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 22. 수호문, 그리고 영국 마법 협회 >
수술실 앞.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그곳에, 정판호는 불안과 걱정이 뒤섞인 얼굴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에는 보호자들을 위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그로서는 그곳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엄습하는 불길한 생각. 동생과 아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상황에, 정판호는 평소 그답지 않게 이빨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미 다 뜯겨나간 손톱 안에서는 핏물이 배어 나왔지만, 쓰라린 통증이 오히려 고통스러운 생각을 조금이나마 완화시켜주었다.
‘제발, 살아만 나거라.’
정판수.
그가 초월급 데스 나이트의 공격에 맞았을 때, 사실 아들의 목숨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A급도 아니고 초월급 몬스터의 전력이 담긴 공격은, 자신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살았다.
당장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건만, 강민혁 덕분에 숨은 붙어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던전을 나서자마자 정판호는 정판수를 안 고 병원으로 뛰었다. 몬스터들의 위협으로 인해 현대 의학은 목숨줄만 부지하고 있으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발달하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정판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술이 필요했고, 그렇게 대수술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직 전투의 피로도 해소하지 못한 정판호는, 피가 말라가는 기분으로 수술실 앞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실의 문이 열렸을 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의사가 밖으로 나왔다.
“선생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태를 묻는 정판호의 눈빛에, 의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다행히도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사실 정판수 환자의 상태는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는데, 초기 조치가 매우 훌륭했습니다. 강민혁님이 의료 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했다죠? 그게 아니었다면 정판수 환자는 죽었을 겁니다. 초기에 출혈 부위를 모두 잡고, 당장 생명에 지장이 가는 부분을 회복시킨 것이 주요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보호자님. 정판수 환자는 살았습니다.”
“아."
털썩.
정판호가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수호문의 호랑이가,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 있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보다는 강민혁님에게 더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의료 마법이 없었다면, 애초에 수술할 시간조차 벌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참 대단한 친구네요. 의료 마법을 직접 개발했다면서요? 앞으로 현대 의학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의료 마법을 적극적으로 현장과 수술실에서 사용한다면, 전투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줄어들 테니까요.”
현대 의학.
그것으로도 살릴 수 없는 환자는 많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전장에서, 메스를 들고 뛰어가 수술을 진행할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 있어 의료 마법의 탄생은 희소식이었다.
의사의 말에, 정판호는 다른 잡담은 들리지 않고 오로지 ‘강민혁’이라는 이름 하나에 고정되었다.
‘강민혁.’
은인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아들이 죽었을 것이다.
일단 자리를 정리했다.
정판수는 회복실로 이동했고, 정판호는 그 곁에서 밤을 지새우며 자리를 지켰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정판수는 며칠이 더 지나서야 의식을 회복했다. 힘겹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정판수의 모습에, 정판호는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 정말 펑펑 울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던 정판호는, 정판수가 의식을 차리자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머무는 사이.
밖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후발대의 영상이 공개되었고, 강민혁이 충격적인 발표를 했으며, 그로 인해 마법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 여파.
그것 때문에 수호문에서 비상소집이 떨어졌다.
정판호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아들도 정신을 차린 상황.
정판호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족쇄가 풀렸다.
‘수호문으로 가자.’
인간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정판호는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강민혁의 마법 혁명.
그것은 수호문으로서도 충격적이었다.
비상소집으로 진행된 회의에서, 수호문의 가신들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혁이가 벌써 그러한 경지에 오르다니. 후발대 영상과 발표를 확인했는데도,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민혁이는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수호문에서 검을 휘두르던 아이입니다. 그런데 ‘의료 마법’을 만들어내다니요. 벌써부터 언론은 난리가 났습니다. 수호문에서 버림받은 낙오자가 마법 혁명을 일으켰다며, 그간 수호문이 강민혁에게 잘못된 길을 강요하고 있었다고 말이에요. S급 던전 암흑 도시를 토벌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나, 사람들은 강민혁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를 토벌하는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수호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강민혁.
그가 수호문의 낙오자라는 게 문제였다.
수호문의 건재함을 증명하려고 진행되었던 연례행사는, 오히려 강민혁을 위한 무대가 되었다.
강덕철의 시선이 끝자락을 향했다.
그곳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한 정판호가 있었다.
“정판호 장로. 강민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직접 경험했으니,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자, 정판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는 마법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마법이란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없는 나약한 힘이기에, 마법사를 배척하는 것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강민혁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법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학문입니다. 강민혁이 발표한 의료 마법이, 그리고 제 아들을 살려낸 그 힘이 마법의 가능성을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정판호 본인도 안다.
강민혁을 옹호하는 것.
자신이 그간 저질렀던 일이 있기에, 그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를 말이다.
그런데도 광대가 되기를 자처했다.
고머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이 비웃음을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는 할 말은 꼭 해야만 했다.
