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66화 (66/197)

66화.  < 18. 희망을 찾아 모이는 사람들(4) >

마나 룸.

정상훈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공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정상훈은 살면서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일단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도록 하지. 밖으로 나가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지켜보도록.”

“예."

일단 강민혁의 말을 따랐다.

강화 유리로 만들어진 창문이 따로 있어서, 밖에서 안을 확인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강민혁은 마법진 중앙에 앉아 가부좌를 틀더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상훈을 향해 말했다.

“마나 룸을 가동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클에 있는 마나를 마법진에 흘려보내면, 마법진은 그에 반응해서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인다. 그때부터 마나 룸 훈련이 시작된다. 마나의 압력을 버텨내고, 얼마나 많은 양의 마나를 안정적으로 서클에 축적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번 훈련에 성공적으로 적응한다면, 넌 앞으로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은 짧게 끝냈다.

강민혁은 곧바로 마나를 마법진으로 흘려보냈고, 12개의 마나석이 반응하며 마나의 밀도가 높아졌다.

우우우우웅.

강한 압력!

예전 같았으면 감히 버틸 엄두도 내지 못했을 압력이 강민혁을 덮쳤다. 그러나 강민혁의 표정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시련의 공간에서 있었던 경험은 강민혁을 다른 세계로 인도하였고, 마나 룸 5단계 정도는 이제 1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마나가 가라앉자, 강민혁이 눈을 떴다.

“방금 내가 했던 방법대로 똑같이 하면 된다. 참고로 마나 룸은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훈련이니만큼, 잘못될 경우 서클이 손상되는 위험성이 있다. 그걸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해도 좋다.”

“하겠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강해질 지름길.

정상훈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아니던가.

의욕을 표출하는 정상훈의 눈빛에, 강민혁은 마나를 모두 소모한 마나석을 새것으로 교체하였다. 자신은 12개의 마나석을 사용했지만, 정상훈은 1단계를 할 것이기에 6개만 배치했다.

그리고 시작된 훈련.

안에 혼자만 남자, 정상훈은 강민혁의 설명대로 마나를 바닥으로 흘려보냈다.

‘이제 마나의 압력이...............'

우우웅!

“흐읍?!”

순간 숨을 들이켰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압력이었다.

몸 전체가 쪼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모든 구멍으로 빨려 들어오는 신선한 마나에 과호흡이 생길 것만 같았다.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 머리가 팽팽 돌았다.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은 당장에라도 피를 토해낼 것 같았지만, 강민혁은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정상훈이 포기한다면.

안전을 위해 당장에 훈련을 중단하고, 강민혁은 그와 맺었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이다.

마나 룸.

그건 강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정상훈은 아직 2서클 마법사고, 그의 서클은 강화액으로 만들어진 약하디약한 서클이며, 강민혁과 같이 수호문의 심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1단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더 높은 차원에서 요구되는 정신력을 생각하면, 이것은 겨우 몸풀기에 불과하다.

그러한 기대를 아는 것일까.

“후욱, 후욱.”

정상훈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는가 싶더니, 과연 천재라는 단어에 어울리게 마나의 압력을 버티는 본인만의 방법을 알아냈다. 순식간에 마나와 동화되는 육체. 정상훈은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마치 굶주린 아귀(飯鬼)처럼 주변의 마나를 모두 빨아들였다.

서클 강화.

그것이 처음부터 이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훈련이 모두 끝났을 때, 정상훈은 마나가 눈에 띄게 상승하는 유의미한 성장을 이루었다.

“...이런 효과라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성장이라는 것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수련하는 입장에서는 정신을 갉아 먹히는 힘든 과정이다.

그런데 마나 룸의 훈련은 극적이었다.

이런 훈련을 개발해낸 강민혁에 대한 존경심이 생김과 동시에, 문득 직전에 있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스승님은 12개의 마나석으로 5단계의 출력을 버터내셨어. 1단계가 이 정도라면, 5단계의 압력은 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과연 괴물이셔. 스승님은 남들보다 출발이 늦어서 이제 3서클 마법사일 뿐이지, 만약 나와 비슷한 시기에 마법을 익혔다면 이미 대마법사의 경지에 올랐을지도 몰라.’

강민혁에 대한 존경심이 듬뿍 차올랐다.

밖으로 나가자, 강민혁이 말했다.

“앞으로는 매일 내 집에 찾아와 마나 룸 훈련을 진행하면 된다.”

“...그런데 마나석의 가격이 많이 비싸지 않을까요? 적어도 상급의 마나석으로 보이던데.”

불그스름한 마나석.

