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70화 (70/197)

70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4) >

수호문의 교육 과정에는 ‘마법사의 이해’가 있다.

그들을 동급으로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수호문의 방침이다.

그래서 기억의 괴리감이 생겼다.

비주류로 취급받는 마법사라 할지라도 서클을 상승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정판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마법사들도 강민혁의 나이에는 2서클 마법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게 말이 돼?’

룬 플레어.

4서클 화염 마법.

강민혁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려 4서클 마법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시동어까지 친절하게 룬 플레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민혁의 마법은 4클을 뛰어넘는 힘이 있었다.

‘분명히 4서클 마법은 맞는데, 위력은 5서클에 버금갔어. 그렇지 않고서야 B급의 듀라한이 마법을 맞고 쓰러질 리가 없잖아. 그리고 마법의 캐스팅 시간도 비정상적으로 짧은 데다, 혼자서 마법을 무려 10번이나 사용했어. 마법사들은 본인의 서클 최대치의 마법을 몇 번 사용하면 탈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아는 ‘상식’이라는 것이 있기에, 당혹스러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정판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3조의 제자들도 강민혁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강민혁 도련님이 4서클 마법사셨어?”

“언제 벌써 그런 경지에 오르신 거지? 마법을 배우겠다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도련님이 어렸을 때부터 마법을 익혔어도 17살의 나이에 4서클의 경지에 오른 것은 역사에 남을 정도의 일인데, 우리가 기억하는 도련님은 분명히 강화 전사였잖아. 그것도 매우 뛰어난. 그런 사람이 어떻게 몇 개월 만에 4서클의 경지에 올랐지?”

“그나저나 대단하네. 난 마법사의 화력이 이 정도로 강한 줄은 몰랐어.”

“원래 이 정도로 강하지는 않아. 4서클 마법사와 사냥을 몇 번 다녀봐서 아는데, 그 사람이 사용한 화염 마법보다 도련님의 마법이 훨씬 강했어. 그냥 이상해. 어디 가서 마법사가 10번에 달하는 마법을 사용한다는 소리 들은 적 있어? 보통은 4~5번 사용하면 쓰러지는 게 마법사잖아.”

강민혁을 향하는 말들.

인식이 바뀌었다.

수호문의 낙오자.

검을 버리고 ‘도피처’로 마법 학과를 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강민혁은 예상치도 못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낙오자라 불리던 강민혁이, 나름의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빠득.

‘이런 개 같은.’

정판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강민혁.

그가 다시 부각되는 것을 그는 바라지 않는다.

싫다.

싫어도 너무 싫었다.

이번 전투는 강민혁의 공이 명백히 보였지만, 정판수는 그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다들 얼른 정비해. 시간이 없다.”

신경질적인 음성.

정판수가 도끼눈을 뜨고 주변을 흘겨보자, 수호문의 제자들도 아차 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정판호 라인의 사람들이다. 괜히 정판수에게 안 좋은 이미지로 보였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강민혁에 대한 생각은 이만 정리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제야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

정판수가 강민혁을 보았다.

‘네가 어떻게 그 경지에 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한계는 딱 그 정도야. A급 몬스터가 나타나는 순간부터는 네가 5서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그러니 똑똑히 보라고. 네가 수호문의 후계자 자리를 포기한 순간부터, 너와 나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생겼는지.’

시선을 돌렸다

강민혁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일단 전투에 집중할 차례였다.

토벌은 바람을 탄 배처럼 순항했다.

후방에서 부활한 몬스터들이 공격하는 상황이 몇 번 있었지만, 큰 문제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부터는 탐사 외 지역이다.’

고무진.

수호문의 정보부대는 S급 던전 암흑 도시의 많은 것을 알아보았다. 직접 탐사를 나서기도 했지만, 그들도 안전상의 문제로 일정 구역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수호문으로서는 더 이상 정보의 힘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미지의 구역에 발을 들이자 이준호의 감각이 예민하게 변했다.

탁.

“정지.”

그때였다.

미지의 지역에 진입한 지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앞에 낯선 형태의 광경이 보였다.

“대장님, 시체가 있습니다.”

