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67화 (67/197)

67화.  < 19. S급 던전 암흑 도시 >

김성호는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강민혁.

그를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긴장이 되었다.

‘우리를 나쁘게 생각하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지금으로부터 몇 주 전.

우연히 강민혁의 학술 대회 영상을 확인하게 된 김성호 일행은 충격을 받았다. 클리스만의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수호문의 강민혁’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강민혁이 발표한 내용이었다. 강화 전사라고는 하나 김성호는 마법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강민혁의 발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았다.

‘강민혁은 천재야.’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것도 있지만, 세상에 알려진 강민혁의 행보를 따라가 보면 그가 뒤늦은 나이에 마법에 입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겨우 몇 개월. 남들은 기초를 쌓기도 버거운 시기에, 강민혁은 마법 학계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대단한 발견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았던 강민혁의 실력이,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는 뜻이겠지.’

그때부터 고민에 빠졌다.

연락할까.

그와의 인연을 어떻게든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강민혁이 수호문의 출신이라서가 아니다.

김성호가 직접 경험한 강민혁은, 수호문이라는 배경을 떠나 마법사로서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성공할 사람.’

그게 중요했다.

김성호, 임윤호, 정민철.

일반인이었던 그들은 한날한시에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기반도 없는 일반인이 성장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나름대로 재능이 있는 편이라 성장 속도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문제는 배경이었다.

아무런 배경이 없는 그들로서는, 결국 확 치고 나갈 수 있을 만한 원동력이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 강민혁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의 ‘인맥’도 없던 그들에게, 처음으로 성공이 보장된 특별한 사람과의 접점이 생긴 것이다.

‘이걸 계산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어. 하지만 강민혁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마법사로서 성공할 그의 곁에서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그와의 사냥이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든. 그러니 강민혁과의 접점을 최대한 살려야 해. 그가 우리를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앞으로도 관계를 맺을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어.’

간절했다.

그들은 강해지고 싶다.

수호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마법사로서의 강민혁과의 관계를 이어나는 것만으로도, 일반인 출신 헌터들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너무 떨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더 잘해줄걸.”

불안해하는 임윤호와 정민철이 보였다.

결국 그들을 리드하는 것은 김성호 자신이기 때문에, 김성호는 심호흡하며 평정심을 되찾았다.

‘잘하자.’

강민혁에게 연락한 것.

그것은 고민의 결과다.

강해지고 싶고, 그래서 염치를 무릅썼다.

그러니 잘해야만 한다.

강민혁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그가 자신을 좋게 기억할 수 있도록.

그때였다.

“온다!”

강민혁.

그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에, 김성호 일행은 마른침을 삼켰다.

김성호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강민혁과의 만남에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강민혁의 제안은 예상 범주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과 거래를 하려고 왔습니다.”

“.....거래요?”

“예. 문자로도 말씀드렸지만, 수호문에서 곧 S급 던전인 암흑 도시의 토벌을 진행합니다. 그때 저와 호흡을 맞출 ‘새로운 형태’의 강화 전사가 필요합니다. 이는 이제껏 여러분들이 훈련했던 체계를 완전히 무너트리는 방법이라, 동의가 없이는 진행할 수 없는 계획입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부분은 제안에 응하신다면, 앞으로 여러분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김성호 일행.

그들의 생각을 강민혁도 안다.

자신의 능력.

그 일부를 알게 되었을 때, 간절히 강해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해한다.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순수한 욕망이고, 만약 반대의 입장이었다 할지라도 강민혁도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만약 지난 사냥의 기억이 좋지 않았다면 김성호 일행의 문자에 답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민혁은 김성호 일행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김성호 일행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려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강민혁 또한 ‘목적’을 가지고 나왔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

이건 거래다.

상대의 눈치를 살필 이유도, 말을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

솔직하게 말해서 받아들이면 거래가 체결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좋게 자리를 마무리하면 된다.

“잠시 생각할 시간 좀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김성호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들은 잠시 한편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떻게 할까?”

“새로운 형태의 전사라는 게 대체 뭘까요? 우리가 훈련했던 체계를 무너트리는 방법이라니. 지금의 경지에 오르는 데도 정말 엄청 고생했는데, 새로운 방법으로 성장하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그래도 상대가 강민혁이면 믿을 만할 것 같기는 한데. 지금이야 수호문의 낙오자라고 불리지만, 후계자로 건재하던 시절에는

정말 대단했던 인물이잖아요.”

대화가 길어졌다.

그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자신과는 다르게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성장했다.

최근에 B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했을 정도로, 그들은 나름 ‘본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문제지.’

설득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상식과는 맞지 않는 길을 제시하는 상황에서는, 설득이 아니라 상대의 의지가 필요하다.

김성호 일행.

강민혁이 그들을 택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강해지겠다는 욕망이 강하고, 짧은 시간에 성장했을 만큼 나름의 재능도 갖추고 있으며, 몬스터들을 상대로도 물러섬이 없는 불굴(不屈)의 의지가 있다. 특히 김성호라는 단단한 버팀목 아래서, 임윤호와 정민철은 아직 어리지만 대단한 포텐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들이 수호문의 문도로서 시작했다면, 단언컨대 두각을 나타낼 만한 수준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

‘아무런 배경이 없기 때문에, 내 방식에 더욱 간절히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단순히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강민혁의 생각에 따라주지 않으면 필요가 없다.