그게 붉은 마나석이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마나의 양에 의문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확실한 건 상급의 마나석이라는 것. 시중에 그것이 얼마나 고가에 팔리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정상훈으로서는 그에 대한 미안함이 먼저 앞설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이 말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난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니까.”

"..........!"

남들은 유재명을 찾아가던 그 시기.

정상훈은 진짜 기연을 얻었다.

학교는 소란스러웠다.

6서클 마법사의 등장.

그로 인해, 마법 학과의 학생들도 덩달아 밝아진 분위기였다.

수업 도중.

마법 학과의 한 교수는, 밝은 표정으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의 재능은 학창 시절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같이 수업을 받았었는데, 매번 빛나는 그의 모습에 언제고 제대로 사고를 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6서클 마법의 개발이었다니. 몇 년 전부터 6서클 마법 개발을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닌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이렇게 보란 듯이 성공하니 친구로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유재명 대마법사님은 마법 학과의 자랑입니다. 유재명 대마법사님으로 인해, 앞으로 마법사들은 A급 몬스터에게 대항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실제로 유재명과 그리 친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는 유재명을 정말 잘 아는 것처럼 떠들었다.

‘좋은 현상이네.’

강민혁의 판단은 옳았다.

유재명.

그는 근본을 갖춘 사람이다.

엘리트 코스인 마법 학과에 입학해서,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정석적인 테크트리로 성장한 사람.

그 과정에서 유재명은 상위 계층들과의 연을 맺었다. 방랑벽이 있어서 어디에 소속되지는 않았으나, 마법 학과 명예 교수라는 명함을 내세우며 전 세계를 떠돌았다. 그게 유재명이라는 사람의 명성을 쌓았다. 그라면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한 인식이 퍼져 있었고, 유재명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심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의 인연을 가지고 마치 친한 것처럼 떠들었다.

유재명이기에 가능한 일.

만약 강민혁이 전면에 나섰다면, 마법사들의 질투는 강민혁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를 끼쳤을 것이다.

지금은 일단.

강민혁은 천천히 명성을 쌓는다.

그리고 나중에 이학범, 유재명, 정상훈과 같은 인물이 자신의 마탑에 소속된다면?

그때는 판이 바뀐다.

강민혁의 근본이 ‘수호문’에 있다고 한들, 사람들은 강민혁의 존재를 절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수호문의 토벌도 중요해.’

수호문.

그들이 진행하는 토벌은 많은 매스컴이 따라붙는다.

강화 전사들뿐만 아니라, 마법 학계에서도 이를 주목한다.

강민혁은 학술 대회를 통해서 인정을 받았다고는 하나, 수호문 출신이라는 인식은 아직 여전하다.

편견을 가지고 강민혁을 바라보는 마법사들.

강민혁을 수호문의 낙오자라고 깎아내리는 강화 전사들.

애매한 포지션에 위치한 강민혁이, 모두가 보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인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특히 마법사들.

강화 전사들에게 항상 무시를 받던 그들은, 강민혁이 인정받는 모습에 대리 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것을 위한 판.

마법사들의 신뢰를 얻는 것.

강민혁은 단계별로 계획을 진행했다.

며칠 뒤.

마침내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오후 6시까지 수호문으로 오도록.]

수호문의 연락.

강민혁은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수호문으로 향했다.

토벌 전.

수호문에서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했다.

흑표범 고무진.

정보부대의 대장이자 고영철의 아버지인 그가,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계획을 말했다.

“이번에 토벌할 던전은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S급 던전 암흑 도시’입니다. 던전 공략을 시도한 12개의 팀이 모두 전멸을 당하며 현재는 입구를 폐쇄 조치한 상태입니다만, 던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마나로 인해서 최근 랜덤 게이트 현상이 잦아진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언데드와 흑마법사 같은.................... 일정은 지금으로부터 1주일 뒤. 수호문의 정예 병력을 선별하여 암흑 도시의 토벌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번 토벌의 방송은 K 방송사에서 맡았으며, 실시간으로 토벌 과정이 사람들에게 공개될 것입니다.”

강덕철의 아내.

강민혁의 어머니가 죽은 이후, 수호문은 매년 그녀의 죽음을 기리는 축제를 벌였다.

몬스터의 피로 땅을 물들이고, 미제의 던전을 해결함으로써 수호문의 명성을 떨치는 연례행사.

이미 어느 정도 들었던 내용이기 때문에, 수호문의 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인물이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소식 들었습니까? 마법 학과의 유재명이라는 마법사가, 6서클 마법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6서클이라고요? 그럼 A급 몬스터에게도 마법이 통한다는 뜻입니까?”

“예. 이미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마법 시연회도 마쳤다고 합니다.”

이미 널리 퍼진 사실.

그러나 소문에 밝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은 상당히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뿐.

