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 21. 마법 혁명(2) >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전.
K 방송사가 후발대의 영상을 내보내기 전에, 강민혁은 카메라맨에게 연락을 받았다.
"혹시 후발대의 영상을 방송으로 내보내도 괜찮을까요? 촬영을 전제로 토벌을 진행한 것이기는 하지만, 강민혁님이 곤란해할 부분이 있으면 편집해드릴게요. 저는, 제 목숨을 구해주신 강민혁님이 곤란해지는 상황을 바라지 않아요.”
카메라맨.
아니, 후발대에 소속된 모든 이들은 강민혁을 은인이라고 생각했다.
전투에서의 활약도 뛰어났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끝까지 부상자를 치료하던 모습이 사람들은 감동시켰다. 당시 강민혁의 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다. 생기를 잃은 표정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강민혁은 부상자를 치료하기 전까지는 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상자에는 카메라맨도 있었다.
초월급 데스나이트와의 전투 장면을 촬영하지 못한 이유는, 도중에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강민혁은 고민했다.
등급 외 마법.
의료 마법.
초월 각인.
강민혁은 이 세상의 상식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행히도 초월 각인은 영상으로 촬영되지 않았다지만,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이로 인해 벌어진 상황은 뻔하다. 세상이 강민혁을 주목할 것이고, 강민혁이 사용한 지식에 대한 ‘해명’을 바랄 것이다.
그렇기에.
“방송에 내보내셔도 됩니다. 그러려고 참여한 토벌이니까요.”
“감사합니다.”
알고 있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에서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다해야 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선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참석한 자리다. 강민혁은 수호문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내길 원한다.
왜냐고?
‘강민혁이라는 사람은 수호문의 후계자라는 인식이 강해. 그 꼬리표가 따라붙는 한, 무엇을 하든 간에 마법 학계의 사람들은 나에 대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 나는 이번 토벌을 통해서 그 인식을 바꾸어야만 해. 수호문의 후계자 강민혁이 아니라, 마법사 강민혁으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생각보다 일이 커졌다.
의료 마법은 예상치 못한 변수였지만, 이미 드러내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내 목적은 나의 세력을 만드는 것, 나아가 마법을 발전시키고 몬스터들의 완전한 소멸(消滅).’
마탑.
지금 당장은 건설할 수 없다.
이번 일로 대단한 명성을 쌓더라도, 마탑주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최고의 마법사라는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학범, 정상훈, 유재명을 밑에 거느리고, 그 위에 올라서는 세계 최초의 7서클 마법사. 그것이 강민혁이 바라는 그림이고, 그런 그림이어야만 기존의 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리고 강민혁이 우뚝 설 수 있다.
S급 던전 토벌.
지금 찾아온 기회는 그 밑바탕의 하나다.
자신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마법 학계와 자신을 갈구하는 세력들의 구도를 이용한다.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나중에 강민혁이 포부를 밝혔을 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없을 것이다.
‘K 방송사로 간다.’
능력을 밝히기로 결정했다면.
어중간한 게 아니라, 확실한 행동이 필요하다.
K 방송사.
강민혁이 카메라 앞에 섰다.
사전에 얘기가 되었고, 지금부터 하는 모든 언행은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공개될 예정이었다.
“제가 처음에 마법의 길을 택했을 때, 저는 마법의 가능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자질이 부족해서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은 저에게, 마법은 도피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의 치부.
그것을 밝혀야만, 자신이라는 사람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했음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밑바닥에서 다시 일어난 자신의 동화 같은 스토리는, 마법사들에게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직접 경험한 마법은 정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마법에 대해 연구했고, 더블 캐스팅과 마법의 형태 변화, 그리고 마나 동화와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해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천재라고 부릅니다. 예, 인정합니다. 전 천재입니다. 100년의 마법 역사가 개발해내지 못한 지식이, 제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말할 이야기의 개연성.
그 모든 일의 변명은 천재(天才)라는 단어로 대체한다.
그럼 자신에게 질문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런 기술을 개발했느냐고 묻는다면, 천재는 "그냥 가능했다.”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후발대의 영상이 공개되고서 사람들이 제게 묻더군요. A급 몬스터를 처리한 마법은 대체 무엇입니까? 어떻게 마법으로 부상자를 치료할 수 있었던 겁니까? 그리고 어떤 이들은, 거래를 제안하기도 했죠. 그들도 아는 겁니다. 마법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며, 이 마법으로 인해 마법사들이 받는 대우가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저는 그들의 거래에 전혀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지식을 꼭꼭 숨겨두고 혼자서 독식하는 것을 걱정해서 막대한 금액을 제안했겠지만, 사실 그건 괜한 걱정이거든요.”
거래는 없었다.
그런 의도를 가진 전화는 많았으나, 강민혁은 단 한 통화도 받지 않았다.
강민혁은 지금.
수호문 출신의 강민혁이 아니다.
강화 전사들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길지라도, 마법사로서 대우받지 못한 그들을 대표할 것이다.