강민혁이 바라는 대로.

강민혁이 생각하는 ‘방향’처럼.

어느 정도는 수동적인 사람이 지금은 필요하다.

“고민은 끝내셨습니까?”

“예."

김성호 일행.

그들이 자리로 돌아왔다.

단단한 의지를 보이는 그들의 표정에서, 어떤 대답을 할지 보였다.

“강민혁님을 따르겠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저희는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강민혁이 웃었다.

그들이 자신이 내린 동아줄을 움켜쥐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차례다.

“약속대로 저는 앞으로 여러분들이 강해지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지원 아래, 마법사를 지키는 디펜더(defender)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디펜더.

이 세상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낯선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클리스만의 세상.

그곳에서 수성전을 진행하며, 강민혁은 경비병들이 방패를 들고 상대를 막아서는 모습을 목격했다.

강화 전사.

마법사.

그들처럼, 방패병도 하나의 직종인 것이다.

책에서는 방패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디펜더의 시작은 아직 ‘대응의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는 마법사들을 보호할 장벽도 건설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마법사들은 본인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민해야만 했다. 그렇게 무빙 캐스팅과 같은 다양한 마법이 탄생했는데, 그 과정에서 마법에 재능이 없는 일반인들은 방패를 들고 마법사들을 지키는 디펜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일반인들이 방패로 마법사를 지키는 방식이 일상화가 되었고, 그중에서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디펜더의 칭호를 부여받았다. 마법 아티팩트의 힘을 빌리는 일반 방패병들과는 다르게, 디펜더는 그 이상의 방어 능력을 보인다. 하지만 디펜더의 숫자는 많지 않으며, 골렘이 개발된 이후로는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펜더.

새로운 직종이 탄생했다.

사실 당연한 현상이다. 강화 문명에서 마법사는 강화 전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한 관계가 뒤바뀐 마법 문명이라면, 당연히 마법사를 보조하는 직책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 방패병이 아니라 디펜더는 육체의 능력을 타고난 소수만이 가능한 직책이며, 그들의 기술에 관해서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탁.

“시작하시죠.”

강민혁.

그를 앞에 두고 김성호 일행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제안을 수락하자, 디펜더라는 알 수 없는 단어를 말하더니 한적한 장소에서 3대 1 대련을 제안했다.

강민혁이 들고 있는 것이라고는 방패 하나.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김성호가 먼저 총대를 멨다.

“갑니다.”

타닥.

김성호가 달려들었다.

마나를 다리에 밀어 넣어서 스피드를 증폭시켰고, 순식간에 지척에 다가와서 강민혁에게 검을 휘둘렀다.

카앙!

“방패 강화. 마나 전도율이 높은 방패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방패는 상상 이상의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강화 전사가 오라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웬만해서는 방패가 부서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죠.”

김성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가 허무하게 튕겨져버리는 모습에, 뒤늦게 임윤호와 정민철이 따라붙어서 합동 공격을 시도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오라.

오라의 사용은 사전에 얘기가 되었고, 그들은 강민혁의 사각지대를 노렸다.

캉!

캉캉!

“...?!"

공격이 모두 막혔다.

강민혁은 적절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다. 수호 보법으로 상대가 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도록 먼저 몸을 밀어 넣었고, 단단한 방패에 공격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방패는 ‘단전의 마나’로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인 강민혁도 충분히 방패를 강화시킬 수 있었고, 강화 전사로서의 경험을 활용해서 3명이 합공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냈다.

그리고.

퍽!

“차징. 순간적으로 힘을 집중시켜서, 방패로 상대를 타격하는 기술.”

콰당!

임윤효가 뒤로 넘어졌다.

그렇게 강민혁의 기술 시연은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성호 일행의 표정은 경악으로 얼룩졌다. 상대는 마법사다. 그런데 강민혁의 육체적인 능력은 마법사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당장 검을 들고 싸운다 할지라도, 강민혁 혼자만의 능력으로 세 명을 모두 도륙시켜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강민혁이 말했다.

“이 기술의 이름을 저는 수호의 방패라고 명명했습니다. 특수한 마나의 파동으로 특정 상대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술이죠.”

디펜더의 기술들.

사실 그것들은 강민혁이 클리스만의 세상에서 보았던 지식을 ‘강화 전사’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다. 수호의 방패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그것은 클리스만의 세상에는 없는 기술이지만, 강민혁이 수호 검법의 구결을 방패에 접목시켜서 새로운 형태의 기술을 만들었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강민혁은 해냈다.

강민혁이라는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의 자질을 갖추었다.

퍽!

콰당!

나가떨어지는 김성호.

그를 내려다보며, 강민혁이 방패를 거두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지금 제가 보여준 기술들이 앞으로 여러분들이 ‘디펜더’로서 터득해야 할 것들이고, S급 던전에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지도가 끝났다.

김성호 일행은 참담할 정도로 당했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절망감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선택은 옳았어.’

디펜더.

그것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강민혁과 같이한다면, 강화 전사가 아니라 디펜더라는 새로운 직책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일주일.

짧은 시간이지만, 김성호 일행은 영혼을 불사를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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