“제가 지켜본 강민혁은 마법의 천재였습니다. 당장 언론이 마법 혁명이 일어났다고 떠들어대는 것처럼, 강민혁으로 인해 마법 학계는 많은 변화를 맞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주님. 강민혁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A급 몬스터를 마법으로 쓰러트리고, 마법으로 제 아들을 살린 사람이 바로 강민혁입니다. 지금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마법의 가치가 인정받는 그 세상에서, 강민혁의 이름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그 무게가 많이 달라질 겁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구자라 부를 것이며, 후일 이 세상의 역사는 강민혁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할 것입니다.”
“크흠.”
“으흠.”
몇몇 가신들이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설마 정판호가 저렇게까지 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잠깐의 침묵.
강덕철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같다. 이미 새로운 시대는 열렸다. 그리고 수호문은, 검문이라고는 하나 이 세상의 수호를 위해서는 시대에 도태되는 선택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릴 것은 버리고. 그래야 앞으로도 우리는 수호문의 식솔들을 지킬 수 있다.”
말을 끊었다.
강덕철의 시선이 좌중을 훑자, 가신들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였다.
“지금 당장 강민혁에게 연락하도록.”
수호문.
그들이 오랜 역사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강한 무력을 떠나서,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에 있었다.
회의가 다시 진행되었다.
강민혁이 자리하자, 강덕철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네 선택이 옳았다. 우리는 회의를 통해 네 힘을 인정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네가 원한다면 수호문에서 마법 부대를 창설하는 것을 허락하겠다. 그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도 약속하도록 하지. 선택은 네게 맡기마. 수호문으로 다시 돌아올지, 아니면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를.”
사과는 없었다.
후계자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할 뿐이다.
강덕철은 그런 사람이었다.
마법의 가능성을 인정해서 파격적인 선택을 내렸으나, 힘의 논리에서 과거를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마나에 재능이 없는 강민혁은 강화 전사에 어울리지 않고, 수호문의 후계자는 결국 검으로서 증명해야만 한다. 그래서 강민혁의 가능성은 후계자의 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준호는 S급 던전 암흑 도시에서 충분히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그가 후계자일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일.
강덕철은 지금 강민혁에게 ‘제안’을 했다.
후계자로서의 강민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수호문의 배경을 대가로 마법의 힘을 얻기를 바랐다.
만약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강민혁의 세력은 크게 성장할 것이다.
지금 당장 마탑을 세운다 할지라도, 수호문이라는 배경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수호문.
그들은 이 세상의 강자다.
하지만, 강민혁의 대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왜지?”
마법의 가능성?
인정한다.
하지만 결국 이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강화 전사들이다.
마법사는 이제야 막 인정을 받는 걸음마를 뗐을 뿐, 그 이상의 대우를 바라는 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만약.
강민혁과 같은 마법사가 3명이 있었다면, 초월급 데스 나이트를 쓰러트릴 수 있었을까?
에픽급 몬스터 다크 리치는?
불가능하다.
강덕철, 이준호, 정판호.
뛰어난 강화 전사들이 있었기에 S급 던전이 무너졌다.
아무리 마법이 효율이 좋고 강한 파괴력을 자랑한다고 한들, 결국 강화 전사는 필요하다. 마법사가 앞에서 직접 싸울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강화 전사의 위치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강민혁이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앞으로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수호문의 후계자가 아닙니다. 문주님과 연을 끊고, 수호문에서 받는 모든 혜택을 버리고 나왔습니다. 사실 혜택이라고 할 것도 없었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매일 같이 처절한 나날을 보냈으니까요. 그런 제게 수호문에서의 과거는 들먹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래라는 것은 장담할 수 없으나, 저는 적어도 후계자였던 강민혁으로서 수호문과 연을 맺을 생각이 없습니다.”
선을 그었다.
그 싸늘한 태도에, 한 가신이 말했다.
“네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강화 전사와의 공존을 말하지 않았더냐.”
“예, 그랬습니다. 그런데 굳이 ‘수호문’과 공존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강화 전사가 많습니다.”
이 상황.
예상은 하고 있었다.
강덕철은 그간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든, 수호문이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변화를 받아들일 사람이다. 하지만 그 근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법을 인정할지라도 결국 수호문의 중심은 강화 전사들일 테고, 강덕철은 오로지 ‘힘의 논리’로만 사람을 판단하며 이용할 것이다.
자신도 다르진 않다.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적어도 이제는 수호문에게 우선순위를 내줄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았다.
“과거의 강민혁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마법사의 가치를 인정하고 앞으로 마법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부탁하십시오. 제힘이 필요하다고. 과거의 인연을 들먹이는 게 아니라, 거래를 제안하는 입장에서 명확한 대가를 제시하십시오. 그게 앞으로 수호문과 저의 관계입니다. 그러한 선을 지켜주신다면, 저는 수호문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나가려던 강민혁은, 마지막으로 말을 내뱉었다.
“문주님의 말 한마디에 달려오는 것도, 이제는 정말 끝입니다.”
밖으로 나서는 강민혁.
회의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그들로서는, 말없이 강민혁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