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68화 (68/197)

68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2) >

드디어 토벌 당일이 되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가 위치한 왕방산(王方山) 일대에 진입하자, 인근 주민들이 다급하게 도망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던전이 형성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던전을 중심으로 랜덤 게이트 현상이 자주 일어나면서, 그곳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폐허가 되었다.

노란 경계선 안.

1차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수호문의 후계자인 이준호가 브리핑을 맡았다.

“지금부터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가 생성된 이후, 에픽 몬스터인 다크 리치(Dark lich)가 발견되기 이전에 던전의 공략을 시도하던 12개의 파티가 모두 궤멸당했습니다. 이후 정부에서 던전의 이름을 암흑 도시로 명명, S급 던전으로 격상시키면서 주변을 완전히 폐쇄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존자가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며칠 전에 던전 안에서 무전 신고가 잡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수호문은 토벌을 최우선으로 하되, 혹시 모를 생존자의 구조를 동시에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잘생긴 외모와 어울리는 목소리에, 찬찬히 사람들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토벌대는 10명씩 총 3개 조로 나누겠습니다. 제가 선발대의 리더로서 최전방에 서며, 본대는 강덕철 문주님이 맡아 중간에, 마지막으로 후발대는 정판호 장로님이 맡으실 예정입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는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설명은 계속되었다.

수호문의 제자들이 이준호의 설명에 집중하는 모습에, 강민혁은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후계 계승을 위한 과정이구나.’

이번 토벌.

K 방송사에서 리포터가 붙었을 정도로 대대적으로 알려진 수호문의 공식 일정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자리에서, 강덕철은 본인이 아니라 이준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아직은 사람들에게 확고한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준호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의도가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본래는 더 일찍 진행했어야 할 일을, 강덕철은 이제야 결단을 내렸다.

‘이준호.’

과거의 기억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친구.

설명을 하는 도중에 순간 이준호와 눈을 마주쳤지만, 이준호는 그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명백한 무시.

이준호가 강민혁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강민혁은 안중에도 없다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설명이 끝날 때까지도, 이준호와 강민혁 사이에는 그 어떠한 교류도 없었다. 예전에는 항상 이준호가 강민혁의 얘기를 경청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둘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세간에 알려진 둘의 관계.

좋을 수가 없다.

강민혁은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 자리를 대신한 사람이 바로 이준호니 말이다.

“...이것으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30분 뒤에 토벌을 진행할 예정이니, 조별로 정비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괜한 상념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김성호 일행과 같이, 이번에 배정받은 ‘3조’로 걸음을 옮겼다.

정판수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버지인 정판호의 조에 소속된 그는, 강민혁 일행의 모습에 짜증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랑 지금 장난치자는 거지?”

수호문.

그들은 이번 토벌을 위해 A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강화 전사를 무려 30명이나 동원했다. 그리고 한국 마법 협회에도 도움을 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그렇게 1조와 2조는 4서클 마법사가 2명이 배치되었다. 그들이 있다고 해서 전력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나, 문제는 3조의 멤버랍시고 찾아온 강민혁과 그 일행의 모습이 정판수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것에 있었다.

“문제 있어?”

강민혁의 반응은 담담했다.

정판수의 반응이 어떻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문제? 당연히 있지. 너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잊었어? 무려 S급 던전을 토벌하는 자리야. 막말로 후계자의 자리에서 내려온 너를 토벌대에 포함시켜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대체 네 일행의 꼬락서니가 저게 뭐야? 강화 전사들이 무기는커녕 겨우 방패 하나 들고 있는 데다, 그간의 업적을 보니깐 B급 몬스터를 사냥한 게 전부인 녀석들이잖아.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그래도 네 어머니를 추모하는 자리인데, 사리 분별도 하지 못하는 걸 보니까.”

김준호 일행.

그들이 문제였다.

수호문에서도 정예 병력만 골라서 토벌대에 합류시켰는데, 김성호 일행은 아무리 봐도 지금의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강민혁과 김성호 일행의 조합. 심기가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판수의 성질상 가만히 넘어갈 수 없었다.

“정판수. 그렇게 따지자면 넌 예전에 나와 같이 토벌에 나서지 못했어. 그 정도 기억은 하지 않나?”

“이 새끼가.”

정판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과거.

정판수는 명백히 강민혁보다 밑에 있었던 사람이다.

흔히들 황금세대라고 불리던 강민혁의 라인에 정판수는 포함되지 않았고, 또래 천재들보다는 늦은 시기에 A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했다. 그것이 정판수의 역린(逆織)이었다. 잔뜩 달아오른 얼굴은 한바탕 할 기세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강민혁에게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때의 정판수는, 강민혁이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더라면 확실히 파티에 낄 레벨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문주님은 절대 너를 도와주지 말라고 명하셨어. 그따위 일행을 데려온 것은 네 업보고, 그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자고. 혹시라도 과거의 연으로 우리가 너를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는 절대 하지 마. 3조에 배정되었다는 것은, 이곳에 네 친구가 없다는 뜻이거든.”

그의 말이 맞다.

3조.

정판호가 리더로 있는 그곳에는, 정판호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 하민성과 같이 강민혁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3조의 사람들은 문주의 명령에 잔인할 정도로 충성할 것이고, 강민혁은 본인의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꼴린 대로 하세요.”

애초에 도움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스스로 지키겠다는 말.

그 말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면, 강민혁은 토벌대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통을 터트리며 시야에서 멀어지는 정판수의 모습에, 강민혁은 이만 시선을 거두고 토벌을 준비했다.

