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69화 (69/197)

69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3) >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수호문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수호문이 신(神)의 은총을 받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수호문의 후계 체계는 흔들림이 없었다.

강민혁은 엄청난 재능을 선보이며 무투 대회를 휩쓸고 다녔고, 그 곁에는 항상 이준호가 있었다. 강민혁이 1위라면, 이준호는 2위. 간발의 차이로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강민혁이었지만, 이준호는 가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당대 최고의 재능.

그들이 모두 수호문에서 태어났다.

수호문의 미래는 밝았고, 강덕철의 시대가 끝나더라도 수호문은 건재할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감은 단번에 무너져 내렸다.

강민혁은 어렸을 때부터 마나의 재능이 떨어졌다.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 시간이 해결해주리라고 믿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민혁과 친구들의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뛰어난 검술? 명석한 머리?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 세상을 지배하는 진짜 힘인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다른 재능으로는 메울 수 없는 엄청난 힘의 차이를 만들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가문의 가신들이 강민혁의 자질을 의심하고 있는 그때, 이준호는 마나에서조차도 재능을 보였다.

“마나의 영역에서 이준호의 재능은 세계 최고다.”

완벽한 조건이었다.

강화 전사로 성장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고, 마나라는 날개를 등에 업은 이준호는 훨훨 날아올랐다. 검술로는 항상 강민혁이 이준호를 앞섰다. 그러나 ‘마나’를 사용하는 실전 대련에서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고, 허무하게 밀려나는 검에 강민혁은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래서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토벌 과정에서 있었던 사고의 충격도 컸지만, 그 이면에는 이준호라는 존재가 있었다.

서걱!

이준호의 검이 듀라한의 가슴을 베었다.

깔끔했다.

파랗게 일어나는 오라는 듀라한의 단단한 외피를 두부처럼 갈라버렸고, 이준호는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몬스터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았다. 수십,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 그들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이준호의 목숨을 노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준호의 발밑에는 사체가 쌓여갔다.

“적에게 딸려 들어가지 마라! 우리는 소모전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던전 끝에 위치한 다크 리치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위 몬스터들을 상대로 과도하게 체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지킬 수 있는 포지션에서 자리를 지키고, 들어오는 적들을 우선으로 상대하라!”

이준호가 소리쳤다.

이준호의 명령에 선발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파도처럼 밀려드는 적들을 문제없이 막아냈다.

계속되는 전투.

처음에 언데드 무리를 만나고 난 이후에, 벌써 4번째 치러지는 전투였다. 그런데도 이준호를 중심으로 선발대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준호라는 단단한 버팀목이 대부분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주는 덕분에, 선발대에 소속된 제자들은 생각보다 쉽게 적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이준호는 완벽한 리더였다.

뛰어난 무력과 지도력.

가신의 아들이라는 배경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강민혁과 후계자의 자리를 두고 경쟁했을지도 모른다.

‘여전하네.’

최후방.

강민혁은 이준호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아직 후발대가 할 일은 없었다.

대부분 선발대와 본대선에서 처리되었고, 그 중심에는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이준호가 있었다. 수호문의 제자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이준호를 바라보았으며, 리포터는 토벌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이준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네가 있어서 난 수호문을 떠날 수 있었어.’

그게 현실이다.

강민혁은 자신이 후계자의 자리를 포기해도, 그 자리가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준호라면 가능하다.

마나의 재능마저도 갖춘 그는, 강민혁에게 확신을 주었다.

강민혁이라는 사람이 없는 수호문의 미래는, 이준호를 중심으로 여전히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서걱!

듀라한을 쓰러트리는 이준호.

밝게 빛나는 그의 모습에서, 강민혁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발대, 본대, 후발대.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눈 데는 이유가 있었다.

토벌 전에 먼저 탐사를 나왔던 정보부대장 고무진은, 일주일간에 걸쳐 확인한 정보를 보고했다.