“영상에서 보았던 마법들. 그 마법을 모두에게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1서클부터 5서클까지 더욱 강하고 위력적인 새로운 마법 체계를 찾아냈으며, 의료 마법이라는 모두가 갈망하던 분야도 개발해냈습니다. 그것들을 대가 없이 알려드리겠습니다.”
"헉."
“...그걸 전부 공개하겠다고?”
카메라 바깥.
촬영을 진행하던 스태프들이 당황으로 얼룩진 표정을 보였다. 강민혁의 마법 지식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자랑한다. 그걸 대가 없이 그냥 공개하겠다니. 일반인의 머릿속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치솟는 시청률에, 그들은 방송이 대박 났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로써 사람들은 본질을 잃는다.’
마법 공개.
그 단어의 임팩트는 대단하다.
강민혁은 숨기지 않는다는 말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이 숨겨야만 하는 지식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등급 외 마법.
초월 각인.
그건 모두에게 내줄 수 없는 힘이다. 강민혁만이 알아야만 하는 비장이 무기이고, 그렇기에 그에 관한 질문이 따라붙지 않도록 1서클 부터 5서클까지의 새로운 마법 체계를 제안했다. 그것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중급(中級) 마법이라 불리는 것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신세계일 것이다. 강민혁이 사는 세상은, 하급 마법조차도 인정받는 세상이지 않던가.
세상이 들끓었다.
강민혁이 하는 말.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는 마법 학계가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라는 일개 개인의 노력이, 마법 학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마법은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강화 전사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강력해진 마법과 의료 마법이라는 새로운 변화는 마법사에 대한 활용성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실 우스운 일이지 않습니까? 강화 전사나 마법사나, 우리 모두 몬스터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헌터입니다. 이번 일로, 저는 양쪽의 세계가 서로 화합하는 길을 찾길 바랍니다. 이전에는 마법사의 능력이 떨어져서 강화 전사들이 마법사들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는 그러한 말이 변명으로 적합하지 않을 겁니다.”
좌중을 압도했다.
카메라 너머로, 강민혁의 카리스마가 전해졌다.
17살의 학생이 아니다.
4서클의 마법사가 아니다.
강민혁은 마법 학계를 대표하는, 최초를 이룩하는 선구자로서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섰다.
“이만, 말을 마치겠습니다.”
영상이 끝나는 순간.
세상은, 후발대의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보다 더한 충격에 빠졌다.
하나의 문명이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는 순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주 오래전.
말을 타고 다니던 사람들은, 고철 덩어리가 저절로 움직이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망상에 표정을 찌푸렸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그 무거운 고철 덩어리가 저절로 움직이고 하늘도 날아다닐 수 있다면, 그건 현실이 아니라 네 망상일 뿐이야.”
핸드폰.
컴퓨터.
가상 현실 등등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는 그 순간마다, 사람들은 상식을 거론하며 부정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한다.
그 변화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경악한 마음을 가라앉혔을 때는 이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강민혁이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강민혁의 발표.
그것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새로운 체계의 마법들은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의료 마법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전투 도중에 발생한 부상은 아직도 현대 의학이 담당하고 있다. 트롤(Trolls)의 피로 제작한 포션으로 간단한 응급 처치는 가능하지만, 결국 병원에 실려 가서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식이 달라졌다.
이제는 의료 마법을 익힌 마법사만 있다면, 강화 전사들은 부상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전투 영상.
그곳에서 활약하던 김성호 일행의 모습이 재조명되었다.
-강화 전사인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방패를 들고 마법사를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있어. 덕분에 강민혁은 오로지 마법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그게 전투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 강민혁의 발표로 인해서 마법의 활용도는 다양해졌어. 마법의 위력도 상승했지만, 강민혁이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조율자의 역할도 맡을 수 있고, 필요하면 의사가 될 수도 있어. 그렇다면 당연히 마법사를 지키는 사람도 필요하지 않겠어? 저들의 모습은, 앞으로 달라질 세상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어.
디펜더.
새로운 직종이 탄생했다.
영상에 매료된 몇몇 사람들이 방패를 들었고, 의료 마법을 익히는 마법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중적인 2서클 힐.
그리고 전문성이 필요한 4서클 힐.
마법사에게 다양한 능력이 탑재되었다.
겨우 며칠.
S급 암흑 도시의 토벌이 끝나고, 수호문이 바라던 스포트라이트는 그들을 비추지 않았다.
강민혁.
그가 모든 것을 독식하였다.
발표 이후로 빠르게 변하는 주변의 상황에, TV에 출연한 한 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세상은 크게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강화 문명이 시작되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죠. 강화 전사가 탄생했고, 그들이 이 세상을 이루는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또 다른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강화 전사가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것과 공존(共存)할 시기가 찾아왔다는 의미일 뿐이죠. 강민혁. 그가, 마법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마법 혁명.
앞으로도 세상을 수도 없이 충격에 빠트릴 강민혁의 행보에, 그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수호문을 향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마법 혁명의 시작은 강화 문명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수호문에서 탄생되었다.
과연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게, 바로 사람들의 관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