 그간 너를 부정했고, 너에게는 참으로 못된 사람이었겠지. 이렇게 사람이 단번에 태도를 바꾸는 게 웃긴 일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나는 앞으로 너에게 받은 은혜를 평생 갚을 생각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는 지금부터 너의 편이다. 강덕철 문주님에 대한 충성은 그대로겠지만, 그 이후의 세대는 얘기가 다르다.”

그건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판호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굳은 의지는, 무언가를 결단한 것 같았다.

“난 네가 강화 전사들을 배척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수호문에서 지내며 강화 전사가 얼마나 강한지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너만의 세력’을 취하려고 하겠지. 그래서 강덕철 문주님의 부름에 응한 것이고. 네가 수호문을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제자들은 너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있다. 네가, 강민혁이 다시 수호문으로 돌아오는 가능성에 대해서.”

수호문과의 대화.

단순히 관계 정리만을 위함이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 중 한 갈래를 위해서, 강민혁은 일부러 나타나 제자들에게 그러한 미래를 보여주었다.

수호문의 낙오자.

떠날 때는 초라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모습은 당당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제자들은 새로운 미래를 떠올렸고, 그건 훗날 가능성이라는 꽃을 피울 것이다.

정판호는 수호문의 장로다.

수십 년간 이 바닥에서 굴러온 그는, 돌아가는 판세가 눈에 보였다.

“네가 수호문을 취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나는 이준호가 아니라 너의 편을 들 것이다. 강덕철 문주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는 하나, 그게 다음 세대에 대한 약속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기억해라.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할지라도, 내게 검을 쥘 힘만 있다면 수호문의 정판호는 너의 편일 것이다.”

약속.

정판호가 의지를 다졌다.

혹여 자신의 선택이 골육상쟁(骨肉相爭)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그는 피의 길을 직접 열 것이다.

정판호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에게 이득이 되는 일만을 생각했다.

그로 인해 이준호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의 정판호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은혜를 갚는 것.

한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는 이기심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정판호였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떠한 확답도 해주지 않았다.

호의를 받아들일 뿐, 강민혁은 이만 수호문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강민혁은 생각에 감겼다.

‘수호문.’

가능성의 씨앗은 뿌렸으나, 사실 그 씨앗을 수확할 생각은 없다.

만일의 상황을 위한 준비.

적어도 이번 던전 사냥에서 보았던 이준호의 모습은, 수호문의 후계자로서 매우 훌륭했다.

‘이준호는 수호문에 어울리는 사람이야. 마법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내가, 지금의 그를 대체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지. 그리고 수호문은 검문으로서의 근본을 잃어서는 안 돼. 내가 만약 수호문에 뿌린 가능성의 씨앗을 거둘 날이 찾아온다면, 그건 그 근본을 잃었을 때의 일이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준호를 믿는다.

강민혁이 기억하는 이준호는, 자신보다도 리더의 자격에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만 수호문에 대한 생각을 털어냈다.

관계 정리를 확실히 끝낸 이상, 수호문이 아니더라도 강민혁은 생각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일단.

‘아카데미로 복귀하자.’

아마 아카데미는 난리가 났을 터.

어머니의 기일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떠난 일개 학생이, 마법 혁명을 일으켜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카데미 정문에는, 학과장 최병호의 소행(?)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마법 학과 1학년생 강민혁, 마법 혁명을 일으키다!]

[세계적인 대마법사 강민혁이 공부한 곳!]

[여러분들도 여기서 공부한다면, 강민혁처럼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 현기증이 생기는 강민혁이었다.

구름을 걷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총장에게 불려간 최병호는, 자신을 향해 정말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총장의 모습을 보았다.

“최병호 학과장, 그간 정말 고생이 많았네. 자네의 노고 덕택에 강민혁이라는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었어. 앞으로 마법 학과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말만 하게나. 아참, 그리고 가는 길에 계좌도 확인해보게. 원래 이 세상은, 성과를 내면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마법 혁명.

그것이 일어나고 마법 학과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세상이 마법 학과를 주목했다.

마법 학과가 해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민혁이 다니는 아카데미라는 사실에 관심을 받았다.

덕분에 마법 학과는 발 빠르게 마법 혁명과 관련된 클래스를 개설할 수 있었다.

[전장 지휘]

[의료 마법]

두 개의 수업.

모두 강민혁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사실 수업에 관련된 정보는 강민혁이 무료로 공개한 것을 참고한 것에 불과했지만, 강민혁이 마법 학과 출신이기에 원조(?)라는 소문이 퍼졌다. 세계 각지의 마법사들이 뒤늦게 마법 학과에 입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거대 기업들에서도 마법 학과를 지원하겠다고 돈 다발을 들고 찾아왔다.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마법 학과.