[암흑 도시의 몬스터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활합니다. 어둠의 마나로 가득한 필드(field)의 효과로 보이며, 부활한 몬스터는 본인들을 공격한 인간들을 끝까지 추격합니다. 그래서 암흑 도시에서는 오랜 시간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렸다간 몬스터들에게 발목을 붙잡힐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다크 리치를 처리하는 것이 토벌의 관건입니다.]

S급 던전.

과연 그 명성에 걸맞은 특성이었다.

그래서 다소 무리하더라도 이준호는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고, 본대와 후발대는 절대 본인의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언제 부활한 몬스터들이 따라붙을지 모르는 일이다. 만약 사방에서 몬스터가 달려들 경우 체계가 없는 포지션은 금방 무너져버릴 수도 있기에, 3개로 나눈 부대는 정확하게 본인들이 담당할 위치를 정했다. 선발대는 전방, 본대는 상황에 따른 지원, 후발대는 후방. 그래서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이준호의 선발대가 고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발대도 나서야만 했다.

“나타났다!”

“전투 준비!”

정판호가 바락 소리쳤다.

후방.

전에 처리했던 몬스터들이 턱 밑까지 쫓아왔다. 그 숫자는 정말 많았다. 약 이삼백 마리의 몬스터가 일제히 몰려드는 모습은 오금이 저릴 만큼 대단한 위압감을 풍겼지만, 수호문의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부분이 D급 몬스터인 구울이라는 사실이었다.

“마법사!”

“예!”

4서클 마법사들.

그들의 역할은 공격적인 포지션이 아니다.

“라이트(light)!”

“파이어 소드(Fire Sword).”

팟.

화르르륵.

일단 불빛을 밝혔다.

빛의 속성은 언데드 몬스터들의 외피를 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파이어 소드라는 인챈트 형식의 마법으로 검의 위력을 더했다. 화염은 어둠을 멸(減)하는 힘이 있다. 파이어 소드는 매우 고가의 마법이고, 타오르는 불길의 축복을 받은 강화 전사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적을 맞받아쳤다.

크아아아악!

“죽어!”

푸확!

전투가 벌어졌다.

서로 한데 뒤엉켜서 싸우는 상황에서, 3조의 사람들은 발군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상대는 A급도 아니고 대부분 D급이다. 일당백의 위력을 자랑하는 수호문의 제자들을 쓰러트리기에는 역부족.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본대도 후발대를 도와주기 위해 움직였다. 선발대와 후발대는 각각 고정된 포지션에 위치해 있지만, 강덕철의 본대는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추어주었다.

수백 대 수십.

그 엄청난 광경에, 김성호 일행은 넋을 잃었다.

“...와."

수호문.

그들이 왜 한국 제일의 무력 단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겨우 수십의 인원으로 보여주는 무력이 수백을 압도하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왔다.

그때였다.

강민혁이 마나를 끌어 올리며 소리쳤다.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에게 제 안전을 맡기겠습니다.”

이번 토벌.

강민혁은 사람들에게 ‘마법사의 힘’을 증명할 생각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수호문의 힘을 잘 알기에, 적당히 나서는 것으로는 부각될 수 없음을 알았다.

고로.

‘4서클 마법사임을 밝힌다.’

화르르르륵.

강력하게 타오르는 화염.

강민혁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가담했다.

얼추 300마리.

머릿수는 정말 많았다

하지만 겨우 B급이 한계인 몬스터들로는, 수호문의 병력에게 상처조차 입힐 수 없다.

‘토벌에 나선 사람들은 수호문의 정예야.’

정예 병력.

그들은 A급 몬스터 무리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그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실제로 위협을 느끼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었다. 오라 웨이브와 같은 기술을 사용하면 금방 처리할 수 있겠지만, 결국 부활하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과도한 마나 소모는 나중에 마나의 고갈로 직결될 수도 있는 일.

다크 리치와의 싸움을 대비해 마나를 최대한 아꼈다.