시체.

외벽이 무너진 건물 주변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가 보였다. 이준호를 비롯한 선발대는 조심스럽게 시체에 다가갔다. 피가 완전히 빠져나간 시체는 죽은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이준호가 시체의 복장을 살폈다.

‘팔목에 착용하고 다니는 검은 팔찌. 드레이크(Drake) 용병단의 일원이야. 암흑 도시 공략을 도전한 12개의 파티 중 가장 마지막에 도전한 파티. 그들이 왜 이런 곳에서 죽임을 당했지?’

드레이크.

그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던전을 전문적으로 공략하고 다니는 용병단이다. 앞선 11개의 파티가 전멸당하고 난 이후, 드레이크 용병단은 A급 몬스터도 상대할 수 있는 정예 병력으로 암흑 도시에 진입했다. 그런데 그들이 모조리 죽었다. 수호문은 아직 A급 몬스터를 맞닥트리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지금 위치한 구역부터 ‘A급 몬스터’ 출몰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생존 무전을 보낸 사람도 드레이크 용병단의 일원이었어.’

주변을 살폈다.

정보가 필요했다.

시체의 주변을 확인하자, 손에 쥐어진 피로 얼룩진 손수건이 하나 보였다.

그런데 그것에 피로 적힌 글이 있었다.

[고가 부리]

“...고가 부리?”

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죽기 직전에 쓴 모양인지, 받침들이 피에 범벅이 되어 분간할 수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는 이준호. 고가 부리에 적용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그러다 문득, 이준호는 S급 던전 암흑 도시가 에픽 몬스터이자 ‘마법사형 몬스터’인 다크 리치의 구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그러십니까?”

옆에 있던 수호문의 제자가 물었지만, 이준호는 그에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본대에게 소리쳤다.

“당장 한곳으로 모여요! 공간 분리, 다크 리치가 공간 분리를 사용할.."

쿠르르르르르르릉.

판단은 정확했다.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공간 분리’를 말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우려했던 상황은 벌어지고 말했다.

“제길!”

“공간 분리라니!”

흔들리는 땅.

일그러지는 공간.

검은 마나가 화산이라도 폭발하는 것처럼 주변의 공간을 단번에 장악하더니 오감을 차단해버렸다.

폭발이 끝난 직후.

수호문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후발대’의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공간 분리.

그건 아주 고난이도의 마법이다.

예전에 영국의 한 파티가 던전에서 공간 분리를 경험했는데, 그로 인해서 일행이 뿔뿔이 흩어지며 전멸을 당한 사례가 있었다. 그들이 죽기 직전에 공간 분리에 대해서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공간 분리라는 마법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원히 몰랐을지도 모른다.

백 년의 역사 동안 세 차례.

그래서 알고는 있었으나, 그에 대비하기에는 너무 희박한 확률이었다.

“크윽."

강민혁이 표정을 찌푸렸다.

공간 분리의 충격으로 속에서 역한 기운이 맴돌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확인하자, 3조의 사람들이 차례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옆.

김성호도 정신을 차렸다.

“괜찮으세요?”

“...아무래도 안 괜찮은 것 같은데요?”

김성호가 창백한 얼굴로 웃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공간 분리는 변수가 많은 마법이다.

만약 공간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재수가 없으면 곧바로 몸이 찢겨나갈 수도 있다. 차원의 균열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고, 인류가 아직도 직접 공간을 넘나드는 마법에 소극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마법 문명은 이미 ‘공간’을 넘나드는 마법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강화 문명의 사람들은 아직도 마력 버스와 비행기 같은 과학과 마법을 접목한 기술을 애용하고 있다.

3조.

그들은 모두 같은 곳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바로 주변이었다.

강민혁이 주변을 확인하자, 건물의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은 곳에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이 보였다.

“...여, 여기 사람 있어요.”

메마른 음성.

강민혁이 황급히 그곳으로 갔다.

그러자 20대 초반의 남성으로 보이는 이가 있었다.