그렇다 보니 총장의 태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마법 학과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가, 최병호 학과장을 따로 불러낸 이유가 그것이었다.

‘우리 민혁이가 얼른 돌아왔으면 좋겠네.’

강민혁.

그가 보고 싶었다.

마법 혁명을 일으킨 자신의 소중한 제자(?)가, 마법 학과에 행차해서 마법 학과의 소속임을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현수막을 하나씩 설치했다. 혹시 신경을 쓸까 봐 문자 한 통도 조심스러웠던 그가, 강민혁이 왔다는 사실에 헐레벌떡 뛰쳐나갔다.

그런데.

“당분간 영국에 다녀오겠습니다.”

“...응?!”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최병호의 표정이 절망에 물들었다.

던전 토벌.

마법 혁명.

그리고 이 타이밍에 영국을 간다니.

그의 머리에,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서, 설마 영국 마법 협회에 들어가려는 생각이니? 그렇지. 너 같은 인재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영국 마법 협회라면 대단한 단체기도 하고. 하지만 그래도 하던 학업은 마무리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니? 그것도 좀 그런가? 이미 넌 학생이 아니라, 교수의 클래스이니 말이야. 하여튼 민혁아. 이렇게 떠나면 이 학과장의 마음은 찢어질지도 모른단다. 만약 네가 원한다면, 학생의 자격이 아니라 교수의 자격을 부여하마. 연봉도 원하는 만큼 말하거라. 얼마를 원하든 간에, 총장님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어떻게든 지급할 테니까.”

횡설수설하는 모양새가 꽤 당황한 모양이었다.

아카데미.

아직은 필요한 포지션이다.

고로 떠날 생각은 없었다.

“아니에요. 그쪽과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전에 얼굴이나 뵈려고 찾아온 거예요. 아무리 출석을 보장해준다고는 했지만, 일이 하나 끝나자마자 얼굴도 안 보고 바로 떠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혹시 어떤 일인지 물어도 되겠니?”

선뜻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강민혁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병호는 불안에 떨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현재 세계 마법 협회에서 저의 위치. 그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할 생각이에요.”

하루 전.

강민혁은 존 웨슬리의 전화를 받았었다.

전화기 너머.

존 웨슬리가 말했다.

[마법 학계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강민혁님이 마법의 새로운 체계와 의료 마법을 공개해주신 덕분에, 마법 학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아마 조만간 세계 마법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감사패와 보상을 지급할 것입니다. 강민혁님이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선의를 베푸셨다고는 하나,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저 또한 동의하거든요.]

“그런가요.”

형식적인 말들.

강민혁이 얼른 본론을 말하길 원하자, 존 웨슬리가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하게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민혁님이 던전 토벌에서 보여주었던 마법으로 인해, 현재 세계 마법 협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저희가 알기로는 강민혁님은 6서클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체 어떤 방법으로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리신 겁니까? 그건 도저히 저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렇게 염치를 무릅쓰고 직접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강민혁의 발표.

그로 인해 일반인들은 본질을 잃었다.

데스 나이트를 처리했던 그 강력한 마법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궁금했다.

만약 저 힘을 본인들이 소유한다면, 본인들도 강민혁처럼 A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존 웨슬리는 그러한 마법사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강민혁의 반응은 차가웠다.

“지금 착각하시는 게 있네요. 저는 마법의 발전을 위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저의 전부를 내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사용한 마법에 대해 해명할 의무가 제게 있습니까? 저는 그 어떤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았고, 현재 아카데미의 학생일 뿐입니다.”

[".........."]

존 웨슬리가 말을 잃었다.

강민혁이 이리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실 이게 당연한 반응이다.

강민혁은 그간 비정상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퍼주었던 것이지, 그에게 지식을 공개할 의무 같은 것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미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존 웨슬리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다.

사실 존 웨슬리의 질문이 크게 무례한 건 아니다.

당연한 반응이다.

애초에, 마법 학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법을 궁금해하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마법을 밝히지 않고, 가만히 침묵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칠 방법이 없다.

이미 강민혁은 마법의 성역이 되었고, 자신을 건드리는 것은 그들에게도 위험한 일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세계 마법 협회에 나라는 사람을 증명한다.’

강민혁이 그간 보여주었던 것.

그건 간접적인 것이다.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지식이거나, 아니면 화면 너머에서나 볼 수 있는 영상.

사람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비상식적인 일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존 웨슬리는 인정하는 부류.

분명 세계 마법 협회에는, 강민혁을 부정하고 깎아내리려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에 강민혁은, 자신을 향한 마법사들의 인식이 달리진 지금의 상황을 확실하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마법을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라는 마법사가 어떻게 A급의 몬스터를 쓰러트렸는지는 직접 보여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거라도 원하신다면, 내일 안으로 비행기를 보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안에.

[알겠습니다. 당장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달이 난 입장에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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