4서클 마법사들을 대동한 이유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효율적으로 사냥하기 위함이었다.

그 말인즉.

‘지금이야말로 마법사가 가장 크게 활약할 수 있는 판이다.’

수백 마리?

그따위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바글바글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모습은, 마치 마법에 당해주기 좋게 알아서 모이고 있는 것 같았다.

‘더블 캐스팅.’

머리가 팽팽 돌았다.

쿼드 캐스팅은 아니다.

지금은 양쪽 두뇌를 각자 하나의 마법에 집중시켜서, 더욱 빠른 속도로 마법의 캐스팅을 끝마쳤다.

몬스터 웨이브 훈련장에서의 경험.

그때의 경험이 살아났다.

“룬 플레어.”

“룬 플레어.”

화르르르르륵!

콰앙!

강민혁의 마법이 작렬했다. 그 강력한 위력에 D급 구울은 물론이고 B급의 듀라한도 큰 충격을 발휘한다. 강민혁의 마법은 무려 5서클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 듀라한을 태우는 불길에, 수호문의 사람들이 당황해서 마법의 주인을 찾았다. 이번 탐사를 위해 수차례 계획을 전달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5서클 이상’의 대마법사가 화력 지원을 해준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발동이 걸린 강민혁은, 쉬지 않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룬 플레어.”

“룬 플레어.”

콰콰쾅!

화르르르르르륵.

불길이 화끈하게 타올랐다.

한국 마법 협회의 마법사들.

그들이 4서클 공격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일단 4서클 마법은 B급의 듀라한에게 통하지 않고, 마법을 몇번 사용하고 나면 마나는 바닥을 드러낸다. 강민혁이 공개한 마나 동화와 같은 방법이 있지만, 그들은 아직 새로운 기술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공격적인 능력을 거세했다.

강화 전사들의 뒤편에서, 보조적인 마법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강민혁은 달랐다.

강민혁은 적극적으로 서클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마나를 모두 마법으로 변화시켰다. 캐스팅은 정말 빨랐다. 시련의 공간에서 단련된 두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캐스팅을 보였고, 강민혁의 마법이 발휘될 때마다 몬스터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강화 전사들을 무시하고 강민혁을 공격하는 몬스터들이 생겨났지만, 그들은 김성호 일행에 의해 완벽하게 막혔다.

퍽!

“어딜!”

김성호 일행.

그들이 이를 악물고 막아섰다.

그들에게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난전은 익숙한 것이 아니나, 지난 일주일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강민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세뇌되었다. 강민혁은 그러한 보호 덕택에 온전히 마법에만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고, 폭발적으로 뿜어지는 마나가 결국 상황을 모두 정리했다.

“룬 플레어.”

쾅!

화르르르르르르륵.

마지막 마법.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쓰러지는 듀라한의 모습이 보였다.

애초에 위기라고 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도 수백 마리의 몬스터는, 토벌대로서는 발목이 제법 오래 잡힐 만한 그런 상황임에는 분명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수호문의 제자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들이 당황한 이유?

당연히 마법의 위력 때문이었다.

강민혁의 활약은 상식을 벗어났다.

4서클 마법임에도 위력은 5서클 이상이고, 캐스팅 속도는 말도 안 되게 빨랐으며, 강민혁은 짧은 시간에 무려 10번에 달하는 마법을 사용하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마나가 다 떨어져서 쓰러졌어야 할 강민혁이, 아직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과 달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가장 큰문제.

마법을 사용한 사람이 바로 ‘강민혁’이라는 것이다.

새카맣게 타버린 듀라한의 몸을 떨구어낸 정판수가, 경악한 눈빛으로 강민혁을 바라보았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강민혁.

수호문의 사람들은 그가 살아온 삶을 알고 있다.

불과 몇 개월 전.

후계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호문을 떠난 강민혁은,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천상 무인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 뒤.

그들의 앞에 나타난 ‘마법사로서의 강민혁’은, 수호문의 사람들에게 기억의 괴리감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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