남성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전투의 흔적인지 양다리가 모두 잘려나가 있었고, 영양실조로 인해 볼은 핼쑥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그래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추정되는 물통과 육포 쪼가리가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마저도 거의 다 먹어버린 상태라서, 남성의 얼굴에는 죽음의 기운이 만연했다.

“구, 구조대이십니까?”

탁한 목소리.

강민혁은 일단 그의 상태를 확인하며, 김성호로 하여금 정판호를 부르라고 말했다.

“예. 구조대입니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고, 공간 분리에 당했습니다. 다, 다크 리치는 정말 무서운.. 웩!”

후두둑.

그가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내뱉었다.

검은 피.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제길.”

강민혁이 황급히 조치했다.

일단 물을 챙겨서 조심스럽게 그의 입에 흘려보냈지만, 얼마 먹지 못하고 다시 토해내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정판호였다.

정신을 차린 그가, 정판수와 같이 도착했다.

굳이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죽어가고 있는 남자가 생존 무전의 주인공이며, 그를 살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다. 수호문의 사람들은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살릴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은 충분히 할 수 있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남성의 모습에 정판수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이 사람은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구조는 포기하고 본대와 합류하는 것을 우선으로.........."

짜악!

정판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뺨을 날려버린 정판호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판수야.”

“...아, 아버지.”

정판수가 울먹였다.

당황스러웠다.

A급 몬스터를 상대로도 용맹하게 싸우는 정판수이나, 살면서 아버지에게 맞아본 경험은 흔치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뺨을 날리다니. 울컥하는 감정에, 정판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정판호의 표정은 단호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상당히 엄한 모습이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었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포기하지 말라고. 난 널 그리 가르치지 않았다.”

“하, 하지만.”

“하지만 뭐? 넌 만약 내가 저 상태였어도 버리고 갈 생각이냐? 저 사람은 우리의 구조 하나만을 바라보고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온 사람이다. 그런데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을 구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버리고 간다면, 저 사람이 겪을 절망감을 너는 왜 생각하지 못하느냐.”

낯선 광경이었다.

정판호.

그는 유명한 아들 바보다.

그런 그가 정판수를 훈계하는 모습에, 3조의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한 번 있었지.’

강민혁의 기억에 있었다 딱 한 번.

훈련에 나갔던 정판수가 겁을 먹고 자리를 이탈했을 때, 정판호는 호랑이로 변했다.

그때는 강덕철도 말릴 수 없었다.

정판수는 동료를 버린 죄로 정말 먼지 나듯이 맞았고, 그때부터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상황이 재연되었다.

정판호에게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음을 알기에, 정판수가 누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정판호가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강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생존자의 구출은 가장 우선시되는 임무다. 생존자를 치료하고, 곧바로 우리는 본대와 합류한다.”

아주 잠깐의 휴식.

일행이 한숨을 돌렸다.

생존자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고, 본인을 한국계 미국인인 알렉스라고 밝혔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죽고 말았을 겁니다.”

정판수가 고개를 돌렸다.

그를 버리자고 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인지, 알렉스가 있는 쪽으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알렉스.

그를 챙기는 것은 K 방송사의 카메라맨이 맡았다. 그는 전력 외 자원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힘을 쓰는 일에 자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금은 촬영도 힘든 상황. 카메라맨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던 알렉스가, 두려움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 주변에 A급 몬스터인 데스 나이트가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우리가 전멸을.........."

삐익-

앞에서 신호가 들렸다.

순간 알렉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이 주변.

몬스터가 나타났다면 분명히 데스 나이트일 것이다.

그의 일행도 그들로 인해 죽어 나가지 않았던가.

알렉스의 몸이 덜덜 떨렸다.

“아아.”

죽는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미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알렉스의 정신이 무너지려는 순간, 강민혁이 그의 등으로 따뜻한 마나를 보내었다.

화악-

“걱정하지 마세요.”

알렉스가 강민혁을 보았다.

두려움이 가득한 그의 눈을 내려다보며, 강민혁이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호문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정판호와 정판수.

그렇게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들도 강민혁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강민혁은 적어도 정판호의 실력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정판호.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수호문의 호랑이.’

강덕철의 최측근.

수호문에서 순수하게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정판호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괴물이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전투에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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