정판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6서클 마법을 개발하겠다고 꼴값을 떨더니 드디어 개발한 모양이네.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A급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서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려는 암흑 도시만 하더라도, 수많은 A급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이 아닙니까? 마법사들은 이제 스타트 라인에 선 것일 뿐이지, 아직 강화 전사들을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었습니다. 혹시 압니까? 한 2000년 정도 지나면, 그때는 우리와 위상이 비슷해질지. 크하하하.”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강력한 기득권인 정판호의 입장에서는, 마법사의 발전이 가소로울 뿐이었다.

몇몇은 그에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6서클 마법의 개발은 대단한 업적이기는 하나, 그것은 엄연히 마법 학계의 기준으로 했을 때다.

강화 전사들 입장에서는 좋은 ‘무기’ 하나가 생긴 정도. 마법사의 활용 가치가 앞으로 높아지겠지만, 6서클 마법 정도로는 대세가 바뀔 거라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A급 몬스터를 상대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혼자의 몸으로 수많은 A급 몬스터를 도륙한 전적이 있는 사람들에게,6서클의 발견은 특별한 위기감을 선사하지 못했다.

마법사의 평판.

강민혁은 그걸 가만히 들었다.

마법 학계는 매일 유재명을 띄우며 축제가 벌어졌지만, 이 세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게 마법의 현실이야.’

6서클로는 부족하다.

7서클 정도의 마법이 개발된다면, 그때는 강화 전사들도 마법사의 힘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강민혁.”

“예."

강덕철의 시선이 강민혁을 향했다.

음성은 딱딱했다.

마치 아들이 아니라 남을 부르는 것 같은 음성에, 강민혁도 차가움이 맴도는 목소리로 답했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부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이번 토벌에서 너를 도와줄 수호문의 사람은 없다. 네가 ‘마법사’로서 토벌에 참가할 생각이라면, 너 스스로 지켜야 한다.”

강민혁은 천륜(天倫)을 끊었다.

강민혁이 집을 나가던 그날, 강덕철 또한 강민혁을 수호문의 사람으로 대하지 말라는 엄포를 내렸다.

토벌의 참가는 최소한의 의무.

강민혁의 어머니기도 하기에, 토벌의 참가만큼은 허락했다.

“애초에 도움을 받을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 말씀하지 않으셔도, 스스로 지킬 생각입니다.”

“크흠.”

“허어.”

주변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살벌해지는 분위기.

다행히도 회의는 더 길어지지 않았고, 마지막 일정을 조율하는 것을 끝으로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수호문을 나서는 강민혁.

그때, 옆으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도움 필요하면 말해. 아버지가 뭐라고 하든 간에, 내가 널 지켜줄 테니까.”

하민성.

납골당에서 보았던 친구였다.

A급 몬스터를 쓰러트릴 수 있는 뛰어난 전사이기도 한 그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강민혁이 웃었다.

"말은 고맙지만 괜찮아. 내가 이번 토벌전에 참여하는 이유는 내 자신의 길을 증명하기 위함이야. 수호문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수호문의 후계자라는 위치가 아니더라도. 나라는 사람이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수호문의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어. 그러니 방금 한 말을 넣어둬. 네 도움을 받는다면,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의미는 퇴색될 테니까.”

“너.........."

하민성이 감탄한 기색을 보였다.

고영철을 통해 들었다.

강민혁이 진짜 마음을 다잡았고,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고.

후계자의 자리를 내려놓던 그 날의 기억이 있어서 완전히 믿지는 못했는데, 지금 보니 사실이었다.

‘정말 사실이었구나.’

강민혁.

그가 돌아왔다.

이준호, 하민성, 고영철 등등.

황금세대라고 불리던 수호문의 천재들이, 마나의 재능을 갖추지 못한 강민혁에게 충성을 맹세했었다.

강민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하민성은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토벌이라.’

강민혁은 폰을 꺼내들었다.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강민혁은 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클리스만님. 아니, 강민혁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마법 학술 대회에서 강민혁님의 영상을 보았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클리스만님이 수호문의 그 강민혁이었다니. 혹시 예전에 같이 사냥을 하자는 제안이 유효하다면 이번에 시간 어떠세요? 마법사로서의 강민혁님이 필요합니다.]

김성호.

전에 파티 사냥을 했었던 사람이 보낸 문자다.

그는 강민혁에게 크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김성호가 문자를 보낸 타이밍이 좋았다.

강민혁이 답장을 보냈다.

[시간은 되는데, 혹시 'S급 던전 토벌’에 참여하실 의향 있으십니까?]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최소한의 병력.

강민혁은 김성호 일행으로 만들 수 있는 재밌는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강민혁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하민성은 흐뭇하게 피어오르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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