마침내 토벌대가 던전에 진입했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확 변했다.

분명히 방금까지만 해도 수풀이 우거진 산이었는데, 지금은 반쯤 허물어진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폐허 도시.

그러한 표현이 적절했다.

예전에는 어떤 문명이 형성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이곳은 이제 생명의 흔적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확장형 던전.’

던전.

그곳은 항상 동굴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S급 던전 암흑 도시처럼 확장형 던전이라고 불리는 곳들은, 안에 들어가는 순간 주변의 풍경이 개연성이 없을 정도로 단번에 변해버린다. 암흑 도시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동굴의 형태와 폐허 도시는 그래도 이질감이 크게 없지만, 초원이나 눈밭이 펼쳐질 경우에는 그 당혹스러움은 대단하다.

그때였다.

선두에서 리포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S급 던전 암흑 도시에 진입했습니다.”

K 방송사.

그들은 대담하게도 토벌 과정을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수호문에서는 그들을 데리고도 토벌에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준호를 알리기 위한 완벽한 판을 깔았다. 카메라맨은 선발대, 본대, 후발대에 모두 한 명씩 배치되어 있었지만, 끊임없이 조잘거리는 리포터가 배치되어있는 곳은 선발대뿐이었다. 그래도 리포터는 최소한의 개념은 있는 모양인지, 이준호에게 말을 거는 등의 토벌에 방해가 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일단 토벌에 집중하자.’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주변을 둘러보자, 고영철이 참고하라고 건네준 자료와 똑같은 형태의 풍경이 보였다.

'S급 던전 암흑 도시.’

위험한 곳이다.

에픽 몬스터인 다크 리치가 발견된 순간부터, 이곳을 공략하려는 파티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에픽 몬스터.

그것의 위력은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목격하였다. 수백, 수천 마리의 웨어 울프들을 진두지휘하던 로드의 위용. 그들의 힘은 일국(一 國)을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수호문의 토벌대가 공략하려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에픽 몬스터였고, 다크 리치는 웨어 울프 로드만큼 강력하지는 않으나 대신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다룬다. 수십 마리의 단위가 아니라, 최소 수백 단위로 말이다.

그때였다.

선발대에서 신호를 보냈다.

삐이익-

“준비해.”

“몬스터다!”

착!

바로 정면.

무너진 건물 사이로, 검은 그림자들이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김성호가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듀라한(Dullahan)과 구울(Ghoul)이에요. 그런데 대체. 몇 마리나 나타난 거지?”

B급 몬스터 듀라한.

D급 몬스터 구울.

하나의 개체가 그리 강한 몬스터는 아니나, 그들의 숫자는 언뜻 보아도 백 마리는 훌쩍 넘었다.

김성호 일행이 방패를 몸에 바짝 붙였다. 곧 일어날 전투. 처음으로 디펜더로서 나서야 할 상황에 긴장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굳은 의지가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강민혁이 마나를 전혀 끌어 올리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벌써부터 준비할 필요 없어요. 저 정도의 몬스터라면, 선발대선에서 금방 정리될 테니까요.”

“예?”

아직 이해하지 못한 김성호 일행.

그때, 선발대와 몬스터가 충돌했다.

듀라한과 구울.

고통을 모르는 망자(亡者)들의 무리는 분명히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그들이 일제히 달려들 때만 하더라도 리포터의 안색이 창백해졌는데, 이후의 광경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수호 검법.’

확-

마나의 파동이 일었다.

이준호가 사용한 수호 검법의 힘에, 망자들의 시선이 이준호에게 집중되었다. 일제히 이준호를 덮치는 망자들. 분명히 위험하다고 할만한 장면이었지만, 이준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이.

그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타오르는 오라가 주변을 휩쓸었다.

화르르르르르륵!

서걱!

듀라한 무리의 몸통이 동시에 날아갔다. 강한 열기에 타오른 육체는 재생되지 않았고, 이준호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으로도 모자란 모양인지 망자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학살이 시작되었다. 이준호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여러 마리의 망자들이 우수수 바닥에 널브러졌고, 이준호는 수호 보법을 밟으며 단 한 번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았다. 분명히 밀려드는 몬스터의 숫자는 백 마리가 넘어가는데, 오히려 이준호의 기세가 몬스터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아아, 정말 대단합니다! 역시 수호문의 후계자는 다릅니다!”

리포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겁에 질렸던 그녀가, 이준호의 무력이라면 본인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이어 선발대도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본대는 나서지 않았다.

강민혁이 마나를 끌어 올리지 않은 것처럼, 그들은 선발대의 선에서 정리되는 상황임을 알았다. 머릿수 비율로만 따지자면 10대1 이 넘어가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는데, 수호문의 정예들은 전혀 물러섬이 없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뒤로 흘려보내는 몬스터도 없었다. B급 몬스터 한 마리는 마법 학과생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나, 이준호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퍽!

머리가 터져나가는 듀라한.

시야를 가득 메우던 그들이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홀로 30마리 이상을 처리한 이준호가, 기어코 마지막 듀라한의 몸통을 가르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서걱.

툭, 데구르르르.

듀라한의 몸이 쓰러졌다.

검을 거두는 이준호는, 호흡조차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역시.”

“이준호 후계자님은 달라.”

“문주님의 안목은 정확하시다니까.”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그게, 현재 이준호의 위치였다.

이준호.

강민혁을 대신해 후계자로 선정된 인물.

그는 정치적 공작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실력이라는 명확한 평가 기준에서 강덕철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었다.

수호문 제일(第一)의 검.

사람들은 이준호를 그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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